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반석 위의 사랑

2013년 8월 4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예레미야서 1:4-10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 아멘. 
 
베드로전서 4:7-1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불평 없이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각 사람은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습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7:24-27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아멘. 
 
설교문
  
지금부터는 13년 전 일입니다. 우리 2부 성가대가 제주도로 수양회를 갔을 때, 함덕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에서 아침예배를 같이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한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메일의 내용은 이렇게 감격스럽고 은혜로운 예배는 처음 드렸다는 것입니다. 성가대원들이 찬양하는 동안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교회는 노인 분들만 출석하는데, 그 날은 한 열분 정도 참석을 했고, 외부 관광객 10명을 더해서 20명 정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성가대는 50명 정도가 참석을 했고, 모든 대원들이 성가대 가운을 입고 성가를 불렀습니다. 이 상황에서 찬양하는 성가대가 큰 감동을 받아 성가를 부르는 동안 옷도 젖고, 마음도 젖었습니다. 그곳에서 찬양을 듣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관광객, 그리고 성가대 모두가 울었습니다.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가는 곳마다 이야기를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1부 성가대와 대마도를 다녀왔습니다. 대마도는 3만 명 인구 중에 등록된 교인이 30명이라고 합니다. 수치적으로 딱 0.1입니다. 여러 교회 중에 한 곳을 소개 받아 갔는데, 대마도 그리스도 복음교회라는 곳입니다. 그곳에 가보니 예배 참석자가 노인 목사님 부부, 한국에서 파송 받은 선교사 부부, 일본 장로님 한분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성가대는 45명, 함께 참여한 아이 둘, 중학생 둘 그리고 저를 포함해 50명이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들어가 앉으니까 교회가 꽉 찼습니다. 성가를 부르기 전에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분 앞에서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미래의 대마도 교인들을 눈으로 그리면서 찬양을 부릅시다. 눈에 보이는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을 같이 합해 놓고 찬양을 부를 때 눈물 섞인 찬송을 불렀습니다. 저도 말씀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면서 마음속으로 울면서 눈물로 예배를 같이 드렸습니다. 감격의 예배이었습니다. 두 성가대가 13년 차이로 감격의 예배를 경험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때문에 울며 찬양을 했습니다. 예수 때문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수가 찬양하는 사람들의, 기도하는 사람들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 반석위에 선 사람들은 보이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향해서 찬양을 합니다. 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예수 때문에 우리는 반석위에 서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받은 은혜에 그치지 않고 그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은혜를 되돌려 주기 위해 찬양을 불렀습니다. 오늘 베드로전서에서는 받은 은혜를 마태복음의 말씀처럼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어야 은혜를 받는다. 은혜를 받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클수록 은혜가 큽니다. 큰 은혜를 받는 장소가 반석이고, 반석의 이름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반석 위에 서면 괴로워도, 세상의 풍파가 있어도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섭니다. 예수 때문에 하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에 예수 때문에 믿는 사람은 예수가 생각한, 예수가 바라고 싶은 아름다운 열매가 있는데 그 열매를 사랑이라고 하여라. 은혜를 받는 것은 믿음입니다.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여 되돌려 드리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받으며 삽니다. 받지만 다시 되돌려 줌으로 삽니다. 받고 살고, 베풀며 살고 이것이 하나님의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예수를 반석으로 삼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은혜를 믿음으로 받고, 사랑으로 베풉니다. 받은 것을 베푸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면 사랑을 많이 해야 합니다. 오늘 베드로전서 말씀입니다. 사랑을 하되 뜨겁게 사랑하세요. 뜨겁게 사랑하면 풀리지 않을 문제가 없습니다. 미지근하게 해서 그렇지요. 차갑게 사랑해서 그렇지요. 뜨겁게 사랑하라. 열심히 믿은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여라. 뜨거운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열심히 믿는 사람이다. 반석 같은 믿음과 따뜻한 사랑이 합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의 전체가 다 설명이 됩니다. 오늘 말씀이 그렇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은 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펼치느니라. 제주도에서 불렀던 성가대 그리고 대마도에서 불렀던 성가대 모두 우리는 예수 때문에 믿음의 반석에 있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우리는 찬양을 드립니다. 사랑을 드립니다. 제주도의 사랑 꽃이 피었고, 대마도에도 사랑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거두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오늘 예수께서도 일상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믿으세요. 믿되 열심히 믿으세요. 반석처럼 믿으세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믿는다고 하면서 믿는 것을 듣기만 하면 반석이 아닙니다. 반석이란 반드시 사랑을 만들어 냅니다. 내 말을 듣고 실천 해야만, 사랑으로 갚아야만 집이 안 무너집니다. 진실 된 믿음은 사랑이 반드시 있는 믿음입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반석위의 믿음이 아닙니다. 반석위에 있는 믿음은 반드시 사랑이 나타납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고, 사랑의 꽃을 피우는 사람은 반석 같은 믿음으로 삽니다. 둘이 분리 될 수 없는 상호의존관계요, 동전의 양면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입니다. 그 반석에서 꽃펴나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가 무의미 하듯이, 사랑이 없는 믿음은 반석 같은 믿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랑의 꽃을 피우지 못하는 믿음의 꽃나무는 아닙니다. 오늘 찬양을 하는 우리 모두, 기도를 하는 우리 모두, 밖에 나가서 봉사를 하는 우리 모두 이제는 믿음을 견고하게 합시다. 열심히 믿읍시다. 뜨겁게 사랑합시다. 
 
