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
욥기 14:1-6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그 사는 날이 짦는데다가, 그 생애마저 괴로움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피었다가 곧 시드는 꽃과 같이, 그림자 같이, 사라져서 멈추어 서지를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미미한 것을 누여겨 살피시겠다는 겁니까? 더욱이 저와 같은 것을 심판대로 데리고 가셔서 심판하시겠다는 겁니까? 그 누가 불결한 것에서 정결한 것이 나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인생이 살아갈 날 수는 미리 정해져 있고 그 달 수도 주님께서는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를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눈을 돌리셔서 그가 숨을 좀 도리게 하시고 자기가 살 남을 시가능ㄹ 품꾼만큼이라도 한 번 마음껏 살게해 주십시오. 아멘
로마서 14:7-9
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멘.
누가복음서 17:20-24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인자의 날들 가운데서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할 때가 오겠으나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더러 말하기를 보아라, 저기에 게신다. 또는 보아라, 여기에 계신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따라 너서지도 말고 찾아다니지도 말아라 마치 번개가 하늘 이 끝에서 번쩍하여 하늘 저 끝까지 비치는 것처럼, 인자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아멘.
설교문
오늘은 조금 특별한 주일입니다. 우리는 자연현상에 따라서 사계절을 맛보며 살아갑니다. 이것으로 따지면 오늘은 가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주일부터는 겨울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이 인생의 가을이라고 생각하며, 인생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시기입니다. 또 다른 계절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신앙을 중심으로 계절을 다시 나눕니다. 오늘은 교회절기에 따르면 창조절 마지막 주일이며, 다음 주부터는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고, 축하하는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자연섭리의 계절을 보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새로운 생명이 움터나는 계절입니다. 교회계절은 조금 더 일찍 옵니다. 12월 첫째 주부터 대림절이 시작되어 아기예수의 탄생이 처음시작을 이루고 교회절기가 시작됩니다. 오늘은 예수님 탄생을 맞이하기 전 예수님이 전해주신 모든 일상을 정리하는 주일입니다. 교회절기에 보면 이제는 신앙의 입장에서 삶을 정리해 보자. 오늘이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삶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을 정리의 날로 정했습니다.
오늘 정리의 날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욥의 이야기입니다. 욥도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부자였고, 의롭고, 모범적인 시민의 한사람입니다. 욥기 1장에 보면 욥은 일곱 아들과 셋 딸, 십남매를 둔 유복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양이 7천 마리, 낙타가 3천 마리, 그 외에 동물들을 셀 수 없는 만큼 아주 부자입니다.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입니다. 그리고 흠이 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영육 간에 축복을 한 몸에 받은 사람, 이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장면입니다. 일곱 아들, 셋 딸이 모두 죽었습니다. 여기에 양, 낙타, 모든 동물을 잃었습니다. 자녀와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남은 것은 자신의 몸 하나입니다.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종합병원’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갑니다. 친구들이 찾아와 욥과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직접대면해서 담판을 짓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해주셔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는데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이 지긋지긋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한 순간만 떠나주시겠습니까? 정의롭다고 하는 하나님 앞에선 저 같이 불이한 사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사는 무력한 저는 한순간 살기도 어렵습니다. 왜 하나님은 저에게 머무십니까. 저를 떠나 주세요. 하나님이 떠나신 다음에 저 홀로 마음껏 내 생각대로 생각하고, 누리고, 먹고, 마시고 그렇게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를 떠나주세요.
