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하나님 가정의 어버이

2013년 5월 12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신명기서 5:6,16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주 너희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다.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린다. 아멘. 
 
히브리서 11:8-12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약속하신 땅에서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하였으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랐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많은 자손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멘. 
 
누가복음서 8:19-21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께로 왔으나, 무리 때문에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께 전하였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서서,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들이다.” 아멘. 
 
설교문
  
우리는 오늘 모여서 가장 큰 목적 하나를 달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통해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려 합니다. 지난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지키면서 어린이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린이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깊히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부모들에게 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실로 사랑하면 사랑하는 그 사람을 닮아 갑니다. 또 정말 닮고 싶으면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 중에 어린이를 사랑하여 라고 말씀했을 때는 예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었읍니다. 어린이를 닮아라. 어린이를 닮아야 하나님 나라에 간다. 하나님 나라는 어린이들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갈 수 있다. 그렇기에 어린이를 사랑하여라. 사랑하는 어린이를 닮아라. 닮고 살아야, 하나님 나라를 축복으로 받는다. 이제 우리도 어린이를 사랑하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십시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서 거꾸로 그 어린이들을 향해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여라". 부모님을 공경하면, 부모님을 닮고 싶어 집니다. 부모님을 끌어안고 싶어 집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에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면, 자녀들이 이 땅에서 잘 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것이랍니다. 장수한다는 뜻인데요, 가족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자손이 번성해 이 땅에서 굉장히 오래 살 것이랍니다. 한 집안이 2~3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엄청나게 오랫동안 바다의 모래처럼 자손이 넘치도록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부모가 어린이를 사랑하면 미래 지향적인 하나님 나라를 축복으로 받고, 반대로 어린이가 부모님을 공경하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대로 축복 받는 것을 지속하게 될 것이랍니다. 오늘 이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말이죠, 부모를 공경하면, 잘되고, 오래 살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 해봤자. 그렇게 말씀 하시는 분이 누구요 라고 질문하면, 우리는 분명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당신이 누구이시기에 우리가 당신이 약속하는 그 축복을 믿을 수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은 이 부모공경의 축복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녀들한테 복과 장수를 약속한 나 하나님은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 400백년 식민지 생활을 끝내고 홍해를 건너 약속 된 땅 가나안으로 인도한 바로 그 하나님이다라고. 내가 오늘 자손들에게 약속하마. 부모를 공경해라. 그러면 가나안 땅에서 축복의 삶을 아주 오래 동안 살 것이고, 살아가는 매일 매일이 행복으로 가득찰 것이다라고. 무슨 약속이던지 약속하신 분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우리들이 그 약속을 진실로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약속을 많이 할 텐데 자녀들이 부모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그 약속이 신실하게 받아들여 집니다, 우리 부모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킨다는 신뢰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온 인류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을 하셨으면,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지키신다는 신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약속의 증표를 보이십니다. "나는 출애굽을 이끈 하나님이다. 역사적 사실, 이 모든 것을 합해서 나 하나님이 약속한다. 부모를 공경해라".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내리 사랑"입니다. 내리사랑에는 언제까라든지, 또는 어디까지라든지 하는 한계가 없습니다. 내리사랑은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도 얼마만큼 사랑하셨는지를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까지 사랑하십니까, 그리고 왜 사랑하십니까 라고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사랑하는 자의 자유입니다. 그 분의 결단 일뿐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랑하는 자의 자유로운 결단입니다. 자녀들이 원해서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자녀가 사랑을 베플어 달라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냥 먼저 사랑이시고, 먼저 사랑을 베푸십니다. 이와 같이 부모도 자식들의 요구를 받지 않아도 먼저 사랑을 베풉니다.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똑같은 방식으로 이제 방향을 바꾸어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해야 한다는 그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길러 주셨기 때문에 공경해야 한다, 그것도 아닙니다. "올림 공경"은 그냥 공경입니다. 얼마만큼 공경해야 합니까. 제한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공경해야 합니까. 그런 제한도 없습니다. 왜 공경해야 합니까. 이 것에 대한 이유도 없습니다. 사랑이 무조건이듯이 공경도 무조건입니다. 단, 사랑하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듯이, 부모를 올림으로 공경하면 이 땅에서 장수하고 오랫동안 살게 해주신 답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가정이 어디 있느냐 하면, 부모님에 자식을 향한 내림사랑과 자식들의 부모를 향한 올림공경이 손바닥 마주치듯이 만나는 곳, 그곳에 가정이 있읍니다. 그것이 가정 아닙니까? 사랑과 공경이 만나면, 찬송이 나옵니다. 매일 같이 반복하면서 동시에 감사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기쁨이 넘쳐 납니다. 이 약속을 아주 옛날부터 창조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면서 이 약속은 변치 않고 유지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약속은 유효하답니다. 