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섬김의 리더십

2014년 4월 6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 귀절

  
민수기 21:4-9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다.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까? 먹을 것도 없습니다. 마실 것도 없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사람을 무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이 죽었다.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구하였다.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이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백성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에, 물린 사람은 구리로 만든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아멘. 
 
히브리서 5:7-10 
예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경외심을 보시어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에게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아멘. 
 
마가복음서 10:35-40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내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아멘. 
 
설교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할 때 우리 가슴에 가장 와 닿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바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인데,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여러분을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마십시오"(갈 5,1)라는 말씀입니다. 너무나 감격적인 말씀입니다. 죽음의 공포, 빈곤과 억압, 착취 그리고 모든 죄악에 메여있는 인간들을 종살이에서 해방시키고, 자유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뜻입니다. 그래서 자유함을 얻는 다는 것, 또 자유인이 된다는 것이 십자가 신앙의 핵심 중에 하나입니다. 
 
또 사도바울 선생이 이 말씀을 하시면서 다시 강조합니다.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유를 얻었다고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욕심과 이기심을 가지고 자유를 행사하면 그 자유는 다시 타락합니다. 다시 욕망에 매이고, 욕심에 매입니다." 진실로 자유하려면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봉사"(갈 5,13)를 해야 합니다. 자유함을 얻어 주인이 되었다면 그 주인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래로 내려가서 섬기는 일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 자유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참 자유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13절 이야기입니다. 에릭 프롬(Erich Seligmann Fromm)은 이것을 가지고 죄, 억압, 그리고 모든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며 소극적 자유(freedom from,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자기 행동이 본능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무르면 안 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섬기고, 봉사를 해야 하다면 그것을 적극적 자유(freedom to, 무엇을 위한 자유, 개인적 자아의 실현-개인의 지적 감정적 감각적 잠재력의 표현)를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랑의 공식, 자유의 공식입니다. 
 
십자가 고난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복음인가요? 여러분이 여전히 억압, 스트레스, 죄책감, 욕망에 매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주시는 참 복음은 첫째로 해방시키는 자유의 복음입니다. 두 번째 복음은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우리의 욕망이 아니라 이웃을, 세상을, 하나님을 위해 쓰는 자유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사랑으로 섬겨서 자유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십자가 복음의 핵심입니다. 자유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자유인이 되어서 섬깁시다. 오늘 이 섬김을 진정한 리더쉽이라고 하며, 해방을 받은 후 이 기쁨으로 다시 자유인으로 섬기는 것을 포함해 ‘섬김의 리더쉽’ 이라고 합니다. 
 
오늘 예수 앞에 두 사람이 서있습니다. 두 사람은 형제지간인 요한과 야곱입니다. 두 사람이 예수님께 마지막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두 아들이 아닌 그들의 어머니가 부탁하는 장면으로 나옵니다. 내용은 같습니다. 선생님, 왕으로 등극하시거든 제발 부탁드리오니 우리 형제 두 사람을 각자 당신의 우편에 그리고 좌편에 관리로 등극시켜주십시오. 우리도 출세하고 싶습니다. 이런 청원입니다. 예수를 따르던 두 제자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한 자리 하고 싶었겠지요. 그들의 있는 심정을 있는 그대로 예수께 호소합니다. 십자가 처형을 앞둔 시간에 드리는 호소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갖고 계셨을 것입니다. 내가 며칠 후면 예루살렘 성밖으로 쫓겨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위에 못 박히고, 죽을 것이다. 그 옆에 두 강도가 십자가에 함께 매달릴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두 제자가 그 구 강도의 자리를 원하는 것은 아닐터인데 말이죠. 예수께서는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아니 기가 막히도록 우수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그 분께 바라는 우리들의 어리광스러운 모습이겠죠. 하여간 주님의 십자가 얄쪽에 하여간 두 강도가 못박힙니다. 한 강도는 자기 신세타령을 하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나까지 살려야지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느냐"고 조롱을 합니다. 다른 강도는 "내가 용서를 빕니다. 해방시켜 자유인 되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뜻이 있으면 저를 좀구원해 주십시오", 이렇게 이야기 하자 예수께서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데리고 들어가 주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날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며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것입니다. 제자들은 전혀 영문도 모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그렇기에 두 형제는 자신의 출세에 대해 간구합니다. 미래와 현실의 괴리입니다. 이것이 이것이 진정 주님의 마음속 고난이지요. 예수께서는 이렇게 답을 하십니다. 요약된 답이기 때문에 그 중간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이 답은 단순명확합니다. "내 우편에 그리고 좌편에 누가 앉을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 권한이 아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는 권한이다"라고. 그 말속에는 이런 뜻이 담겨있읍니다. 부활해서 하나님 앞에 가서 잘했다고 상 받으며 내 우편에, 좌편에 앉을 사람을 정하는 것은 마지막 심판장이신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지금 나와함께 해야 할 일은 먼저 골고다 언덕으로 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다. 너희가 나와 함께 그 일을 할 수 있느냐? 이이렇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됨입니다. 예수님의 좌우편에 함께 못 박힐 수 있느냐, 우리 선생님 예수께서 지금 추구하시는 인간구원의 사역인 십자가에 동참 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물론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좌우의 권자에 앉아 높이 성공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성공을 위해서는 강도들처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 없이는 후에 좌우편에 앉을 수 없습니다.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지금 예수의 운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하늘나라 시민이 되고, 하나님 나라 축복을 받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향한 길은 십자가를 통한 길 외에는 없습니다. 고난을 받은 길 이외에는 없습니다. 수난을 거쳐야 새셍명의 행복이 있습니다. 수난, 아픔, 고난은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니고 맞이해서 함께 극복해야 할 길입니다. 수난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수난은 행복한 구원으로 가기 위한 길이요, 방법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수난을 함께 견딥시다. 이렇게 예수께서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향해 묻습니다. 정말 출세하고 싶으냐. 그럼 고생하자. 정말 배불리 살고 싶으냐. 그럼 배고파 보자. 정말 힘 있고 싶으냐. 그럼 허약해져 보자. 정말 건강하게 살고 싶으냐. 그럼 아파보자. 실제로 우리 인간은 고난의 경험 없이, 수난의 경험 없이 기쁨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런것은 허상입니다. 이 세상은 삶의 현장 자체가 고난과 기쁨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 둘은 별개가 아니라 한 동전의 양면입니다. 고난을 거쳐야 구원으로 가는 길이 열림니다. 그 길목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지키는 사순절 기간의 날들입니다. 
 
