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이 격화되면서 국제사회는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국제여론은 하마스에 비해 월등한 군사력을 가진 이스라엘이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대상으로 공습을 감행하는 데 대해 분노한다. 그러나 한국, 특히 한국기독교계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기장)을 제외하곤 잠잠하다. 오히려 일부 기독교인들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을 옹호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교회가 유대교에 대한 이해가 빈약한데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현재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한데 따른 결과다.
이에 대해 정언향교회 권영진 목사는 유대교를 비교적 상세히 알려준다. 아래 글은 정언향 교회 세미나 강의안을 요약한 것으로 권 목사는 “현재의 시오니즘적 정치관점에서 세워진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은 과연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인가? 유대인들 안에서도 이 부분은 논쟁이 많다”고 꼬집었다. 권 목사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정언향교회 권영진 목사가 최근 교회 세미나에서 이-팔 갈등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열어 주목을 모았다. 그의 동의를 얻어 강연 전문을 싣는다. ⓒ베리타스 DB |
1. 유대교(Judaism)
주로 랍비들이 해석한 경전(토라를 중심으로 함)의 내용을 믿고 받아들이며 이에 따른 규범들을 지키고자 하는 종교, 다른 말로 유대주의라고도 표현한다(주 1). 유대교는 토라로 대변되는 율법을 믿으며 그 율법의 증여자인 여호와(야웨)를 믿는 모든 분파들을 포괄한다. 유대교는 통일된 신조(creed)가 없으며 유대인이 믿고 있는 모든 신앙의 전반을 포함한다. 따라서 유대교 안에는 많은 분파가 있다.
2. 유대인에 대해
유대인은 크게 아슈케나짐(Ashkenazim, 주로 독일, 프랑스 등 유럽본토 지역에 분포)과 세파르딤(Sephardim, 스페인 등 남부 유럽과 이슬람권에 분포)으로 나눠진다. 이 중 이스라엘 본토와 미국의 유대인의 거의 대부분은 아슈케나짐 계통이며 현대의 유대인이라면 보통 이쪽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래 유대인은 혈통적으로 셈족 계열이고 오히려 소수인 세파르딤 계열이다. 따라서 현대 유대인이 혈통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은 상대적으로 혈통적 정통성이 약한 아슈케나짐 계열의 유대인들의 자구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1)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은 사실 많은 유대인 연구가들이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주후 7세기에 존재했던 동구권의 왕국인 카자르 왕국의 후예들이라고 보고 있다. 서기 740년 경 이 나라의 불란 왕이 유대교에 심취해서 개종하자 국민들이 대부분 왕을 따라 개종했고 그 결과 비유대인의 나라가 유대인의 왕국이 되는 특이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2) 카자르 왕국은 훗날 9세기경부터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고 13세기에 멸망했다. 이후 카자르 왕국 사람들은 동부 유럽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흩어지게 되었으나 그들의 신앙은 여전히 굳건했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현재의 아슈케나짐 유대인의 조상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 역사학자들은 이들을 [13번째 지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를 미국과 이스라엘 본토의 유대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되었을 때 자신들의 유대적 순수성이 의심받게 되기 때문이다.
3) 유대인들은 특이하계도 모계중심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아버지의 종교 및 인종과 상관없이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한다(주 2). 물론 진보적 유대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하다. 그 외에는 유대교로 개종하기로 결심하고 정통 랍비의 입회하에 유대교 의식을 치른 사람도 유대인으로 받아들인다.
3. 유대교의 역사 분류(주 3)
1) 유대교의 시작(원시 유대교): 바빌론 포로생활로부터 귀환한 뒤 에스라의 성전개혁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이후 제2성전 시대(주전 6세기 후반부터 주후 70년 성전 파괴 때까지)가 시작되는데 이 때 유대교가 종교로서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Second Temple Judaism).
- 에스라의 성전중심 신앙공동체운동/순혈주의(유대교 선민사상의 기반)/율법 중심의 공동체(주 4)
- 본래 율법은 언약을 근거로 해서 주어진 것이었으나 이 시기에 율법은 언약 자체가 되었고 율법 준수가 언약 안에 있음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고 말았다.
