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남교회] 순종의 원리

2013년 10월 20일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전병금 강남교회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16절)
 
설교문
 
어떤 부부가 이혼을 결심하고 목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이혼의 이유를 들어보니 목욕실에 있는 비누를 쓰는 문제로 싸운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비누를 항상 말려서 뽀송뽀송하게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비누를 말려 놓으면 딱딱하다고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비누를 언제나 푹 불려 두었습니다.
 
이것이 싸움의 발단이 되어 결국에 이혼하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비누 문제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성격차이, 교육수준, 가정환경, 부모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져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목사가 한 한마디에 해법을 찾았습니다. “싸우지 말고 비누를 두 개 놓고 쓰세요.”
 
각 가정마다 가정이 깨지는 것은 극히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가정을 유지하고 행복한 가정을 세워 나갈 수 있을까요? 첫째, 부부는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의 성격과 습관은 보통 6세 이전에 정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부가 만나 결혼할 때는 이미 성격이나 습관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연히 부부의 성격이나 습관은 서로 다를 것입니다. 누가 맞고 틀린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유지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 어머니 밑에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의 성격도 서로 다른데 하물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어떻게 차이가 없겠습니까?
 
둘째, 상대방이 다른 것을 수용하고 존중해 줘야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부부생활에서 중요한데, 이혼하는 가정은 보통 결혼 초부터 기싸움을 합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권위를 주장하며 아내가 자기에게 복종하기를 강요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신사의 도를 말하면서 자기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전쟁터가 됩니다.
 
가정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사랑하며 배려하고 섬길 때 아름다워집니다. 가정은 상대방을 훈련시켜 복종시키는 훈련소가 아닙니다. 가정은 이중창처럼 두 사람의 음성을 조화시켜 화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만일 남편은 아내에게 군림하는 왕이 되려고 하고, 아내는 무조건 복종만 하는 하녀가 된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바로 지옥입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는 주인과 하녀가 아니라 왕과 왕비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가정은 사랑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사랑 없는 가정은 이미 무덤입니다. 가정은 마음과 뜻과 힘과 물질을 모아 잘 살아 보려고 서로 만나 노력하는 공동체입니다. 치약이나 비누를 어떻게 쓰느냐, 수건을 같이 쓰느냐 서로 분리해서 쓰느냐는 것은 비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들이 부부로 맺어졌다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본질적인 문제건 비본질적인 문제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정을 만들어 부부 간에는 서로 사랑하며 자녀들 사이에는 서로 우애하여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만물의 현상에는 질서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정에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창조질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의 질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창조질서가 무엇인지를 알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나가시길 바랍니다.
 
고린도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는 거리를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개 여자들이 외출할 때에는 수건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싸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혼 여성들은 거의 외출도 삼가고 집안에서만 기거하였습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에도 아랍 문화권에서 유지되어, 아랍 여자들은 외출시 수건으로 온 몸을 감쌉니다.
 
그런데 고린도 지역에서도 개방적인 헬라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여자들 가운데서도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런 개방적인 여자들의 행실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면서 여자들은 반드시 교회에서 너울을 쓰도록 당부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2천년전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고린도 지역의 풍속입니다. 따라서 21세기 그리고 한국에서 사는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한 영적인 의미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여자들이 예배시 수건을 쓰도록 권면했습니다(5절). 당시에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두르는 것은 여성의 순결성과 정숙을 상징했습니다. 따라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거리를 다니는 것은 당시의 전통을 위배하는 것이고, 부정한 여인으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머리를 깍은 경우와 같이 취급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여자 노예는 머리를 깎았고, 유대 사회에서 슬픔을 당한 자 또한 머리를 스스로 깎았습니다(신21:12). 또한 간음한 여인은 제사장이 머리를 깎았습니다(민5:18).
 
