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사랑이 만드는 세상

2013년 11월 10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성경본문 
 
예레미야서 29:10-14 
“나 주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바빌로니아에서 칠십 년을 다 채우고 나면, 내가 너희를 돌아보아, 너희를 이 곳으로 다시 데리고 오기로 한 나의 은혜로운 약속을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나에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호소를 들어주겠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기만 하면,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를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너희를 쫓아 보냈던 세상의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서 너희를 모아 오겠다. 내가 너희를 포로로 보냈으나, 나는 너희를 그 곳에서 너희의 고향으로 다시 데려오겠다. 나 주의 말이다.” 아멘. 
 
에베소서 6:12-17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악한 날에 이 적대자들을 대항할 수 있으며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가리고 버티어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그것으로써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아멘. 
 
마태복음서 5:38-4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아멘.
 
설교문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고 싶었던 노래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르고, 점심때 부르고, 그리고 밤에도 부르는 노래 일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오늘 성가대가 부른 ‘십자가’를 알았더라면 그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베푸신 재앙으로 인해 식민지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예레미야를 통해 이런 선언을 하셨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아픔이 아니라 기쁨이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다. 그런데 너희는 이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목적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 계획을 갖고 계시다". 이 말씀을 선포한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거의 70년 가까이 식민지 생활을 하던 엄청난 아픔의 기간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나는 흩어진 백성들을 하나님의 전인 예루살렘으로 다 불러 모아서 나와함께 새 예루살렘을 만들고, 그 곳에서 내가 목적한 바를 이룰 것이다. 하나님은 축복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번영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기쁨의 주인이시다. 라는 것을 성전에서 함께 예배하고, 노래하고 싶다. 그 날을 위해 조금 기다려라. 70년 후가 되면 내가 이 일을 해주겠다. 지금 십자가를 지고 고생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우리 용어로 부활의 아침을 70년이 지나면 베풀어 주겠다. (너희는) 이 계획을 모르고 있겠지만 나 하나님이 선언한다". 정확하게 70년 지나서 이스라엘은 해방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드리려고 하는 이 70년 이야기는 산술적으로 70년 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는 대게 상징적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일주일 동안 창조역사를 하시고, 칠일 째 되는 날 쉬셨습니다. 그래서 그 날이 안식일입니다. 여기에 공하나 더하면 70, 그리고 또 700년이 되는데, 어느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기쁜 날이 된다. 누구에게나 마련해 주겠다. 안식일, 해방일, 행복한 날, 기쁜 날, 0을 더해서 70년이 지나면 해방을 주겠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믿었고, 주님의 날을 맞았습니다. 오늘 1부예배때 WCC 울라프(Rev. Dr. Olav) 총무님이 오셔서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서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만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WCC 기간 동안 한반도의 아픔, 평화, 정의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이 말씀 읽고 저 옆구리를 찌르면서 제가 감동받았다며, 인사말에서 이 땅에 70년이 지나면 통일과 평화가 올 것 같습니다. 그런 확신을 받았습니다. 왜 한국 땅에서는 살아 있는 말씀이 되지 않아야 됩니까? 이런 인사말이었읍니다. 제가 답할 시간이 없었지만 언제부터 70년인지 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해방부터 70년인지, 전쟁이 끝나고부터 70년일지, 언제부터 70년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하나님 생각 속에 70년이 되면 이 땅에 우리가 말하는 생명, 평화, 정의가 현실이 되어 입할 것이라고 믿고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믿음은 헛되지 않습니다. 이 믿음 속에는 반드시 우리가 믿음에 보답하는 우리의 순종과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의 목적이 인간에게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 없이 경험했고, 우리도 경험하고 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픈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아픈 가운데 치유 받는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인생의 목적입니다. 괴로우십니까? 그것이 역사의 현실이지만, 괴로움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괴로움에서 해방 받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개인적인 형편을 다 아십니다. 역사의 사정도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하나님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행복이 목적이지, 불행이 목적이 아니다. 아픔이 아니라 기쁨이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주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오늘 에베소서 말씀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려면 이렇게 사셔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허리띠 매시지요. 허리띠가 전체 역사의 허리띠라고 생각하면, 삶의 허리띠라고 생각하면 허리띠는 거짓이라 이름 하는 허리띠를 매면 괴롭습니다. 진실이라 이름 하는 허리띠를 매십시오. 오늘 돌아가셔서 에베소서 말씀을 하나씩, 하나씩 꼭 다시 읽어 보십시오. 허리띠 매고 사는데 벨트는 진리의 벨트를 매시면 하나님의 목적대로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슴막이는 사람의 감정과 감성입니다. 정의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걸어 다니시지요. 일하러 가시지요. 발에 무엇을 달고 다니시렵니까? 폭력을 달면 불행합니다. 평화의 복음을 발에 달고 다니십시오. 일상에서, 직장에서,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한 번 살아보십시다. 모든 인간은 방황하면 삽니다. 
 