- 중간사 시대를 거치면서 유대인 공동체, 특히 디아스포라 유대공동체는 외부 문명과 문화, 특히 페르시아와 헬레니즘의 사상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유대교/유대주의는 사실 중간사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큰 영향일 끼친 헬레니즘에 대한 반동의 개념으로 유대인들이 자신들 스스로를 규정하고자 했던 시도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분명 주전 2세기 마카비 독립운동이 한창인 때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셀류커스 왕조와의 투쟁을 통해 헬레니즘의 침투와 영향을 부정하고 유대인 스스로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시도가 유다이즘 운동을 불러 일으켰고 이것은 다분히 외세의 척결과 이방인들을 반대하는 폭력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주 5).
- 율법들이 강조되면서 율법들이 정리되고 집대성되었으며 그 결과가 바로 정경으로서의 성문화된 경전의 탄생이다. 단편적, 혹은 부분적으로 전승된 자료들이 완성된 형태의 성문서(기록문서)로 정리되면서 소위 말하는 타나크(토라, 네비임[예언서], 케투빔[성문서])가 서서히 확립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된 경전들은 절대화된 규범으로 고착되었다.
2) 랍비 유대교(2세기-18세기)
- 70-200년까지 미슈나가 완성되기까지의 기간을 탄나임 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힐렐과 샴마이파로 나눠진 아브네 학파, 즉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랍비들이 토라에 대한 해석들을 활발히 하던 시기다.
- 200년 경 미슈나가 완성된 이후 율법 해석자들의 시대인 아모라임 시대가 열렸고 이 시기에 유명한 탈무드가 편찬되었다. 초기에는 예루살렘 탈무드(5세기 초)가 먼저 집필되었으나 곧 주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 집필된 바빌로니아 탈무드(7세기 초)가 편찬되었고 이것이 훨씬 큰 호응을 얻어 이후 보편적인 탈무드로 인정받게 되었다.
- 중세 이래 유대교는 크게 아슈케나짐과 세파르딤으로 양분되었고 세파르딤 계열의 유대인들은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주로 이슬람 문화권이었던 스페인 지역으로 이주했고 이슬람의 영향 아래에서 비교적 상호 호혜적인 대우를 받았다. 이로써 세파르딤은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을 상당히 받게 되었다.
- 반면에 유럽을 중심으로 분포한 아슈케나짐은 기독교들의 핍박을 받게 되었고 특히 이후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유대인은 이교도적 핍박을 받아야 했다. 또한 기독교는 1215년의 라테란 공회에서 반유대주의를 분명히 했다. 이후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임을 식별할 수 있는 표식을 해야 했고 또한 14세기의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 때 유대인들은 그 원흉으로 지목받아 수많은 고통을 당했고 추방을 당해야 했다.
- 18세기 초까지 유대인 구역(게토)에 격리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던 유대인들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유럽의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3) 현대 유대교(18세기 이후)
- 산업의 발달과 함께 유대인들은 금융, 제조업 등 산업 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많은 금융자산을 모을 수 있었다. 또한 미국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건너가 미국 사회에 200개가 넘는 회당공동체를 세웠다. 이런 이유로 현재 전 세계의 유대인 중 본토 이스라엘(500만)보다 더 많은 유대인이 미국(580만)에 살고 있다.
- 13세기 이후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유대교의 신비주의 운동(카발라)은 18세기에 이르러 하시딤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유대교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끼쳤다.
- 19세기 말엽에는 시온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 태생 유대인 작가 테오도어 헤르츨(1860~1964)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국가를 세운다는 기치 아래 1897년 바젤에서 제1차 시온주의 세계대회를 열었다.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A. J. 밸푸어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에 찬동한다고 선언했다. 1918년 영국군은 독일과 동맹을 맺은 터키 군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냈다.
- 1930년대와 1940년대 초에 서구의 유대인들이 히틀러의 박해를 피하여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이주함으로써 유대인들과 아랍 원주민들 간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1947년 11월 29일 국제연합이 이스라엘 독립을 승인한 데 이어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포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들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이스라엘 독립전쟁(1948~49), 6일 전쟁(1967) 등이 대표적인 전쟁이다.
4. 유대교의 경전, 율법(토라)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율법(토라)인데 토라는 단순히 오경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경으로부터 파생된 가르침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1) 보통 여기에는 토라의 구전율법이라 할 수 있는 할라카, 토라에 대한 주석인 미드라쉬, 그리고 할라카와 미드라쉬를 합친 개념인 미슈나(바리새파는 이를 말로 된 두 번째 토라라고 불렀다), 그리고 토라 외의 유대 전승들에 대한 가르침인 학가다를 포함시킨 미슈나의 해석서라 할 수 있는 게마라, 그리고 미슈나와 게마라의 총집본이라고 할 수 있는 탈무드까지 포함시킨 개념이다.
