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주님이 다스리신다

2013년 12월 29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성경본문
  
이사야서 49:13-19 
하늘아, 기뻐하여라! 땅아, 즐거워하여라! 산들아, 노랫소리를 높여라.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또한 고난을 받은 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런데 시온이 말하기를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는구나.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보아라, 예루살렘아,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을 늘 지켜 보고 있다. 너를 건축할 사람들이 곧 올 것이니, 너를 파괴하는 사람과 황폐하게 하는 사람이 너를 곧 떠날 것이다.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네 백성이 모두 모여 너에게로 온다. 나 주가 내 삶을 걸고 맹세한다. 신부가 패물을 몸에 치장하고 자랑하듯, 너는 네 백성을 자랑할 것이다. 내가 네 땅을 쳤고, 황폐하게 하였고, 파괴하였지만, 이제는 백성이 너무 많아서 네 땅이 비좁다. 너를 삼키던 자들은 너에게서 멀리 떠날 것이다.아멘. 
 
요한1서 4:1-6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세상에 벌써 와 있습니다. 자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며, 여러분은 그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한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알아봅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2:13-18 
박사들이 돌아간 뒤에, 주님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해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요셉이 일어나서, 밤 사이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말씀하신 바,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 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슬피 우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아멘. 
 
설교문  
 
오늘, 달력으로 보면 2013년도 며칠 안 남았습니다. 한해가 다 갔고요. 주일로 보면 오늘이 2013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어떤 분은 컵에 담겨 있는 물을 마시고 남은 잔을 보면서 물이 조금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컵에 있는 물을 다 마신 줄 알았는데 이 만큼이나 남았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마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이나 판단이 다를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가 천년같이, 또 어떤이에게는 천년이 하루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지난 한해는 너무 빨리 지나가셨나요, 아니면 지긋지긋한 한해셨나요? 똑같은 현실을 놓고서도 사람마다 보는 견해가 다릅니다. 우리는 오늘 한 번 평가해 보고자 합니다. 어떤 기도를 하시렵니까. "하나님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니면 "아직도 겨우 여기까지 뿐입니까?" 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깁니다. 
 
다만 오늘 성탄맞이 이후의 첫째주일에 상고할 것이 있읍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성탄을 대하는 세 분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들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목자들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모두 자고 있었지만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만은 잠에서 깨어 예수님이 오신 것을 찬양했던 천사들의 찬양을 듣고 감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 시대상으로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상황에 있는 계층에 속해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존경 받지 못하면서 아주 힘든 일상 속에 살고있는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변두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목자였습니다. 목자들은 예수님이 오신 것을 너무나 환영했고, 기뻐했습니다. 목자들에게는 성탄이 희망과 기회였습니다. 
 
