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출애굽기 34:4-9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돌판 두 개를 처음 것과 같이 깎았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는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으로 올라갔다. 그 때에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그와 함께 거기에 서서, 거룩한 이름 주를 선포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의 앞으로 지나가시면서 선포하셨다. 주,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며, 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나는 죄를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넘기지는 아니한다.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서 경배하며 아뢰었다. 주님, 주님께서 저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 사실이면,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백성이 고집이 센 백성인 것은 사실이나, 주님께서 우리의 악과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야고보서 5:13-16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9: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셔서, 바다를 건너 자기 마을에 돌아오셨다. 사람들이 중풍병 환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께로 날라 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라, 아이야. 네 죄가 용서받았다. 그런데 율법학자 몇이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쉬우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들이 알게 하겠다. 그리고 예수께서 중풍병 환자에게 일어나서, 네 침상을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무리가 이 일을 보고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이런 권한을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아멘.
설교문
성가대 찬양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희들이 모여서 예배 드리고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의인으로 만들어주셔서 하나님 섬기며 살 수 있으니 감사하다는 것을 예식화 한 것이 예배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는 예수께서 감사의 진미를 보여주셨습니다. 중풍 병에 걸린 환자가 예수에게 왔습니다. 예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두 가지 일을 행하셨습니다. 첫째, "병이 나아라" 해서 몸에 있던 중풍이 나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이 광경을 보던 유태인들도 말이 없었습니다. 병은 훌륭한 의사도, 예수라는 예언자도 치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말씀, "네 죄가 사함 받았다"라는 아주 중요한 말씀에서 유태인과 예수님이 갈등을 보입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이유는 몸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태 사람들은 죄의 결과가 병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을 낫게 하려면 두 가지를 함께 해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아야 병의 원인이 치료받는 것이고, 또 원인이 나으면 죄의 결과인 병이 깨끗이 나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병을 낫게 하는 것도 기적이지만, 죄 사함을 선포하는 것은 사람의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리입니다. 그런데 유태 사람들 눈에는, 갑자기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면서, "네 죄가 사함 받았다"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지 않으시고, 이 사건에서 "네 죄가 사함 받았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에게 죄 사함의 선포를 위임하셨다"라는 말씀을 통해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사건이 유태인과 예수 사이에 갈등을 일으킨 원인이 됩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은 유태교 신앙을 개혁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유태교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습관은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병을 얻었으므로, 병 고침을 받은 자는 죄 사함도 함께 받아야 건강이 온전히 회복됩니다. 이들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짐승의 피를 성전에 드려야 했습니다. 자기 대신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속죄의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선언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죄 사함을 선포한다고 해서 죄 없는 짐승의 피를 잡지 마라. 십자가에서 죽은 내 피로 하나님은 이미 죄 사함을 약속하셨다. 다시는 짐승을 죽이지 마라. 죄 사함 받고 싶으면, 대신 죽은 내 피를 마시고, 내 몸을 먹고(성만찬 얘기입니다), 그리고 나를 구세주로 믿으면, 그 믿음을 가지고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으로 삼으마." 저희들이 예수 믿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죄 사함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속죄하는 것을 예수께서 대신 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개혁을 해야겠다. 이제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죽이는 것은 하지 마라. 짐승을 죽여서 사람이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짐승도 살고 사람도 살아야 한다. 단, 내가 혼자 죽음으로 인해 모든 죄악을 씻는다." 사실 예수께서는 유태교와의 갈등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유태교의 죄 용서 방식을 완성시켜 주신 것입니다. 유태교 신앙을 예수님이 풍부하게 완성시켜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용서 받지 않으면 아무리 몸이 나아도,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또 하나 말씀하십니다. "죄 사함도 받고 몸까지 건강하게 되었으면, 이제 다시는 죄 짓지 말고, 건강에 해로운 짓을 하지 마라." 중풍병자가 누워있던 침상을 그냥 놓고 가지 말고, 침상을 가지고 가서 없애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는 침상에 있지 마라. 죄 짓는 일, 질병에 매이지 마라. 한 번 나았다고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다. 병의 근본을, 환자가 있던 자리를 완전히 없애버려라." 이제부터 새 날을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해서 기쁨을 느끼지만, 구원 받은 것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구원 받았으면, 사죄함을 받았다고 믿으면, 죄 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새 사람 되었다고 생각하면, 감사에 그치지 말고 앞으로도 새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구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매일같이 드리는 것은,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이루실 때까지 시작을 계속해서 살겠다는 과정입니다.