2) 탈무드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주축이 돼서 정리한 바빌로니아 탈무드와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이 주축이 돼서 정리한 예루살렘 탈무드가 있다. 이 가운데 보통 통칭되는 탈무드는 바빌로니아 탈무드이다.
3) 유대교가 율법과 경전 중심의 종교가 된 것은 결국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이다. 성전이 사라짐으로써 제사장들 역시 종말을 맞이했고, 이제 유대교는 성전과 제의 중심의 종교에서 율법해석과 적용의 종교로 변화를 꾀하게 되었다. 또한 성전이 사라짐으로써 회당(Synagogue)과 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중심의 체제가 되었다. 사두개파로 대표되는 사제그룹이 사라지고 바리새파로 대표되는 율법의 선생들이 이끄는 체계로 변화된 것이다.
4) 메시아닉 쥬의 기원이 된 나사렛파는 초창기 기독교의 한 분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였으나 이스라엘과 유대인만을 위한 메시아로 믿었다. 이들은 바리새파로부터 85년에 이단으로 정죄당하고 90년 이후로는 회당교류를 금지당한 후 지금까지 별개의 분파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메시아닉 쥬는 현대에 들어서 복음을 듣고 회심한 유대인들이 아니다.
5. 현대 유대교 사상
1) 13세기에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에서 카발라(전통)라는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카발라 신비주의의 근원은 1세기까지 올라간다. 그 신비적 내용과 주술적 관점 등을 볼 때 카발라 신비주의는 일종의 유대적 영지주의라 할 수 있다. 당시의 헬라적 영지주의에 맞서 토라를 통해 신적인 지혜와 능력을 깨닫기 위한 수련과 방법을 체계화시키려고 한 것이 유대 카발리즘이다. 이는 현대에 들어 힌두교적 명상운동과 섞이며 뉴에이지적 세계관으로 변질되었다. 내면의 지혜를 깨달아 생명의 근원에 이르고 창조주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카발리즘의 핵심적 사상이다.
2) 카발라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하나의 ‘소프’라 하고, 10 개의 ‘세피로트’로 규정한다. 그리고 생명의 카발라 나무를 등장시킨다. 이는 창세기 1장 27절을 형상화한 것이다. 카발라에 따르면 하나님의 본질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것이다. 이것이 ‘(아인)소프’다. 이것은 ‘끝없음’이란 의미로 시간이나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능력의 한계가 없다. 소프는 우주를 다스리면서 10 개의 세피로트와 관계를 맺는다.
3) 10개의 세피로트는 케테르(왕관), 호크마흐(지혜), 비나흐(이해), 헤세드(자비) 또는 게둘라흐(위대함), 게부라흐(힘), 티페레트(영광), 네트짜흐(승리), 호드(위엄), 예소드(기반), 말쿠트(주권)를 말한다. 세피로트는 그 자체로 혹은 통합하여 우주에서 활동한다. 세피로트는 인간을 포함하는 삼라만상과 교통한다. 이런 카발라 사상은 힌두교의 차크라 사상 등과 섞이며 오컬트와 뉴에이지 사상으로 확장되었다.
4) 유대교에서 토라의 연구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페샤트(Peshat)는 표면적인 의미를 다룬다. 둘째, 레메즈(Remez)는 비유나 은유적인 의미를 다룬다. 셋째 데라쉬(Derash)는 랍비의 해석 또는 미드라쉬(Midrash)적 재해석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토라가 담고 있는 비밀의 신비적인 해석을 소드(Sod)라 하는데 토라에 담긴 내재적인 비밀을 연구하는 이 소드를 카발라라고 한다. 이 카발라 사상에는 성경에 다 담지 못한 하나님 자신에 대한 신비한 사상과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신비한 내용들이 들어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5) 현대 유대교는 정통파(과거의 형식과 규정들을 충실히 지키려는 분파), 개혁파(형식의 타파와 실천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분파/19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 보수파(정통파와 개혁파 사이에서 좀 더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분파)로 나눠진다.