또 한 분류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동방에서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베들레헴을 향해 찾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부분이라 제가 상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몇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팩트가 있습니다. 저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 있게 과학적으로 말하지는 못하지만 읽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립니다. 예수님 당시의 별들 중에 하늘에서 제일 높은 별, 즉 하늘을 지배하는 별이 있었는데 주피터(Jupiter)라는 이름의 별입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제우스(Zeus)의 로마식 이름이기도합니다. 이 목성이 빛을 발합니다. 그 다음은 영어의 토요일인 Saturday의 어원인 새턴(Saturn)이라는 별, 즉 토성입니다. 이 두별이 만나는 사례가 있었답니다. 기원전인 BC 854년에 두 별이 만났고, 이후 800년이 지나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던 해에 두 별이 만났는데 그 지점이 베들레헴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제가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고고학자들이 천문학적 발굴에 근거하여 말한 이야기입니다. 유프라테스 강가에 살던 동방박사들이 그 서로 만난 별들을 보고 베들레헴으로 찾아왔던 기록이 파피루스 종이에 써놓은채로의 천문학적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1905/1952). 이 기록에 의하면 이 두 별이 이 해에 세 번 만났는데, 그 날이 5월 29일, 10월 1일, 그리고 12월 5일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별들이 처음으로 만났던 날인 5월 29일에 너무 감격했고, 별이 비추는 쪽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일어 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세 사람은 낙타를 타고 매일 같이 별의 움직임을 따라갑니다. 이 현상이 10월 1일에도 나타났고, 세 번째로 12월 5일에도 베들레헴 위에 고정하며 나타났는데, 그 때 그곳에서 예수님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천문학적으로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을 읽어 봤습니다. 12월 5일이 바로 성탄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 예수님이 나셨고, 동방박사 세 사람은 말구유에 찾아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선물을 드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 중에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B. C 7년 12월 5일 현지 시간으로 16시 38분에 별이 베들레헴에 멈추어 섯다는 기록입니다. 저로서는 이 시간이 천문학적으로 정확히 맞는지는 증명해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던 천문학자 세 사람,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 사람들인 과학자들이 하늘의 별들의 움직임을 보고, 구원의 희망의 원조를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몰랐지만 이 세 사람은 세계변화의 물결이 시작 된 곳을 찾아왔습니다.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분들은 와서 경배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동방박사들은 예수 탄생을 경배하러 오기 전에 먼져 헤롯왕을 만났습니다. 헤롯왕은 자기도 경배 할테니 그 왕을 찾으면 자기에게 돌아와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그의 말을 신뢰 할 수 없어 헤롯왕을 만나지 않고 다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배울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 세상의 징조가 나다났는데, 먼 곳에 있는 이방 사람들이 별의 움직임을 보고, 하나님이 오시는 징조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구원이 임할 때. 믿는 자들만 하나님 오심의 징조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상상도 못하는 먼 곳에서도 별의 움직임 하나로 예수의 탄생을 알고 찾아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2천 년 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신앙의 내부에 있는 사람이 아닌 외부에 있는 사람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모르는 믿지않는 사람들 까지도 기다리시면서 그들가운데 역사하셔서 종국에는 온 우주를 구원하고, 우리 하나님은 온 백성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만드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그 분을 주님으로 믿습니다. 마지막 구원의 때만이 아니라, 아기 예수로 처음 오실 때도 하늘의 징조는 그랬습니다. 믿는 우리들은 너무 교만하지 마십시오. 우리만 하나님께러 부터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었기에 먼저 받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온 백성이 구원을 받게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고 부여받은 대로 열심히 일하고, 구원받고, 선교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오실 때도 그랬습니다. 
 
또 한 분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왕입니다. 똑같은 나라에서 살지만, 목자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비참하게 살았죠. 다만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희망의 불로, 희망의 태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회개하고 주님의 사도가 됩니다. 그러나 그 사회에서 가장 높았던 사람, 가장 힘이 있었던 사람, 가장 부자였던 사람인 헤롯왕은 다른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까 자기 권력 유지가 힘들 것 같아서 이 새로운 왕, 아기 왕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에게 자초지종을 알려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간파한 동방박사들은 왕을 만나지 않고 피해 돌아갔습니다. 이 헤롯왕은 예수가 태어날 때 이미 31년 동안 왕좌의 있었던 사람입니다. 천사가 와서 예수의 아버지 요셉에게 말합니다. 헤롯이 흉계를 꾸미고 있으니 오늘 밤 피신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피신하고 2년 만에 돌아옵니다. 그 때는 이미 헤롯왕이 33년 통치를 마감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헤롯에 대한 기록을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당시 역사가들 기록을 보면 그는 포악한 왕, 착취의 대명사,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노와 진노의 대상이었던 왕이었습니다. 이 왕이 죽고 나서 얼마나 민심이 흉흉했던지 이스라엘을 식민 지배했던 로마가 헤롯의 죽음을 계기로 이스라엘 왕정을 강압적으로 폐기했습니다. 우리가 조선조 일제한테 고종이 폐위 당한 것과 같습니다. 왕정을 폐기하고 나머지 네 아들에게 살림살이를 맡겼으나 진짜 통치권은 로마황제가 파송한 총독이 전권을 행사했습니다. 우리 성경에 보면 총독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요. 헤롯왕이 죽고 직접 통치권을 행사할 때 파송한 총독입니다. 예수께서 2살이 되었을 때부터 로마총독이 실세로 활동합니다. 이 헤롯왕은 얼마나 험악한 사람이었던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2살배기 아래인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반항하는 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죽였다고 합니니다. 죽는 소리가 너무 세상을 진동하여 오늘 성경말씀에 500년 전 동방박사가 속했던 바벨론 왕국이 이스라엘을 식민지화 하고, 반항하는 모든 사람들이 살육당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 살육이 자행되던 곳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모든 가족들과 친척들이 하늘에 솟구치는 슬픈 울음으로 소리쳤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 기록이 예레미야서의 기록인데 오늘 마태복음서 본문에 인용되어 나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슬퍼 우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우는데 자식이 너무 비참하게 죽었음으로써 아예 사람들의 위로도 받지 않았다"고. 
 
