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민수기 11:11-17
모세가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이렇게도 괴롭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주님의 눈 밖에 벗어나게 하시어, 이 모든 백성을 저에게 짊어지우십니까? 이 모든 백성을 제가 배기라도 했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마치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그들을 품에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백성은 저를 보고 울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달라!’ 하고 외치는데,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저 혼자서는 도저히 이 모든 백성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무겁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정말로 이렇게 하셔야 하겠다면, 그리고 제가 주님의 눈 밖에 나지 않았다면, 제발 저를 죽이셔서, 제가 이 곤경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이스라엘 장로들 가운데서, 네가 백성의 장로들 또는 그 지도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일흔 명을 나에게로 불러 오너라. 너는 그들을 데리고 회막으로 와서 그들과 함께 서라. 내가 내려가 거기에서 너와 말하겠다. 그리고 너에게 내려 준 영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서, 백성 돌보는 짐을, 그들이 너와 함께 지게 하겠다. 그러면 너 혼자서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멘.
고린도전서 12:12-20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 몸이듯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몸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온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온몸이 다 귀라면, 어떻게 냄새를 맡겠습니까? 그런데 실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다가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전체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다고 하면,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실은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아멘.
요한복음서 14:23-2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듣고 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이 말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아멘.
설교문
오늘부터 성령강림절 시작입니다. 성령이 만백성을 감동 감화시키고, 이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온 세상 끝까지 주 하나님이 우리의 구세주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모세를 통해 주신 성령의 역사와 오늘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성령의 은총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은 한분이시지만 성령을 받으면 그 은사는 여럿이다라는 것입니다. 여럿과 하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몸에 붙어 있는 여러 지체는 한 몸의 지체임으로 그 지체가 풍성히 은혜를 받아서 건강해야 하고, 또 건강한 지체가 만든 몸도 건강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면서 광야에서의 고통 받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광야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 이야기로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 했습니다. 말은 종살이인데 오늘 말씀을 보면 먹고, 마시는 것은 잘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먹고 마시는 것은 충분한데 자유가 없습니다. 자기 나라가 아니라 식민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먹고 마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독립적인 존재이었으면 좋겠다. 출애굽은 잘 먹고 마시는 백성들에게 이제는 자유까지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자유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 생각의 자유, 살아가는 자유, 이 모든 자유 없이는 먹고 마시는 것이 동물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의 약속을 받고, 지도자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 광야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이집트 종살이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까지 40년 광야생활을 시작합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40이라는 숫자는 고난, 아픔, 그리고 실연을 의미합니다. 광야생활 하면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가는 40년,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것도 40일입니다.
예수님의 광야 시험 가운데 첫 번째는 사탄이 배고픈 예수님에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을 떡이 되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배고프면 살 수가 없습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먹는 것으로 첫 번째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배고프면 먹어야하고, 그런 의미에서 떡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은 떡으로만 살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한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오면서 똑같은 시험을 백성들에게 합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이집트 종살이 할 때는 자유는 없었지만 먹은 것은 풍족했지만 광야생활은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다고 불평합니다. 배고픈 자유, 아니면 배불리 먹고 마실 수 있는 억압,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배부르며 자유하다면 행복이라고 합니다. 두 개가 없으면 지옥입니다. 둘 중에 하나만 있으면 고민입니다. 오늘 광야는 고민의 최절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배고픔의 고통을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내려주십니다. 만나는 조그만 씨앗처럼 생겼습니다. 이것을 맷돌에 갈아 가루를 내어 전처럼 부쳐먹습니다. 그것을 40년 동안 아침마다 먹었습니다. 여러분은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또 한 번은 물이 없어 그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했더니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마실 물을 주십니다. 마실 물이 부족하고, 먹을 게 없으면 사람의 정신이 돕니다.