제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목회하는 동안 병상방문을 자주합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분들, 또는 믿지 않았던 분들 믿음에 상관없이 삶의 마지막이 되면 병상에서 이런 호소를 합니다. 나는 살고 싶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없으니 하나님, (믿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분) 이 마지막 순간 부탁하오니 저를 살려주세요. 이런 이야기를 병상에서 기도할 때 많이 듣습니다. 표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구나 막론하고 마지막이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아니면 죽더라도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생명의 나라로 저 좀 데려가 주시지요. 저는 이런 호소를 많이 듣고, 병상에서 똑같이 그 분의 마음을 담아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면 제발 이분의 마지막 호소를 들어주시죠. 그런데 삶의 과정, 그 다음에 목표지점을 결정하는 것은 저도 아니고, 환자도 아니고, 오직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이 분의 희망과 절규를 담아서 하나님 뜻을 펼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문병하는 분 옆에 있는 사람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욥의 기도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 평상 저와 함께 살았으면 됐습니다. 이제는 저를 떠나십시오. 나 홀로 있고 싶습니다. 마지막 절규도 하나님의 귀하신 뜻을 모르척하는 절규였습니다. 그러나 욥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생명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욥을 살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살려주실 때 욥이 고백합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군요. 그런데 제가 잘 알지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오해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한 체 함부로 말을 했습니다. 주님, 제가 같이 살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주님을 귀로만 들었지. 눈으로 본 일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주님, 제 주장을 거두어 드리겠습니다. 제가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마지막 욥은 구원을 받고, 140년을 살았는데 이전보다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반전, 반전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대목은 저를 떠나주십시오. 내가 정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못살겠습니다. 나는 사랑이 필요 없는데, 사랑이신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없습니다. 제 멋대로 살게 해주세요. 여러분이라면 이 마지막 순간 무엇이라고 호소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 매일 저와 함께 사셔서 제가 꼼짝 못하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독립 좀 합시다. 나갑시다. 나를 떠나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싶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아니면 내가 몰랐습니다. 티끌이라도 붙잡고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으니 하나님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실 거면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상관없이 우리가 죽을 때도 우리와 함께 죽어주십니다. 우리 인간이 죄를 지고,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 하나님도 죽어가는 아들 예수 안에 계셨습니다. 우리의 죽음을 대신 끌어안으시고, 가슴에 묻었다가 죽음을 성령의 능력으로 토해 내시면서 나는 생명이 목적이다. 이 땅에 생명이 끝나도, 또 다른 하나님 나라의 생명은 내가 주인이다. 이 생명을 선물로 받아라, 살아라.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이 감격을 받은 사도바울은 로마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되었든지 간에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합니다. 사람은 혼자서 죽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살 때 같이 사는 것이지 혼자 사는 사람 없습니다. 죽을 때 혼자 죽는 것 같지만 누군가 앞에서, 누군가 힘의 의해서 죽습니다. 사도바울이 기도한 결과 이렇습니다. 누구와 사느냐 하면 결국 나는 나를 만드신 분과 함께 삽니다. 보이든, 보이지 않던 내가 죽을 때 외로워서 슬픔 속에 죽는 줄 알았더니 내가 죽을 때 하나님이 오셔서 내 죽음을 끌어안아 주시는 방식으로 죽음에도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아십니까? 아시면 하나님은 살 때나, 죽을 때나, 일어 날 때나, 잘 때나 어떤 순간이든지 항상 창조주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사실을 몰랐다고 이 사실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알았으면 고백하십시오. 알았다면 이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고, 내가 한 말을 믿는 사람은 나와함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주신 나라에 속하게 된다.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고백하고,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됩니다. 예수 믿는 목적은 그 분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잉태했고, 그 분을 믿으면 그 분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에 우리가 속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됩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나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살자.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가지신 분, 하나님 나라의 화신입니다. 예수 믿는 다는 말은 그 분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 하나입니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산다. 예수님을 믿어라. 하나님 나라를 믿어라. 하나님 나라를 가져라. 우리는 하나님 믿으면 됩니다. 예수는 내가 네 믿음을 믿을 수 있느냐? 내 믿음을 네가 믿을 수 있느냐? 홀로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구원 받는 게 아닙니다. 내가 네 믿음을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믿는 것은 주관적입니다. 나 홀로 믿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믿어 주시야 합니다. 사랑해서 가정을 이룹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것만을 가지고 가족이 됩니까? 상대방이 하는 말이 당신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요. 당신 사랑을 내가 사랑할 수 있나요? 당신의 사랑을 나도 사랑할 수 있으면 두 사람이 합쳐서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가 됩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희망한다고 하나님나라가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대의 희망을 나도 희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개인적으로 알아서 하는 일, 두 번째는 함께 하는 일이며 이것이 구원입니다. 어느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역사를 알고, 사람을 알고, 문화를 알기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터득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독일 서남지역에서 선교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이를 위해 언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쪽 지역 언어가 표준 독일어가 아니라 사투리였습니다. 