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신명기서 6:4-9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또 당신들은 그것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십시오.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이십시오.” 아멘.
에베소서 6;1-4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아멘.
마가복음서 10:13-16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 아멘.
설교문
오늘은 우리의 아이들이 주인인 날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장면이 아주 짤막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옵니다. 예수님, 우리 아이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십시오 라고 하면서 찾아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성인 중심의 사회는 아이들을 귀찮은 존재로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른 행사에 오면 물러나 집에나 가라고 합니다. 지금도 똑같은 환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지금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나한테 손을 얹어 축복해주길 바라는데, 시샘하지 말라. 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놔두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어린이가 간다는 말이 아니라, 어린이처럼 행동하고, 말해야 하나님에 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답니다. 이 아이들이 그런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 막지 말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되어 있고, 자세가 되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 어른들 사고방식 속에는 유대 땅이나 우리 땅이나 마찬가지로 어린이를 독립된 인간으로 취급치 않습니다. 특히 유대 땅에서는 하나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명하신 계명들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자기 자체 사고방식이 있지도 않고, 또 성장한 주체로서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 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공로가 없는 어린아이들이 예수에게 와 축복을 받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래서 못 오게 한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에 있는 공적을 쌓아야만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유대사회의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고방식에 대해서 정면 도전합니다.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마라. 하나님 나라의 은총은 하나님이 베푸신다. 사람의 공적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많은 것을 쌓아 놓아야 하나님 나라 축복 받는 것도 아니다. 축복은 그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살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은혜를 베풀어야만 축복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의 사고방식 속에는 이런게 있읍니다. 제가 이만큼 준비했으니 제가 준비한 공로 속에 하나님이 오셔서 축복을 베풀어 주옵소서 라고 확신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런 방식의 이해는 잘못입니다. 하늘의 축복은 사람의 공로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파는 물건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늘을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늘은 하늘 자체가 조건 없이, 공적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라 하십니다. 사람이 하늘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은 하늘이 알아서 결정한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사람이 하나님을 제한하거나, 관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이라는 말을 쓰셨읍니다. 어린아이 같이 아무것도 몰라야 한다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른 성경본문에서 보면 아이들도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되어있읍니다: “아빠, 아바 하나님”, 엄마에게는 “엄마”, 또는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나 이것 좀 주세요. 아이의 요청을 거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안계시지요? 아빠, 엄마도 안계시지요? 어린이의 이 부름의 말속에 이미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기는 "아빠!" 하는 말로 자기가 받고 싶다는 것을 다 표현 한 것입니다. 마음을 다 열어 놓은 것입니다. "아빠!" 속에 하나님은 천국의 축복을 다 베풀어 주신답니다.
어린이가 아닌 어른 된 여러분, 어린이들처럼 바뀌어야 합니다. 내 공적 속에 하늘을 담을 생각하지 말고, 내 공적을 하나님 속에다가 담으십시오. 내 희망을 하나님께 담으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내 희망 속에, 내 삶속에, 내 사고방식 속에 담아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것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건 사람 것 입니다. 왜 혼동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신 나라이지, 사람이 만든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이처럼 작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받드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것을 베풀어 주십니다. 혹시 우리 자녀들이 "아빠!", 그렇게 말하면 그 자녀들이 자기를 다 연 것으로 받아 드릴 수 있지요? 사랑이 부모와 자식사이를 연결하는 끈이라고 하면, 사랑하는 우리 어린이의 입에서 나오는 "아빠"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하듯이, 부모를 향해서 아빠라고 하면, 엄마라고 하면, 그것을 간구의 음성으로 들으십시오. 그 속에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 속에 인간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 속에 사람으로서 자기로서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이 미워도, 사랑스러워도 사랑을 베푸는 것은 부모의 몫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도 하나님이 알아서 자기의 마음대로 사랑의 마음으로 자식에게 복을 그리고 하늘나라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가 마가복음 본문의 핵심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때 사건이 있습니다. 종교개혁 때 그 동안 유아세례 받고, 견신례 받았던 전통이 개인의 신앙 고백 없이 받은 것이니, 세례를 받아야만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얻으려면, 자기 자신이 공부해서 신앙고백하고, 시험도 보고, 그래서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읍니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개혁이라고 말입니다. 교회 한쪽에서 굉장한 운동이 생겼습니다. 이 운동을 재세례파 운동이라고 합니다. 형식적인 세례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 뜻은 옳고 좋은 이야기 인데, 실제로 결국 교회가 했던 모든 행위를 다 부정합니다. 심지어 유아세례는 성경 말씀에 배치된다 그랬습니다. 바로 그런 때에 칼빈도 그렇고 많은 종교개혁자들도 오늘 마가복음 본문을 인용합니다. "아빠!"라고만 부르면 하나님은 오셔서 어린이 머리에 손을 얹고 하늘나라 축복을 주신다. 이 말씀이 유아세례를 인정하는 말씀이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 본문이 유아세례를 위한 본문으로 채택되기도 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어린이가 오는 것을 보고, 하나님 나라는 어린이다워야 하나님 나라 복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 선생님은 에베소 교회에 말합니다.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우리 어린이들을 주님 안에서 훈계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훈련시키십시오", 축복받은 자녀들한테 하는 말씀입니다. "주님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면", 주님 안에서 이런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붙여서 계명, 곧 첫째는 여러분이 부모 공경하면 이 땅에서 아주 잘 될 것입니다". 복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는 일마다. 이 땅 에서 아주 오래 삽니다. 효도 잘하는 사람이 오래 살아요. 이거 무슨 말입니까. 땅에서 오래 산다니. 구약시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가정은 수천 대까지 이르러서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가정은 삼사대 까지 가면 끝나서 없어져 버린다는 말씀 기억하시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가정은, 부모 공경을 받는 가정은 수천 대까지 이르러 땅에서 장수를 받습니다. 내 한 수명이 길게 장수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계속 이어져 가면서 이 땅에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장수가 되는 가정역사가 생깁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장수하는 역사가 끊겨 집니다. 제 말이 아니고, 성경말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공경하며 사십시오.