오늘 구약 말씀에 보면, 축복 주시는 하나님과 죄 지은 사람을 심판하는 하나님이 비교되어 있습니다. 축복 주시는 하나님은 수천 대까지 이르도록 사랑하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이 본래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한 편, 죄 지은 사람은 3~4대까지만 죄를 멸하시고, 죄를 다 사해주십니다. 산술적 비교가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아니지만, 죄 지은 것은 하나님께서 빨리 없애버려서 수천 대까지 죄를 안 짓고 살게 하고 싶어 하십니다. 단, 3~4대까지만 이른다고 해서 이 죄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죄는 반드시 값을 치르게 하시므로, 예수께서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수천 대에 이르러 축복주신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만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이번 WCC 총회를 위해, 지난주에 스위스에서 열린 종교개혁 운동에 대한 사전집회에 다녀왔습니다. 2017년이면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인데, 그 기념의 일환으로 종교개혁의 두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스위스와 독일이 공동 주최하는 회의였습니다. 두 나라의 대표가 강연을 하고, 두 종주국이 아닌 다른 세계 대표로 제가 주제 강연을 했습니다. 500년 전에 이미 일어난 종교개혁은 지금까지, 앞으로도 계속 개혁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 개혁의 내용을 전 세계를 대표해서,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아름다운 개혁교회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결단에 대해 얘기해달라는 것이 제가 부탁받은 강연 주제였습니다. 종교개혁은 이렇습니다. 죄 사함 받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수가 죽으심으로 끝났고, 앞으로 예수를 진실로 믿는 것으로 죄 사함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당시에는, 설교를 듣고,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고나서, 교회에서 준 문서에 쓰여 있는 자기 죗값을 보고 그 값을 치렀습니다. 죗값의 무게를 달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이니, 행한 죄의 값을 확인하여 돈 주고 면죄부를 산겁니다. 그동안 지은 죄와 앞으로 지을 가능성이 있는 죄까지 포함하고, 연옥에 계신 조상님들이나 죄를 지은 가족들을 위해 면죄부를 사면 그 분들의 죄가 탕감 받는다는, 아주 조직적인 면죄부 운동이었습니다. 유태교 시절, 짐승의 핏값을 지불하여 제사를 드렸던 것이나 면죄부가 똑같은 방식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핵심 내용은, 죄 사함 받는 것은 짐승의 피도 아니고, 면죄부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우리 죗값을 돈으로 환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의지하는 것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이미 500년 전에, 하나님을, 그분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믿고, 의지하고, 믿은 대로 실행하고 삶으로써 우리는 죄 사함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개신교는 정말 예수 믿는 사람들로 가득한가? 그렇게 비판받던 카톨릭은 종교개혁 때문에 비판을 호되게 받고, 자기 변신을 통해서 새로운 교회로 등장했습니다. 개신교는 잘 지내오다가, 지금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곳곳에 면죄부 대신 축복을 돈으로 사고파는 행태가 만행해있습니다. 소위 "기복신앙"입니다. 그럼 우리는 다시 해야 합니다. 이미 끝난 것, 한번 개혁한 교회, 구원받은 사람으로 사는 것을 과거형으로 "리폼드(reformed)"라고 합니다. 확실히 우리는 구원 받았습니다. 병 고침을 받았고, 죄도 용서 받았습니다. 예수님 말씀입니다. "이제는 침상을 들고 가라. 오늘도 , 내일도, 네가 그 안에 거할 침상은 없고, 새로운 침상만 있다. 병자 침상이 아닌 건강한 침상을 새로 만들어라." 그러면 이미 개혁된 교회로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매일매일 개혁하는 교회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Reformed church만 있는 게 아니라, reforming church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스위스도, 독일도, 영국, WCC도, 우리도 잊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제는 용서받은 사람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매일같이 용서를 구하는 사람으로, 용서해주신 하나님만 믿는 게 아니라 용서하고 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변한 사람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변해가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정말 reforming하면서, 스스로 개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짐승의 피도, 돈으로 환산한 면죄부도 아니고, 근본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침상을 버리고 새로운 하늘의 침상을 갖듯이, 근본을 찾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루터나 칼뱅이 일으킨 건 맞습니다만,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종교개혁을 할 만큼 사전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르네상스 운동 중 하나인 사람의 본모습을 찾자는 인본주의 운동이 있었습니다. 에라스무스와 같은 사람이 나와서, 사람이 종교 때문에 죽었다, 사람을 살리자, 하나님의 형상을 찾자고 합니다. 그래서 책도 원어를 참고하고, 본질로 돌아가자는 고전주의가 등장합니다. 교회에서도 성경말씀을 잘 모르는데, 이제는 본래 쓰였던 헬라어 성서,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서를 보고, 성서가 정확히 뭐라고 얘기했는지 찾아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이런 르네상스 운동은 종교개혁의 알을 낳고, 루터와 칼뱅 같은 사람은 그 알을 병아리로 부화시켰습니다. 그런데 알이 부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가 차야합니다. 때가 차야 개혁이 성공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고를 가졌어도, 때가 차야 그 사고가 현실화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때가 차서 함께 해야지, 설익은 때에 왜 안 되냐고 소리치면 분란과 혼란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믿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제 때가 되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안 된다고 서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정하신 때, 세상이 동의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리며 갈구합시다. 또 하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나오고 상황이 나와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십자가 이후에 사는 우리들이 예수를 통해 근본이신 하나님을 다시 찾아가듯이, 어렵고 힘들고 아플수록 근본을 찾읍시다. 경제가, 정치가 어려워도, 근본이 강하면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이 아무리 힘들어도, 근본이, 토대가 분명하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매일같이 reforming 하면서, 옛날 침상은 치워버리고 새 침상을 찾읍시다.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은 여러분, 의인이 진실로 기도하면 병도 낫고, 소원도 들어주십니다. 믿는 자가 바로 의인입니다. 진실로 믿는 자가 진실로 간구하면,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여러분에게 reforming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