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세계인의 영웅의 세상을 떠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5일(현지 시각) 95세로 타계했다. 만델라는 지난 6월 지병인 폐감염증이 재발해 입원했다가 9월에 퇴원한 뒤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진료를 받아왔다. 5일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남아공의 위대한 아들을 잃었다”며 만델라의 사망을 전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의 삶
자유를 위한 투쟁의 삶
▲1998년 세계교회협의회(WCC) 하라레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WCC |
한 세기에 가까웠던 만델라의 삶은 남아공의 역사였으며 자유를 위해 투쟁한 그의 업적은 오늘날 전 세계인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만델라는 1918년 이스턴케이프주 트란스케이 지역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남아공 주요 부족 중 하나인 코사족의 자치 지역으로, 만델라는 코사족의 한 갈래인 템부족의 추장 가문에서 태어났다. 만델라는 헤알트타운의 기독교계(감리교)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포트헤어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교 측의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는 학생회 투쟁을 이끌다가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제적당했다. 이후 남아공대학의 통신 교육으로 법학사 과정을 마친 뒤 25살이던 1943년 비트바테르스란트대 법학부에 입학했다.
본격적인 인종차별철폐운동에 뛰어든 것은 이듬해인 1944년. 네덜란드계 백인 목사인 다니엘 밀란이 이끄는 국민당이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노선을 주창하자,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해 청년동맹을 만든 것이다. 1948년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흑인 차별도 거세어져 갔다. 만델라는 1950년 아프리카민족회의 청년동맹 의장을 맡은 데 이어 1952년에는 흑인 최초로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해 인권운동을 해나갔다. 1955년에는 인종차별철폐운동의 이념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자유헌장’을 발표했다.
43살이던 1961년 만델라는 아프리카민족회의 산하에 군사조직 ‘민족의 창’을 만들어 초대사령관에 올랐다. 이 조직은 백인 민간인과 군사시설, 산업시설을 대상으로 게릴라 투쟁을 본격화했고, 이에 맞서 정부는 무력 대응에 나섰다. 이듬해 만델라는 거주지 이탈 및 파업 선동 혐의로 5년형을 선고 받고 체포돼 프리토리아 감옥에 갇힌다. 1964년에는 국가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28년간의 기나긴 옥중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만델라는 이때의 수감생활에 대해 “고독의 고요함을 통해 진실한 말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깨닫게 됐다”고 회고했다.
1990년, 국제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석방이 전격 단행됐다. 만델라는 극우 성향이면서도 개혁 노선을 내세운 프레데데리크 데클레르크 정권과 전격 합의에 나서면서 남아공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만델라는 “무장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더 이상 무장투쟁이 필요 없도록 흑백 간 정치협상을 갖자”고 제안했고, 정부 측에서 역시 제안을 받아들여 흑백 공존을 위한 회담이 시작됐다.
1994년, 흑인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자유 총선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승리하고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남아공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
세계 교회와도 연대, "인종철폐운동에 함께해 준 교회에 감사…"
세계 교회와도 연대, "인종철폐운동에 함께해 준 교회에 감사…"
넬슨 만델라는 인종차별철폐운동을 벌이면서 세계 교회와도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는 대통령 집권 시절인 1998년 아프리카 하라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 50주년 총회에 참석해 인종차별철폐운동에 함께해 준 세계 교회 지도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당시 그는 연설에서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있어서, WCC는 언제나 압제 받고 학대 받는 사람들의 대변인과 같았다. 한편으로 WCC는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한 비인간적인 시절에 나라를 지배하고 지역을 불안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그 이름만으로도 두려움을 줬다. WCC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당국은 분노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 민족은 WCC라는 이름을 기쁨으로 듣게 되었고, 그 이름은 우리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또 “30년 전 WCC는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프로그램(Programme to Combat Racism) 과 해방운동을 위한 펀드를 출범했고, 이러한 것들이 단지 멀리 있는 후원자들의 자선행위가 아니라 공동의 열망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며 동지애를 표했다.
"매우 선한 인물 한 명을 잃었다.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매우 선한 인물 한 명을 잃었다.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가 애도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 지도자들 역시 고인에 대한 존경과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5일 성명에서 “우리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용기 있으며 매우 선한 인물 한 명을 잃었다.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만델라라는 사표(師表)가 없었던 내 인생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내가 살아있는 한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만델라 전 대통령은 정의로운 거인이었고 우리에게 감화를 주는 소박한 사람이었다”며 “인류의 존엄과 평등, 자유를 위한 그의 투쟁은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만델라는 1994년 5월 남아공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직도 빈곤과 박탈, 성차별 등 여러 차별에 묶여 있는 우리 국민을 해방시킬 것임을 맹세한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 자유가 흘러 넘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