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
이사야서 60:1-5
예루살렘아,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구원의 빛이 너에게 비치었으며,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처럼 너의 위에 떠올랐다. 어둠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민족들을 덮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너의 위에는 주님께서 아침 해처럼 떠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너의 위에 나타날 것이다. 이방 나라들이 너의 빛을 보고 찾아오고, 뭇 왕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보고, 너에게로 올 것이다.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너에게로 오고 있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으로부터 오며,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서 올 것이다. 그 때에 이것을 보는 너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흥분한 너의 가슴은 설레고, 기쁨에 벅찬 가슴은 터질 듯 할 것이다. 풍부한 재물이 뱃길로 너에게로 오며, 이방 나라의 재산이 너에게로 들어올 것이다. 아멘.
골로새서 1:24-27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파하게 하시려고 내게 맡기신 사명을 따라,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 비밀은 영원 전부터 모든 세대에게 감추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성도들에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 가운데 나타난 이 비밀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성도들에게 알리려고 하셨습니다.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요,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2:1-12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가운데서 아주 작지가 않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 그 때에 헤롯은 그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캐어묻고,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를 샅샅이 찾아보시오.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떠났다. 그런데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해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 그 위에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서,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리고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 아멘.
설교문
우리는 오늘 성탄절 둘째주일로 지킵니다. 이것은 달력으로 보면 맞지 않지만,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탄생, 즉 신앙의 역사로 보면 성탄은 항상 가능합니다. 다음 주에는 성탄절이 지나고 주현절이 시작됩니다.
오늘 성경본문인 마태복음, 이사야서, 그리고 골로새서를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 중에 하나는 동방박사를 베들레헴으로 인도한 하늘에서 비친 밝은 별, 광채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광채가 비치는 장소, 베들레헴입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빛을 따라 아주 멀리서 베들레헴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멀리 이동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만 동방박사들이 살던 곳이 지금에 이라크쪽의 유프라테스 강변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낙타를 타고 이동했을 것을 가정하면 수개월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동해 오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이 옵니다. 베들레헴의 주인공인 예수의 엄마 마리아와 아빠 요셉이 낙타를 타고 옵니다. 출발지는 나사렛입니다. 이스라엘은 남쪽 유다, 가운데 사마리아, 그 위에 갈릴리가 있습니다. 이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 동네에서 약혼한 두 사람이 지금 베들레헴을 향해 오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마태복음에는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이동하면서 예루살렘을 들려서 헤롯왕을 알현하고 함께 대화를 나눈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오랫동안 기다린 왕이 오늘 예루살렘 근방에 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별이 지시한 바를 따라서 왔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왕 앞에서 새로운 왕이 나신다고 합니다. 헤롯왕은 이 말을 듣고 자기의 종주국으로 생각했던 바벨론의 최첨단 점성가들이 별의 지시를 따라 왕을 경배하러 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능청맞게 나도 경배하고 싶다. 그러니 왕을 경배하고 나에게도 자초지종을 알려다라고합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헤롯을 만나지 않고 그냥 자기나라로 돌아갑니다.
동방박사들의 면면을 살피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고학 기록에 나와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은 카스파르(Caspar)로 돈을 만지는 사람을 의미하며, 페르시아 사람입니다. 그 다음은 멜키오르(Melchior)로 빛의 왕을 의미하며, 히브리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발타사르(Balthasar)로 왕을 보호하는 사람의 뜻으로 그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새로운 지역인 아카디아입니다. 이렇게 동방박사 세 사람은 페르시아 사람, 히브리 사람, 그리고 아카디아 사람으로 다국적입니다. 다국적으로 구성된 점성가 대표들은 별을 통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베들레헴에 어느 한 왕이 태어난 다는 것을 알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을 보면 누군가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빛을 비출 텐데 그 빛을 따라가면 한 사람이 태어나는데 그 태어나는 사람을 경배하기 위해 온 세계에서 사람이 찾아와 무릎 꿇고 경배 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원근각처에 흩어져 있던 여러분의 자녀들이 아기들을 안고 고향땅으로 찾아 올 것이다. 이방인도 올 것이다. 온 세계가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올 것이다. 이 예언이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대표해서 동방박사 세 사람이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올 때 동방박사 세 사람은 황금, 유향, 그리고 몰약을 가지고 옵니다. 이렇게 이 분들은 별빛을 따라 왔습니다. 별빛이 비쳤던 곳, 그곳은 베들레헴이며, 시간은 밤입니다. 어두웠던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것을 기념하여 밝은 빛이 하늘에서 비쳤습니다.
