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손규태 칼럼] 남북문제, 안보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냉전시대에 평화와 공존을 향한 독일교회의 동방백서와 독일정부의 동방정책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시절 한국의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선민주화냐 선통일이냐 하는 전략적 문제를 놓고 잠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한 편에서는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독재정권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이 민주화 세력진영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화급한 일이라는 주장을 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제까지의 민주화운동이 계속해서 억압을 당하는 것은 남북분단으로 인한 북한의 위협을 내세운 안보논리 때문으로 보고 우선적으로 남북통일을 달성함으로써만 궁극적으로 인권도 달성되고 민주주의도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여기서 민주화 진영은 전략적으로 선민주론과 선통일론으로 갈라져 있었다.
 
당시 필자는 광주에서 있었던 전국 YMCA 정책협의회에서 선민주론이나 선통일론이 아니라 선평화론(先平和論)을 주창한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필자가 독일에서 유학하고 생활하던 시절(1975-1988) 독일 개신교회의 동방백서와 독일정부의 동방정채에서 시사 받은 바 가 크다. 주지하다 시피 독일은 한국과 같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승국가인 미국과 소련 그리고 영국 등에 의해서 강제로 동서독일로 분단 점령되었다. 우리와 형편이 좀 다른 것은 그들은 분단 이후에 한국처럼 형제간의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독일분단에서는 처음부터 상호 적대감이 약했었고 또 일정하게 동서독 사이에는 통행의 자유나 서신교환 그리고 나중에는 상대지역의 방송청취나 TV시청도 가능했었다. 어쨌든 이었다. 
 
특히 독일 개신교회는 국토와 국가는 분단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교회는 분열될 수 없다는 기독교적 신념에 기초해서 25개의 지방교회들(5개의 지방교회는 동독에 속했고, 20개의 지장교회는 서독에 있었다)의 연합체였던 독일 개신교회협의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는 국토(가)분단 이후에도 법적으로나 기구적으로 하나의 교회로 남아서 서로 왕래하고 지원했으며 총회를 열고 업무를 추진했고 공동의 신앙생활을 영위했었다. 1961년 8월 13일 동독정부에 의해 베를린 장벽이 만들어져 양 독일 주민들의 통행이 완전히 차단됨으로써 동서독 사이의 분단은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동서독 개신교회는 서로 일치의 끊을 놓지 않았었다. 이렇게 동서독 사이의 장벽설치와 함께 냉전체제가 점차 강화되기 시작하자 서독의 개신교회는 1965년 10월 1일 총회에서 이른바 “동방백서”(Ostdenkschrift)를 발표한다. 그 동방백서의 제목은 “추방당한 사람들의 상황과 독일민족과 동쪽의 이웃나라들과의 관계”로 되어 있다. 이 동방백서는 당시 동서 냉전체제로 서로 대립하던 동독과 서독은 물론 서독과 동구유럽 국가들 사이의 대결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서로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갈 것을 촉구한 역사적 문서이다. 독일 개신교회는 최초로 이 동방백서를 통해서 동독과는 물론 폴란드 체코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화해와 협조 그리고 재정적 지원을 천명한 것이다. 
 
이 동방백서는 다음과 같은 성서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고후 5:17-18).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다고 자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인간들의 타락과 욕심으로 인해서 생긴 갈등과 대립투쟁의 세계에서 화해자로 부름 받았고 화해자의 지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저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 등 당시의 서구의 저명한 신학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아무리 그 정당성을 앞세운다고 해도 거대국가들의 헤게모니 투쟁, 즉 권력투쟁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했었다. 그는 이들 거대한 악마 레비아단(Leviathan)들의 권력투쟁으로 희생되는 것은 약소국가들과 거기에 사는 가난한 민중들이라고 판단했었다.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깨어있는 의식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악마들의 속임수와 세력투쟁에 앞잡이가 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가 명령한 인류의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갈 것을 호소했던 것이다. 
 
