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로마서 7장 14~25절
설교문
오늘 본문 24절에 보면 위대한 사도 바울이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라고 토로하며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고 부르짖습니다. ‘곤고한 사람’은 원어해석을 보면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 ‘불행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공동번역에는 ‘비참한 인간’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인간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나님의 능력으로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바울사도가 왜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자신의 내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복음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하고 있지만 / 그런 모습속에 감추어져 있던 자신의 본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세상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모습입니다.
열왕기상 19:4절에 보면 악한 아합왕에 맞서 바알의 선지자 4백 5십, 아세라의 선지자 4백 인을 홀로 맞서 승리한 직후 엘리야선지자의 나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왜 입니까? 자신에게 나타난 능력과는 전혀 다른, 자신이 행한 기적과는 다른 자신의 본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사역은 커녕 한 시도 더 앉아 있을 힘조차 없이 갈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모습을 보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가면 쇠진하여 믿음의 삶을 중단하거나, 교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사역 뿐만 아니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사는 우리 성도들이 일상 생활하는 자리에서 항상 돌아보아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 어려운 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들의 곤고한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먼저)
@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의 본성가운데 사는 모습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바울은 율법은 분명히 신령한 것이지만 율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은 전혀 신령하지 않아 죄의 노예상태에 또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내적 자각입니다. 어떤 행위를 통해서 드러난 구체적인 범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 사역할 때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을 발견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죄가 실천되지 않았을 뿐이지 바울은 자신이 죄의 본성을 인식한 그 순간 이미 죄에 져 있었음을 자각한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자각을 하지 못하거나 이 자각을 무시하면 결국은 언젠가 쓰러지고 맙니다.
오래전 <목회와 신학>, 소특집으로 ‘중독’에 대한 몇 개의 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중독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직면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만들어 낸 여러 우상-돈, 권력, 명예, 목회의 성공등-에 기대어 살아가는 현상이다’ 참으로 의미있는 말입니다. 진정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 순간 무너지는 자신의 곤고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안에 남아 있는 죄의 본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님앞에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역의 성과를 거두는 것 이상 중요하고 또 다른 의미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가운데에도 여전히 죄의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우리에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자만심가운데 넘어졌던 다윗의 평생의 기도입니다. 시편 51:10-11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자신의 곤고함을 늘 인식하고 살았던 바울사도의 평생의 실천과제입니다. 고린도전서 9:27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 우리 인생의 곤고한 모습은 ‘내가 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곤고한 인생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들이 정직하게 겸손히 인정해야 할 모습이기도 합니다.
저나 우리 성도들님들이 좋은 말을 많이 하고 선한 일을 많이 알지만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이끌어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곤고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원하는 선한 것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비참함입니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인생의 당연한 모습입니다. 이제는 가슴을 치지 마시고, 죄 없는 입술을 쥐어 뜯지 마시고 이렇게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이 곤고한 인생이여!’, ‘주여! 나를 불쌍이 여기소서!’
인생이 곤고한 것임을 새록새록 깨닫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곤고한 인생을 통해 깨달은 바울사도의 놀라운 고백이 있습니다. 본문 17-21절입니다.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죄에 굴복하는 악의 본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각이 이 밤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영적통찰력입니다.
이 곤고한 인생의 자각속에 우리의 실천과제가 주어집니다. 바로 영적전쟁의 과제입니다. 본문 22-23절입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바울사도는 자기 안에 싸움이 있음을 발견한 동시에 그 싸움에서 지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의 고백과 토로가 나온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이 절규는 바로 바울사도를 승리로 이끌어 줍니다. 이 지는 싸움을 이기게 해 주시는 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시대 신앙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곤고함을 깨닫고 절규하는 진실한 고백속에 우리가 허락받은 감사의 제목이 드러납니다.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비참한 모습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생의 곤고한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이름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 요한복음 20:31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곤고한 인생의 비참함에서 예수님을 만나 그 이름의 능력으로 승리한 바울사도의 고백입니다. 22-25절의 현대어성경 번역입니다.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 싶어하면서도 내 속 깊은 곳에 어떤 다른 것이 있어서 그것이 내 마음에 분란을 일으켜 나를 누르고 아직도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마음으로는 늘 기쁨으로 하나님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봅니다. 이제 여러분은 내 형편이 어떻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인간입니까! 누가 이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 상태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것입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분이 나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 시간 인생의 곤고함속에서도 이 자각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만나시는 저와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기신 주님을 의지하여 곤고함에서 매 순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