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수난의 계절에

2014년 3월 9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 귀절

 
출애굽기 32:7-10, 30-3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내려가 보아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이렇게 빨리 벗어나서, 그들 스스로 수송아지 모양을 만들어 놓고서 절하고,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하고 외치고 있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 백성을 살펴 보았다.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이튿날 모세는 백성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크나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주님께 올라가서, 당신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빌겠습니다." 모세가 주님께로 돌아가서 아뢰었다. "슬픕니다. 이 백성이 금으로 신상을 만듦으로써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나는 오직 그 사람만을 나의 책에서 지운다.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여라. 보아라, 나의 천사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여라. 때가 되면, 내가 그들에게 반드시 죄를 묻겠다." 아멘. 
 
히브리서 4:14-1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늘에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지킵시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아멘. 
 
마태복음서 4:1-11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밤낮 사십 일을 금식하시니, 시장하셨다.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 그 때에 악마는 예수를 그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예수께서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 또다시 악마는 예수를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고 말하였다.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이 때에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아멘. 
 
설교문  
 
어느 종교나, 어느 나라나 숫자가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말씀에도 숫자가 많이 나오며, 그 숫자마다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2008년 8월 8일 8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북경 올림픽 개막식 날의 시간입니다. 중국인들은 "8"을 행운의 숫자라고 여깁니다. 그 이유는 숫자 8의 중국어 발음이 빠(八, pa)인데, 이 발음이 "재물을 이루어 낸다"는 어휘(發財)의 파(發, fa)의 발음과 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인들도 숫자 8을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 숫자 8의 한자어를 일본인들이 신성시 하는 후지산 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많은 자동차를 팔고 있는 도요타 회사의 이름이 처음에는 도요다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에다 한획이 추가된 8획의 ‘타’로 변경해 도요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천지인(天地人)의 세말 숫자 "3"을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했죠. 이 내용은 단군신화에도 나옵니다. 지금도 숫자 3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미가 우리들에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럭키세븐이라고 해서 숫자 7을 행운의 숫자로 여깁니다. 
 
그러면 구약성경에는 어떤 숫자들이 있을까요? 구약성경에 여러 숫자가 나오지만 행복, 안전, 평안을 상징하는 수를 "10"으로 보았습니다. 그 연원은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십계명입니다. "10"이라는 숫자는 하늘 뜻의 종합판이죠. 더 이상도, 이하도 없읍니다. 그런데 10이 완전한 숫자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만 가져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만드신 온 우주에, 온 백성이 함께 가져야 한다면서, 온 우주를 동서남북 "4"라는 수자로 표기합니다. 이렇게 완전한 숫자 10에 온 우주를 상징하는 동서남북 4면이 곱해져(10 x 4 = 40)이 됩니다. 이 40일이라는 숫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까지 40일동안 호렙산에서 머믄 때의시간적인 의미와도 같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오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빵이 모자라, 물이 모자라, 힘이 모자라 빵과 물을 만들어 내는 신을 만들자고 모세의 형 아론에게 강권합니다. 이렇게 아론의 주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붙이를 모두 모아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금송아지 신을 만듭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내려와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엉망진창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다시 하나님께와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 백성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벌을 내려야 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우선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해라. 우선 가라. 다음에 때가 되면 내가 심판해 벌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까지 벌도, 사랑도, 그리고 은혜도 주시며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에서 숫자 40이 갖는 의미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시간은 모세 휘하에 광야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의 40년을 압축한 삶입니다. 그 기도의 시간이 끝나고 예수는 사탄에게 유혹과 시험을 받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마태복음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본문에 있는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이야기와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가 같은 형식을 담고 있읍니다. 이것이 고난의 시작입니다. 사순절은 지난 수요일(3월5일)부터 시작해 4월 셋째 주일(4월 20일) 그 전날까지 40일 동안입니다. 그 기간에 있는 여섯번의 주일은 뺍니다. 이 기간에 우리 모두 예수와 함께 그분이 사탄으로부터, 세속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당하신 모든 유혹을 함께 견뎌봅시다. 그러고 나서 사순절이 끝나면 우리 모두 함께 부활의 아침을 준비합시다. 
 