독일의 시인 쉴러가 자신의 신앙고백 같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예술은 자유의 딸이다. 그럼 자유는 어디에 있을까? 자유는 꿈의 나라에만 있다. 자유가 주는 가장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노래 속에 있다"고. 우리가 듣고 부르는 성가 속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쉴러가 말한 것을 제가 대변해 보겠습니다. 자유가 있어야 예술 작품이 나옵니다. 자유가 억압되는 곳에서는 작품이 안 나옵니다. 정말 자유 해야 훌륭한 작품이 나옵니다. 자유가 억압되고, 통제된 사회에 가보면 작품은 있으나 정말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자유의 날개를 마음껏 펴야 합니다. 그러나 자유는 벗어나는 자유고, 또 헌신하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꿈의 나라에만 있습니다. 허황된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정말 아름답고 보람되고 훌륭한 이상이 충족되는 나라, 이것을 우리는 꿈의 나라라고 합니다. 우리가 꿈을 꿀 때 그 꿈속에 있는 자유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꿈속에 있는 자유는 정말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움이 노래로 표출 됩니다. 이런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찬송 부르실 때 이 찬송 속에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고 불러보십시오. 찬송을 들으실 때 저 속에 하나님이 만드신 참 아름다운 음성이 노래 속에 있다고 믿고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참 예술을 만들어 내는 자유가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진짜 자유는 십자가가 부여하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랑으로 섬기게 하고, 바로 이런 아름다운 자유가 우리 모두가 꿈꾸는 꿈입니다. 이 꿈이 십자가 부활 사건에서 실현됩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작품은, 부활의 작품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예술이라고 불렀지만 그 작품의 이을이 저는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그리스도가 주신 자유의 딸입니다. 그래서 쉴러는 자기가 쓴 시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나라가 꿈속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하나님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유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하늘의 작품이 무수하게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아름다운 작품이죠. 
 