또 한 분이 말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서로 약혼한 사이로 나사렛 동네에서 낙타를 타고, 지금 베들레헴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거리는 150km쯤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150km는 빙빙 돌아서 그렇습니다. 나사렛에서 직선으로 내려오면 그리 멀지 않습니다. 아마도 평안남도쯤 되는 나사렛에서 3.8선을 넘어오면 일산쯤 되는 거리 정도 될 것 입니다. 그런데 이 분계선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을 거쳐 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이 돌아 온 이유는 이스라엘 가운데 사마리아가 위치해 있는데, 그 당시 이곳은 소위 천민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되어 유대인들에게는 금지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땅을 찾아 갔습니다. 요한복음서에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래서 유다사람들은 예수를 천민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고약한 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 만큼 사마리아 땅은 타부시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은 그 길을 따라 내려올 수 가 없었습니다. 고고학 기록에 의하면 최소 3~4일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동방박사들과 같이 별을 보고 온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로마 황제 명령에 따라서 호적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로마황제는 세금을 거두어 드릴 목적으로 자기 출신으로 돌아가 호적을 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렇게 거두어진 세금은 로마제국을 건설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호적을 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습니다. 이렇게 마리아와 요셉이 유대를 향해 내려갑니다. <야곱서신>이라는 외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낙타를 타고 오는데 남편 요셉이 궁금해 묻습니다. 마리아 당신이 활짝 웃었다가, 또 얼마나 지나면 근심 된 얼굴을 하고 있으니 무신 일이 있습니까. 한참 길을 가다 마리아가 대답하는 장면입니다. 제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 어떤 사람들이 가득 찼는데, 그 사람들이 울고, 신음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지나다 보니까 또 다른 분류의 사람들이 너무 기뻐서 웃음이 가득하고 환호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눈만 감으면 이 두 장면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그래서 내 얼굴이 찡그러졌습니다. 울며 신음하는 얼굴은 누구이고, 웃고 환호하는 얼굴은 누구입니까.
여러분, 장례식 있으면 모두가 다 웃는 얼굴은 없습니다. 적어도 그 자리에선 울어야 하고, 근심이 있어야 하고, 경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옷도 검은 옷에 검은 색 넥타이를 매고, 흰 옷을 입기도 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는 경건합니다. 얼굴은 모두 근심된 얼굴입니다. 슬픈 얼굴입니다. 만델라 대통령이 돌아 가셨을 때 남아프리카 사람들의 얼굴을 보셨습니까? 세계 각국에서 조문을 하기 위해 온 지도층들의 옷은 검은 색 정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그 분의 죽음 앞에서 조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사람들 중에 검은색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이 보입니다. 오히려 장례식에서 웃으면서, 춤추고, 웃고, 노래합니다. 그렇게 장례식을 치루는 민족은 처음 봤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장례식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을 추느냐? 대답입니다. 우리는 죽은 만델라 대통령을 추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기 전 우리와 함께 했던 아름다웠던 나날들 그것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깊이 새겨들을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죽음을 슬퍼합니까? 죽기 전에 함께 했던 아름다웠던 날들, 그 날들을 기억하고, 찬양하고 싶습니까? 누구를 위해서 울고, 누구와 함께 기뻐합니까. 우리 교회도 장례식을 자주합니다. 저도 장례식 집전을 자주합니다. 저도 우리 문화전통에 따라 검은 색 옷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경의를 표합니다. 그럼 유가족 모두가 와서 예배를 드릴 때 또는 장례할 때 슬픔을 가룰 수가 없어 슬프고 안타까운 얼굴로 마주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슬픈 메시지를 전한 적은 없습니다. 죽음은 죽기 이전에 아름다웠던 것을 우리가 미리 앞당겨 끌어 다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하나님이 약속한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다리이기 때문에,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시작한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그래서 부활생명을 위해서 이 죽음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항상 슬픈 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기쁨을 장례식장에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는 죽음이후의 이야기는 그만 두더라도. 죽기 이전에 아름다운 기억을 기뻐하고, 춤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요.
