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먼저 들보를 빼라

2013년 6월 23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창세기 50:15-21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요셉이 자기들을 미워하여, 그들에게서 당한 온갖 억울함을 앙갚음하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기신 유언이 있습니다. 아우님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너의 형들이 너에게 몹쓸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 이 아버지는 네가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바란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우님은, 우리 아버지께서 섬기신 그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서 울었다. 곧 이어서 요셉의 형들이 직접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우리는 아우님의 종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다. 아멘. 
 
베드로전서 3:8-12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한 마음을 품으며, 서로 동정하며, 서로 사랑하며, 자비로우며, 겸손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을 상속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혀를 다스려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며, 입술을 닫아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며, 그것을 좇아라.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주님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서는 얼굴을 돌리신다." 아멘. 
 
누가복음서 6:39-42 
예수께서 그들에게 또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자기의 스승과 같이 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에게 `친구야, 내가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줄 테니 가만히 있어라`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리해야 그 때에 네가 똑똑히 보게 되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멘. 
 
설교문 
  
오늘 우리는 성령강림절을 맞아 성령의 역사를 주일마다 갈구합니다. 성령강림절하면 성령께서 오신 그 주일마다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냥 형식으로 교회력이기 때문에 성령강림절 지키지 마시고, 이렇게 지키십시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약속으로 우리에게 보내신 분이십니다. 이분 말씀이 나는 간다. 가면 내가 없는 이 빈 공간을 이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오셔서 내 공간을 담당해 줄 것이다 하고 예수님은 승천하셨고, 그때부터 오늘까지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께서 우리의 세상과 우리 자신의 생명을 구원해 주셔서 부활시켜 주셨고, 부활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영이 오늘도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이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삼위일체 중에 한 분이신 영을 받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령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새 생명을 주신 부활하신 예수님 대신으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러면 성령강림절 예배에는 항상 부활의 영이 임재하심으로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 역사를 우리가 주일 예배 때 마다 지키자고 성령강림절 예배가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 예배를 드리면서 구약에 있는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우리가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상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느냐 하는 것은 똑같은 역사기록인데, 그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역사관의 차이에 따라, 또는 역사 철학에 따라, 역사의 혼, 역사를 보는 눈, 여기에 따라서 우리 역사 해석이 여러 가지로 달라집니다. 그래서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때문에 어느 해석이 옳으냐를 가지고 싸우기도 하고, 토론도 많이 합니다. 당연한 것이겠죠. 이스라엘 역사가 구약성경입니다. 구약성경을 저희들이 읽으면서 오늘 요셉 이야기도 읽고 생각하겠습니다. 어떤 눈으로 이스라엘 역사가 쓰였고, 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어떤 정치적, 사회적, 또는 문화적 관점을 가지고 썼을까? 정신사적 관점은 무엇일까 하는 등의 질문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은 단순 소박합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의 모든 구약의 역사는 단 하나의 눈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과 역사하셨느냐는 관점에 따라 구약성경을 썼습니다. 그렇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 내부의 갈등, 내부의 역사를 쓴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구약성경을 읽으실 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으로 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는지를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본보기로 구약성경이 우리에게 있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공부하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는 역사를 신앙의 역사로 받느냐? 우리가 믿는 예수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을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오신 전 조상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 때문에 구약성경을 받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위에 계시고, 예수님도 승천하셨으니까 그 분의 대행자인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구약의 내용을 보면서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제 요셉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을 쓸 때 두 가지 각도로 썼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야기도 써놓고, 노아 홍수의 이야기도 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역사를 기록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역사 하시는 구체적인 하나님 이렇게 쓸 때 출발은 아브라함부터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세 조상님을 철저하게 모십니다. 