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남교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2013년 10월 6일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0장 23-33절)
 
설교문
 
흑암의 대륙 아프리카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리빙스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다가 외딴 섬으로 들어갔는데 너무나 외롭고 고독한 중에 있었습니다. 너무나 힘들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돌맹이 몇 개를 주워 다가 던지면서 생각하기를 오른쪽으로 던지는 것은 감사의 돌맹이, 왼쪽으로 던지는 것은 원망의 돌맹이라고 생각하고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나에게는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구나”원망의 왼쪽 돌맹이를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해보니 초근목피로나마 지금껏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감사한 생각이 들어서 오른쪽으로 돌맹이를 던졌습니다. 
 
그는 또 “나는 왜 이리 고독한가?” 하면서 원망의 돌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마침 하늘에서 노래하는 종달새를 보게 되었는데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아 이번에는 감사의 돌을 던졌습니다. 
 
리빙스턴을 이렇게 온종일 감사의 돌맹이와 원망의 돌맹이를 번갈아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2차 대전 중 설치된 어떤 강제수용소의 벽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태양이 빛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태양이 존재함을 믿노라. 내가 느낄 수 없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노라. 비록 하나님이 지금도 침묵하고 계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노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신앙은 아무리 큰 역경과 고난과 위험과 분란이 와도 큰소리로 담대히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원망해야 하는 일보다 감사해야 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불평해야 할 일보다 찬양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많고, 궂은 일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가난해도 하나님의 자녀고, 무식해도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실패해도 우리는 천국시민이고, 멸시천대를 받아도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스런 백성들입니다. 아무리 우리들의 삶이 힘들어도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해 야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은 신자가 처한 조건에 관계없이 신자인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보여야 할 영적 태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육신적으로는 절망적인 생활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은혜로운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비록 육신적으로는 낮은 사람이라고 해도 영적으로는 높은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병들어 답답하지만 장차 우리가 주님 앞에 가서 누릴 영광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난하고 병들어 고생은 하지만 그 가난과 질병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에 얽매어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도 알고 보면 습관입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영적인 습관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네 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가 유명한 현인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잘 키울 수 있습니까?” 현인은 어머니를 정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정원에 있는 네 그루의 나무를 한번 뽑아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갓 심어놓은 첫 번째 나무를 아주 쉽게 뽑았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힘으로 가능했습니다. 
 
세 번째는 심은 지 꽤 지난 나무였습니다.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그것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나무는 이미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쏟았으나 나무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현인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자녀교육도 이 나무와 같습니다. 오랜 습관은 깊은 뿌리를 내려서 그것을 바꾸기가 어렵지요. 어린 자녀에게 좋은 습관을 갖게 하십시오.” 신자된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바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영적인 습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기뻐하되 항상 기뻐함으로 슬픔이 틈타지 못하게 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여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범사에 감사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평과 불만 그리고 원망이 우리 마음을 치고 들어올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길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우상제물을 먹는 것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신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으니 우상에게 제사 드린 것은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기 때문에 먹는 것을 허용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교도의 신전 제사에 참여하여 이교도들과 함께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당시 헬라 사회의 시장에는 이교도들이 제사 중에 사용한 고기들이 판매되었기에 성도들은 별 의식 없이 그것을 사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그것을 먹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방 신전에 참석해서 같이 먹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보았습니다.

제사 때 사용한 고기를 시장에서 사다가 먹었을 때는 그가 제사에 참여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제사에 드려진 고기라 하더라도 우상이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먹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백성들이 제물을 성전에 가지고 가면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백성들과 함께 먹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예식이었습니다. 신전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신전의 신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 신전에서 제사음식을 먹는 것은 이방신과 하나가 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이방 신전에서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은 이방 귀신과 한 몸을 이루는 것이기에 끔찍한 우상숭배이지만,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으로서 놀라운 영적인 축복이 됩니다.
 
우리가 매월 초에 행하는 성만찬 예식은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예식입니다. 이 성만찬을 통해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에 참여합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이그나티우스는 “무릇 주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일생동안 지켜야 하는 유일한 예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만찬이다”고 했습니다. 우리 같이 더러운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식구, 하나님과 한 몸이 되는 사건인 성만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서 받은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성만찬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으니 자신의 세속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만찬을 통해 우리와 한 몸이 되신 우리 주님은 온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고전8:11).
 
이런 주님과 우리가 한 몸이 되었으니, 우리 주님이 사랑하는 이웃을 위해서 어찌 나를 절제하고 양보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24절)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한다’는 말은 ‘어떤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찾는다,’ ‘철저하게 찾아 낸다’의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눈에 띄면 찾는 것이 아니라 갈급한 마음으로 사모하듯이 찾는 것을 말합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이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듯이, 폭풍으로 파선 직전에 놓여 있는 배가 가까운 육지나 항구를 찾듯이 찾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와 같은 자세로 남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가양5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 것도 이렇게 해야 하고, 북한의 굶주린 어린이를 돕기 위한 돼지 저금통도 이렇게 갈급한 마음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웃을 이렇게 돕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는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처소는 성전의 지성소였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대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지성소는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처소였습니다. 대제사장이 그곳에 들어가려면 철저히 성결한 생활을 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르는 곳에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섬기고, 또한 이웃을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절).
 
사도 바울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무엇이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마치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처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의 자유를 절제하고, 우리의 시간과 소유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한 몸이 되었으니 주님이 원하는 일을 위해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전도입니다.
 
이번 총동원주일에는 우리의 모든 것을 내놓고 한 사람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날 혼자 오시는 분이 없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전화하고, 기도하고 만나서 꼭 전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식까지 데리고 이슬람 국가에 가서 전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는 선교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내놓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영국에 불신자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한 부인이 남편의 회개를 위해서 일 년 열두 달 날마다 기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날마다 12시가 되면 그 여자는 혼자 자기 방으로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녀가 기도한지 12개월이 지나갔는데도 그가 굴복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6개월을 더 기도하려고 결심하고 날마다 혼자 방에 들어가서 남편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6개월이 또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를 않았고 시원한 응답도 없었습니다. 
 
회의와 갈등이 그녀의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속삭이실 때까지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 그녀는 다짐했습니다. 바로 그 날 이었습니다. 남편이 저녁 식사를 하려고 집에 왔을 때 식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저녁식사를 하려고 내려오지를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 여자는 남편의 방으로 갔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무릎을 꿇고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남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은 남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기도는 부도가 없습니다. 다만 응답하고 성취해 주시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주어집니다. 특히나 가족의 구원을 위해 드리는 기도는 오랜 시간 인내하고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꾸준히 전도 대상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바램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서면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총동원 주일에 헌신하여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이웃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일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이웃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번 총동원 주일에 이웃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AI의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죄"

옥스퍼드대 수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박사가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신간「God, AI, and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여성들, 막달라 마리아 제자도 계승해야"

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