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남교회] 다양성속에서의 일치

2013년 11월 24일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전병금 강남교회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2장 4 -11절)
 
설교문
 
한번은 손과 발과 입이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위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위 속에 음식물을 넣어 주지 않느냐? 그런데 위는 그냥 받아 먹기만 하고 무엇을 한 것이 있느냐?”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손과 발과 입이 모여 요새말로 파업을 했습니다. 
 
손과 발은 먹을 것을 가져 오지도 않고 입은 삼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니 손과 발은 맥이 풀리고 입은 혀를 놀릴 수도 없었고, 다리는 힘이 없어 휘청거렸습니다. 몸의 모든 지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의 지체끼리 서로 돕는 것이 곧 자신을 돕는 것입니다. 지체끼리 분쟁하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 다른 지체는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퍼트남 교수는 ‘미국의 퇴조되는 사회자본’이라는 글에서 미국인들의 흩어지는 경향을 지적하였습니다. 교회의 성도 감퇴, 노동조합의 쇠약, 친목회의 약화, 보이 스카우트와 적십자사의 회원 감퇴, 주일학교 학생의 감퇴, 기타 많은 미국의 전통적 단체들의 회원 감소를 예로 들었습니다.
 
사람이 자주 모이고 횡적으로 대화가 활발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합니다. 이것을 사회자본이라고 합니다. 경제 발전에 자본이 필수적인 것처럼 민주주의 발전에는 사회자본, 곧 인간들의 결속과 연대가 필수적입니다. 이제는 ‘더불어 사는 지구촌’이 인류의 새 지표이어야 합니다. ‘홀로 서기’가 한때는 대견하고 바람직한 정신이었으나 지금의 세계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홀로 서기’보다 ‘함께 서기’가 바람직합니다. 
 
헨리 키신저가 미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유엔 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미국은 세계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고 세계를 지배할 수도 없다. 그와 같이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이 세계로부터 도망치거나 남을 지배할 수는 없다” 
 
이제는 지구촌 모두가 서로 어울려 살아가면서 힘을 모아 평화를 이룩할 때입니다. 이 방향을 방해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현대의 악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자랑할 만한 특징은 정입니다. 정은 유대이기에 단결의 힘이 됩니다. 정은 무엇이나 접착시키는 마술 시멘트 같습니다. 
 
정은 믿게 하고 손을 잡게 합니다. 이념이 먼저가 아니라 정이 먼저여야 합니다. 아마도 천국이란 정든 사람들의 낙원일 것입니다. 무정한 천국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한국인의 고질병은 분파와 분열, 협력하지 못하고 싸우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단체마다 싸우고 분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왜 이렇게들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일까요! 
 
진정한 세계화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협력하는 마음,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지 못하고 세계화나 민주주의는 어림도 없습니다. 흔히들 미국 사회를 ‘샐러드 볼(salad ball)’이라 부릅니다. 샐러드 사발에는 양배추, 당근, 오이, 양파 등 많은 채소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각자의 맛이 서로 어우러져 전체가 만드는 새로운 맛을 창조합니다. 
 
이 화음 만들기는 미국만의 과제가 아니고 우리나라의 긴급한 과제이며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 간에 조화가 필요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입니다. 즉,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은 각 부분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개성들을 가진 성도들 간에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몸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각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대로 활동하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은사를 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교회가 그 기능을 발휘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그 존재 가치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본문의 고린도교회를 보면, 성도들 가운데 화려한 은사를 받은 성도가 드러나지 않게 은사를 받은 성도들을 무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교만하게도 은사가 드러나지 않는 성도들을 소외시켜 교회 안에 특권층과 소외층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병 고치는 은사나 귀신을 좇아내는 능력을 행하는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보통 이상으로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큰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지혜나 지식 그리고 믿음의 은사 등 고귀한 은사이기는 하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사를 받은 성도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도 이런 분열이 있었습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교만하였고 내적인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그 은사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무시당하여 교회를 떠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성도들의 각각의 은사가 성령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어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를 세워나간다는 사실을 밝혀주었습니다. 성령이 주신 은사는 그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구원의 역사를 행하실 때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을 찾으십니다. 그리스도 당신이 당신을 위해 일할 지체를 교회 성도들 가운데서 찾습니다.
 