내일 캄보디아로 떠납니다. 예수 때문에 캄보디아로 갑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크다보니 은혜를 갚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열매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의료봉사입니다. 한 사람 한사람이 믿음이 강하고, 사랑의 꽃을 피우는 것이나 한 동네가, 한 집안이, 한 국가가 은혜를 받고 베푸는 것이 똑같습니다. 믿음의 반석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세요, 사랑의 열매는 반석인 믿음의 나무에서 열매가 맺어 집니다. 예수는 반석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반석에서 피어난 꽃의 주인이십니다. 피어나는 꽃의 이름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일서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자기 아들의 십자가 부활의 반석 위에서 피어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는데,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것,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뛰어 내려 보라는 것, 높은 산에 데려다 놓고 절하면 온 세상을 준다고 한 것입니다. 떡 만들라고 한 이야기는 물질적 부가 너의 하나님이 될 수 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은 종교적 권위가 너의 하나님일 수 있다. 나에게 절하면 세상을 너에게 주마는 권력이 너의 하나님이다. 예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은 먹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도 함께 먹어야 한다.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사탄의 유혹은 단순합니다. 예수는 신이요. 인간입니다. 사탄이 들어갈 영역이 없습니다. 신과 인간을 불리하고 싶은 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예수에게 떡 만드는 일, 성전에서 뛰어 내리는 것, 온 땅을 차지하는 것, 즉 예수가 인간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면 인간의 모습이 신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제발 예수에게서 떨어져 나와야 신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 역할을 사탄이 하고 싶었습니다. 유혹이란, 사탄이란 단순 합니다. 신의 창조물인 인간이 신의 형상을 받아서 인간으로 살아갑니다. 우리 속에 있는 신, 신이 만드신 우리 인간, 신과 함께 살아가는 곳에서 신과 인간을 분리하려고 하는 것이 유혹입니다. 인간적으로 살자. 신 없이 살자. 사탄은 본래 히브리어 인데 그 뜻은 대항하는 사람입니다. 저항하는 사람 그것이 사탄입니다. 말을 바꾸면 창조주 하나님께 저항하는 자칭 신, 그것이 사탄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으로 가고 싶은 신입니다. 예수에게서 신과 인간을 분리해 스스로 신의 역할을 사탄이 하고 싶어 합니다. 유혹의 방법으로 그 속에서 믿음의 반석보다, 사랑의 꽃보다 신을 저주하는 유혹을 하게 됩니다. 신약성서에는 이 사탄이라는 히브리말을 헬라어 디아블로스(δτάβολος)로 바꿨습니다. 영어로는 데빌(devil)입니다. 이 뜻은 사람이 길을 가는데 넘어져 실족하라고 장애물을 던지는 사람, 잘 나가는 사람한테 걸려 넘어져서 실수하게 만드는 사람, 장애물을 던지는 자입니다. 데빌이든, 사탄이든, 장애물을 던지는 사람이든,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사탄의 영역을 구축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유혹의 핵심입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은 이렇습니다. 나 예수를 아무도 무너뜨리지 못한다. 반석에서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오늘 베드로 전서처럼 밝은, 아름다운 희망의 꽃을 피워낸다. 그 사랑은 만사 해결할 수 있다. 사랑이면 사람을 살린다. 우리 항상 이야기가 있습니다. 돈을 많이 잘 버는 것은 사람이 가진 기술입니다. 그런데 번 돈을 잘 쓰는 것은 예술입니다. 기술자가 있고, 예술가가 있습니다. 둘 다 합해야겠지요. 이렇게 바꿔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기술은 우리가 믿음이라고 이름합니다. 받은 은혜를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쓰는 것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받는 기술의 믿음과 베푸는 사랑의 예술이 인간됨의 양쪽요소입니다. 믿어서 많이 받으세요. 사랑하며 많이 베푸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세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세요. 이렇게 이 세상을, 이 가정을, 우리 자신을 꾸려 갑시다. 그래서 믿음의 반석위에서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이 싹틉니다. 사랑의 꽃 많이 피우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반석 굳건히 지키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축복의 약속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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