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팅 바울』 겉 표지. |
저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은 자신의 은사인 김창락 박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의 ‘의인론’에 대한 연구를 초고로 삼아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 앞서 김창락 박사는 바울의 ‘의인론’이 (무시간적)진리 담론이 아닌 당시 시대상을 담은 논쟁 담론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른바 민중신학에서 바라본 바울 읽기가 최초로 시도된 것이었다. 그러나 학계에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자 김창락의 바울 연구는 중단되고 말았고, 제자인 김진호 실장이 이를 계승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기존 예수 연구에만 치중했던 민중신학 흐름에 있어서도 일종의 전환점과 같았다.
27일 저자 김진호 실장을 청파교회(담임 김기석 목사)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이 책이 기반으로 삼은 ‘의인론’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하니 바울의 활동 당시 사회사적 맥락을 먼저 살피는 게 우선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이처럼 『리부팅 바울』에서 김진호 실장은 김창락의 ‘의인론’에서는 누락돼 있던 사회사적 맥락을 보완했다.
바울의 ‘의인론’은 유대인과 비유대인(혹은 이방인)과의 갈등에서 나온 논쟁 담론이었다. 당시 제국 노동력의 30%를 차지했던 해방노예와 이방인 등의 유민들 외에 극빈층 등 사회적 약자들은 지역 유력 자치결사체였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사회에 급속도로 유입됐다. 이 과정에서 디아스포라 사회는 개종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분류되는 돈 많고, 힘 있는 유력자들은 우대하면서도 할례까지 받으며 개종한 해방된 노예들이나 극빈층, 약자들에 대해서는 분리하고 의심하는 것을 넘어 배척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일부 근본주의 종파 유대주의 집단은 순혈주의적 자세를 견지하며, 편가르기와 짝을 지어 약자에 대한 탄압을 일삼았다.
바울은 이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의 ‘의인론’은 권리 없는 자들에게 권리를 찾아주겠다는 당대의 ‘인권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는 게 김진호 실장의 설명이다. 바울은 구원이 율법의 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믿음의 의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파격 선언을 하며, 구원 집단에서 배제되어 온 힘 없는 약자들을 억압 체제로부터 해방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서 귀가 따갑게 들은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종이 여종이나’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복음의 차별없는 은총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그러나 바울이 체제순응론자였다는 정반대의 시선도 있다. 그가 여성 차별에 눈감았다거나(고린도전후서) 노예제 신분 사회 질서 유지(빌레몬서) 및 권세 복종(로마서) 등에 관해 지지 입장을 드러낸 점은 바울의 혁명가적 면모를 상상하기 어렵게 한다. 이에 김진호 실장은 "당대의 사회적 맥락과 정황에서 살펴봐야 한다"면서도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바울이 지닌 한계가 크게 부각되어 보일 수 있겠으나 바울의 전체적인 시각과 관점은 민중을 위한, 약자를 위한 복음과 깊이 맞물려 있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리부팅 바울』의 저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 그는 은사 김창락의 민중론적 관점에서의 ‘의인론’ 연구를 초고로 삼고, 사회사적 맥락을 보완해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그 집필 배경을 전했다. ⓒ베리타스 |
『사도 바울』과 『남겨진 시간』을 통해 바울 다시 읽기를 시도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 및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영향을 받은 김진호 실장은 바디우, 아감벤이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의 유럽과 로마제국 시대의 지중해 연안 도시들의 현상을 유비시켰듯이 신자유주의 제국의 질서에 편입된 대한민국의 유비를 덧댄다. 김진호 실장은 오늘날 주류 한국교회는 "권리 없는 자들, 약자들의 편에 서기 보다 힘 있고, 능력 있는 이들, 소위 중산층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면서 로마제국 시대 당시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사회의 배제/분리주의적 행동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호 실장은 ‘권리 없는 이들을 위한 신학’으로서의 ‘의인론’이 중산층, 기득권을 대변하는 교회 체제 유지 및 발전을 위한 (개인 영혼의)‘구원 교리’로 읽혀지는 것을 우려했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제국 질서 내 주변부에 불과하나 약자들에게 있어서는 중심으로 군림해 그들의 권리를 빼앗고, 그들을 주변화시키는 악마적 시스템을 가동하는 ‘도시 국가’ 서울의 적극적 공모자가 되어 버린 교회 신학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에게 바울의 ‘의인론’은 오늘날의 교회 해체론이며 동시에 새로운 교회 건설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담론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은 이렇듯 당대의 ‘현장성’에 주목하여 새로운 시선으로 체제 저항적인 바울의 혁명가적 면모를 세심히 다뤘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소수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편에 서 있질 않고, 오히려 이들을 억압하는 사회 시스템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울의 가르침과는 정반대 되는 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에 경종을 울렸으면 합니다.” 저자 김진호 실장은 민중론적 혁명의 관점에서 본 바울 읽기의 첫 시도인 『리부팅 바울』이 시민 사회 및 국내 철학계에서 혁명가로서의 바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되었으면 한다고도 밝혔다.
“예수운동은 일상에까지 침투해 있는 지배 권력에 의해 빼앗기고 모멸당하는, 그리하여 궁핍에, 질병에, 악령에 시달리는 대중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선사하고 해방의식을 고취하려는 민중론적 신앙운동이었다.” 저자는 바울이야말로 이러한 예수의 급진주의적 체제 개혁 전통을 가장 잘 계승한 인물이었단 설명을 보탰으며, 책의 제목처럼 버벅거리는 바울 읽기를 ‘리부팅’하여 새로운 시선 아래 바울의 혁명가적 진면모가 드러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