제 경험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도 아프신 분들 있으신데요. 제가 수술을 마친 이후로는 매운 것을 먹지 못합니다. 이전에 그렇게 맛있게 먹던 찌개, 고춧가루를 팍팍 풀어서 먹었던 음식, 오장동의 함흥냉면 등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매워서 이제는 먹지 못해 참 많이 아쉽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김치도 이제는 매워서 그대로 먹지 못합니다. 물에 씻어야 먹을 수 있습니다. 배고픈 것도 아닌데 과거에 맛있게 먹었던 것을 먹지 못하니까 화가 납니다. 지금은 이렇게 극복합니다. 고추 없는 건강식을 먹는다. 아침마다 만나를 먹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의 과거를 생각하게 됩니다. 민수기 11장 말씀입니다. 이집트에 지낼때는 생선을 공짜로 먹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생활은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 왜 우리를 여기로 이끌어내셨습니까? 약속의 땅 가나안을 믿고 따라왔는데, 이 40년 광야생활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만이 어찌나 많았던지 지도자의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제부터는 나의 영을 보내어 너와 내 백성을 이끌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일은 이런 것입니다. 백성 가운데 70명의 대표를 선출하여라. 그리고 그 대표들을 회막으로 불러 소개하고 내 앞에서 명세해라. 너 모세는 70명의 대표들과 함께 공동책임을 지고, 이 백성을 잘 이끌어라. 왜 70명이었을까요? 성경에 많은 숫자가 나옵니다. 그 중에서 7일이라는 숫자는 완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동서남북의 4에다가 그 당시 세계관인 하늘/땅/지하를 의미하는 3을 더한 것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만드신 온 땅, 온 백성, 모든 사람의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일주일도 7일입니다. 초대교회 대표자인 집사를 뽑을 때도 전교인의 대표라는 뜻으로 7명의 집사를 선택합니다. 오늘 70명은 완전을 의미하는 7에 10을 곱한 것입니다. 이 뜻은 당시 광야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표한다는 것입니다. 이 70명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합니다. 성령은 각자의 대표자들에게 능력을 부어서 모세와 함께 백성을 이끌게 합니다. 3천년 전의 교훈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각각 다르지만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교훈입니다. 이렇게 모세를 통해 성령은 집행부를 만들어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무대를 바꿉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여러분은 권능과 은총을 받습니다. 그 권능과 은총은 각각 다른 지체들이 받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단, 우리는 다양한 능력을 받지만 우리는 합하여 한 몸이 되어야합니다. 이 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몸이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입니다. 지체끼리 서로 싸우지 마십시오. 지체마다 기능이 다양합니다. 손이 발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눈은 눈으로, 귀는 귀의 목적대로 각자 맡은 책임과 임무를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 충성되게 각자의 역할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다양한 축복의 기능입니다. 합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각자 성실히 사십시오. 모두가 성실하면 몸이 편안합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기능 중에 하나님이 만드신 기능 중에 하나라도 실족하면 온 몸이 전쟁입니다. 한 지체만 실패해도 사람은 죽습니다. 반대로 한 지체가 행복하면 온 몸이 편안합니다. 따라서 지체를 거부하거나, 능멸하거나, 짓밟지 마십시오. 모든 지체는 크기와 위치와 상관없이 몸을 지탱하는 아주 독특하고 유일한 방식으로 각자만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은 한 몸과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 서로가 상통하게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성령을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 성령을 받아서 한 몸 여러 지체로 사십시오. 꼭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몸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를 만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동양고전인 <명심보감>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옛날 서당에서 필수과목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말로도 잘 번역되어있습니다. 명심보감 근학편(勤學篇)의 내용은 사람이 잘 배우면 구름도 다 헤치고 푸르는 하늘을 보면서 산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참 이치가 있으며, 좋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반대로, 배우지 못하면 교만해 하늘로 막 올라가다 떨어져 죽습니다. 그러니 겸손해야 합니다. 이렇게 설명하고서 장자(莊子)가 우화 하나를 이야기합니다. 우화 내용이 재미있어 인용하겠습니다.
