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과 죄책감 ㅣ 임홍빈 지음 ㅣ 바다출판사 ㅣ 439쪽 ㅣ 2만 8천원
고려대 철학과 임홍빈 교수의 신간 「수치심과 죄책감은 도덕적 감정의 하나인 수치심과 죄책감의 구조와 유형을 ‘감정론’의 한 시도로서 파악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원죄에 대한 해석’, ‘기독교와 유대교의 정서론적 비판’, ‘죄의 문화와 비기독교 세계’ 등의 글을 통해 기독교적 사유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글 ‘원죄에 대한 해석’에서 그는 “창세기에 서술된 아담의 죄를 원죄와 동일시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이다. “전승된 원죄(Erbsünde)와 죄(Schuld)를 동일할 경우 우리는 곧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그 이유는 전자가 자연적인 범주인 데 비해서, 후자는 정신의 세계에 속한 윤리적 범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류가 아담의 죄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모든 개인이 다른 모든 개인의 역사와 어떤 의미에서 본질적인 연관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는가?” “그러나 한 개인의 역사와 운명에 대해서 인류 전체가 무관심할 수 없다는 인식은 ‘종교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이때 내가 지금 이 순간에 한 인간, 즉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투명한 자기관계에 의해서 하나의 통일된 자기의식을 통해 만족스럽게 실현되거나, 경험될 수 없다.”
또 타락이나 원죄와 같은 유대적이며 기독교적인 죄의 관념이 “존재론적인 죄의 원형”으로 간주될 수 없다”며 “존재론적 죄는 도덕적 타락이나 절대자의 명령에 대한 거부가 아닌 ‘전체로부터의 분리’(Akkad문명), ‘삶과 죽음’의 영원한 교환(원환적이며 신화적인 세계 해석의 경우)과 같은 유형의 더 오래된 고대의 세계관들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법과 도덕의 관점이 분리되고, 이들이 자율적인 규범체계의 각 부분들로 작동함으로써 서구 규범문화의 ‘합리화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음을 볼 때, 기독교 문화권에서 죄의 감정은 역사적으로 ‘존재론적 죄’의 관념에서 개인들의 일탈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의 문제로 재해석되고 있는 경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봤다.
글 ‘죄의 문화와 비기독교 세계’에서 그는 키르케고르가 “죄와 죄악의 관념은 심층적인 의미에서 비기독교의 세계에 발현되지 않는다. 만약 그 같은 관념이 발현되었다면, 비기독교의 세계는 누군가가 운명에 의해 빠질 수밖에 없다는 모순으로 인해서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 것이다”고 서술한 데 대해서는 논거의 불충분을 지적한다.
“여기서 키르케고르의 서술은 적지 않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비기독교 세계가 본래적인 의미의 죄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주장은, 오직 그들이 아예 대결할 필요가 없었던 규범적 상황을 전제할 때만 타당한 것이 아닌가? 더구나 오늘날 일부 전근대적인 전통사회나 기독교 공동체를 제외할 경우, 죄의 관념이 지니는 규범적 구속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현상을 감안할 때, 죄의식의 규범문화가 상당히 제한적이며,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만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운명과 행복의 소박한 관념에 의존하는 고대 그리스 세계가 상대적으로 유대교 문화보다 규범적인 반성의 낮은 수준에 처해 있다는 추정은 그 근거가 불확실하다. 무엇보다 상이한 문화들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해석 자체가 이미 규범적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책에서 그는 수치심이 명예사회의 산물이며, 근대의 원리가 확산될수록 명예사회는 존재론적 죄의 관념과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