그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우리 백성의 아버지 온 백성의 아버지로 택해 주시고, 그 분의 아들인 이삭, 늦어서 난 아들이라고 하나님은 웃었고, 엄마도 웃었고, 아빠도 웃었다는 뜻입니다. 야곱에 와서는 자신 형의 발꿈치를 잡는 얌체라는 뜻이 있는데, 나중에 야곱이 하나님과 천사와의 씨름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축복 주십시오 하고 매달릴 때 환도 뼈가 부러질 정도로 애쓰는 것을 보고 너는 하나님 하고 씨름한다. 너는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백성이 된다. 그런 뜻으로 야곱의 이름을 바꿉니다. 야곱이라는 뜻은 하나님 하고 씨름하면서 사는 백성이다. 그래서 이름을 이스라엘 이라고 하여라. 이제 이스라엘 역사는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와 동의어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과 씨름하는 역사입니다. 오늘 그 중에 하나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과정에 참 이상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10명의 형님들이 요셉을 시기 질투하여 이집트 상인에게 팝니다.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 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셉은 팔려가서 꿈 해몽을 잘해가지고, 이집트의 총리까지 됩니다. 바로 왕이 환상 같은 꿈을 꾸었더니 나일강가에 7마리의 살찐 암소가 풀을 뜯어 먹고 있었는데, 그 다음 깡마른 7마리 암소가 와 일곱 살찐 암소를 잡아먹었습니다. 나일강가를 더 걸었더니 알알이 맺힌 일곱 이삭이 있는데, 조금 있다 깡마른 일곱 이삭이 와서 알알이 맺힌 일곱 이삭을 먹어 버렸습니다. 무슨 뜻이냐? 요셉이 꿈 해몽을 합니다. 7년 풍년에, 7년 흉년이 듭니다. 잘 처리해야 합니다. 바로 왕이 명령을 합니다. 우리 현대적으로 이야기하면 이제 이 나라에 위기가 온다는데 그 위기관리를 담당하는 특별 내각을 조직하자. 요셉이 그 내각의 수장이 되어라. 총리로 발탁이 됩니다. 그래서 나라를 잘 이끕니다. 이스라엘에서 팔려 온 한 젊은이가 커서 대국의 총리로 등극하는 장면입니다. 이 역사 속에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요셉의 역사를 통해서 어떻게 역사하시는 지를 봐라. 이것이 오늘 구약성경의 철학, 역사 정신, 역사 혼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잘 보십시오.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야곱의 자손 전체가 이집트로 넘어 옵니다. 열한 가족이 다 넘어 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 사람이 요셉이 총리 때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자매가 넘어 오는 장면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형들이 미안하니까 마지막 장면을 보면 요셉보고, 우리가 팔아넘긴 것 사죄한다. 죄책고백입니다. 우리 아버지 말씀이 아버지는 존중을 다 하니까 보복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아버지가 막 돌아가시고 난 다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요셉이 이렇게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용서를 구하는 형님들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형님들은 저를 해치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를 팔지 않았습니까? 팔려왔는데, 하나님은 오히려 이 사건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 같이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생명 구원의 역사 가운데 사랑하는 형님들, 사랑하는 동생 모두가 포함되어 있잖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헤쳐서 죽음에 빠뜨렸지만, 나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이 버린 역사를 선하게 바꾸어서, 형님들 구하고, 나도 구원받고, 우리 백성 구원했잖습니까? 하나님은 변화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역경이라도 역경을 역경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대로 바꾸어서 역사하십니다. 제가 형님들 다 모시겠습니다. 형님들의 자손들도 모시겠습니다. 그 다음에 기록은 없습니다만 얼마나 모셨는지 아십니까? 사백년을 모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배고파서 전 민족이 이집트로 갔습니다. 요셉이 총리 때 이루어진 민족의 대이동입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식민지 된 것이 아닙니다. 흉년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집단적으로 밥 먹으려고 간 것입니다. 이집트의 식민지가 된 것입니다. 이집트 안에서 한 장소를 잡아서 이스라엘 거주지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사백년을 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사백년을 산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하나님이 만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다시 내보내려고 합니다. 그 때 등장시킨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말 아버지로 존경하는 분, 바로 모세입니다. 히브리 사람으로 태어난 모세가 나일강 요람에 띄어 지나 갈 때 바로 왕의 공주가 모세를 구해다가 궁중에서 기릅니다. 나중에 모세가 궁중에서 자라났지만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선지자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합니다. 잘 생각하십시오. 요셉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이집트로 옮겨서 자기 나라 역사를 비록 식민지이지만 잘 먹고 마시면서 살게 하셨는지. 사백년이 지나고 난 다음 역사를 하나님은 모세라는 사람을 등장시켜서 다시 식민지를 벗어나서 가나안 땅으로 역사하시는 출애굽의 하나님으로 역사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역사는 믿음의 역사 이렇게 이야기 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신앙의 역사 이렇게 하면 요셉을 통해서 이집트 갔다가 모세를 통해서 다시 출애굽 사백년의 역사를 요셉이 시작하고, 모세가 마감합니다. 이 한 토막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런 메시지를 주십니다. 어떤 환경에서라도 하나님은 환경을 있는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 선하신 뜻대로 바꾸어서 생명을 불어 넣는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이 사실을 오늘 요셉의 역사에서 기억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요셉은 그러면서 형님들에게 말합니다. 형님들 자식까지 돌볼 테니 염려하지 마시고 평안하게 지내십시오. 이 말의 핵심에는 하나님이 이집트라는 낮선 땅에서도 함께하십니다. 이집트를 벗어나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은 출애굽의 역사를 동행하십니다. 이 메시지가 이야기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 그래서 구약의 역사를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있어야 성경이지 그것을 빼고 나면 민족사 일뿐입니다. 