이 독일 개신교회의 동방백서는 그 후 서독의 새로운 수상이 된 빌리 브란트로 하여금 1969년 이른바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하는데 영감을 주었었다. 이 정책은 동서간의 이해와 소통의 정책으로서 동서독간의 제반 협력관계(동서독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폴란드와의 무력사용중지조약체결, 동구라파 제국들과의 화해와 외교수립 등을 지향했었다. 브란트 내각에서 이 동방정책을 실무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했던 에곤 바(Egon Bahr)는 후에 이 정책을 가리켜 “접촉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rung)의 정책이라고 했다. 이러한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단초가 된 것은 1962년 8월 17일 동독정부에 의해서 새로 만들어진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다가 총살당한 18세의 젊은이 페터 페히터(Peter Fechter)의 죽음이었다. 당시 서베를린의 시장이었던 빌리 브란트는 - 그는 1969년 10월에 수상이 된다. - 이러한 분단과 적대관계가 가져다주는 비극을 극복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독개신교의 동방백서에 대해서 보수적 루터파 교인들이 반대했듯이 독일의 보수당인 기독교(가톨릭)민주당(christliche demokratische Union)도 물론 보수적이고 반공적인 시민들도 이 동방정책에 반대했었다. 그러나 빌리 브란트의 이러한 화해정책은 동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동구라파 국가들에 대해도 화해와 협력의 손길을 내밀었다. 전쟁 당시 히틀러 정권에 의해서 강제로 끌려와 군수공장 등에서 강제노역에 처해졌던 동구라파 여러 나라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서독은 충분한 보상책임을 짐으로써 그동안의 적대감을 씻어내고 그들과 화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성공을 거두어 그 후 동서독일은 순조롭게 화해와 통일의 길을 갈 수 있었고 통일 이후에도 전쟁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동구라파 여러 나라들과 함께 협력의 길로 나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서독개신교의 화해협력의 동방백서의 정신 그리고 서독 브란트정부의 접근을 통한 변화의 동방정책이야 말로 1990년 동서독일 통일 이후에 유럽에서 평화와 번영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체제형성을 위한 시안들
 
1. 화해와 평화에로의 발상의 전환(분별력)
 
앞서도 언급했지만 한반도에서 남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난 60여 년 동안 비정상적 관계에 있다. 한국전쟁 이후 이미 두 세대가 지났고 거기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거나 살아 있어도 80이 넘은 노인들이다. 1990년도를 기점으로 세계에서는 이데올로기적 대결의 냉전체제는 사라졌다. 따라서 한국에서 모든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세대는 더 이상 냉전 이데올로기를 추종하거나 그 사고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세대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피조물(세대들)은 더 이상 낡은 사고방식인 반공이나 반북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낡은 세대들처럼 사회주의 국가나 북한에 대해서 증오하거나 적대시할 필요가 없다. 아직도 낡은 냉전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세대들은 이러한 발상과 대토의 전환을 친북이니 종북이니 좌파니 하고 비판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친일이나 친미사상에 사로잡혀서 현재의 우리 민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미래 세대들을 위한 책임적 자세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5월초 한국을 방문한 마르틴 노왁 하버드 대학교수는 “초협력자”란 책에서 인류는 상호 협력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잇음을 역설한다. 그는 그 책에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기독교), “네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유태교) 등을 인요하면서 “지금 남북한에 가장 필요한 것은용서”라고 말했었다.(경향신문 2013년 5월 3일자).
 
우리들의 발상의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실체와 미국의 역할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는 것이다. 미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지만 선한 나라만은 아니며 그들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를 돕기 위한 것만도 아니다. 일본의 무교회주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는 오래 전에 미국을 방문하고 나서 “미국에는 천사와 악마들이 같이 살고 있는 나라다.”라고 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공헌했지만 동시에 다른 나라들을 군사력으로 침략하고 자원들을 약탈했다. 미국은 아시아와 남미에서 독재자들을 지원했고(아시아에서 한국, 베트남 등, 남미에서 니카라과의 소모사와 월남의 고딘디엠 등) 적대적인 나라의 지도자들을 암살을 시도했다(쿠바의 카스트로 등). 오늘날도 전 세계를 지미 카트라는 심해잠수함을 모함으로 해서 사찰하고 감시하고 있다.(모스크바에 망명중인 Snowden의 증언). 따라서 미국이나 일본의 실체를 깨닫는 데서부터 비로소 한국인은 “새로운 인간”(피조물)으로 태어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로마서 12:2). 지식인 아니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의 풍조(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여 거대한 악의 세력이 어떻게 준동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분별력 없는 낡은 이데올로기와 사고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사람들은 스페인의 투우처럼 어리석어서 악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흔들어대는 빨간 깃발을 실체로 알고 달려들지만 마지막에는 그 실체인 투우사의 감춘 칼에 맞아 쓰러진다.(디트리히 본회퍼). 이렇게 어리석은 대한민국의 다수의 국민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악마의 속임수에 놀아나고.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다. 그리고 사탄은 기만자여서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개인들의 이익만 챙기게 만든다. 오늘날 사탄들은 빛의 천사로 가장 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이리저리 미혹하여 끌고 다닌다. 그러나 분별력이 있는 새로운 피조물은 이러한 사탄들에 의해서 조작되는 세상의 풍조에 놀아나거나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탄의 세력 하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따라서 관용적인 생각이 없는 고집쟁이가 된다. 말하자면 분별력 없는 낡은 인간상은 오늘날 세계에서 삶의 미덕인 타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거부하고 교조적이고 이기적 인간이 된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불관용의 인간들은 개신교 특히 장로교회들에 가장 많이 포진하고 있다.
 
