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큰 계명

2013년 09월 22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레위기 19:1-4, 17-18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너희는 저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공경하여라. 너희는 또 내가 명한 여러 안식일을 다 지켜라.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희는 우상들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쇠를 녹여 너희가 섬길 신상들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는 동족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이웃이 잘못을 하면, 너는 반드시 그를 타일러야 한다. 그래야만 너는 그 잘못 때문에 질 책임을 벗을 수 있다.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 아멘. 
 
야고보서 2:8-13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이 또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결국 그 사람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아멘. 
 
 
마가복음서 12:28-34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아멘. 
 
설교문
 
성가대 찬양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하면 보통은 진부하게 받아들여지는데, 하나님 욕을 하면 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나님, 또는 신이라는 존재가 따지고 보면 사람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지,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려울 때 신이 필요한 것이지, 평소에는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신은 사람의 작품이다, 신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만들어내기도 하고, 없애기도 한다는 얘기를 하면 관심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깊이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다르게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람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철학적, 신학적 주제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진부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이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온 신학사상, 철학사상,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까지 나서서 많은 탐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답은 하나가 아닌 듯합니다. 하나의 답만 있으면 좋겠지만, 답이 여러 개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속에서는 하나의 답을 저희에게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답 중에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답일 것입니다. 사람이 무어냐고 물으면, 신앙을 가진 입장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만든 이에 대해 묻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만든 이는 하나님이므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은 신이 누구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신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함께 믿는 신은 누구입니까? 이에 대한 수많은 신학서가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다. 신은 무엇입니까? 오늘 주보의 예배의 부름에서 요한1서 4:7, 21절을 읽으셨는데, 그 중간인 16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입니다. 신은 사랑이다. 그럼 인간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고 믿으시면,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여러분이 받아 믿으시면, 답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고로 그의 피조물인 인간은 사랑이다.” 저는 이 답을 오늘 성서말씀에서 찾아서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믿는 자에게 인간이란 사랑입니다. 사랑이 아닌 인간은, 적어도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아닙니다. 제가 사랑이 아니면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럼 사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요한1서에는 분명한 배경이 있습니다. 사랑은 혼자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 하고,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혼자서 하는 사람은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베풀고 받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신이 그렇다고 하면, 사람도 신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성경말씀에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그 분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몽땅 걸고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신과 인간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랑이 없는 신은, 적어도 제가 믿는 신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아닙니다.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라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임을 확인하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사랑이 신을 만들고, 인간을 만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해서 받은 계명이 있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온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라.” 이렇게 모세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습니다. 신학적 명령이라서, 하늘에서 울려온 소리여서 지키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 경험 때문에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경험이 없으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자유를 찾았을 때, 이 백성을 홍해를 통해 이끌어서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주신 하나님, 사랑이기 때문에 이끌어주신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뒤에 모세에게 주신 말씀,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에 대해서 이의를 달지 않고 그대로 믿고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계약을 위반할 때는 하나님은 심판을 하고 분노하셨습니다. “왜 사랑의 계명을 위반하느냐. 왜 신과 인간 사이를 끊느냐.” 