사순절이 의미 있는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새 생명을 주신 그분이 자기 혼자서 받은 사건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를 위하여 우리 인간 때문에, 세상 때문에, 하나님의 피조물 때문에 대신 수난 당하고 죽으셨다고 하닌 대속의 수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에게 감사하면서 수난에 동참하면, 사순절은 그분의 사순절이 아니라 우리의 사순절이고, 우리와 함께 하는 사순절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예배 때 예수께서 당하신 세 가지 유혹 이야기를 간략하게 짚으면서 우리는 그러한 유혹을 어떻게 이기면서 우리의 부활을 맞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탄이 예수께 첫 번째 유혹을 합니다. 이 "돌들을 빵이 되게 하여라"고 분부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은 빵을 먹고산다. 그런데 인간은 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빵을 만드신 하나님, 그분의 말씀도 먹고산다"고 하십니다. 사탄의 의도는 하나님과 빵을 분리해라는 것입니다. 빵은 세상의 것, 인간의 것이니까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빵, 물, 집이죠. 의식주입니다. 종교는 일방 빵의 종교입니다. 빵을 잘 주면 종교의 사명을 다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배가 고팠을 때는 빵이 복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삶이 지금은 나아져서 빵이 복음이냐고 물으면 빵 속에 빵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라고 답하지요. 빵만 먹고 살면 사람이 아닙니다. 빵과 정신을 함께 먹어야합니다. 경제가 부강하고, 돈이 많은 나라는 강한국가입니다. 그러나 어찌보면 그 빵 속에 한국 사람의, 중국 사람의, 세계인의 인격, 자유, 존중같은 것이 그 빵속에는 없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세상은 빵으로만 삽니까? 그것이 선진국입니까? 강대국입니까? 그렇다면 다른 정신적 가치는 어디에 있나요? 도덕은요? 윤리는요? 인간성은요? 이렇듯이 사람은 물질인 빵으로만 살수는 없습니다. 빵이 훌륭하고 필요하지만 빵 뒤에, 위에, 옆에 빵의 정신이 있어야합니다. 사탄은 신과 인간을 분리해라. 빵과 정신을 분리해라. 물과 정신을 분리해라. 하늘과 땅을 분리해라. 그렇게 유혹하는 것이 소위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죄란 근본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이 완전히 분열되고 갈라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갈라서게 하는 주동자입니다. 본래부터 사탄이 있는 게 아니고, 신과 인간의 관계가 일탈되면 그 결과로 사탄이 나오고 역할합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면역세포를 잘 만들어 놓으셨는데 건강에 이상이 생겨 암세포가 생기면, 저는 그것을 사탄이라고 믿습니다. 사탄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이 일탈하면, 신의 질서에 구멍이 생기면, 사람이 잘못해서 창조질서가 망가지면, 그곳에서 등장하는 것이 사탄이며, 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악은 예수님보고 빵을 만들라는 재촉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때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필요조건인데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 내려라. 왜 죽느냐? 뛰어 내려 네가 신의 아들임을 증명해보여라"고 군잉들이 조롱하듯 멸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정한 뜻과 계획은 "아들 예수는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야 인간이 산다, 세상이 산다. 십자가에서 뛰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죽지 말아라!"라고 빈정댑니다. 그 이유는 예수가 죽지 않아야 인간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고난과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가 오늘 구원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없습니다. 기독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기에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에서 끝내지 않으시고, 이 죽음을 부활로 바꿔주셨읍니다. 수난이 없이 예수는 없습니다. 수난이 없는 십자가는 불가능합니다. 오늘날의 죽은 속에서, 광야생활 속에서, 예수의 수난 속에서, 이 모든 수난과 유혹은 십자가로 이끌어주는 한 길입니다. 사탄이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말은 예수를 향한 극치의 조롱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이 돌들로 빵을 만들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빵을 하나님만 만듭니까? 사람도 만들 수있읍니다. 
 
제가 이야기 하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목회하는 동안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한국에서 방문하셔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고백은 오늘날 북녘 땅에서도, 관타나모 수용소에서도, 그리고 전 세계 도처의 폭력이 넘실대고 있는 곳마다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지난 한때 옛날 정보부에 잡혀갔었죠. 정보부 요원들이 수사를 할 때 이렇게 합디다. 당신이 사람이야? 목사야? 당신은 그져 개야. 옷을 발가벗겨 놓고는, 개는 네발로 걷는 거야. 나한테 개처럼 기어서 와봐.” 이렇게 고문을 당하다 이분이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가장 심한 고문은 매로 치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이분은 "이제 다 끝났구나. 나에게는 이제 인생 종말이다. 그러니 이제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는 심정이었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시면서 우시더라구요. 이와 같이 오늘 말씀에서도 사탄이 예수를 향해 조롱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야. 만약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로 떡을 만들어 봐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봐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천사들이 밑에서 받쳐 줄 것이다. 그것도 안 되니 산위로 올라가 시험하면서 말합니다. 나에게 절하면 너에게 온 땅을 주겠다고. 
 