그러나 여자가 머리를 수건으로 가린 근본적인 이유는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권위는 누구의 권위일까요? 그것은 바로 남자의 권위를 말합니다. 바울이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한 것은 남자의 권위에 복종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만드실 때의 창조질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남자를 만들었고, 남자가 잠들도록 하여 잠든 남자의 갈비뼈만을 가지고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남자를 위한 베필로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창조 순서가 남자 다음에 여자였으며, 남자를 위해 여자를 만들었기에, 사도 바울은 여자는 남자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여성해방운동가들에게서 많은 항의를 받을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여성차별적인 발언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적인 원리를 말하고자 그런 권면을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원리를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3절).
 
사도 바울은 가부장제 사회 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그 당시에는 성평등의 사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부장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그러한 시대적인 환경 속에 살았기 때문에 가부장제를 당연한 것으로 알았고, 그 가부장제에 기초하여 영적인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즉, 그 시대의 언어로 영적인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대교회의 시대적인 상황에 얽매이지 말고, 그 시대적인 상황을 통해 전해지는 영적인 진리를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영적인 진리란 바로 남자와 여자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의 영광이 바로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7절)고 말했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라는 말은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를 부여 받았으며, 또한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할 권세를 가졌다는 말씀입니다(창1:27-28, 21:7).
 
그러므로 남자는 머리에 수건을 쓸 것이 없고, 여자들은 교회에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가톨릭에서 그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 권면을 우리는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우리 모두가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라는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남자와 여자를 포함하여 모두 우리 주님의 정결한 신부들입니다. 신부는 신랑에게 순결함을 가지고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듯, 그리스도의 신부된 우리는 신랑되신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신부된 우리는 신랑되신 주님의 절대적인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정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일제 말엽에 주기철 목사는 일본 제국주의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에 대한 사랑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의 쓴 잔을 받아 마시고 비참하게 순교했습니다. 우리도 주기철 목사의 순결한 신앙을 본 받아 타락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훈련하여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어 여자는 무조건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늘 말씀을 완전히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의 말씀을 남자들이 이기적으로 악용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성경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알려주고자 하는 사실은 바로 모든 권세와 영광이 주님께 있으니, 남자와 여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다 주님께 절대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창조질서는 주님께 절대 순종하는 것이지 여자가 남자에게 가부장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 임한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사랑과 헌신과 책임에 있지, 가부장적인 억압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절대 악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께만 복종하면서 서로를 평등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피를 흘리면서 구원해 주셨듯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요사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와는 상반된 행위가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동성애 문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세계가 골치를 앓는 문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대로 살아야 합니다. 자연질서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겔34: 26).
 
우리는 여름마다 오는 태풍과 폭우를 겪으면서 “복된 소낙비”라는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눈으로 보고 몸으로 실감합니다. 소낙비에도 복된 소낙비가 있고 재앙의 소낙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때에 맞는 복된 소낙비가 오지 아니하면 배추 값 폭등과 같은 재앙을 가져오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작년에 소낙비가 때에 맞지 않게 왔기에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 5천원씩이나 되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인간이 이 세상을 손아귀 안에 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시 작은 기후의 변화에도 이토록 인간들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창조질서를 교란시킴으로 폭염과 폭설, 가뭄과 폭우 등이 때에 맞지 않게 불규칙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파키스탄은 최고 섭씨 55도, 로스앤젤레스 45도, 토쿄는 40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세계의 곡창지대도 이러한 날씨의 교란 속에 처하여 있기에 21세기 최고의 재앙은 식량난이 될 것이 불 보듯 합니다. 
 
배추 값이 금값이 되자 가난한 이들부터 먹지 못하게 됩니다. 노숙인들의 급식소에서부터 김치가 사라졌습니다. 사료값이 뛰면 육류 값이 뛰게 되고, 쇠고기가 한 근에 5만원 10만원 하게 되면 결국 가난한 이들은 쇠고기를 입에도 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결국 먹을 수 있는 자와 먹지 못하는 자들의 위화감이 심화되고 이 갈등은 결국 인간간의 분열과 대립을 불러오게 되어 종말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은 자멸의 길을 재촉하는 것임을 우리 인간은 절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자, 여자 구분할 것 없이 모두 영적인 수건을 쓰고 주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에 아름다움이 있고 영광스러움이 있습니다. 전 세계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 또한 하나님이 창조질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총동원 주일을 맞아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질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모든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만큼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된 자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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