구약성경에 보면 오늘 신명기서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보고,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고 섬겨라. 그 분은 이 땅에 단 한 분밖에 안 계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하나님을 한 분으로 알고 믿었습니다. 한 분 이외에는 안계십니다. 그 한 분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베푸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믿고 머리에도 쓰고, 손 팔찌에도 담고, 문설주에도 쓰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가정의 신앙고백서입니다. 저는 한 분 밖에 안계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어린이처럼 되십시오. 그러면 하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오늘 예배시간에 “어린이의 소망”을 통해 유치부와 어린이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 보셔죠? 잘 들으셨죠? 유치부 어린이가 “예수님, 우리나라하고 북한하고 싸우지 말고 잘 살게 좀 해주세요.” 얼마 전에 있었던 전쟁 이야기 때문에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친구들하고도 친하게 살게 좀 해주세요. 아프지 않는 친구들 되게 해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아주 절절한 요구입니다. 어린이부 아이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경동교회 잘 이끌어 가도록 열심히 공부할테니 도와주세요. 세계에 나가서도 반기문 총장처럼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희가 작은데도 큰 사람처럼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사람이지만 앞으로 크게 되겠습니다.” 느끼고 있는 그대로의 순박한 용어로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들으신 부모 여러분 다 축복해 주시고 싶지 않으십니까.
저는 지난 주간에 네덜란드에서 새로운 남자 국왕이 등극했고, 전세계가 환호했다는 신문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왕은 국민이 투표로 뽑는 게 아닙니다. 세습됩니다. 종신입니다. 부모 되신 여러분 부모를 자식이 투표해서 뽑았습니까? 선거해서 뽑아서 부모 되었습니까? 아마 왕 비슷한 것 같은데요, 옛날에 왕은 세습으로 만들어져서 온 백성을 한 손에 집어넣고 완전히 군림을 했습니다. 지금의 왕은 투표도 거치지 안았지만, 그런 시절의 전제군주인 왕이 아니고, 정치에 개입을 하지도 않고, 일상사에 개입을 하지 않으면서 혹시 국민들이 어려움에 빠지면, 외로워하면, 백성들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지금 왕들이 합니다. 유럽의 경우 27개 나라 중에 10 나라가 이런 왕정제도를 취하고 있답니다. 제 머릿속에 이런 모습이 떠오릅니다. 우리 보모가 집안의 가장입니다. 투표 없이 가장이 되었습니다. 세습합니다. 우리가 굴림 하던 옛날 왕이 아니고, 지금처럼 사랑의 고리를 가지고 민주적 왕들 처럼 부모가 자녀를 대하고, 자녀들 세계를 관섭하지 말고 폭력 쓰지 않고, 강요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어린이 세계에 들어가서, 혹 그들이 흔들릴 때 중심이 되어주는 부모, 그리고 자식이 아프면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듯이 자식을 위해서 십자가 지시는 부모,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해서 새로운 부활 생명의 은총을 전해줄 수 있는 부모, 그것이 현대판 사랑받는 국가들의 왕처럼, 사랑받는 부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오시면 나는 왕이다. 옛날 왕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희생하는 왕, 부활을 통해서 악을 이기신 왕이다, 그리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런 모습의 왕으로 예수께서 오시고, 하나님이 오십니다. 그 분이 오시면서 나 하나님은 그런 왕이고 싶다고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족에서 이런 왕의 모습을 사랑하는 부모 되신 여러분이 배우고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왕의 사랑하는 자녀 된이 여러분, 이런 왕의 모습을 지닌 부모님을 사랑의 권위자로 공경하고, 모셔 주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그대들의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예수께서 오늘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한테 유명한 시인이 많습니다만 동양출신 시인 중에서 요르단의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이 있습니다. 이 분이 “예언자”라는 시집을 냈습니다. 세 구절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들을 거쳐서 태어났지만, 당신들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당신들의 소유는 아닙니다. 사랑은 줄 수 있지만, 생각까지 줄 수는 없지요. 육신의 거처는 될 수 있지만, 영혼의 거처는 될 수 없지요. 그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의 주시는 내일의 집의 자기 둥지를 트고 살 사람들입니다.” 어제의 부모가, 오늘의 부모가 내일의 집을 너무 간섭하지 마세요. 미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혹시 도움이 되신다고 믿으시면 우리 부모님들, 우리 자녀들을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 좀 더 가까이 있는 자녀로 그렇게 키우십시다. 그리고 십자가 보혈로, 부활의 능력으로, 기도해주고, 권면해 주고, 사랑해 주십시다. 본문 말씀의 마지막에 보면 예수님이 어린아이가 왔을 때 축복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에 손을 얻고 꽉 끌어안고, "하나님 나라는 너희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은 이 다음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예수께서 끌어안아 주시면 그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끌어안아 주시면 그 나라가 사랑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오셔서 우리 모두를 끌어안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래서 사랑의 나라가 됩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