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프라하 기행] 프란츠 카프카의 체취를 찾아서

카프카의 도시 프라하, 그리고 카프카 박물관

▲좁은 프라하 거리.
▲카프카 박물관 앞 조형물

프라하는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도시다. 시의 주요 길목에 그를 기리는 기념물이 서 있는가 하면, 기념품 상점에서는 그의 얼굴이 들어간 엽서와 티셔츠를 흔히 볼 수 있다. 카프카의 이름을 딴 카페도 성업 중이다. 또 그의 작품은 서점마다 한 가득씩 진열돼 독자들을 기다린다. 한편 후배 문인들은 ‘카프카 소사이어티’를 결성하고 그의 작품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복기해내는 활동을 수행중이다. 독일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귄터 그라스, 이스라엘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아모스 오즈 등도 이 단체 회원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작품 속엔 프라하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의 배경은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작품의 분위기는 음울하고 몽환적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가위눌린 듯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신해 버렸고, 『소송』의 요제프 K는 어느 날 아침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된다. 한편 『성』의 또 다른 주인공 K는 ‘성’에서 토지 측량 업무를 수행해야 함에도 정작 성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이들 주인공들은 자신의 상황을 부단히 개선해 보려 애쓰지만 결말은 오히려 참혹하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작품 세계는 ‘프라하’라는 공간에서 형성돼 나갔다. 그의 작품 분위기는 질식할 것만 같이 답답하다. 이런 분위기는 프라하라는 도시가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이곳은 성냥갑 모양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도로는 차량 한 대가 겨우 빠져 나올 정도로 비좁다. 또 언덕 위의 비트 대성당은 마치 프라하를 내려다보는 모양새다. 프라하라는 도시 자체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곳은 런던이나 파리 등 서유럽의 대표 도시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아름답고 고풍스럽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도시 규모가 작아 답답한 느낌을 준다. 
 
▲카프카 박물관 앞 조형물
▲카프카 박물관 내부

카프카의 성장 환경은 프라하라는 도시를 더욱 몽환적이고 고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유대인 출신이었다. 그러나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유럽에 동화된 서방 유대인이었다. 공장주였던 그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아들 프란츠가 법조계에 진출하기 원했다. 아버지의 의도는 명확했다. 즉, 자식을 지배계급으로 편입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어 법학을 공부했다. 『소송』, 『법 앞에서』, 『심판』 등 그의 작품이 법 냄새를 풍기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고압적인 자세로 아이들을 대했다고 전한다. 그는 이런 아버지에게 열등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저는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분명 저 역시 여느 아이들처럼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였지요. (중략) 아버지께서는 아이를 아버지 자신이 겪으신 대로만 다룰 줄 아시지요. 완력을 쓰시고, 고함을 지르시고, 버럭 화를 내시면서 말이에요. 더군다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한테는 또한 매우 합당한 것으로 보이셨겠지요. 왜냐하면 아버지는 저를 강하고 용감한 소년으로 키우려고 하셨으니까요.”
그는 특히 법 공부를 강요한 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가 법학 공부를 택한 이유가 “인간에 대한 무관심을 체험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했을 정도였다. 요약하면 엄격했던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강요에 못 이겨 하기 싫은 법학 공부를 해야 하는 자신의 무기력한 처지가 도시 분위기와 얽히면서 특유의 무기력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 셈이다.
카프카의 모든 것, 카프카 박물관에 있다

▲카프카 박물관 내부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아버지는 그의 작품 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카프카 박물관은 그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다. 블타바 강변에 자리했으며 프라하의 명물 카를교에서 봤을 때 쉽게 눈에 띤다. 박물관에 이르면 묘한 느낌의 조형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형상물 뒤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박물관이다. 박물관 입구엔 ‘K’를 뒤집어 붙여 놓은 조형물이 서 있다. K는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조형물에서부터 벌써 카프카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박물관 내부는 어둠침침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분위기 연출은 그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곳에선 그의 진면모를 다 감상할 수 있다. 전시물 가운데 특히 아버지의 사진과 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글이 자주 눈에 띤다. 앞서 언급했듯 아버지는 그의 인생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인물이다. 따라서 그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의 작품 활동은 아버지와 결별해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몸부림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적었다. 
“저의 모든 글은 아버지를 상대로 해서 쓰여 졌습니다. 글 속에서 저는 평소에 직접 아버지의 가슴에다 대고 토로할 수 없는 것만을 토로해댔지요. 그건 오랫동안에 걸쳐 의도적으로 진행된 아버지와의 결별 과정이었습니다.” 
박물관은 2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작품세계를 조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통로 역시 비좁다. 설계와 오브제의 배치 하나하나가 작가의 작품세계를 재현하려는 의도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실은 서류박스 모양의 전시실이다. 먼저 통로를 좁게 만들고 오브제를 온통 서류박스로 꾸며 놓았다. 열려진 서류 박스엔 그의 작품집이 전시돼 있고, 서류 박스 옆에 달린 전화기를 들면 그의 작품을 들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몽환적이면서도 한 걸음 들어가면 몰인정한 관료체제의 비인간성과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프라하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노동자 재해보험국에 취직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그가 갈파한 관료체제의 부조리는 보험국에서 일할 때 체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류박스 모양의 전시실은 그의 관리로서의 이력과 이를 통해 체득한 관료사회의 비인간성을 단번에 느끼게 해준다. 
“쓸쓸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여기저기 그 어디든 끼여 보고 싶어 하는 사람, 하루의 시간이나 날씨, 직장 사정의 변화 따위를 생각하다 보면 그만 그 어느 것이든, 매달릴 수 있을 팔이 보고 싶기만 한 이 — 그는 골목으로 난 창(窓)이 없이는 오랫동안 그렇게 지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상황이 그가 전혀 아무것도 찾고 있지 않으며 다만 눈이 세상과 하늘 사이를 오르내리는 피곤한 사람으로 창벽에 다가서는 것이라면 그가 별 뜻 없이 머리를 약간 뒤로 젖혀도 저 아래 있는 말[馬]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말에 달린 마차와 소음 그리고 그로써 드디어 인간적인 융화에로 잡아끄는 것이다.”
 
▲블타바강 풍경
▲카프카 박물관 내 전시실. 서류박스와 전화기 오브제는 카프카가 묘사한 관료체제의 부조리를 상징한다.

단편 「골목으로 난 창」의 한 대목이다. 그의 작품이 몽환적이고, 부조리하지만 그는 인간적인 융화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의 갈망은 그의 시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동시대인 중에서 그를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그의 작품은 냉전 시절 더욱 홀대를 당했다. 옛 소련은 1964년까지 그를 ‘절망과 불안을 조장하는 부르주아 반동작가, 퇴폐작가’로 규정하고 그의 작품의 러시아어 번역•출간을 금지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사후에 비로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그려낸 부조리와 고독, 관료체제의 비인간성 등은 20세기 인간존재가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것 같다. 그는 생전에 “한 개인에 대한 후세 사람들의 판단은 그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판단보다 정당하기 마련”이라고 적은 바 있었다. 그리고 그의 호언장담은 현실이 됐다. 
카프카 박물관은 그의 작품 세계를 구현해 낸 프라하 관광의 명소다. 우리나라도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자체마다 해당 지자체 출신 문인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이 한 두 개쯤 있다. 그러나 문학관 외관이나 전시물 배치는 천편일률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카프카 박물관처럼 문인들의 작품세계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문학관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일까?(※사진= 지유석 기자, 장비지원 = 소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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