2. 평화와 통일을 향한 구체적 실천
 
서독교회의 동방백서와 서독정부의 동방정책을 통해서 과거의 적대적이었던 동독과 동구라파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화해와 협력을 추진하기로 한 독일(그리스도)인들은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 정책을 어떻게 실천해 나갔는가? 앞서도 말했지만 그들은 사고의 전환(적대관계에서 이웃관계로)이라는 어려운 과정들을 거친 독일인들은 동독과의 기본관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두 나라는 우선 유엔의 헌장에 따라서 상대방의 국가적 주권과 독립성과 자결권을 인정하고 대립 갈등하던 문제들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고 무력위협이나 무력사용을 금지하기로 하고 현재의 경계선을 존중하기로 한다.(동서독 기본조약 1-3조). 양 독일은 이 조약에 근거해서경제, 과학, 기술, 교통, 통신, 우편, 방송, 보건, 문화, 스포츠, 환경보호 등 제반 분야에서 상호간 협력한다.(7조). 양 독일은 상대방 지역에 대표부를 두고 긴밀히 협조한다.(8조). 이렇게 서독의 에곤 바(Egon Bahr)와 동독의 미카엘 콜(Michael Kohl)이 서명한 이 기본관계 조약에 따라서 동서독 간에는 민간인들 사이에 상호방문, 전화연락, 우편교환, 방송청취 및 시청, 스포츠 등 여러 분양에서 교류가 이루어져 양 독일인들 사이에는 상호 “접촉을 통한 변화”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서독인들은 자유롭게 동독을 방문할 수 있었고 동독인들도 65세가 지나면 자유롭게 서독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오늘날의 형편은 어떤가? 분단 70년, 정전협정 60년이 지나도록 몇 차례의 남북회담과 협정들이 이루어졌지만(1974년 7.4공동성명, 1992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2000년 “남북관계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2007년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와 번영을 위한 선언” 등)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것은 지극히 보잘 것 없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1992년 노태우 시절에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과거 동서독 사이의 기본합의서보다 더 훌륭한 내용들을 담고 있으나 실제로는 실천을 위한 아무런 후속조지도 취해지지 않았다. 이 합의서는 우선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이라는 정치적 군사적 내용을 다루고 그 다음으로 “교류협력”에서는 경제적 교류와 협력들을 명시하고 있다. 이 합의서는 남북한 정부가 공히 실천할 의지가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처음부터 국회를 통한 승인절차도 밟지 않았다.
 
오히려 200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서명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 후속 실천 프로그램으로서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 및 관광 사업이 그 결실로서 열매를 맺었다. 이것은 정전 이후 남북한 사이에서 체결된 공동선언을 가장 구체적으로 실천한 역사적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과 평양, 혹은 금강산에서 이산가족들의 상봉행사들이 진행된 것들을 구체적 실천내용으로 예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국제 스포츠사업의 테두리 안에서 남북한은 단일팀을 만들어 국제대회에 참가하기도 했고 또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친선경기를 갖기도 했다. 특히 부산에서 열렸던 스포츠행사에는 북한이 호텔을 겸한 함정으로 선수와 응원단을 보내서 민간인들 사이에 좋은 교류와 친선을 과시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노력들에 대해서 남한의 반공적이고 수구적인 세력들은 남북의 접촉과 그로 인한 남한 민심이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는 것 즉 독일식의  “변화”(Wandel durch Annährung)들을 두려워했고 따라서 더 이상의 화해와 통일을 향한 발걸음은 내딛지 못했다.
 
