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들보와 티

2014년 7월 13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창세기 50:15-21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요셉이 자기들을 미워하여, 그들에게서 당한 온갖 억울함을 앙갚음하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기신 유언이 있습니다. 아우님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너의 형들이 너에게 몹쓸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 이 아버지는 네가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바란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우님은, 우리 아버지께서 섬기신 그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서 울었다. 곧 이어서 요셉의 형들이 직접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우리는 아우님의 종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다. 아멘. 
로마서 12:17-21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아멘. 
누가복음서 6:39-42 
예수께서 그들에게 또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자기의 스승과 같이 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에게 `친구야, 내가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줄 테니 가만히 있어라`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리해야 그 때에 네가 똑똑히 보게 되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멘. 
설교문
하나님이 하시는 일 중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은혜를 받았으면 "춤을 춰라"고 하십니다. 춤추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춤을 못 추겠으면 "찬양하여라"고 하십니다. 찬양을 잘 하시는 분도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춤추고, 찬양합시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있길 기도합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에 예수께서 주시는 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세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상반기 6개월을 지내면서 춤추고, 노래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너무 무거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사고가 많이 났는지,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람 죽는 이야기, 전쟁하는 이야기, 악이 창궐하는 이야기로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7월부터는 이전 달과는 달리 좋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세월호참사로 인해 우리 모두는 공허하고, 괴롭고,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것들을 고쳐야 하는데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여러분들도 머리와 가슴으로 그 방법을 고민하고 있으니 좋은 생각 있으시면 함께 모아봅시다. 미국이 9.11 사태 이후 변화된 미국을 만들었듯이, 우리 한국사회도 4.16 참사 이후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읽었던 책에서 본 통계 하나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1930년대 이후로 미국은 많은 재난을 경험했습니다. 세계 제 1차 대전, 이 대전이 끝나고 나서 찾아온 정치적 불안은 물론이고 특히 험악한 경제공황 등입니다. 이렇게 재난과 사건이 나면 보험회사가 뒷감당의 일을 시작합니다. 그런 와중에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 관리감독자였던 H. W. 하인리히가 그의 저서 <산업재해예방>에서 소개한 내용입니다. 수천 건의 보험 사건사고 자료 분석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나의 대형 사고가 나기 까지 동일한 원인으로 경미한 사고가 29건 발생하고, 위험에 노출되는 이상 징후가 300건 정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토대로 ‘1:29:300’ 원리가 생겼읍니다. 이런 원리에 따르면 4.16참사 전에 최소한 29개의 동일한 원인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며, 300건의 이상 징후가 우리사회 곳곳에서 발견되었을 것입니다. 사고가 난 후에 어떻게 수습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합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이상 징후를 깨달았으면 그것을 예방 하는 것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을 놓쳤다면 그 후 경미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민첩하게 움지여서 대형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사회는 4.16 이후 그렇게 재난의 예방책을 마련하고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7월에 들어와서 아주 경미하지만 중요한 단초가 되는 일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있었습니다. 지금 동북아는 굉장히 험난하며, 불안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1일 서울의 롯데호텔에서 일본 자위대 창설 60주년 기념식이 열릴 예정이었는데 취소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 알고 계시지요! 과거에는 없었던 사건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현재 평화헌법 재해석을 통해 자위대를 파견하고자 하는 일본의 태도와 모습에 반일감정이 깔려있습니다. 여기에 중국 시진핑 주석이 다녀가면서 세상이 들썩 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인 7월 11일 평양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1961년 7월 11일에 북한과 중국 사이에 「조중우호협력원조조약」이 체결됩니다. 그 조약의 내용은 한 나라가 군사적으로 공격을 당하면 상대방 나라는 무조건 군사적으로 개입해 돕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강력한 동맹의 내용을 담고 있는 조약이 체결 된 53주년 기념식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도, 평양에서도 아무런 기념식도 어떤 논평도 없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이 결돌하는 상황, 한국과 중국이 우호를 다지면서 북한과 일본이 가까와지고 있는 형상, 한잉간의 고질적인 역사갈등이 이제는 일본의 국국주의화로 치닫는 등의 동북아 정세로 인해 우리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이상한 징후들 인 것 같습니다. 지난 세월 우리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말발굽에 짓밟혔습니다. 나라도 잃었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지만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강대국 사이에서 떳떳하게 중재자로서 우리의 자주적인 힘있는 삶을 준비해야 시가가 왔습니다. 