저도 이번에 총회 중에 어느 날 아침 WCC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임을 당했습니다. WCC는 악마다. 박 목사 그곳을 빨리 떠나시오라고 소리치더군요. 저는 이게 마귀로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상황을 경험하면서 제가 느낌 것은 누구나 평화를 원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안 되겠구나 입니다. 그때 제일 중요한 것이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패, 믿음의 방패입니다. 불신의 방패는 모든 것이 불신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반대하신 분들은 저렇게 못 믿는구나. 못 믿으면 누구나 악마로 보이는 구나. 저는 솔직히 괴로웠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읍니다. 모든 사람이 믿음의 방패를 가지면 자기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텐데. 
 
우리는 이성을 가지고 삽니다. 생각하는 게 무엇입니까? 죽음을 생각하십니까? 불편한 것을 생각하십니까? 예수님, 사도바울의 증언입니다. 머리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머릿속에 생각하십시오. 그것을 에베소서는 구원의 투구라고 이름 했습니다. 어차피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도 할텐데 성령으로 공격하십시오. 감동을 시키십시오. 이러면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풍성히 받게 됩니다. 이렇게 무장하면 가능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이런 무장을 할 수 없으면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예수님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배우셨지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유대 사람들은 이 문구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 말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보복을 앙갚음 하되 받은 만큼만 하고 그 이상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눈은 눈으로, 눈 이상하면 안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실은 인간의 훌륭한 이성이 바탕이 된 해석일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유대 사람은 아마도 이랬을 것입니다. 오른뺨을 맞으면 어떻게 할까요? 똑같이 오른뺨을 때려라.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오른뺨을 부당하게 맞으면 왼뺨도 자발적으로 대어 주어라. 속옷을 달라고 강요당하면 겉옷까지도 자발적으로 주어라. 5리까지 가달라고 강요받으면 또 다른 5리는 사랑으로 자발적으로 가주어라.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 참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인간적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 오른뺨 맞으면 왼뺨 댈 수 없습니다. 적어도 오른뺨은 때려야 합니다. 억지로 당한 부당성에 대해서 그대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덧 붙여서 보복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선을 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선을 가지고 당한 아픔을, 부당함을 이겨라. 사랑으로 분노를 이겨라. 저는 이 말씀이 예수님에게는 좋은 말씀이긴 하나 참 어려운 말씀 같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려고 하셨나? 율법 가지고 안 된 것을 복음으로 하여라. 율법은 무엇이고, 복음은 무엇입니까? 율법은 눈에는 눈으로.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른뺨 맞으면 외편까지 돌려주어라. 이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복음이라고 이름 합니다. 복음이 생명을 살립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오른뺨 맞으면 외편을 때리고 싶은 게 인간이다. 하나님은 오른편 맞는 사람에게 왼편까지 되어서 사랑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주신다고요. 
 
사람으로는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오셔야 가능합니다. 오른뺨을 맞고 왼편을 다시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못합니다. 신앙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을 하나님이 대신해서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눈은 사람의 눈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눈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못하는 것을 더해서 가능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눈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사도바울 말씀이, 모든 말씀이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랍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믿으시지요? 어떻게 믿으십니까? 나 왼편 못되어 줍니다. 하나님이 대신 대어 주십시오라고.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신앙이란, 내가 할 수 있지만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완전하시다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성가대가 합창한 ‘십자가’를 통해서 경험합니다. 솔직히 자문과 질문입니다. 죽으려고 살지 않으시지요? 허나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할 도리가 없습니다. 십자가에 죽는 것은 사람의 운명이고, 타고난 우리의 운명이고, 숙명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른 뺨을 심하게 맞았습니다. 그 다음에 살아날 방도가 있습니까? 살아날 수 있습니까? 살아나는 건 인간의 능력은 아닙니다. 저는 왜 예수를 믿느냐 하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서 인간과 똑같이 이성과 감성, 모든 능력을 가지고 살되 하나님의 아들도 죽는다. 인간도 죽는다. 악이 승리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도 있다. 그런데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구약은 하나님의 목적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인생을 향한 목적은, 역사의 목적은 십자가 끝이 아니라 십자가 다음에 올 십자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능력이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만 알고 있는 진실입니다. 그 진실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을 뚫고 부활 생명을 일으켜서 새 생명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믿습니까? 받으십니까? 기쁘십니까? 그럼 믿으세요.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역사하십니다. 죽음의 한 가운데서, 재앙의 한 가운데서, 고통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부활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 말씀은 "나는 이렇게 하여 완전하다. 이 완전을 이 땅에서도 나와함께 이루자"고 하십니다. 그것이 신앙의 역사입니다. 이 역사는 하나님이 만드시는 역사입니다. 이 역사를 가리켜서 하나님은 나는 "사랑이니라. 사랑은 이긴다. 사랑은 살린다. 사랑은 축복의 세계를 만들어 준다"라고 설명하십니다. 사랑으로 승리합시다. 사랑으로 이깁시다. 십자가를 부활로 승화시킵시다. 이 신앙을 매일, 매일 우리의 삶으로 가지십시다. 사랑이 만든 세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우리의 세상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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