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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칼럼] 국정원 대선개입사건과 닉슨 청문회사건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베리타스 DB
정치계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에 연속 실패하면, 많은  국민들은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 텔레비전의 정계뉴스는  아예 채널을 돌려버리거나 신문의 정치보도는 읽지도 않으려 한다. 괜히 열 받고 정신건강에 막대한 손해를 보기 싫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염증과 정치 냉소주의에 일리가 있더라도, 요즘 정치계와 국민여론의 핵심쟁점인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의 대통령선거 개입 불법행위에 대한 사안을 무관심으로 일관해선 않된다. 그 일을 적당히 넘어가면 지난 1960년 4.19 학생혁명 이후 무수한 생명의 피땀과 자기희생을 통해 지금까지 키워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도루묵으로 만들어 버리고, 앞으로 정보화시대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망선고에 이르는 무서운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문제된 사안의 중요성을 파악한 정파적 책략가들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으로 공개하여 소위 말하는 ‘북방한계선(NLL) 담론’을 터뜨려서 문제핵심의 중요성을 물타기하고, 그 사건이 지닌 엄청난 역사적 중요성을 국민의 관심 밖으로 되돌리려 하지만,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시대 때처럼,  젊은 대학생들의 ‘정의에 목마름’의 함성이 터져 나오고, 정치에 염증을 낸 시민들이 잠재운 분노를 깨어내고, 대학교수단과 종교계가 ‘제2민주항쟁’이라고 이름 할 중대 사안임을 선언하고 나오는 형국이다.
   
왜 문제의 사안이 중요한가? 이것은 특정정당의 정파적 이해득실 관련을 떠나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헌법 제1조에 선언한 국기를 흔드는 사건이요, 앞서 말한대로 온 국민이 피땀으로 지켜오고 키워온 민주주의라는 나무의 밑둥을 톱질하고 도끼질 하려는 너무나 무서운 역사의식 부재의 만행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사안에 관하여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진행중이지만, 현재 밝혀진 정도의 사실관계만을 가지고서 보더라도, 만약 미국사회라면 제2닉슨 대통령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직을 도중하차 하도록 할 만큼 엄청난 사건인 것이다. 자세한 진실이 더욱 밝혀지겠지만, 현재까지 부정 할 수 없이 밝혀진 진실은 원세훈 국정원장이 국정원 심리국 직원을 동원하여 여당후보자에 이익되는 여론조작 행위를 했다는 것과, 김용판 당시 경찰청장은 대선 이틀 전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정치에 관여한 혐의는 없다”라고 진실을 은폐하여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말하면,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까지나 진실과 성실을 기반으로 하고 그것을 요청한다. 하나님의 정의를 짓밟거나 무관심하는 종교의 사랑이나 예배제사행위를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신다. 개신교 진보적 교파 목회자들, 신학교 신학생들, 가톨릭 성직자들, 불교계 스님들마저 이문제의 진실을 밝혀 정의를 바르게 세워야 한다고 들불처럼 들고일어나는 이유는, 흔히 말하는 종교인들의 ‘정치 사안에 관한 관심’이 새롭게 되살아나서 그러는 게 아니다. 종교의 존재이유와 민주주의의 생존여부에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우리시대 민주주의는 단순히 삼권을 분립하여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제도나 체제문제를 넘어서는 성스러운 ‘시민적 공통종교’가 되어있다. 왜냐하면 인간 양심의 자유, 법 앞에서 만인의 평등,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과 인권에 대한 존중, 사회정의, 공직자들의 공공성, 국가살림의 진실과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알 권리, 가치관과 종교선택에서 국가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 등이 포함된다. 국정원 선거개입사건은 바로 민주주의 근간을 무너뜨린 집단적 정치권력 당사자들의 만행인 것이다. 국가정보원, 당시 이명박 정부 권력실세, 국민공복기관으로서 경찰, 그리고 여당 선거대선 캠프의 지도부사이에, 국민과 민주주의를 기만하고 우롱하는 모종의 정의롭지 못한 연결고리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할 줄 모르는 국민은 생각이 없는 백성이요, “생각할 줄 모르는 백성은 망한다”(함석헌)  
  
나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후보와 막상막하 경쟁을 벌리던 당시 박근혜 후보가, 이 더러운 흑막 정치음모에 직접관여 했거나 진실을 알고 있었다고 차마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정치는 도덕세계가 아니고 냉혹한 현실세계이다”라고 말들 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마지막 신뢰까지 포기하는 비관주의자가 되고 싶진 않다. 그러기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진언한다. 국정원 대선개입사안에 대하여 “나는 무관한 일입니다”라는 초연한 태도를 버리고, 철저하게 진실을 밝혀 책임지게 할 사람은 응분의 책임지게 하고, 대통령 책임아래 있는 국정원을 비롯한 경찰지휘부에 일대 개혁을 단행하시라. 대통령직의 존엄한 도덕성과 정당성에 조금이라고 흙탕물이 튀어 오를까 전전긍긍 과잉 충성하는 여권 정치인들과 방계 충견집단에게 속지마시고, 박 대통령의 과감한 ‘읍참마속’의 용단을 단행하시라. 왜냐하면 박대통령이 말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존엄’이 지금 크게 손상 받고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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