6) 현재의 시오니즘적 정치관점에서 세워진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은 과연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인가? 유대인들 안에서도 이 부분은 논쟁이 많다. 그러나 다수 의견은 이곳에 이스라엘의 본토들이 회복될 때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유대인들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다.
*주석
1. 그러나 엄밀히 말해 유대주의와 유대교는 다르다. 유대주의는 시오니즘과 같은 유대인들 특유의 사상적 체계를 일컫는 말이며 이는 유대교의 하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유대주의는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의 사상적 기반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2. 유대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남자들만 했고 여자들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하나님께서는 신앙적 혈통을 남자가 아닌 여자를 통해서 맡기셨다고 한다.
3. 유대교 역사의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많은 이견(異見)과 논란이 있다. 여기서는 필자가 학자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시대별로 정리하였다.
4. 국가가 사라진 마당에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은 성전과 율법준수가 핵심이 되는 신앙공동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을 것이라고 브라이트(John Bright)는 보았다.
5. 특별히 하누카(성전회복절기)의 기원이 된 마카비 시대, 특히 주전 164년 이후는 소위 경건주의자들인 하시딤(이들은 훗날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로 양분된다. 그리고 이들과는 또 다른 제3의 길을 간 사람이 소위 에세네파라 할 수 있다)이 이끄는 격렬한 민족주의적 유대주의가 주류였다. 참고로 이들은 18세기 이후 표면으로 드러난 카발라주의를 신봉하는 신비주의자들의 집단인 하시딤과는 전혀 다른 부류다.
[편집자 주] 유대인의 혈통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상기와 상반되는 주장을 아래에 싣는다. 아래의 기사는 유대인의 혈통을 아슈케나짐과 세파르딤으로 나누는 입장에 반대하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리버티 헤럴드>의 전진우 기자가 2012년 9월 2일에 작성한 기사 “‘가짜 유대인’은 없다—카자르 유대인 음모론, 그리고 반유대주의”(기사전문 참조: http://libertyherald.co.kr/article/view.php?&ss%5Bfc%5D=4&bbs_id=libertyherald_news&doc_num=8144)에 따르면, 유대인의 혈통을 아슈케나짐과 연결시키는 입장은 반유대주의를 반영한다. 그 입장이 “요한계시록 2장의 ‘겉으로는 유대인이나 실은 사탄의 회당’이라는 구절을 인용, 유대인인 척 행세하는 가짜 유대인이 있다”는 음모론의 발로라는 것이다. 아래는 관련된 내용을 다룬 <리버티 헤럴드> 기사의 일부이다.
이 음모론의 배경은 헝가리계 영국인 아마추어 재야 사학자 아투르 쾨슬러(아서 케슬러. Arthur Koestler)가 1976년 출판한 『13번째 지파』(Thirteenth Tribe)라는 책에서 유래한다. 이 책에서 그는 중세 중앙아시아의 카자르 족(터키계 백인)이 대거 유대교로 개종하였고, 이들이 혈통적 유대인이 아닌 가짜 유대인인 ‘아슈케나지 유대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음모론은 이미 대한민국 기독교계, 특히 종말론에 심취한 그룹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가짜 유대인설을 집중적으로 강연하는 강사나 단체까지 있을 정도다. 심지어 이들은 이 가짜 유대인이 미국을 장악의 사법, 행정, 금융권을 장악했고, 프리메이슨 혹은 신세계질서로 대표되는 세계지배 그룹의 우두머리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정확할까? 음모론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2005년 나왔다. 2005년 Almut Nebel 연구진은 실제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염색체 정보를 조사해 발표했다. 그 결과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혈통은 그들이 흩어져 살았던 지역의 유럽인들보다 다른 유대인들과 중동인들에 더욱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혈통적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다. (http://www.nature.com/ejhg/journal/v13/n3/full/5201319a.html 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2010년에는 더욱 정확한 자료가 나왔다. 유전학자 해리 오스트러(Harry Ostrer)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DNA를 추출해 혈통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유럽인들보다 중동 유대인들, 그리고 세파르딕 유대인들과 더욱 가까운 근연관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카자르족 가설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http://news.sciencemag.org/sciencenow/2010/06/tracing-the-roots-of-jewishness.html 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유전 정보는 우리에게 가짜 유대인 설이 근거없는 낭설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음모론은 유대인들을 지지하거나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반유대주의의 큰 흐름으로 우리를 이끌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