주님의 몸인 교회는 하늘나라가 지닌 자유의 작품입니다. 교회는, 신앙인은 하나님 자신의 작품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자유함으로 얻는 자유는 엄청난 아름다움입니다. 교회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아름다우시니까요. 교회가, 개인이 부른 찬송은 아름다운 찬송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자유함과 자유이신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위대한 예술품입니다. 그 예술품을 마음껏 노래로, 기도로, 찬양으로, 행실로, 행함으로 전개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십자가 사건은 바로 이 자유와 이런 작품과 이런 아름다움의 현실의 입증입니다. 이것을 믿고 받으라고 십자가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이런 위대한 자유를 생각하세요. 아름다운 작품 만들 생각을 하십시오. 꿈의 나라를 현실화 시킬 생각을 하십시오. 예수께서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게 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먹고 마시는 것이 모자란다며 불평하면서 하나님을 욕합니다. 하나님이 불 뱀을 보냅니다. 불평하는 자마다 다리를 물어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죽고 살려달라고 호소하니까 모세를 통해서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를 세우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다 살아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쉽게 유비해보면, 장대에 높이 올린 구리 뱀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와 같습니다. 온 세상에 불 뱀을 통해서 많이들 물렸습니다. 인간 스스로 불 뱀이 되기도 했습니다. 죄악과, 아픔과, 일탈의 세계입니다. 거기서 뱀은 뱀이지만 똑같은 불 뱀이 아닌 구리로 만든 뱀,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하늘이 보내서 된 사람, 하나님이 본래는 위에 계셨지만 혼자만 위에 계시지 않고 땅에 내려와서 우리와 똑같은 육을 입은 하늘사람, 특별한 사람, 불 뱀이 아니라 구리로 만든 뱀, 그 분이 바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삽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우리보고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러 왔고, 자유를 받은 여러분은 그 자유로, 사랑으,ㄹ 담아 이웃과 세상을 섬기도록 부르러 왔다"고. 
 
섬김의 리더십, 종의 리더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단 한 가지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권위자고, 최고의 주인이시지만 진정한 주인은 하늘에 몸담고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주인은, 진정한 통치자는, 진정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땅에 내려와 사람이 됩니다. 화육합나다. 진정한 왕은 왕위에 있지 않고 백성 속에 들어와서 백성과 하나가 됩니다. 백성의 애환을 함께 끌어안고 백성의 눈물로 함께 눈물로 흘리고, 백성의 죽음을 자기 죽음으로 삼고, 똑같이 연대하는 사람이 되고, 백성이 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진실 된 왕입니다. 그래서 그런 왕은 백성을 높혀 줍니다. 학교나, 직장이나, 가정이나, 우리 자신의 세계에서도 똑같습니다. 진실로 통치하고 싶은 사람은 내려와서 통치 받는 사람과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웃을 수 있어야 됩니다. 함께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인간의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고난을 뚫고 부활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아래로 내려오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바로 그것이 섬기는 리더쉽의 핵심입니다. 인간이 되지 않고는 하나님은 전능하심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진정한 리더인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읍니다. 세상의 밑바닥으로 내려오셨읍니다다. 그리고 가장 작은자 인간이 되셨읍니다. 바로 예수께서 보여주신 이것이, 이 성육신의 복음이 섬기는 리더쉽의 핵심입니다. 이 예수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섬기야 존경 받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섬길 정도로 죽으면 다시 살아난답니다. 고난을 끌어 않으면 고난 속에서 기쁨이 용솟음친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는 이 예수가 오늘 우리를 살려주시는 예수요, 그리스도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결론적으로 우리를 살려 주시는 분,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그리스도, 그 분의 구원역사를 섬김의 리더쉽으로 설명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자기를 구원하신 분에게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서 세상의 아픔을 호소할 줄 알고, 애환을 대신 선포하고, 배고파 흘리는 눈물을 함께 흘리고, 병든 자와 함께 아파하고, 그래서 많은 눈물이 눈에서 흘리고, 부르짖고, 함께 눈물 흘리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탄원을 올리고, 또 스스로 고난을 받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실을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보이시고, 울부짖고, 눈물 흘리고, 기도하고, 탄원하고, 함께 고난 받고, 함께 순종하셨읍니다라고. 이것이 바로 섬기는 리더쉽의 핵심 덕목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자기 인격체 설명입니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빵을 주시고, 마실 물을 주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옛날부터 빵 때문에, 물 때문에 죽고 살고 합니다. 생명의 음식입니다. 그런데 하루 배부른 음식도 있고, 영원히 배부를 음식도 있고, 오늘만 갈증을 해소해주는 물도 있고, 영원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물도 있습니다. 이 둘을 합쳐서 예수께서 오늘 제공하시는 귀중한 선물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 이 두 개를 주시면서 나와 함께 울부짖자. 눈물을 흘리자. 기도하자. 탄원하자. 함께 고난 받자. 그리고 부활을 향해서 함께 가자. 이렇게 분부하십니다. 이 사실을 오늘 저희들이 행할 성만찬에서 경험하라 하십니다. 예수께서 우리 모두 그가 베푸시는 떡과 잔에 참여하라고 부탁하십니다. 이 성찬상의 빵,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생명의 빵입니다. 이 성찬상의 포도주,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수입니다. 먹고 마시면 하늘나라를 오늘 꿈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같이 성찬으로 갑시다. 같이 먹읍시다. 같이 마십시다. 주님이 베프시는 섬김의 만찬입니다. 섬겨 구원을 주시는 축복의 만찬입니다. 부활생명을 잉태한 십자가 고난의 만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미리 먹고 마시게 하시는 축하만찬입니다. 주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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