똑같은 장면이 헤롯치하시절 베들레헴에서 일어납니다. 몇 명이 죽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냐하면 나중에 역사학자들이 기록한 것을 요즘 언어로 바꿔 말하면 헤롯이 죽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 모습이 과거판 홀로코스트 갔다고 이야기 합니다. 유대인 600백만 명을 죽여야만 홀로코스트라 이름하는것이 아니고요, 두살이하 아이들을 다 죽임으로 자라나는 후속 세대를 단절시키고 다 죽이면 그게 바로 홀로코스트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 수가 중요한 게 아니겠지요. 유대 땅 베들레헴이 앞으로 역사를 계승할 수 가 없습니다. 하늘의 역사도 끊어집니다. 민족의 역사도 끊어집니다. 모든 것을, 모든 역사의 맥을 끊는 것이 홀로코스트입니다. 이후 헤롯왕이 죽었을 때의 장면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흉악했는지 모르지만 죽을 때 하늘의 형벌을 받은 헤롯의 두 발이 갈기갈기 찢겨졌고 하체는 너무 썩고 문드러져서 벌레가 들 끌었답니다. 아무도 시체 앞에 가려고 하지 않았답니다. 헤롯의 죽음 앞에서 오히려 사람들은 쾌재를 무르며 춤추고 즐거워했답니다. 
 
헤롯이후 부터 팔레스틴은 로마 식민지배하에서 스스로의 왕정이 없어지고, 로마의 총독제 통치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유대백성은 고난 속에서 살아야 했고, 성전에서 예배 보는 것으로만, 종교공동체로 사는 방식으로 자족해야 했습니다. 사회적 정치적 활동 등 다른 영역에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아기 예수는 그런 상황에서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헤롯에게는 예수의 태어남이 절망의 시작입니다. 분노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전혀 모르고, 하나님을 몰랐던 동방에 있는 점성가들, 천문학자들에게는 예수가 새로운 희망입니다. 이들은 신학을 알지 못합니다. 구약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태어나심은 이 사람들에게 희망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동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왔던지 간에 하늘의 희망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벨론에 살던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여러분 잘 평가해 보십시오.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식민지배국이었읍니다. 이스라엘을 발로 짓밟았던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최고 과학자이며,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그 나라의 고위 관리이던 동방박사 세 사람이 하늘의 명령을 받고, 자기들이 눌러서 짓밟았던 나라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 또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종주국의 최고 권위자들이 작은 나라 가장 낮은 곳에 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일본에서 요즘 신사 참배로 침략적 역사관 고수로 난리인데요. 예컨데 오늘 서울 변두리 어느 누추한 시골의 외양간에 세상을 구원할 평화의 구주가 나셨다고 일본의 점성학자들이 와서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동방의 박사들은 별들을 통해서 무슨 감동을 받았던지 간에, 그 감동을 안고 말구유에 와서 아기에게 경배를 합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기예수가 태어 나셨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성경말씀 입니다. 헤롯처럼 예수가 오시면 불편합니까? 성탄절이 기쁜 찬양의 날입니까? 아니면 우리는 마음이 왠지 불편합니까? 아니면 예수를 전혀 모르지만, 하늘의 움직임 하나만 가지고도 희망이 보인다고 함께 찬양을 부를 수 있습니까? 아니면 험난한 세상에서, 좌절 속에서 허덕이면서 세상은 꿈이 없다고,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한탄하면서 하늘만 쳐다보고 밤을 새는 목자들처럼 갑작스런 하늘의 강림을 맞아들이고, 하늘 찬송을 들을 수 있고,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아멘 할 수 있고, 그래서 나는 희망을 찾았다고, 희망을 보았다고, 그렇게 경탄해하면서, 성탄을 맞을 우리들입니까? 성탄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날입니다. 
 
