학술

[논문리뷰] 함석헌의 무교회와 역사철학

서구중심 실체론적 존재론에서 관계론적 패러다임으로 전환

▲신천옹 함석헌 선생 ⓒ씨알소리 제공 
한국인으로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기독교는 오늘의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아가, 한국의 기독교가 바라보아야 할 미래는 어떠한 것인가? 역사철학은 기독교의 역사성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함석헌의 역사철학저술 『뜻으로 본 한국사』는 이러한 점에서 한국 근현대 정신사에서 중요한 저술로 평가받는다. 
 
이화여자대학교 양현혜 교수는 이번 연세신학 신학논단 71호에서 ‘함석헌의 무교회와 역사철학’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하며 함석헌의 사상과 역사관을 확립하고자 한다. 양 교수는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사』를 한국 근현대 정신사에서 중요한 역사철학적 저술로 평가하며, 그의 스승이었던 우치무라 겐조의『지인론』과 후지이 다케시의『성서로 본 일본』을 통해 함석헌 사상의 기원을 찾고, 함석헌 사상의 독자성을 밝힌다.
 
우치무라는 성서의 말씀을 역사에 조준하여 해석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시했다. 특히 그의 저술 『지인론』에서 그는 지리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조물주는 각 민족에게 독자적 특징이 있는 공간을 주고, 그 지리적 자연과의 상호 관련성 속에서 각 민족은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우치무라는 서구 중심적 진보사관을 품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인류는 진보를 향해 나아간다는 역사 진화론을 제기하면서, 진보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각각의 개인과 국가에게 특별한 사명이 주어졌으며, 일본은 동서양 문명의 조화와 일치를 통해 인류 문명을 완성시키는 특별한 사명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무교회 2세대를 대표하는 후지이는 우치무라의 역사철학적 사유를 계승하면서, 세계사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절대자를 찾고 발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세계사의 완성은 죄와 죽음의 근절이며, 모든 사람이 절대자를 앎으로서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를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세계사는 인류 구원을 위한 신의 섭리가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였다.
 
우치무라와 후지이의 역사철학은 서구 중심적 역사철학을 일본사에 적용시킨 주체적 사상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전범행위와 부패해가는 문화는 이들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었다. 양현혜 교수는 우치무라와 후지이에 대해, 일본이 세계 구원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민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함석헌은 서구중심적 역사철학적 사유를 식민지 조선에 적용시켰다는 점에서 우치무라의 영향을, 세계사의 전개를 인류구원을 향한 신의 섭리의 차원이라는 기독교적 사상에서 후지이에게서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함석헌은 조선을 ‘세계의 모든 불의와 죄악이 담긴 세계사의 하수구’로 인식하며, 역사를 노예의 자리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들과 사상을 달리한다. 함석헌이 보는 조선은 세계사의 죄악을 대속하는, 고난의 장소였으며, 인류 문명의 완성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독립된, 자유로운 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이었다.
 
함석헌은 무엇보다 ‘고난’을 통한 사명의 이행을 강조한다. 그에게서의 고난이란 인류를 자유롭게 하는 ‘사랑’의 실천이었으며, ‘창조적 자기 증여’, 곧 자발적인 자기 내어줌을 통한 자기실현이었다. 또한 ‘고난’은 인류의 새 시대인 전체성의 시대를 만드는 한국민의 세계사적 소명이었다. 곧 ‘고난’은 인간의 자기실현과 역사변혁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였다.
 
양현혜 교수는 논문을 마무리하며, 함석헌의 역사철학은 서구중심의 실체론적 존재론에서 ‘고난’을 통한 사랑의 완성이라는 관계론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서구 보편주의를 해체해 버렸다고 평가한다. 이는 곧 중심성에서 상호관계성으로의 전환을 뜻하며, 경쟁이 아닌 상생의 관계의 시작인 것이다. 함석헌의 역사철학은 탈근대적 사유와 실천을 모색하는 물음에 하나의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양현혜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사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 이요셉(연세대 신과대 4학년)·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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