오늘 마리아가 슬픈 얼굴 또 하나는 기쁜 얼굴을 합니다. 어떻게 해서 슬프고, 기뻤겠습니까. 장례시간이고, 하늘의 아들 예수라는 사람이 아기로 태어납니다. 그것도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납니다. 지금 요셉은 약혼자로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자신의 약혼자가 임심을 했으니 유대교법에 따르면 불법입니다. 부도덕합니다. 벌은 스데반을 죽였듯이 돌로 쳐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생각합니다. 아주 조용하게 약혼녀와 헤어진다. 그렇게 헤어지지 않고 아기를 낳을 경우는 스캔들이 됩니다. 안 낳고 내쫓으면 내 약혼녀 마리아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 사건 때문에 쫓겨나고 죽임당해야 하느냐. 그래서 조용히 헤어지자. 갈림길에 있을 때 천사가 옵니다. 너희 아내는 네가 아니라 성령으로 인하여 임신했다. 너와는 상관이 없다. 네 약혼자의 몸을 빌리마.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실 텐데. 너희들이 기도했던 간구했던 아들이 나오는데. 그 이름이 예수이다. 자기 백성의 죄를 구원할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받아 드리라고 합니다. 천사의 강권에 의해서 요셉은 아멘 받겠습니다. 그 때 요셉의 얼굴은 웃었을 것입니다. 근심해서 조용히 버리려고 했을 때 요셉의 얼굴은 일그러졌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기를 품에 안고 이것을 어떻게 하냐고 생각했을 때, 한쪽 사람들이 근심된 얼굴을 했을 때 마리아도 근심되었을 것입니다. 천사가 와서 너는 성령으로 잉태했으니 너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느니라. 확신을 주었을 때 마리아는 하늘을 보고, 웃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웃고 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마리아가 웃고 운겁니다. 사실은 요셉이 웃고 운 것 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마리아 요셉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보시죠. 여러분이 요셉이고 마리아라면 하나님이 오늘 저를 통해서, 우리를 통해서 무엇인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옛날에 생각했던 하나님의 축복, 약속 받았던 축복이 오늘 성령의 잉태라는 이름으로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베들레헴에서 이루어집니다. 베들레헴은 당시로 보면 인구 천 명 정도 되는 작은 도시입니다. 옛 이름은 에브라다 입니다. 미가서 5장에 보면 “너 베들레헴 에브다라야 너는 작지만 작다고 하지 말아라.” 에브라다는 옛날 이름인데요 그 뜻은 열매가 맺히는 곳 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변해서 베들레헴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Bethlehem)의 의미는 베드(Beth)라는 집과 레헴(lehem)이라는 의미의 먹는 빵, 생명의 떡이 합쳐져 떡 집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떡집에서 오늘 생명의 주가 태어납니다. 예수의 이름은 만백성을 구하는 사람이지만 예수는 떡입니다. 예수는 빵입니다. 말구유간은 빵집, 떡집 그렇습니다. 그 생명의 떡을 오늘 우리가 성만찬에서 먹고 마십니다. 아기로 태어난 예수, 이 예수가 생명의 근원이고, 생명의 근원을 태어나게 한 것이 아주 구석의 말구요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느냐 하면 가장 높으신 하나님, 그대로 내려오시면 우리가 하나 됨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떻게 악수합니까. 하나님은 만백성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손잡고 끌어안기 위해서 가장 낮은 곳을 선택했습니다. 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가장 영광스러운 분이 가장 낮고 비천한 곳에 오셔서 온 백성과 거리 두시지 않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오십니다. 그것이 성탄의 뜻입니다. 왜 성탄이냐면 영광의 보좌에 계신 분이 낮고 천한 곳에 오셔서 자기를 다 비우시고, 아주 가난 아기로 태어나셨고, 아주 훌륭했던 분이 천민이 되셔서 오셔서 온 백성과 접촉하시려고. 병든 자, 힘없는 자, 버림받은 자, 모든 사람을 끌어안고, 물론 잘난 사람까지 합해서 하나님은 구원하시려고 오늘 말구유간 베들레헴에 오셔서 자기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아주 단순 합니다. 어린 아이로 오셔야 모든 사람과 접촉이 가능합니다. 어린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 없지요. 거리도 없지요. 귀엽죠. 가깝죠. 순박하지요. 어린 아이 때는 모든 게 귀엽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아주 작은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와 접촉을 시작하십니다. 누구와도 하늘의 뜻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 다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아주 짧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 어렵게 생각합니다. 학자들이 어렵게 말합니다. 예수는 단순하고, 순박하고, 아주 낮지만 높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말구유에서 만나는 예수는 아기이고, 구원의 주가 되십니다. 이 사람은 십자가에 죽어서 우리 때문에 죽고 부활하셔서 영광의 나라에 가시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낮고 천한 방식으로 내려오셨다가 구원 받은 사람은 아주 높고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로 우리를 상향시켜주십니다. 하나님의 오심을 요즘 말로 top-down 방식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방식입니다. 만판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식은 bottom-up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내려오셔서 우리를 하늘로 올라가게 해주십니다. 이 역사를 이루신 분이 하나님, 그 분의 아들 이름이 예수, 그 분이 태어난 곳은 떡집. 그곳에 가면 생명의 떡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탄을 두 번 맞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로 믿는 예수가 태어나는 것이 성탄이라면 성탄은 매일, 순간마다, 결단할 때 마다 성탄이 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신앙의 역사 속에서, 신앙의 결단 속에서 예수가 다시 성탄하십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아멘으로 받으십니까. 그럼 아기예수가 태어납니다. 우리의 시간, 지난 시간, 다 예수가 태어난 시간 속에 다 집어넣으시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시간도 예수가 태어난 시간 속에 다 가져옵시다. 예수가 태어나는 오늘 이 시간이 우리의 과거와 우리의 희망의 미래를 담는 그릇입니다. 여기서 역사가 시작합니다. 예수의 태어난 시간은 우리의 말로 하면 제로입니다. 이 제로는 과거 시간을 다 담고, 미래의 시간으로 새로운 출발시키는 새로운 생산적인 시간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다시 출발합시다. 성탄 기쁘시지요. 성탄의 축복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