미안하지만 헤롯 왕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 불편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태어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분이 고마우신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와서 사랑의 둥지를 튼다면 분노하실 겁니까? 싫다고 배척 하시렵니까? 기뻐 받아 드리시렵니까? 그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나날들을 돌아보면서, "여기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면서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내일의 희망이 열릴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쉬지 않고 자기가 만드신 모든 사람과 사람이 사는 모든 곳을, 신분도 가리지 않고, 위아래도 가리지 않고, 말구유까지 가셔서 기어코 태어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태어나셔서 하늘이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하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믿고 따른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지 마시고, 하늘 눈으로 보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태어나십니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면 어떻게 인간의 몸을 입은 아기 예수를 맞이할 수 있습니까! 그 아기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십니다. 저주스런 삶 속에 오시고, 분노 속에 오시고, 간난 고초 속에 오시고, 절망 속에 오셔서, 새로운 하늘의 역사를 우리와 함께 만들어 가시려고 오늘 잉태하십니다. 잉태하실 때 그 분을 받아 드리시겠으면, 속히 "아멘"으로 받으시고, 필요 없으시면 거부하십시오. 성탄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것이지만, 감사함으로 스스로를 열고 받는 자에게 성탄이지. 받지 않는 자들에게는 성탄이 아닙니다. 
 
요한일서에 주신 말씀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한번 육을 입고 오신 분이 두 번 육을 못 입으니까, 지금은 영으로 우리에게 오신답니다. 하나님이 영의 힘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런데 분별하셔야 합니다. 영은 잡된 영도 있고, 순순한 영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가 하면, 악마의 영이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 있고, 미혹의 영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에 이단, 사탄과 관련 된 이야기가 많지요. 누가 이단 인지 아십니까. 누가 사탄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한테 오셨다. 그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받는 사람이고,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미혹의 영을 지닌 사람입니다. 요즘 사탄이라는 말 속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어느 특정의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셨다고 헛된 말하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확고히 믿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온 아기 예수 이외의 다른 구세주는 없습니다. 어느 사람도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을 뿐, 어느 특정 인간이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가 구세주라고 하는 사람은 사탄의 영의 사람입니다. 
 
또 요한일서 본문의 말씀 속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 속에 오셨음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이, 사람의 역사가, 사람의 행위 하나 하나가 바로 하늘 뜻을 담은 역사고,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무엇 하러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십니까. 하늘 뜻을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이 함께 협력해서 이 땅에서 이루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 속에 하늘 뜻이 임하십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바뀌어 져야 합니다. 하늘이 세상에 잉태했으니까, 하나님이 인간에 잉태하셨으니까. 그 사실을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우리 인간세상과 함께 하십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고, 신앙하는 우리보고 크리스쳔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안 믿으면 우리와 저는 그분 예수님과 상관이 없겠지요. 주님이 이 땅을 다스리시고,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주님이 이 세상의 주님이 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우리 가족은, 우리 자신은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늘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이 땅은 저주 받은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로 바뀌어야 할 동산입니다. 그래서 성탄이 시작됩니다. 성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믿으시나요? 성탄이 고맙습니까? 성탄에 행복하십니까? 성탄이 여러분의 꿈입니까? 행복입니까? 그러시면 감사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주여 오늘 우리안에 성탄 하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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