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남교회] 예수만 바라보는 해

2014년 1월 5일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전병금 강남교회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성경본문
 
(히브리서 12장 1-2절)
 
설교문 
 
성공을 다루는 미국의 잡지 ‘석세스’(Success)가 예일대학교 학생들에게 목표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조사 항목은 첫째, 목표는 있는가? 둘째, 목표를 기록해 두었는가? 셋째, 목표 달성을 위해 계획은 세웠는가?였습니다.
 
응답자 중 3%만이 목표를 세웠고, 나머지 97%는 전혀 목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20년이 지난 후 설문에 응한 응답자의 수입을 조사해 보았더니 재미난 결과가 나왔습니다. 목표가 있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계획을 꼼꼼히 세웠던 3%는 나머지 97%보다 소득이 평균 10배나 높았습니다.
 
지그 지글러는 [목표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라는 책에서 “목표가 없는 사람은 방향키가 없는 배와 같다.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은 뚜렷한 목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목표를 하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바뀝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해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기를 원합니까? 
 
과거 러시아의 수도인 페테르부르크에 아까끼에비치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기라도 하면 그는 매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매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아주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오.” 그 노인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생 동안 일하고 저축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80 루블의 돈을 저축하여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습니다.
 
그 날은 노인에게 성공한 날이자 목적을 이룬 날이었기에 큰 기대감과 흥분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서 비싼 고급 외투를 강탈당했습니다. 
 
그 노인은 매우 절망했습니다. 단순히 고급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그는 그의 성공을 강탈당하고 그의 행복을 강탈당했습니다. 그 날 이후 그 노인은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골리라는 사람이 쓴 단편소설 [외투]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노인의 목표는 고급 외투였지만 좋은 아파트, 고급 승용차, 사회의 높은 자리 등 소유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리히 프롬이라는 심리학자는 “소유에 행복이 없다. 행복은 존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유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계속 속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능력을 찬양하며 왕으로 삼으려 하자 예수께서는 무리를 해산시키신 후 따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한가운데 도착한 제자들은 갑자기 거친 파도가 몰아치자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희미한 것이 다가왔습니다. 예수께서는 물위를 걸어서 배로 오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순간 베드로가 놀라며 예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바다로 걸어 나갔습니다. 물위를 걷게 되자 주위에 거센 파도를 보고는 놀라서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만을 바라보았을 때는 물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주위를 보자 물에 빠지고 말았던 것처럼 우리도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고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만을 바라보면 첫째, 일생 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예수를 바라보고 죄를 용서받았고, 십자가에 달린 한쪽 강도도 예수를 바라보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둘째, 예수를 바라보면 병의 치료를 받습니다. 백부장의 종, 귀신들린 아이, 회당장의 딸은 치료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셋째, 예수를 바라보면 환난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갈릴리 호수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예수를 바라보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넷째, 세상 떠날 때 구원을 얻습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인간의 부귀, 영화, 공명, 권세, 명예, 금전도 다 떠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볼 때 부활과 영생을 얻습니다. 
 
주의 재림이 가까워진 종말의 때 천하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만을 바라봄으로 영생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삶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 세상에서 바라보는 세상 것들은 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원한 예수를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 외에는 결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다른 세상 것들을 바라보면 그 세상 것들에 빠져 결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들은 썩어 없어질 부귀영화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맹모 삼천지교(孟母 三遷之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맹자의 집은 공동묘지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동네 아이들과 매일같이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면서 놀았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고 따끔하게 말했습니다. “맹자야! 사내 대장부로 태어났으면 큰 뜻을 품고 학문을 갈고 닦아 이름난 학자가 되든지, 아니면 무예를 익혀 세상을 호령하는 장수가 되든지 해야지. 매일같이 장례식 놀이나 해서 무엇에 쓰겠느냐?”
 
“어머님,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또 아이 들과 어울려 장례식 흉내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안 되겠어.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으니 말야.’ 생각다 못해 맹자 어머니는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새로 집을 옮긴 곳은 장터 근방이었습니다. “자, 여기로 오세요. 싸구려! 싸구려!” “골라, 골라! 두 장에 삼천 원!” 장터로 이사 오자 이번엔 아이들과 어울려 장사꾼 흉내를 냈습니다. 
 
맹자 어머니는 이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여기도 살 만한 곳이 못 되는구나.’ 맹자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서당 옆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글방 학동들을 본받아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그제야 맹자 어머니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맹모 삼천지교’란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이나 옮겨 다녔다는 데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맹자가 무엇을 보는냐에 따라 그의 삶이 바뀌었듯이, 우리 신앙인 또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주님의 바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모세가 각 지파의 대표들로 구성된 12명의 정탐꾼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50일을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그 중 10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현상적으로만 보았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1-33). 
 
한마디로 우리는 그들을 정복함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광야에서 시달린 우리가 어떻게 그들과 싸우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아무런 조직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을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약육강식의 글로벌한 세상에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이 부정적인 보고를 할 때,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13:30)고 말했습니다.
 
또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으면서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14:6-9)고 외쳤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는 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나서자고 온 백성을 격려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무엇도 할 수 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과 그들에게 동조한 백성들은 광야에서 뼈를 묻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차 있는 긍정적인 신앙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점령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믿음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우리는 새해에 긍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어려움과 절망 중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려운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고,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긍정적인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두 나그네가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을 여행하다가 너무 지쳐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그 앞에 무덤이 나타났습니다. 부정적인 친구는 “이봐, 우리도 지쳐서 저렇게 쓰러져 죽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긍정적인 친구가 “무덤이 있다는 것은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힘을 내세”라고 하더랍니다.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은 보는 것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코넬대 심리학 교실에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표정을 분석하면서 기쁜 표정을 짓는 선수의 순서는 금, 은, 동이 아니라 금, 동, 은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입니다. 반면 동메달을 딴 선수는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의 관점에서 자신의 동메달을 보면서 은메달리스트보다 환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확실히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될 것이고, 미래는 밝아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긍정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잔뜩 끼여 있는 날이라도 구름 너머에 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하늘을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전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게 되었습니다.“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그리고 기도하신 다음 전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결단 후 곧 체포되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유대 총독 빌라도가 죄인으로 서신 예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 ‘네 말이 옳도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얼마나 담대한 대답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실 주님께서 세계의 왕 로마로부터 유대의 모든 권력을 위임받은 빌라도 앞에서 네 말이 옳다고 대답했으니, 참으로 용감한 대답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2014년에도 바라보며 따라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옳다고 하신 그 길, 즉, 의와 진리와 생명의 길로 우리는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4년 우리는 빌라도 앞에서도 당당하셨던 주님처럼 그 누구 앞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님을 밝히고 주님의 길로 가며, 사람들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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