하나님의 땅을 떠나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을 떠나지 마세요. 떠나시면 이 약속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래서 만, 하나님 안에서 만, 이 약속이 유효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인들이 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고, 현실화하시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많은 백성들 앞에서 그 약속의 실체인 하나님 나라를 설교 하십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의 주변의 형편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예수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엉터리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신을 모독하고 있다고, 이런 저런 소문이 아주 나쁘게 돌아갔읍니다. 이 소문을 들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이 예수를 만나보려고 길을 떠나 왔읍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께서 설교하시는 중간에 어머니와 형제자매가 예수를 보러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 제자들이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습니다하고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냐라고 대답합니다. 내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내 어머니요, 내 형제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 답변만 들으시면 하나님의 아들치고는 참 사람다운 감동이 없지요, 이런 아들 두고 싶으십니까? 염려하여 겨우 찾아 갔더니만, 자식이 그리고 형제가 하는 말이 당신은 내 어머니, 당신은 내 형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내 어머니이고 형제인데 당신들은 왜 왔소 하고 말하는게 아닌가요? 이것만 보면 예수님이 참 웃깁니다. 가슴도 없고 감성도 예의도 없는, 정말로 이런 불효한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말씀은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것이지만, 모든 과정을 다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듣고,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을 것이고, 쳐다보았을 것이고, 등등의 여러 가지 행동을 취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런 모든 상황과 과정은 생략하고 예수님의 결론만 듣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두절미하고, 결론만 적어 놓은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 주신 어머니와 자식들이 왔는데, 낳음 받은 아들 예수는 뭐라고 응답했을까? 여기에 결론만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이 결론만 가지고 유추하여 상황을 보면서 예수님의 본뜻을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그리고 "실천하는" 사람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자매다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앞에 오신 어머님은 나를 낳아 주신 몸의 어머니입니다. 형제자매들은 나를 낳아주신 똑같은 어머니의 혈육 입니다. 혈육으로 낳낳고, 몸으로 낳은 자식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우리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충분조건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몸으로 낳아주신 부모님은 동시에 가슴으로 낳은 우리 부모님과 똑같다는 점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부모님이 살아계시지 않으면 오늘 어버이날 누구에게 공경을 표현 하시렵니까? 몸으로 낳아주신 부모님이 안 계시면, 대신으로 가슴으로 낳아주신 권사님들, 조상들에게 꽃을 달아 드리면 안 되나요? 몸으로 낳아주신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가슴으로 낳은 부모도 똑같은 마음으로 공경하십시오. 꽃은 양쪽 부모님 모두에게 다 달아 드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몸의 부모가 안계시더라도, 가슴으로 섬겨야하는 부모가 곳곳에 계시지요? 그분들을 섬길 때, 몸으로 낳아주신 부모님처럼 받들고 섬기십시오. 몸과 가슴을 분리하지 마시고, 둘다 감사한 마음으로 섬기십시오. 이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마치 내가 낳은 자식만 자식이고, 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모든 젊은 자식들이 내 자식이라 알고 사랑을 베풀면, 그 속에 사랑과 공경이 묻어나서 아름다운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지요. 이 이야기를 예수께서도 하십니다. 나를 몸의 자식으로만 제한하지 말라. 나는 몸의 자식인 동시에 영의 자식이다. 나는 육의 어머니도 섬기고 싶지만, 우리 어머니와 똑같은 다른 어머니들을 나의 어머니처럼 섬기고 싶다. 그 어머니들이 또한 나를 가습으로 낳은 자식으로 받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부부이십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느냐하면,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공경이 만나서 합해지지 못하고 충돌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어 봅시다.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자식 공경이, 부모와 자식 간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면, 부모님을 위해서 자식이 양보하면 좋습니까? 자식을 위해서 부모가 양보하면 좋습니까? 어느 쪽이 양보하는 것이 좋습니까? 때때로 우리는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주시는 주님의 대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결단해라".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의 입장에서 틀렸으면 부모가 양보하라. 자식의 공경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자식은 양보해야 한다. 누군가를 편들기보다 두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운데 놓고, 가운데를 중심으로 나누어 생각해보라. 이 말씀을 예수께서 대답으로 하십니다. 들에 피는 백합화를 봐라. 날아다니는 공중의 새를 보아라. 먹이지도 않고, 길러주지도 않았는데 먹고 살지 않느냐. 마태복음 6장에 보면 계속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서 먹을 것, 마실 것, 다 주마. 다 갖고 싶으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라고 하십니다. 모든 것을 주신 원초자인 하나님을 먼저 섬기면, 그 분이 마련해 주신 모든 부차적인 축복은 자연적으로 모두 따라 오느니라. 부모님을 공경해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고 싶으시면, 자식을 사랑해서 자식이 바라는 것처럼 이루어지길 바라시면, 우선적으로 자식과 부모를 주신 하나님의 귀한 뜻을 찾아서 감사하고, 공경과 사랑이 만나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서 공경과 사랑이 대화하고 협력해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식과 부모가 마주 앉아 이야기 해보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 보라. 하나님 앞에서 사랑해 보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공경해 보라. 그러면 진짜 사랑과 진짜 공경이 하나님 앞에서 축복의 산물로 다가온답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우리도 반복하며 삽시다. 우리 몸으로 또 가슴으로 함께 낳아주신 부모님들께 아름다운 공경을 드리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오래 살고, 잘되고, 장수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 하고 싶어 합니다. 진실 되게 행복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분부대로 살고 약속 믿고 살아갑시다. 
 
