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몰트만 박사 ⓒ베리타스 DB |
몰트만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으로 표현했을 당시,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로부터 ‘만일 하나님께서 나처럼 그렇게 형편이 나쁘시다면, 그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는 반박에 부딪힌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내가 정말로 형편없게 되었을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서 떠나셨다고 느꼈을 때, 나를 도와 준 분은 바로 나와 함께 고난당하신 하나님이셨다’고 맞받아 쳤던 기억을 되살렸다.
몰트만의 신학에서는 이처럼 희망과 고난은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 다니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희망 없는 자들, 고통당하는 자들, 그리고 죽어가는 자들에게 주시는 희망"이라며 "‘희망의 하나님’은 또한 그들과 함께 그들 안에서 고난당하시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이해가 없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죽어가시면서 하나님께 외치셨던 탄원, 곧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이, 이해할 수 없는 일, 대답 없는 질문들, 그리고 구원 없는 고통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열쇠가 됐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십자가 신학의 전통에 따라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서, 또는 하나님과의 화해로서, 그리고 죄인에 대한 칭의로서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다"며 "그러나 이 질문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과연 하나님께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신의 독생자의 지상적 운명이 하나님을 냉혹하게 만들었는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들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질문의 전개 과정에서 "기독교 신론의 전통에서부터 ‘하나님의 무감각’에 관한 공리가 즉각 대응해 온다. 바로 하나님은 그 본성상 어떤 고난도 당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은 무감각적이며, 기쁨도 고난도, 사랑도 분노도 알지 못하신다는 것"이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절대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열정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또한 그의 하나님의 수난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은 아버지의 영원한 고통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자리에서 고난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고난당하신다"며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가운데,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또한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내어주심이 그의 영원한 자비이며, 그 자비로 인해 온 세계가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몰트만 박사는 끝으로 “따라서 디트리히 본회퍼는 죽음의 감옥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오직 고난당하는 하나님만 도울 수 있다.’ 고난에 불능한 하나님은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든다"며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은 우리를 자비롭게 만든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대 기독교의 다음과 같은 외침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