사탄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는 말을 통해 예수를 조롱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일 힘든 일은 욕을 듣는 게 아니라 내가 나됨을 부정 당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조롱하고 부정하면,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 되고,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나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성경말씀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에게만 경배하라"는 말은 너의 인격, 즉 네가 너의 하나님의 자녀임을,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확인하고 고백하고 싶다면, 너를 만든 하나님을 먼져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시샘을 내어 자신에게만 영광을 돌리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격은 제 인격의 원천이고, 하나님의 가슴품은 제가 살아갈 품이고, 하나님 없이는 제가 살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욕하는 것은 제자신의 근본을 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병정들이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예수를 보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라고 했을때, 그 말은 하나님의 아들 됨을 포기해라는 의미였읍니다. 그 말 속에는 너의 인간됨을 포기해라. 하나님의 피조물 됨을 포기해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음을 포기해라. 그것은 가짜이니라. 그런 조소와 강요의 뜻이 스며있읍니다. 
 
빵으로 살 수 있다는 견해는 그 자체로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아야할게 있읍니다. 빵 속에 하나님의 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빵은 사람이 만들지만 하나님의 선물이고, 예수께서는 5천명도 먹이는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본인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떡과 포도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성만찬때 먹는 떡과 마시는 포도주는 사탄이 유혹했던 하나님 없는 빵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빵이 된 그 빵을 우리가 먹고마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별개의 다른 빵, 그것이 아닌, 다른 십자가가 아닌, 다른 부활이 아닌, 하나님의 입에서 나와 말씀이 육신이 된 성육신 사건을 오늘의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보아라. 그러면 천사들이 붙들 것이다. 그런 사탐의 유혹에 대해 답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을 유혹하지 말라. 하나님은 물건이 아니다". 상품테스트는 물건일 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상품화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이 물건이 되십니다. 나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가지고 놉니다. 사탄은 그런 하나님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하나님이 금송아지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물건화, 물상화, 그리고 객관화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신이 필요 없습니다. 나/우리와 대화하는 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 기도하는 하나님입니다. 내/우리가 만든 상품이 아닙니다. 그 다음 사탄은 예수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 온갖 세상의 사치와 돈과 정치적 힘 등 많은 것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절만해라. 나를 섬겨라. 모든 것을 주마"고 유혹합니다. 우리의 섬김을 받는 구원자 예수는 사탄처럼 우리를 종으로 만드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보고 섬기라는 하나님은 우리를 주인 되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은 시험받는 분이 아니다"라고. 하나님은 물건이 아닙니다. 혹시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물건이신가요? 물질적 물건도 있고, 영적인 물건도 있고, 사유의 물건도 있는 많은 물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옛날에 히틀러가 유대사람들을 억압할 때 유대인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포로수용소에서 고난 받을 때 너무 배가 고파서 우리가 갖고 싶었던 것은 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유이었습니다. 우리를 나치가 인격이 아닌 물건, 아니 쓰레기 취급하더군요. 그런데 우리는 자유 하는 인간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껏 우와 함께 고난당하고, 나를 만드신 하나님 그분을 경배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예수가 받은 수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고백의 이야기를 제가 감동있게 읽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함께 수난의 길을 가겠다. 우리 함께 그 길을 가자".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자신 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길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죽자. 수난 당하자. 수난을 살자. 죽음까지도 살자. 그리고 부활을 얻자". 사순절은 부활을 열매맺는 디딤돌입니다. 수난을 거부하지 맙시다. 이 수난을 통해서 부활을 만들어 냅시다. 빵과 함께 하는 영까지 받읍시다.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온 땅에 자유가 풍만할 때까지 이 길을 만들어 냅시다. 그것이 수남절 40일 동안 우리들이 해야 할 과제요, 선물이요, 은총입니다. 우리보고 말씀하십니다. "40일 동안 기도하며, 인내하며, 이 길을 가자". 기도가 무엇입니까? 키에르케고르의 기도를 인용해보겠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그랬더니 구할게 많아, 호소할게 많아 말이 많더라. 한 참 더 깊이 기도했더니 말수가 적어지더라. 또 더 깊이 들어갔더니 내가 침묵하게 되더라. 완전히 깊이 들어갔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라. 나에게는 그의 말씀 만이 들리더라. 들음이 기도다.” 여러분 우리함께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보시지요? 말하며 간구하는 기도가 다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들음이 깊은 기도입니다. 동시에 세상의 외침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들음으로 살아봅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삶속에서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들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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