3.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준비
 
이제 남북한 주민들은 60년이라는 길고도 긴 세월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살아오면서 헤어진 가족들도 만나거나 편지교환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오고 있다. 분단 상태에서 정전협정이라는 군사적 비상체제에서 국민들은 시민으로서 누려야할 기본권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교류 등의 자유를 마음대로 누리지 못하고 살아오고 있다. 이 안보를 위해서 젊은이들은 장기간에 걸찬 군복무와 함께 막대한 군비지출로 인해서 그들이 누려야할 의무교육의 권리, 복지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젊은이들은 모든 선진국에서 누리는 무상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려면 엄청난 빚을 걸머지고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고 오늘날은 취직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좌절과 절망에서 헤맨다. 노동자들은 이 분단 상태로 인한 안보를 구실로 그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모든 세계인들이 누리고 있는 노동3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시절부터 노동운동을 하거나 노동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지식인들, 심지어는 성직자들 중심의 산업선교 활동가들을 마치 친북인사들로 매도되고 불온시하여 탄압의 대상이 되었었다. 현재 노동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서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통당하고 있다. 이러한 비정규직의 일자리도 얻지 못한 다수의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라고 하는 날품팔이로 전락하여 로마시대나 중세기에서보다도 더 처참한 대우를 받고 있다.
 
남한 사회는 이러한 안보를 구실로 한 제반 통제와 제약 가운데서도 군사정권의 지원을 받았고 그 후에는 정치권으로부터 온갖 법적,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받고 성장한 대기업들, 소위 재벌들은 세계적 차원의 기업들로 성장했다. 그들은 앞서 말한 정부의 법적, 제도적, 재정적 지원과 함께 정부에 의해서 통제당한 값싼 노동력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외국에는 값싸게 수출하면서도 그 손실분을 내수시장에서 벌충해주는 정부의 가격정책에 힘입어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벌게 되었다. 따라서 초기에는 정부의 필요성에 의한 정경유착도식이 현재에는 기업의 필요에 따른 정경유착으로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국가를 통제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이다. 이러한 국가와 시장의 불의한 유착의 고리를 끊고 정의로운 국가와 공정한 시장질서가 회복되어 대한민국이 정상국가가 될 때 비로소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평화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이 친미적이고 친일적인 이른바 안보세력이 집권하고 그들에게 기생하는 대기업 등 시장 세력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한 북한에 대한 적대적 정책은 계속될 것이며 따라서 한반도에는 평화와 통일의 시대는 요원하다. 왜냐하면 이들 안보세력들은 자칭 “애국세력”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사실상 평화세력이 아니라 “매국세력”이다. 
 
우리는 흔히 평화를 말할 때 로마의 평화(pax Romana)와 예수의 평화(pax Christi)로 나누어 말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로마의 평화는 로마의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 시절에 달성된 성과에 기초해서 말해지고 있다. 이때 로마제국에서는 어느 변방에서도 봉기나 소요가 없는 평온한 시간이 주어졌었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상 로마의 평화란 “공동묘지의 조용함” 즉 모든 억압받던 적대세력들이 굴복당하거나 멸절당해서 주어지는 침묵의 평화를 말한다. 그래서 역사가 로마의 타키투스는 “영국인들이 로마의 평화를 두려워했다.”고 말한다. 즉 로마의 평화는 강력한 군사력에 의해서 억압된 상태에서 주어지는 안보(securitas),공동묘지의 평화인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 즉 안보, 로마식 평화의 황제시절에 로마의 식민지 땅 이스라엘에 또 한 명의 평화의 왕 예수가 탄생했다. 성서 누가복음은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누가 2:4).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19:38). 그는 무력으로 억눌러서 적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안보의 왕(securitis), 로마 황제 아우구스티누스와는 달리 원수들까지도 사랑함으로써(마태 5:44) 대립 갈등하는 세상에서 화해와 조화를 가져오는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의 왕(eirene)이시다.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발간하는 “국방백서”에 보면 “대한민국의 주된 적(主敵)은 북한이다”고 되어 있단다. 그동안 화해와 협력, 통일과 평화를 주구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 북한에 대한 주적개념이 사라졌었지만 다시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북한을 주적으로 명기했단다. 참으로 한심스럽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동포형제를 어떻게 국방부에서라지만 주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필자는 분단된 독일에서 10여년을 살았지만 서독일인들은 동독 사람들을 주적은커녕 적이라고도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방부는 그 백서에 북한과 그 주민들을 주적이라고 쓰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은퇴하기 전제 성공회대학교 신학과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과 함께 예수의 “원수  사랑”에 대한 구절을 읽을 때 그들에게 질문하곤 했었다. “예수는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너희들은 주적인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자 일부 학생들은 이 산상설교의 말씀은 가톨릭교회가 해석하듯이 특별히 선택받은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에게만 전한 것이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실천할 수 없다고 대답하기도 했고, 다른 학생들은 모든 사람이 말씀대로 따라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신학과는 달리 산상설교의 말씀은 특별한 계층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도들이 지켜야할 통전적 말씀이라고 해석했었다. 필자는 루터의 해석을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원수가 되었을 때는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그 적대관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대표적 예를 독일 개신교회의 “동방백서”나 독일 수상 브란트의 “동방정책”에서 이미 살펴보았었다.
 