그러면 하나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이 말씀을 받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네 자신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네 몸을 사랑하고 네 몸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수직과 수평으로 똑같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종교도, 신앙도, 신도, 인간도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중요한 대목은 이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네가 네 몸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 중에서 가장 진지한 사랑, 순결한 사랑, 거짓이 없는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정한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겉에 있는 내가 속에 있는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이 안 맞으면, 두 명의 나 사이에서 사랑이 없으면, 그때는 자살, 자학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자살이 뭐냐고 물으면, “나와 나 사이에 사랑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환자였을 때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저를 사랑하는 방법은 암을 수술하는 것이었습니다. 암세포를 죽이느라 살아있는 세포까지 함께 죽였습니다. 성경말씀에 가라지 뽑으려다가 밀까지 뽑는다는 상황이었습니다. 암 세포를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세포가 죽는 것을 보는 게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제가 참아야 했고, 기꺼이 받아야 했습니다. 왜냐, 살아야 했기 때문이죠. 제가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는 기꺼이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사랑은 고통이다. 사랑은 아픔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리는 사랑은 아픕니다. 고난, 고통은 사랑의 결실입니다. 아니, 사랑이 살기 위한 하나의 그릇이고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통을 즐거워하진 않지만, 배제하진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 기쁨과 희망이 꽃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살다가 아프시면, 생명이 희망으로 기다리고 있으면, 고통을 받으십시오. 감내하십시오. 고통과 싸우십시오. 고통 속에서 희망을 심고, 열매를 거두십시오. 생명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웃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웃이 잘못하면, 오늘 말씀대로 꾸짖어야 합니다. 단, 이는 이웃이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생명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수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이웃도 수술시켜서 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웃이냐고 물으면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얼굴색, 인종이 같아야 이웃입니까? 문화배경이 같으면? 출신지역이 같으면? 아니면, 이런 것이 다르면 적입니까? 그럼 다른 이에게는 사랑을 베풀면 안 됩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웃이란 말을 내가 정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인간은 피부색이 달라도, 배경이 달라도, 모두가 하나님 사랑 안에서 이웃이다. 내가 나를 살리듯이, 수술이라는 사랑을 통해서 아픔을 참게 하듯이, 이웃도 사랑해야 한다. 이웃과 내가 비록 다를 수 있지만, 틀림은 아니다. 사람은 다름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의 비극은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이웃으로 보지 못하고, 살리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소설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자서전 내용을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헤밍웨이는 아주 정열적으로 살다가 결국엔 권총으로 자살했지요. 그는 19살 때 호기심에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1차 세계대전 속으로 스스로 들어갔습니다. 전쟁, 갈등지역에서 취재를 많이 했는데, 1차 대전을 마치고 나서 쓴 소설이 바로 “무기여 잘 있거라”입니다. 사랑이 없는 것, 죽이는 것은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뒤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에는 스페인으로 갔습니다. 스페인 민주화운동의 주축인 사회주의자들 틈에서 운동에 동참하며 감명 받아 쓴 소설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입니다. 이후 쿠바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지 2년 만에 권총으로 자살을 합니다. 그 때 쓴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투쟁으로서의 혁명은 나를 매료시킨다. 그러나 권력으로서의 혁명은 아주 지긋지긋하고 싫다.” 이것은 스페인뿐만이 아닌 여러분의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독재 투쟁에 나서는 모든 민주화 운동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긴 뒤에 다시 권력체가 되어 똑같은 독재를 행한다면, 그것은 저주의 대상입니다. 민주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망가지고 또 다른 하나가 일어설 때 민주가 서지 못하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해서 이웃을 택해놓고 이웃을 다시 짓밟는 자가 되면, 나는 싫다.” 헤밍웨이의 고백은 저에게 많은 감명과 생각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언제 이 땅에 민주주의가 설 수 있냐고 물으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나일 때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왜 독재가 생겼는지 아십니까? 다른 사람은 인간이고 내가 신이고 싶을 때 독재가 생깁니다. 신이 되고 싶은 욕망, 내 권력을 절대화한 것이 독재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뿐이다. 그 사람 말고는 모두가 신이 아니다. 권력도, 부도, 지식도, 그 어느 것도 그 자체를 신격화하면 안 된다.” 신은 하나일 때만 민주가 가능합니다. 신이 한 분일 때만 인간의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라는 말은, 하나님 외에는 누구나 똑같이 사랑해야할 사람이지, 신이 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모든 사람은 함께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절대 권력자 하나님은, 진실로 사랑이신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인간을 하찮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놓으십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자기 이웃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모든 인간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절대자만이 신이지, 그 외에는 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은 십자가에서 보여준 사랑입니다. 봉사하고, 희생하고, 죽음까지 각오하는 사랑의 신만이 우리가 믿는 신입니다. 신이 되려 하지 마십시오. 신이 되면 불행합니다. 신이 아닌 인간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 신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하고, 축복받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신의 모든 선물을 감사할 수 있으면, 그걸 감사로 추수할 수 있으면, “이것이 내 세상이구나, 내가 사랑하는 백성이구나”하고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그 사랑이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를 구원합니다. 이 사랑이 고마우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사십시오. 그 하나님 품을 수 있다면, 복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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