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
해아래 새것이 없나니
새해 벽두에 읽은 전도서의 역사철학은 인간 역사를 순환적으로 본 것입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다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전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러한 순환적 역사 인식은 우리 동양 사람들에게만 익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교사상의 윤회사상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희랍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도 영혼불멸의 철학과 함께 윤회사상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이름을 딴 전도서 저자인 지혜자의 역사철학은 희랍철학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동과 서를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관에는 윤회사상, 세상은 돌고 돌아 해아래 새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농경사회에서는 농사를 하는데 봄에는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는 길쌈을 하고 가을에는 열매를 거두고 겨울에는 동물들과 함께 잠을 자야하고 그리고 다시 봄이 오면 다시 씨앗을 뿌리고...그렇게 해와 달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서 장가가고 시집가고 아이들 낳고 할머니 되고 할아버지 되고 죽으면 저승에 갔다가 다시 태어나서 이 세상에 오고...하면서 인생이란 되돌고 돌아 되풀이 되는 것이니 해 아래 무엇이 새것이라는 것이 있겠냐 말입니다. 오늘 뜨는 해는 어제 뜬 해와 다를 바가 없는데, 왜 우리는 어제 뜬 해를 보고 새해라고 하면서 추운 겨울 새벽 동해로 서해로 해돋이 본다고 달려가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그 첫머리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숨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믿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토록 심한 허무주의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안녕들 하십니까? 2천 년 전의 전도서 저자의 마음은 안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안녕하지 못한 마음이 오늘 우리의 마음을 쓰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습니다. 적어도 투표를 한 52%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경험한 것은 아, 역사는 되풀이 되고 뒤로 돌아 갈 수 있는 거구나. 박정희 유신군사독재시대가 다시 부활하고 되풀이 되는 것을 보고 느끼며 전도서와 마찬가지로 역사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역사를 뒤로 돌리는 생각이 역사적 보수주의라면 보수주의는 결국 허무주의입니다.
“해아래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아무리 새것을 찾고 개혁하고 갱신한다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역사란 그리 쉽게 새것이 생기고 진보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패배주의와 허무주의가 바로 보수주의입니다.
2014년 올해는 갑오년입니다. 갑오년 하면 1894년 갑오경장이 우리 뇌리를 강타합니다. 120년 전 그해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구한말 고종 조에서 친일파의 성화에 못 이겨 한국을 근대화 한다고 만들어 낸 것이 갑오개혁이라고도 하는 갑오경장이었습니다. 역사책에 따르면 이 개혁은 1896년 까지 1년 반 동안 추진된 것입니다. 그 역사적 계기는 반봉건 외세배척운동으로서의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한 것으로서 결국 조선조는 청나라에 동학혁명을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 군대를 불러 드렸고, 이에 대하여 일본은 기회는 왔다고 즉각 일본군을 파병하여 청군을 물리치고 그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올해 갑오년을 말하는 역사가들과 나라를 염려하는 지성인들이 오늘의 우리의 상황을 120년 전 갑오년의 반복, 되풀이로 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불통으로 원칙 없는 원칙만을 고집하면서 유신으로 돌아가려는 보수적 허무주의적 역사인식을 가진 정권은 동학농민 혁명을 상상하게 하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 싼 국제정세는 120년 전의 청과 일본의 갈등에 더하여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갈등과 대결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은 다시 풍전등화와 마찬 가지가 되었습니다.
영화 [변호인]을 보았습니다.
배우 송강호의 연기가 보고 싶어 [변호인]을 보았습니다. 부산의 대학생들이 야학을 하고 독서회를 만들고 이념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빨갱이를 만들어 죽기 직전까지 야만적인 고문으로 자백하게 만든 악덕 고문 전문가의 행패를 보면서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눈물을 흘리면서 끝까지 어제와 오늘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군사독재 시대의 야만적 망령들이 영화 속에 다시 살아 나오는 것을 보며 치를 떨었습니다.
일본 군사주의 제국주의가 되풀이 될 수 없습니다. 갑오년 청일전쟁 때 한국에 일본군대가 쳐 들어오게 한 이또 히로부미가 지금 120년 뒤의 갑오년에 아베 신조의 얼굴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원자탄으로 패전한 일본이 미국을 뒤에 엎고 북한의 핵무기를 빌미로 아무 때고 한반도에 쳐들어 올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1910년 한국 민족이 일본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105인 사건이 되풀이 되어서도 아니 됩니다. 그리고 1919년 3.1. 운동이 되풀이 되어서도 아니 됩니다. 625 전쟁이 되풀이 되어서는 더욱 아니 됩니다. 이승만의 역사도 4.19의 역사도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박정희의 5.16은 물론, 전두환의 5.18은 더욱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 와이 연맹 100년과 갑오년
우리는 와이 연맹 100주년을 기념하는 갑오년의 문턱에 섰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비극의 갑오년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120년 전의 갑오년과 함께 우리가 걸어 온 역사를 깊이 드려다 보게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역사관이 아닌,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의 역사관을 다시 읽어 보게 됩니다.
창세기를 읽어 보면, 분명 우주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그 시작에는 기쁨이 있었고 경이와 신비가 있었습니다. 혼돈과 어둠에서 새로 시작한 새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메시아 예수가 아기 예수로 탄생하는 새로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천사들의 노래는 새 역사를 알리는 노래였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어두운 역사,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 제국의 노예로 굴욕으로 살아야 했던 그 암울한 역사의 밤에 빛으로 사랑과 희망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아침에 읽은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요메가 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하나님의 역사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둥근 원으로 돌고 도는 역사가 아니라 직선의 역사라는 거십니다.직선이 아니라 곡선이고 나선형이라 해도 좋습니다. 처음이 있고 나중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전도서의 순환적 혹은 윤회 적 역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100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는 것은 그 옛날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와이가 연맹을 만들 던 그 암울한 시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헤겔이 말하는 정.반.합이라고 하는 변증법적 여정이든지, 토인비가 말하는 시대적 도전에 맞서서 응답하고 싸우고 극복하는 험난한 길이든, 우리는 우리의 여정을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요한이 본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모든 눌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은 다 지나 갔음이러라...”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우리 한국 와이의 목적 문에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하여 일한다고 우리의 사명을 못 박아 놓았습니다. 이 사명에서 물러 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뒤로 돌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헛되고 헛되도다. 우리 선배들이 매 맞고 고문을 당하면서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를 빼앗길 수 없다. 우리는 역사를 되돌려 놓으려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양보할 수 없다. 우리는 “아 헛되고 헛되도다. 우리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를 또다시 뺏기는 구나. 운명에 맡기지 뭐..하는 패배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질 수 없습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 에게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헛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계란을 던지고 깨지고 되풀이 하면서 승리한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였습니다. 이제 그 민주주의가 풍전등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앞에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새 하늘과 새 땅, 분단의 고통이 없는 새 땅, 눈물도 한숨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 통일된 한반도를 만들어 나가야 할 시대적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120년 전의 갑오년을 되풀이 할 수 없습니다. 알파와 오메가--120년 전의 갑오년의 민족의 한을 푸는 새로운 갑오년,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 새해, 우리 YMCA 가 만들어 나가는 역사, 새로운 역사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아멘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세계 YMCA 연맹 전 회장, 본지 논설주간)가 지난 1월 2일 성경본문 ‘전도서 1:1-11’ ‘계시록 21:1-8’ 등을 놓고, 한국 YMCA 연맹 신년하례식에서 설교를 전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실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