왜 한국개신교회들은 독일교회처럼 “북방백서”를 만들 수 없단 말인가?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선교하고 큰 교회 짖겠다고 야단하지 말고 북한주민들과 화해할 수 있는 성서의 위탁을 먼저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고후 5:18). 왜 대한민국의 정치가들은 독일의 브란트 수상처럼 “북방정책”을 입안하고 에곤 바(Egon Bahr)처럼 그것을 실천할 수 없단 말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햇빛정책은 바로 브란트의 동방정책에서 힌트를 얻은 귀중한 우리의 유산이고 한국신 동방정책이다. 우리는 이 정신을 이어받아서 북한과의 화해와 통일을 이루고 마침내는 아시아의 평화를 이루는 평화정책의 길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우리는 더 이상 비정상적인 휴전상태를 지속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북한에 대해서 적대정책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정책으로서 “신뢰 프로세스”를 주창하고 있다. 이 신뢰(혹은 신앙)는 일차적으로 상대방에 대해서 스스로 적대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도 적대감을 갖지 않게 되고 여기서 비로소 신뢰가 싹이 트고 점차 성장하게 된다. 신뢰라는 개념은 원래 종교적 개념이지만 오늘날에는 정치나 경제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정치에서도 상대방이나 상대정당을 신뢰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는 불가능하고 정쟁만 남게 되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오늘날의 한국정치가 그 모양이다. 그리고 경제 특히 상업에서도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이 믿을 수 없는 경우 구매자들은 그의 물건을 살 수 없다. 얼마 전 남양유업파동이 그런 것이다. 어떤 장사든지 믿음을 주지 못하면 그 상인은 망하게 되어 있다. 남북한 사에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상호 불신가운데 적대적 정책으로 대결만 해온 결과 독일 같은 나라는 분단을 극복하고 유럽에서 우뚝 섰지만 남한이나 북한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적대시하고 경제적으로 교류하지 않고 군사적으로 막강한 신예무기와 핵무기로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북한은 경제적 파탄에 이르고 남한도 현재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하면서도 여전히 무기사재기에만 열중하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신뢰라는 말과 유사한 사랑이란 말도 있는데 그 내용도 마찬가지다. 성서에 보면 “나님께서 (먼저)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요한 1서 4:11)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랑이나 신뢰는 성서에 보면 우선 하나님이 일차적으로 이니시어티브를 취해서 인간들을 사랑했고 거기에 따라서 인간들도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박근혜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의 형편이나 조건을 따지지 말고 남한정부가 주체가 되어 시작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처럼 “상호주의”를 내세워서 네가 하나주면 나도 하나 준다는 식으로 하면 이미 경험한 바이지만 절대 신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을 적대시하기 위해서 새로운 국방정책에서 향후 5년간 박근혜 정부는 미국에서 약 240조원의 신무기를 사오려고 한다. 미국에 대한 이러한 퍼주기를 중단하고 남북한이 그 돈으로 경제협력 사업을 한다면 남북한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화해와 평화의 기초를 만들 수 있을까? 한국의 반공 보수 세력들은 김대중 정부의 햇빛 정책을 “퍼주기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사실상 북한과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이 정책 외에 어떤 다른 대안이 있을까?  만일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인 신뢰 프로세스가 이명박의 상호주의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그것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라는 낡은 이명박의 상호주의는 이미 폐기된 모세의 율법이며, 낡은 삶의 방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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