사도바울은 이 말을 가지고 히브리서 본문에서 아주 아름다운 아버지상, 어머니상 하나를 소개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아버지 중의 아버지인 아브라함, 어머니 중의 어머니인 사라를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이 76세 되었을 때 아내 사라가 잘못해서 아브라함과 자신의 여종인 하갈과의 사이에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그 아들 이름이 이스마엘 이며, 이슬람 창시자들의 조상입니다. 나중에 사라가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고 했을 때 더 기다릴 것을, 참을성 없이 빨리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여종과 남편으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했는데, 이스마일을 낳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 아랍사람들과 유대인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나중에 약속으로 받은 이삭을 낳은 후에는 이복 형인 이스마엘을 쫓아냈죠. 광야에서 하나님은 그러나 이스마엘을 축복하시고,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고 약속 하십니다. 오늘날 이스마엘 후손인 아랍인 인구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일단 끝냅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와 아브라함에게 다시 약속을 합니다. 너희 둘 사이에 자식을 주마, 그 약속을 주신 때가 사라가 90세이고, 아브라함이 100세 때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문이십니다. 그런데 그때 사라가 하나님을 향해서 이렇게 표현했답니다. 사라가 "비웃듯이 웃었다". 90살이 된 제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고요. 하나님은 약속을 주셨고, 사라는 비웃었읍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이라고 반응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어쨌던 약속대로 사라는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삭의 이름을 하나님이 지어 주셨습니다. 이삭이라는 뜻은 "그가 웃었다"입니다. 기뻐서 웃었답니다. 이삭의 어머니는 1년 전에 수태예고를 받고 빈정 되며 웃었읍니다. 그런데 낳은 아들은 기뻐서 웃었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너무 좋아서 함박웃음을 웃으셨읍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너무 좋아서 웃으셨고, 낳은 약속의 자식 이삭은 너무 기뻐서 웃었읍니다. 어머니도 웃어야 했었읍니다. 아버지도 웃었어야 했읍니다. 사실 진정한 공경은 웃음으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사랑도 웃음을 만들어 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실수를 했지만, 이제 이삭을 얻고는 아브라함과 사라도 웃었답니다. 기쁘다고.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이 중심에 있다고 믿으며. 인간의 가족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을 향한 웃음의 찬양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이렇게 웃음찬양으로 사는 것이 참 가족의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아내와 남편으로 복되게 살아갑시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 오손도손 행복하게 삽니다. 중심에 하나님만 모시면 그 집은 하나님의 축복받은 집입니다. 하나님 모시고 사는 집, 하나님이 중심인 집, 그런 집을 전문용어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가족을 라틴어로 파밀리아(familia)라고 합니다. "하나님의"를 데이(Dei)라고 말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가운데 계시고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공경이 만나는 집, 그래서 웃음이 가득한 집, 하나님도 웃고, 엄마도 웃고, 아빠도 웃고, 아들과 딸도 웃고, 웃음이 가득한 집을 파밀리아 데이(familia Dei)라고 합니다. 이 집은 공중에 있는 집이 아니고 이 땅에 있는 집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모시고 사는 동안 여러분 모두의 집이 familia Dei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웃으시며 기뻐서 베프시는 축복이요 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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