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평화의 왕으로 오신다

2013년 12월 22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성경본문
  
이사야서 52:7-10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의 소리를 들어 보아라. 그들이 소리를 높여서, 기뻐하며 외친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오시는 그 모습을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속량하셨다. 주님께서 모든 이방 나라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하신 능력을 드러내시니,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아멘. 
 
빌립보서 4:4-7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아멘. 
 
누가복음서 1:46-55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아멘. 
 
설교문
  
이제 3일만 있으면 예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태어납니다. 그 3일전인 오늘은 아기예수를 태어나게 한 마리아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하여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처음에 놀라서 잉태사실 자체를 아는것 초차 거부했습니다. 천사가 와서 마리아한테 부탁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텐데 그 아들 이름을 예수라 하라며 이름까지 지칭해줍니다.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제가 약혼은 했지만 아직 부부생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감히 하늘 아버지의 아들을 태아나게 한다는 것이 인간 상식적으로, 생물학적으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못한다고 거절합니다. 물론 사회적 이목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천사가 다시 말합니다. 나이가 많아서 임신이 불가능한 그대의 친척되는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임신하지 않았느냐? 임신이 불가능한 여성이지만 임신이 가능하게 되었지 않느냐. 마리아가 18살 밖에 되지 않고, 약혼한 사이밖에 아니지만 천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거부합니다. 우리가 보면 두 사람 곧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태어난 것이 우리의 상식을 넘어선 하나님의 일이고, 그래서 기적이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 가운데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상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 그런데 인간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할 수 있고,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일, 이 일이 마리아에게서 생겨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젊은 처녀가 아들을 잉태하여 낳았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신학적으로, 상식적으로 2천 년 동안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어떻게 태어낫던 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습니다.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도 믿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도 믿습니다.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부활생명을 주신 것도 믿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고 모든 신앙을 고백하는 오늘 우리는 이 예배의 자리에서 주안에서 찬양하며 기쁘게 살아갑니다. 다만, 이 분이 어떻게 태어나셨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을 많이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편에 서서 벌린 논란입니다. 마리아 편에 서서 벌린 논란입니다. 
 
그러면 이제 입장을 바꿔 볼까요? 동정녀 탄생이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것은 마리아의 뜻도 요셉의 뜻도 아닙니다.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마리아를 임신시켰고, 아기를 낳게 했고, 그 아이의 이름이 예수이고, 그 예수를 우리는 구세주로 믿습니다. 마리아 이야기는 내/우리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 당신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자기의 역사를 마리아를 통해서 쓰십니다. 마리아가 역사를 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쓰신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실 때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동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마리아 동의 없이 임신 시킴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죠. 하나님은 아무리 전능하셔도 사람을 물건취급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감동 감화시켜서 사람의 동의를 얻어내고, 동의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동역하십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같이 비천한 사람한테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다니요. 제가 거부할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저는 고백합니다. 저를 하나님아들의 어머니로 만들어 주옵소서"라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 됩니다. 성서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이야기이고, 하나님이 인간과 더불어 행하신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감동 받아서 고백을 했지만, 그 고백을 성령의 감동으로 거룩한 책으로 남겼지만, 그 고백의 원천은 하나님이 죄인과 더불어, 하나님이 의인과 더불어, 하나님이 노인과 더불어, 하나님이 어린 처녀와 더불어 자신의 역사를 함께 써간 이야기요, 그것이 바로 성서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미 예수 탄생 이야기는 오늘 마리아 찬가이야기에도 나오지만, 실은 그 이전 곧 마리아가 임신하기 500년 전에 이사야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같은 예언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 이라 할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이 처녀는 ‘알마’(alma)라고합니다. 결혼 정녕기가 된 젊은 여성입니다. 그것이 마리아 인줄은 몰랐지만 이제 마리아가 바로 그 당사자 처녀가 되어 아들을 낳습니다. 아기 이름도 사람이 지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지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이름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이죠. 하나님의 아들이지, 사람의 아들이 아닙니다. 출생부터 죽음을 지나 부활까지 일관된 생을 하나님이 알아서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삶이지 사람이 행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는 태어 날 때부터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현장까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사람, 그 사람이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기꺼이 임신해드리겠습니다. 낳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받치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마리아는 하나님 아들의 어머니입니다. 테오토코스(Theotokos), 곧 하나님의 어머니입니다. 
 