 
예수님은 이 역사를 받아서 오늘 구원의 역사를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일으켜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예수를 모든 백성과 함께 온 우주와 함께 오늘 역사를 전개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 보이지 않는 성령이 우리와 함께 이 역사를 끌어가시는 힘이 되십니다. 요즘 말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인인 역사입니다. 그 주인이 어떻게 사랑하는 선택한 백성과 함께 하시는지 눈여겨보고, 구약도 읽고,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성령으로 인한 역사인 신약도 같이 읽어 보면서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예수의 진실을 찾아야 됩니다. 성령역사의 핵심을 찾아야 됩니다. 그래야 오늘 우리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인간의 모든 역사 속에서 담긴 사건을 통해서 반드시 선하게 바꾸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세계사에 있어서 비극 중에 비극입니다. 2차 대전 전후로 해서 유럽을 뒤덮은 2차 대전의 여파, 독일이 전범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전범입니다. 전쟁에 관한한 두 나라가 악 중에 악입니다. 하나님은 그 전쟁 와 중에서 세상을 멸망시켰나요? 구해 주셨나요? 하나님은 전쟁 와중에 함께 계셔서 죽은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셨고, 눈물 흘리셨고, 종국에는 전쟁의 역사를 뚫고 평화를 주시면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2차 대전이 시작되어 제일 큰 피해를 본 사람이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2차 대전 직후에 2차 대전까지 피해자였습니다. 1938년 11월 9일 밤에 히틀러 명령에 따라서 독일의 전시가지에 있는 유대인 상점이 약탈을 당합니다. 파괴를 당합니다. 그리고 당시 250개 달했던 유대인 회당이 파괴의 대상입니다. 유대인 상점들이 전부 약탈당하고 파괴 되어서 유리창이 깨진 것이 인도를 뒤덮습니다. 인도가 깨진 유리창으로 뒤덮였습니다. 밤에 가로등이 비칩니다. 가로등이 비친 인도의 모습은 유리창으로 가득합니다. 그 유리가 반사하는 빛이 마치 크리스탈 빛, 수정 같은 보물이 반사하는 빛 같다. 그래서 한 말이 수정과 같은 밤. 자기들 말로 크리스탈나흐트(Kristallnacht), 영어로는 크리스탈 이브닝입니다. 수정과 같이 빛나는 밤, 그 밤에 유대인 상점들은 다 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잡혀 갔습니다. 가서 600만 유대인들이 종국에는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수정과 같은 밤이 그 시작입니다. 2차 대전 때 유럽과 동북아, 동남아 다 합쳐서 2차 만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도 엄청난 피해를 보았고,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잘 사는가 했더니 우리나라에 또 다른 전쟁이 생겼습니다. 63년 전입니다. 주일 날 아침에 남침을 당했죠. 다행히 이 전쟁에서 죽은 게 아니라 전쟁을 뚫고 오늘까지 완벽하지 않지만, 그대로 이 만큼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신 힘이라고 믿습니다. 히틀러가 망했고, 일본의 히데키가 망했다. 두 전범이 망하면서 온 세계를 평화가 있는가 했더니 그렇지 않았죠. 유럽에는 전쟁 속에 다 망가졌고, 유럽 동쪽은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면서 공산화가 세워지고, 공산화 물결에 휩싸였습니다. 그 거대 강국인 중국이 1949년에 공산화가 됩니다. 소련은 1949년 똑같은 해에 핵무기를 개발해서 핵 실험을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제는 이 물결이 동아시아 뿐 아니라 온 세계로 퍼질 것이다. 여러분 다 역사 공부하셔서 아실 것입니다. 아마 그 물결의 하나로 한반도도 밀로 내려가서, 내려왔지만, 막혔습니다. 겨우 살아났지만, 강력하게 저항해서 이제까지 살아왔습니다. 참여해준 유엔도 고맙고, 동참해 준 국가도 고맙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내일 모레 우리는 6.25 전쟁을 기념합니다. 어떻게 기념 하실 것입니까? 63년 전 아니면 60년 전 정전이 있을 때 까지 우리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그 뼈아픈 아픔, 분노, 좌절, 잊지 마셔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잊으시면 안 됩니다. 우리 민족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십자가의 피흘림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것을 기념하면 끝나나요. 매년 그 기념할까요? 