원숭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큰 나무 밑에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깜깜한 밤에 연못을 보니 그 안에 아주 둥근 달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원숭이가 하는 말이, 왜 이 세상을 비추는 달이 연못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지하며 달을 구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꼬리에 꼬리를 잡고 연못 속에 들어 있는 달을 꺼내고자 했으나, 원숭이들이 꼬리로 연결했던 나무가 뽑혀 모두다 연못에 빠졌습니다. 원숭이가 아닌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왜 원숭이들은 고개를 숙여 연못 속에 있는 달만 쳐다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에 있는 달은 보지 못했을까? 이것이 사람의 평가입니다. 짐승과 사람의 차이가 있지요? 보는 눈은 같으나 짐승은 합리적/이성적 판단이 모자랍니다. 눈에 보이는 연못 속에 갇힌 달만 보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중요한 것은 달이 하늘에 떠있지만 달이 연못에 비추면 반사 빛으로 연못에 보입니다. 연못에 있는 달도 달이지만 그것은 반사된 달입니다. 복제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에 계시지만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복사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비친 하나님은 복사판이지 원판이 아닙니다. 원판은 항상 하늘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땅에 있는 달이 중요하면 그 달의 원형인 하늘에 뜬 달을 봐야합니다. 두 달이 항상 교류를 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이 사실은 원숭이는 모르지만 우리는 압니다. 세상만사가 다 힘들고, 기쁘고 격차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하늘이 원본입니다. 이 땅에 평화가 있지만 그 평화의 원본은 평화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세상의 역사가 있지만 그 역사를 만드신 창조주이 세계가 따로 있습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사본만 가지고 서로 얼굴 붉히며 싸우지 맙시다. 이것을 만드신 원본이 있다는 것을 항상 깨달으십시오. 몸에 붙은 지체가 힘들면 이 지체가 붙어 있는 몸이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몸이 건강해야 지체가 건강합니다. 지체가 건강해야 몸도 건강합니다.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사람의 몸은 다 붙어 있어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혈액순환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지체와 몸을 연결시켜 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사랑으로 연결시켜주십니다. 성령은 혈액과 같아서 사랑으로 연결해 온 몸속에 혈액순환 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랑으로 연결시키고 그 사랑을 가지고 연결시켜주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평화라는 선물을 주겠다. 갑작스럽게 평화 이야기를 하십니다. 제가 평화라는 말씀을 거대담론이 아닌 오늘 나눈 몸의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평화란 몸이 건강한 것입니다. 나라의 평화는 나라가 건강해지고, 가족이 건강해지고 우리가 안전한 것입니다. 국민이 행복하고 편안해야 나라가 평화합니다. 나라가 평안을 이루어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의 지체로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합니다. 이를 모두가 동참해야 합니다. 이렇듯, 평화는 몸의 붙은 지체들에게 병이 없어야 합니다. 지체들은 원활한 혈액순환을 통해 건강하게 자신의 계명을 행사해야합니다. 예수님 말씀은 눈은 보는 역할에 충실하면 되고, 귀를 보고 너는 왜 귀라고 말하지 않아야합니다. 눈이 귀를 밟으면 안 됩니다. 귀가 눈을 밟으면 안 됩니다. 손이 발을 업신여기면 안 됩니다. 발이 손을 때리면 안 됩니다. 몸의 각 지체들 간에는 서로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한쪽만 위하면 안 됩니다. 지체끼리는 서로 공평무사해야 합니다. 공명정대해야 합니다. 이 말을 전문영어로 ‘정의’라고 이름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거대담론 속의 정의가 아니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관계 속에서 옳고, 좋고, 복되고, 존경스러운 것을 정의라고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의롭게 관계를 맺고 살아야 그 지체가 몸이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우리 몸에 오셔서 지체를 활성화 시키면서 각 지체끼리 서로 존중하고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의롭게 살자. 그러면 지체가 붙은 몸 전체가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평화 없는 정의는 불가능 합니다. 정의가 없는 평화도 불가능합니다. 둘이 합쳐져야 합니다. 이것을 엮는 역할을 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리스도인 몸과 몸의 붙은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으로 하나로 묶여서 삽니다. 그리스도인들끼리도 사랑으로 연결되어 서로 함께 살아갑니다. 온 땅도, 저 자신도, 가정도, 사회도 다 사랑 안에서 서로 엮여서 행복하고, 복되고, 평화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풍성하게 받아야 합니다. 현충일에 순국하신 분들은 우리 몸에 붙은 지체들입니다. 그분들 덕분에 나머지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베풀어주신 사랑을 갚기 위해 앞으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땅에 있는 지체들이 복되고, 자기 역할을 성실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성령이 역사 하십니다. 모아서 아름답고, 건강하고, 평화스러운 가정을, 몸을, 나라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성령은 만백성을 구원합니다. 모든 사람을 한 분 한 분 다 구원합니다. 평화 누리십시오. 정의를 누리십시오. 행복을 누리십시오. 그래서 로마서 말씀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화요, 정의요, 기쁨입니다. 성령이 사랑의 역사를 하십니다. 사랑을 풍성히 받으십시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이 기쁨을 온 땅에 전하게 되느니라. 여러분은 이 일에 증인입니다. 주체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풍성히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