저는 이 마리아의 고백 속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마리아 이야기는 하나님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출발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이 끝맺음도 하십니다. 마리아의 동의를 전제로.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는데, 마리아는 그 은혜를 입었습니다. 은혜를 받아드리기로 했습니다. 은혜를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고 응대하는 말과 행위을 오늘 성경말씀에서는 "믿음"이라고 이름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사람은 믿음으로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은 은혜를 받는 그릇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은혜의 역사의 현장입니다. 역사 현장 속에 하나님이 오시면 그 역사는 하나님 역사로 변합니다. 믿음은 역사요, 믿음은 사람이요, 믿음은 결단이요. 믿음은 행위요. 믿음은 윤리요. 믿음은 모든 것입니다. 그 믿음 속에서 하나님은 은혜라는 이름으로 역사하고 감동 감화시켜서 우리에게까지 옵니다. 
 
누가복음서 1:46-55에 있는 이 "마리아 찬가"(Magnificat)는 성경에 있는 모든 내용 중에서 가장 많이 애송되고, 연구된 본문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마리아 찬가를 보면서 뜻을 새기고, 신학도 이야기하고, 윤리도 이야기 합니다. 이 본문 속에 하나님의 진수가 담겨 있다고 해서, 찬가의 내용을 외우고, 논문을 씁니다. 마리아의 찬가 전에 나오는 엘리사벳의 고백을 통해서 사가랴 라는 남편의 이름으로 창양을 했습니다만 세례요한이 태어난 기쁨을 노래한 노래입니다. 누가복음서 1장 68절에서 79절까지 나오는 이 찬가는 마리아 찬가 전에 세례요한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부른 노래입니다. 축복의 노래, "베네딕투스"(Benedictus)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마리아 찬가의 내용을 이미 6개월 전에 태어난 세례요한의 아버지가 이렇게 규정을 했습니다. "태어나실 예수는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쳐주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동해 주실 분이십니다"라고. 엘리사벳의 예언 속에 보면 마리아를 통해서 날 아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평화를 만들어 줄 사람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태어나십니다. 평화의 왕은 누구이고, 평화는 무엇입니까? 이 엘리사벳의 예언은 이에 대해서 마리아 찬가라는 형식속에 담긴 내용을 통털어 미리 이렇게 표현합니다. 마리아 찬가 내용은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그 분의 역사, 생각, 행위를 적은 것입니다라고. 평화의 왕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답은 마리아 찬가에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 내용입니다. 그 분이 오시면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셔서 모든 백성에게 골고루 차별 없이 하나님의 평화 복음을 전해주십니다. 직장, 인종. 지연, 학연 모든 인간이 만든 차이를 뛰어 넘어서 동등하게 하나님의 축복의 복음을 전해주시는 것이 평화의 길입니다. 평화란 차별 없는 동등한 세상을 의미합니다. 차별 없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람들의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 평화의 복음을 하나님의 아들이 전해 주실 것 입니다. 평등, 그 평등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평등이고, 이 평등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분이 오시면, 가난한 자, 배부른 자, 모두가 차이를 극복하고, 부한 자는 빈손으로, 가난한자는 배부름으로, 하나님은 모든 백성에게 서로 의지해 가면서 똑같이 살라고, 똑같이 일용할 양식을 먹고 살라고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십니다. 모든 백성은 평등하기에, 함께 일용할 양식을 나누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행복하고, 함께 나누며 살 수 있는 것, 그것을 평화라고 이름 합니다. 
 
두번째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오셔서 아들을 통해서 교만한 자는 흩으시고, 제왕들은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비천한 자는 높이십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지만 동시에 억누르시지 핞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자유를 누리는 인간입니다. 평화가 무엇입니까? 마리아의 대답입니다. 평화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의 삶입니다라고. 자유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마리아 찬가에서 하는 말입니다. 평화는 무엇입니까? 평화란 만백성이 형제자매가 되어 함께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 형제애, 우애, 평등입니다. 
 