오늘 성령이 역사하시는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6.25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은 좋다. 잊지 말고, 기억하고 되새겨라. 또 하나 있다. 6.25 전쟁의 아픔을 뚫고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의 축복을 민족의 부활이라고 믿고, 이 부활을 앞당겨 맛보아라. 이제는 6.25 상기 합시다. 동시에 6.25를 뚫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새로운 평화의 역사, 자유의 역사, 복지의 역사, 아름다운 이 세상의 역사를 이제 만끽하지 않으면 6.25전쟁에 대한 기억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 같이 합시다. 아픔을 기억 합시다. 아픔을 뚫고 주시는 부활의 감격을 오늘 우리가 맛보고 감사합시다. 마치 우리가 성만찬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실 때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라. 십자가의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음을 기억하라. 또 하나 죽으심으로 인해서 십자가에 머물지 않으시고, 살아 나셔서 새로운 생명 주셨음을 찬미하라. 그래서 십자가를 기억하고, 부활이란 감격을 같이 먹고 마시라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렇게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사하는 미래를 앞당겨 맛보십니다. 나라만 그런 게 아니고, 민족만 그런 게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도 이렇습니다. 괴로우십니까? 힘드십니까? 죽고 싶으십니까? 죽지마시고요, 괴로워 마시고요. 죽음을 뚫고, 괴로움을 뚫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새로운 생명을 창출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꾀뚫을수 있는 힘, 이 힘을 성령의 힘이라고 믿으시면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유대 사람들 하고 예수님이 대결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유대 백성 여러분 하나님 믿으시죠? 나와 함께 믿으시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믿는 방식은 내가 보기에 너무 눈먼 소경 같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좋지만, 율법 밖에 있는, 율법을 넘어서는 은총을 당신들이 막고 있습니다. 안식일 날 아무리 안식일이라도 사람이 죽으면 생명을 살려야지요. 안식일의 율법처럼 생명을 죽이면 그러면 당신은 눈먼 자들입니다. 당신의 눈 속에는 들보가 있어서 당신 보다 훨씬 비윤리적으로 사는 죄 많이 짓고 사는 사람들의 눈에 티가 있는 것을 보고 욕하지만, 당신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진실을 못 보는 들보가 있습니다. 들보 먼저 빼시지요. 빼야 하나님의 부활의 역사가 눈에 보입니다. 이 사실은 다른 사람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대인 지도자들 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가 구원 받으면 좋지만, 이렇게 자유를 누리는 것 좋지만, 부유함을 누리는 것 좋지만, 이것이 내 것 이라고 여기에 그냥 머물자고, 변화를 거부하고, 내 욕심, 나만의 자만, 나의 아집, 나의 독선, 이것이 신이라고 이대로 살아야 된다고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들보를 빼라. 바꾸어야 한다. 집착 말고, 새로움을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바꾸어 새롭게 변신해라. 들보는 죄의 경중이 아닙니다. 들보는 무겁고, 티는 가볍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들보는 하나님의 변화된 역사를 못 보게 하는 사고방식,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는지를 따지지 않으시고, 죄를 보지 못하게 하는 아집, 자기 의, 그래서 바리새파사람들은 자신들만 옳다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버려라. 들보를 빼라. 그러면 부활의 축복이 새날의 축복이 하나님의 예정이 홍수처럼 쏟아져서 여러분을 복되게 할 것이다. 오늘 성령강림절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성령은 오셔서 우리의 운명을 가로 질러서 새로운 축복을 주신답니다. 이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만들어 주신 답니다. 들보를 빼세요. 하나님 보세요. 앞서 보세요. 같이 갑시다. 그러면 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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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