표준 독일어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투리를 알 수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어차피 모르는 거 다 모른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단어를 알려주더군요. 이 지역 사람을 알려면 세 가지는 기억해라. 열심히 일해라. 열심히 모아서 저축해라. 그리고 좋은 집 짓고 살아라. 이 세 가지입니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집을 짓고 사는 것이 꿈입니다. 근검절약의 표본입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이런 설명을 해요. 이렇게 사는 것이 표본인데 경제적 해설은 이렇습니다. 열심히 모아서 집짓고 살면 좋은데 만약에 모으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남편이 생산된 상품이 팔리지 않잖아요. 그러면 상품이 팔리지 않아 남편이 실직됩니다. 그러니까 모으기만 하면 안 됩니다. 써야 합니다. 어디다 써야 하느냐? 우선 집짓는데 돈을 써야 합니다. 자기 집만 지으면 됩니까? 신앙으로 돌아갑니다. 자기 집만 짓는 게 아니라 돈을 모으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우리만 잘 살면 됩니까? 아니 다른 나라도 잘 살아야 합니다. 아시아도 돕고, 아프리카도 도와야 합니다. 이 돕는 것이 자선이고, 베품입니다. 근검절약의 목적은 자기 스스로가 잘 살기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절약합니다. 쓰기 위해서 절약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해 절약합니다. 남을 돕는 봉사가 신앙의 굉장한 자원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 믿음의 밭 속에 사랑의 뿌리가 알곡이 심어지면 희망의 나무를 만들어 냅니다. 온 세상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제가 그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면 나 홀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함께 믿고, 희망은 나 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자고 꿈꾸고. 사랑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 진실이 중요합니다. 믿으시는 여러분 예수님이 오늘 질문하십니다. 내가 그대의 믿음을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랑을 주고받은 여러분 나는 사랑합니다. 상대방의 말이 그대의 사랑을 나도 사랑할 수 있을까? 함께 고백하고, 나누는 기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예수님, 다 좋겠습니다. 그 나라가 어디에 있나요?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 있나요? 언제 오나요? 예수님 말씀이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라. 내일 온다, 모레 온다 하지마라.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다. 그리고 질문하는 네 속에 있다. 너와 함께 사는 공동체 안에 있다. 세상 안에 있고, 당신 속에 있다. 가장 깊은 곳에, 가장 넓은 곳에 있다. 이 나라를 깨닫고 알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 시민이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 나라는 오늘 여러분 가장 깊은 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모든 역사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경말씀을 읽으면 말씀 속에서 하나님나라가 움터납니다. 보입니다. 설명이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자기 모습도 알려주십니다. 그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신학자들이 성경 말씀에 쓰여진 자기 모습 이것을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그것만 하나님이 하시는지 아십니까. 제가 병상에서 누워서 고침 받을 때, 제가 사고를 받고서 하나님 저주하다가 하나님 만난 기쁨을 찬송할 때, 쓰여지지 않았지만 내가 경험하는 삶의 족족마다, 역사의 굽이굽이 마다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이 자기 모습을 나타내 주십니다. 사건 속에서 말씀 하시는 하나님, 그런 말씀을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일반이든, 특별이든 하나님은 본래부터 함께 계시고, 함께 사시고, 함께 죽으시고, 함께 부활하셔서 새 생명을 주십니다. 도피할 수가 없습니다. 도피할 수 없으면 같이 사시죠. 사랑으로 같이 사시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 오늘 로마서 말씀에 보면 우리는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삽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면 나하고 주님은 같이 사시니 주님을 위한단 말은 주님을 통하여 나를 위하여 산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고 신자가 된다는 말은 그냥 예수 믿고, 안 믿고 차이가 아닙니다. 나는 창조주와 함께 산다. 함께 이 세상을 산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요. 내 삶의 주인이요. 내 일상의 주인이요. 이렇게 살면 하나님이 이미 우리 안에 계시고, 하나님 나라가 우리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눈물로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아픔으로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웃음으로 이루어지고, 기쁨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믿음을 믿어 주시면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완성되지 않았지만,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시렵니까? 하나님을 다른 곳에서 찾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서 찾으세요. 하나님은 12월 25일 아기예수로 다시 태어나십니다. 이 사실을 아는 찬송작사가들은 찬송가에 곡과 음을 붙여서 우리에게 아름답게 고백하게 합니다. 설교를 마치면 이 찬송을 부르려고 합니다. 우리 갈릴리에서 행하시던 예수께서 수많은 사람들이 갈릴리에서 모이는데 그때 예수께서 오셔서 나는 하나님 나라다. 예수께서 손을 들어서 눈먼 소경을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것이 하나님나라다. 병 고침을 받는 사건을 보고 하나님 나라는 저렇게 이루어진다. 하나님 나라는 질병이 아니라 고침이다. 하늘 열림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우리에게 주신 눈길이 너무 사랑스럽고, 그 음성이 너무 훌륭해서 그 분이 우리에게 몫 박힌 손을 보여주시고,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하시는 말씀 너희 죄를 내가 다 사했다. 이제는 회개하고 용서 받은 의인으로 살아라. 저것이 천국이다. 죄를 사함 받고, 거듭나는 사건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께서 배를 타고 사람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거니는데 세계가 지진이 났습니다. 폭풍이 났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폭풍아 멈춰라. 그랬더니 폭풍이 멈췄습니다. 전쟁이 났다가 평화가 이루어 졌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로 그 속에서 나는 하나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마지막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여러분, 다 나에게 와서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그 짐을 대시 지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 세계에 나가서 전하시오. 하나님 나라를 보았다고, 하나님 나라가 여기에 왔다가 하나님 나라 가지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습니다. 지금 있습니다. 꽃 피어 납니다. 열매 맺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 나라에 동참하십시오. 방관자로 동참하지 마시고, 나라를 만드십시오. 나라를 마십시오. 나라를 먹으십시오. 그리고 이 나라에서 함께 사십시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지금 와 계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