평화는 또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이 함께 먹고 마시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쁜 축복의 예배를 드릴 수 있고 또 가난한자, 부한 자가 함께 누리는 축복, 공의로운 평등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마리아 찬가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연구한 끝에 서양 역사에 있어서 소위 새로운 민주주의 근간이 수립되었다고 선포한 혁명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1789)입니다. 이 혁명의 기본가치관 중에, 혁명이 내세운 자유, 평등. 형제애 세 가지 대목이 있었지요! 이 세 가지가 마리아 찬가에 나오는 평화 이야기의 내용과 같습니다. 마리아 찬가는 모든 시대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지만 특별히 서구사회가 민주화 되면서 내세웠던 세 가지 큰 기둥이 마리아 찬가 속에 깊이 담겨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마리아 찬가 속에서 울려나왔고들 평가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분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분석에 동의합니다만 그 세 가지 말고, 마리아 찬가는 기둥 두 개를 더 담고 있습니다. 평등이 좋고, 정의가 좋고, 형제끼리 사랑하고 자매가 되어 사랑하고, 이 세가지 모두가 다 좋지만, 이 모든 것을 주시는 평화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그 "평화의 주인은 하나님" 이시라는 점입니다. 마리아가 그렇게 믿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셔서 저를/우리를 통해서 평화의 왕을 낳게 하시고, 그래서 이 평화는 세상이 말하는 평화가 아니라 "인간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늘의 평화"가 되어서 온 백성에게 복음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평화의 복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기 스스로의 평화를 말해서는 안 됩니다. 평화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새롭게 담아야 합니다. 또 하나가 있읍니다. 오늘 찬가의 성경본문 말씀에는 기록이 안 되어 있지만 요한 일서가 보충하는 이야기입니다. 평화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누군지 아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그분은 곧 평화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요, 그 분은 정의를 주시고, 자유를 주시고, 평등을 주시는데, 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16)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이 아닌 평화는, 사랑이 아닌 정의는, 사랑이 아닌 평등은 가짜입니다. 어떤 사랑이냐면 온 인류를 위해서 스스로 몸을 던질 줄 아는 사랑, 헌신적인 사랑, 그리고 죄인을 용서하는 사랑, 그러나 종국에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시는, 부활시켜서 생명을 창조하는,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주시는 그런 사랑입니다. 이 사랑 안에서 정의도, 자유도, 평등도, 우애도 효력이 있습니다. 오늘 마리아가 오시면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참 안타깝지요. 서로 싸우고, 죽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기반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주인으로 회복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만드는 평화를 이 땅에 심어야 합니다. 이 사랑이 만든 평화가 깃들 곳은 세계의 정치, 역사, 군사, 역사 영역 뿐만이 아닙니다. 항상 한사람 한사람의 삶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한 번 그 역사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시고, 또 평화의 왕으로 오신 하나님은 이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평화를 만드시는데, 그렇다면 누구와 평화를 만들어 가십니까? 
 
제가 신문을 읽고 광고문안 하나를 봤는데 저를 감동시킨 말이 있었습니다. 영화제목입니다. <해를 품은 달>, 본래 햇살에서 빛이 나와 달이 이 빛을 반사하지요. 해가 달을 달을 품는다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제가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달이 어떻게 해를 품나? 달빛은 햇빛에 반사된 빛만 담습니다. 빛을 발하는 건 태양 뿐입니다. 그런데 달이 해를 품다니! 옳다! 사람이 하나님 가질 수 있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죠. 인간이 하나님을 품다. 이 땅이 하늘을 품다.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 나라 역사를 품고 산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들 가운데 있고,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었고, 신의 역사를, 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품고 산다고 할수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늘의 평화를 품고 삽니다. 하나님을 품고 살면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 말은 바로 여러분이 생명이 있는 동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늘을 품고 사시라고요. 우리는 하늘을 품고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품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야 이 땅에 평화가 있습니다. 죽은 다음에는 사람이 죽으면 다시 하늘이 땅을 품습니다. 하나님이 산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을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자신의 살아있는 가슴에 품습니다. 우리 생명이 끝나면 하나님이 품고,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하나님을 품고, 그래서 서로 서로 품고 이 땅과 저 하늘을 함께 품고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기도했죠. 전능하신 하나님, 온 세대가 끝날 때까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제가 아기 이름속에 잉태하겠습니다라고요. 이 땅은 하나님이 품으신 땅, 하나님은 우리가 품고 사는 우리의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품으실 때 그 하나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광경을 "영광의 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먼저가신 우리의 선배들은 영광의 나라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우리들은 하늘을 품고 살고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 속에 계시고, 그래서 우리가 품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평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품겨지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고, 하나님이 우리한테 품어져서 이 땅에 역사하는 것을 이 땅의 평화라고 합니다. 평화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두분은 같은 분입니다. 평화와 영광을 연결하는 것이 사랑이고, 하나님이 그 사랑으로 이 땅에 역사하십니다. 누가 이 일을 증언할 수 있을까요? 
 