사람을 키우려면 그들을 가르칠 교사를 찾고, 병든 자를 고치려면 의사를 찾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역사를 위해 우리를 찾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을 해야 할 손이며 그리스도를 위해서 심부름을 하기 위해 뛰어야 할 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해야 할 입입니다.
 
“우리의 손이 아니면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할 손이 없으며,
우리의 발이 아니면 지금 주의 길로 사람들을 이끌 발이 없으며,
우리의 목소리가 아니면 주님의 복음을 전파할 목소리가 없으며,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사람을 주님께로 이끌 사람이 없다.“
 
우리 성도들은 각자 다른 은사를 받았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두드러진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와 귀신을 쫒는 은사라고 이미 말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은사를 받은 교역자가 있는 교회는 성도들이 많이 모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은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 지식, 믿음,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 등의 은사를 말하면서 성령이 당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그 은사들을 나누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즉, 성령께서 당신의 뜻대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성경은 병 고치는 은사나 능력 행하는 은사보다 지혜와 지식과 믿음의 은사를 앞에 두어 강조했습니다. 지혜와 지식의 은사는 좀 닮은 은사입니다. 지혜로 번역된 헬라어는 ‘소피아’입니다. 이 지혜는 최고의 지혜로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인간의 사고나 지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지식은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 다음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능력 있는 믿음 혹은 영적인 것을 현실화 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곧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말합니다. 이 믿음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이런 지혜와 지식 그리고 믿음의 은사가 어찌 병 고치는 은사보다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성령이 주시는 은사는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또 예언의 은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예언의 은사를 일을 미리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여기서 예언한다는 것은 앞장서서 말하는 것, 즉 선교의 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영분별의 은사입니다. 이것은 어떤 영적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성경적인 관점에서 판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분별의 은사는 이단성이 있는 가의 유무를 볼 줄 아는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온 성도들이 성령을 가까이 하면 당연히 받는 은사입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많이 했어도 분간을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은 자기와 가정을 영육간에 망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 사도 바울은 방언의 은사와 방언 통역의 은사를 들고 있습니다. 이 은사는 초대교회의 고린도교회에서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방언은 자기의 신앙을 위해서 크게 유익하지만 교회 공동체 성도들의 다른 은사에 비교해 볼 때는 조심해야 하는 은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적으로 유익한 방언의 은사를 귀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런 각양각색의 은사를 주신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서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우리를 더욱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스 감리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 건물이 너무 낡아 보수를 해야 했지만 100 여명의 교인들이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시골의 작은 교회였기 때문에 재정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이 교회의 담임인 존 목사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며 성경을 읽다가 달란트 비유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다음 주일날 로스 교회의 성도들은 예배시간이 끝난 뒤 5 달러가 담긴 봉투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그 돈을 사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교회 공사비를 충당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냥 그대로 돈을 다시 가져와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 성도들이 가져간 500달러는 수리비 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만 오천 달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5달러 그대로 다시 가져온 성도들은 4명뿐이었습니다. 어떤 할머니 집사님은 쿠키를 반죽해 이웃에게 팔았고 어떤 어린이는 레몬에이드를 만들어 길거리에서 팔았습니다. 온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 뭉치자 500달러의 자금이 30배로 커져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단지 그것을 아직 못하거나 사용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질수록 곳곳에 풍요가 넘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받은 달란트는 반드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코 그 달란트로 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유명하신 원로 목사님 한 분이 젊은 시절에 은사를 받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본인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한번은 환자 심방을 가셔서 기도하고 왔는데 그가 낫게 되었습니다. 기도한 즉시 낫지는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오면 며칠 있다가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들 잘 몰랐다가 그런 일이 자꾸 많아지니까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하고 가시면 낫더라'는 말이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까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돈은 달라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우리 딸의 병을 좀 고쳐 주십시오.” 
 
그러자 목사님이 이런 기도를 드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 은사가 필요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 은사 때문에 예수는 믿으려 하지 않고 병만 고쳐 달라고 합니다. 그럴 바에는 이 은사를 쓰지 않겠습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기대로는 그 은사와 함께 회개까지 시키게 하는 은사가 덧붙여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그 후에 목사님의 은사가 없어졌습니다. 그저 평범한 목사님이 되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은사가 최고 최선의 방법이나 무기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더 많이 주님께 봉사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명성과 능력과 재주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추어지고 섬기고 낮아진 봉사를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그 은사대로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우리 모두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주님을 섬겨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성도들은 각각 다른 은사를 가졌지만 주님을 위해서 하나가 되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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