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둘째 주 목요일은 하루 종일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발언으로 떠들썩했다.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SNS)의 타임라인 상에서는 그의 발언을 성토하는 글들로 도배 되다시피 했다. 이에 대해 문 후보자측은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발언의 진의가 왜곡됐다고 강변한다. 인사청문회 준비단의 이석우 총리실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언론의 악의적이고 왜곡된 편집으로, 마치 문 후보자가 우리 민족성을 폄훼하고 일제 식민지와 남북 분단을 정당화했다는 취지로 이해되고 있다”고 밝혔다.
발언의 불똥은 교계에까지 튀었다. 그의 발언의 진원지가 그가 장로로 시무하는 온누리교회였기 때문이었다. 성난 여론은 교회를 향했다. 가뜩이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몇몇 목회자들이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교회가 다시 한 번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교계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박근혜 정권을 향해 총리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NCCK의 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 정권의 인사 시스템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13일(금)자로 대표자인 한영훈 목사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해 “일부 언론이 ‘망언’으로 규정하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교연은 이어 그의 강연 내용이 “일부 표현의 미숙이 있었으며 개인적인 역사관을 다 동의할 수는 없다”면서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우리 민족이 불행했던 한국 근대사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섭리 안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신앙인의 관점에서 밝힌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역사 종교다. 예수의 생애는 당시 이스라엘 역사와 긴밀하게 얽힌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독교 역사관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이 기독교 사관을 제대로 드러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문 후보자 측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문제가 된 1시간 12분 분량의 영상을 다 시청했다. 이 강연 영상 속엔 이번에 문제가 된 발언 외에 여러 가지 흥미로운 발언들이 담겨져 있었다.
발언의 기저에 깔린 역사관이 문제
그는 논란이 된 일제 식민지배는 물론 해방 이후 남북분단, 한국전쟁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이렇다. 소련, 중국(그는 중공이라고 했다)의 존재와 해방 직후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에 경도됐었던 상황이었기에 통일한국은 곧장 사회주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통일한국의 미래가 베트남, 산업화 이전의 중국, 북한이라고도 했다.
한편 한국전쟁이 하나님의 뜻인 주된 이유는 미국 때문이다. 그는 먼저 미국이 1949년 애치슨 라인을 선포하고 한국을 떠났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이어 한국은 안보가 필요했고, 이에 하나님은 전쟁을 허락하셔서 한국을 떠난 미국을 다시 붙잡아 둘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도 미국이 우리가 만든 물건을 ‘사줬기에’ 가능했다는 발언도 했다. 그는 더 나아가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정책과 더불어 미국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이만큼 잘 살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외에도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선 공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놀기 좋아하는 상류층들이 유학을 떠나 문학 같이 ‘입으로’ 하는 학문을 했다거나, 일제 식민지배는 500년을 허송한 우리 민족에게 주는 시련이라는 식의 ‘흥미로운’ 발언들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이쯤되면 그의 발언은 특정한 대목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의 역사관은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된 데에는 자유 민주주의와 미국이 지켜준 안보 덕분’이라는 식의 수구·반공주의 역사관으로 수렴된다. 기존 수구·반공역사관과 다른 지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가미시켰다는 점뿐이다.
그의 발언에 대한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투고 싶지는 않다. 이속엔 최소한의 사실마저 담겨져 있지 않아서다. 가장 정확한 사실이라면 애치슨 라인에 관한 언급 정도다. 이 점 말고는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발언이 사실상 전무하다. 그렇기에 사실관계를 다투는 일은 무의미하다.
문제는 그의 발언의 기저에 깔린 왜곡된 역사관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기독교 역사관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도 모호해서 해석의 여지가 분분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이를 쉽사리 입에 올리는 일은 조심스럽다.
하나님은 압제 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가장 낮은 자들과 함께 했으며, 이로 인해 세속의 권력으로부터 박해를 당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는 낮은 자들과 함께 하는 역사다. 그런데 문 후보자 발언에선 이런 역사관이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다. 오히려 현재 산업화된 대한민국을 역사의 최종 결정체로 보고 과거사를 억지 춘향식으로 끼워 맞추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그의 발언이 문제되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이다.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현 상황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구현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부터 논란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또 그의 역사관이 진실이라면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 운동가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배도자로 전락해 버린다. 과연 그의 역사관이 타당한가?
사실 그의 역사관을 공유하는 기독교인은 흔하다. 교회가 문창극류의 왜곡된 역사의식을 마치 복음인양 설파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가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행위는 죄악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