우리 신앙인들이 살아가면서 경험합니다. 그대로 고백합니다. 양극화의 격차도 심하고 평등이 없으며, 평화가 아니라 전쟁위기와 갈등이 많습니다. 한 나라의 부를 만드는 일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있는데, `장인`(Meister)이 많으면 그 나라가 부유하다고 그렇습니다. 요즘에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s)곧,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중소기업이 많은 부흥한 나라로 흔히 독일을 말합니다. 이와 관련해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s)>을 쓴 독일인 저자인 헤르만 지몬을 소개한 신문기사를 인용합니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세계에서 1등가는 중소기업이 천개 이상이 있는데, 이 기업을 만든 사람들을 마이스터(Meister)라고 합니다. 독일의 대학교육은 무료공짜입니다. 무상으로 대학교육까지 받습니다. 박사학위 공부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규 대학교육 말고 또 다른 실무 전문교육과정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연마하여 기술자가 되는 교육, 이 교육을 마이스터 교육이라고 하는데, 마이스터를 기르는 전문 실업교육이지요. 일 년에 일인당 25,000유로의 학비를 내야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3,600백만 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자가 되기 위해서 이 직업학교/직업대학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실무경험을 쌓고난 그 다음부터 시험에 합격하면 공인 기술자, 곧 장인이 됩니다. 물론 이 마이스터는 기업이나 공장에서 뿐만 아니라 각종 예술, 각종 학문, 실샐활의 여러 점문 분야에도 해당합니다. 마이스터가 되기위해 비싸고 힘든 공부를 했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일류가 되는 작은 기업들을 만듭니다. 스스로 독창적인 연구와 실용적인 행복한 삶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영위해 갑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마이스터가 얼마나 많을가? 우리 젊은이들은 거의 전부 전문성 없는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그냥 인문,사회, 자연과학의 대학교육에 입학합니다. 고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합니다. 대개는 마이스터는 꿈도 못꾸고 말이죠. 소위 일반적인 고등교육은 받지만, 실제 작은 구석구석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약합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리아를 통해서. 너는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 작지만 거인이다. 작은 거인, 작은 거장,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아들로 태어나는 곳은 값비싼 호텔방이 아닙니다. 말구유에서야 겨우 가능했읍니다. 산모가 아주 훌륭한 귀부인 출신일 필요가 없습니다. 마리아의 고백처럼 비천한 여성한테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 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누구나 마리아로 택함을 받을 수 있읍니다. 결단만 하면 됩니다. 하늘을 품겠다고, 하나님을 품겠다고 결단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을 주면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들어옵니다. 사람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태어날 곳을 가리지 않습니다. 위에서 아래까지 어느 곳이나 가능합니다. 학벌도 가리지 않습니다. 신분도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누구를 통해서든지 하나님 나라 역사를 반드시 이루어 냅니다. 하나님의 평화를 위하여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지 않습니까. 이 희망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힘들게들 살아가는 아프리카에도, 남미에도, 아시아에도, 우리 북녁 땅에도, 세상 어느 곳에나 누구에게든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에게 누구든지 믿음만 드리면, 그 믿음 속에 엄청난 하늘의 은혜의 역사를 오늘도 이루어 가십니다. 어느 전공이든 상관없습니다. 어느 종류의 일이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사람의 확고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믿음의 진정한 그릇을 원하십니다. 믿음을 주는 사람의 외형적 그릇 크기는 상관치 않습니다. 큰 은혜가 작아도 진정한 믿음의 그릇에 기득 담깁니다. 하나님 나라의 마이스터가 되십시오. 하나님이 준비하십니다. 오늘 태어나게 하십니다. 하다가 다 못하면 하나님이 품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마이스터 역할을 계속해주십니다. 살던지, 죽던지 개의치 마시고 기도하고 서원하십시요. 하나님, 우리를 마이스터로 써 주십시오, 이렇게 믿고 기도하며 실천하며 사십시다. 그러면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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