우리들은 앞선 말씀드린 상황을 직시하고, 주변국들과 협력하면서도 자주적으로 통일도 준비하고, 힘을 길러 강대국으로부터 살아남아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준비할 기회를 깨닫지 못하면 이 다음 언젠가 대형 사고를 만났을 때 준비 할 걸 하면 이미 늦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가운데 징후와 사고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깨닫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 한 분 한 분들이 일상생활 가운데서 이런 징후를 깨달으며 슬픔도, 기쁨도, 그리고 고난도 맛보고 그럴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온 세상의 역사를 분석하는 거대담론부터 우리 각자의 삶에 이르기까지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땅에서 어떤 징조가 생기면 그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미래를 향해서 준비하라고. 오늘 괴롭다고해서 오늘로 끝내지 말고 내일의 주인이신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준비하며 살아라고. 오늘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슬프고, 억울한 일이 많이 있을 텐데 한 가지 유념해야 합니다. 그것은 악을 악으로 갚으면 둘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분노를 분노로 갚으면 둘 다 죽습니다. 전쟁을 하게 되면 무기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두가 손해를 봅니다. 그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보복의 패러다임과 같이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서로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바울이 회심하면서 하늘로부터 받은 음성이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망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악에 지면 안 됩니다.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합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선은 강하고, 선이 강한 힘입니다. 그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면 우리 마음 가운데 분노가 남아 있습니다. 그 분노는 악을 행하는 자가 우리의 원수인데, 그 원수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는 분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원수 갚는 일은 나에게 맡겨라.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그 대신 너는 원수 갚는 것을 나에게 맡기고 너는 사랑과 선으로 그 악을 이겨라`고.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선으로 원수 갚으라는 것"이 고민입니다. 원수는 꼭 갚아야지요. 예수님 말씀입니다. "네 원수가 배고프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원수의 머리위에 불길이 있게 하여라". 우리가 원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줄 때 하나님은 그 안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불길로 상대방의 원수됨을 태우는 역사를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렇기에 선으로 악을 갚아서 이겨야 합니다. 말은 옳지만 힘드시지요? 예수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 가운데 받습니다만, 그건 역설 아닙니까! 어떻게 세상을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악을 선으로 갚아 이기라니요. 악을 악으로 갚아야지요.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왜 사도바울은 이렇게 살아야 복을 받고, 춤 출수 있다고, 찬송할 수 있다고 했을까요? 
오늘 구약의 본문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요셉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야곱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은 열한 번째 요셉입니다. 요셉을 너무 사랑하다보니, 위 열 형제들이 요셉을 질투하고, 시기합니다. 아버지는 편파적 사랑을 한다고 난리입니다. 시기와 질투를 발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한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의 분노와 질투로 이집트 상인에게 팔려갑니다. 여러분, 요즘 세계 각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만, 우리사회도 보고 있노라면 참 한심합니다.자식도 팔지요? 부모도 팔지요? 아니면 죽이지요? 옛날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가문 가운데서도 형제들이 공모하여 자신들이 시샘하는 형제 하나를 판 사건,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싱앙전통의 핵심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나쁜 가문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아주 훌륭한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형제를 판 사건, 수천 년 전 사건입니다. 이렇게 요셉이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이스라엘 가정과 야곱 가정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요셉이 바로왕의 꿈 해몽을 잘해서 이집트의 총리가 됩니다. 물론, 요셉은 총리재임시절에 7년 풍년을 잘 대비해 7년 흉년을 잘 대비합니다. 훌륭한 정치가가 되었읍니다. 
이집트에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흉년으로 인해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이 이스라엘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족속들은 나라 이름도 없었습니다. 식량을 얻기 위해 이집트로 이주해 옵니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장면입니다. 형제들이 보복이 두려와 요셉에게 변명 합니다. 보복을 말며 잘도와 달라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언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목숨만 살려주길 간청합니다. 요셉이 답합니다. "내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내 마음을 움직여서 나로 하여금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우리 형제들을 받아들이라고 하나님이 작전을 바꾸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하신 것은 아니지만 나를 변화시켜 우리 형제들을 끌어안게 되었습니다". 그가 선언합니다. "제가 형들만 받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의 자식들도 책임지겠습니다"라고. 간단하게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지만 이를 오늘 신약 본문으로 해석한다면,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라.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일 것입니다. 너는 악을 선으로 이겨라. 요셉이 선으로 보복하고픈 악을 이긴 승리의 사건입니다. 바로 거기에 방점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셉이 말합니다. "제가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죽거든 형님들 자손을 통해 제 시신도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정착할 때 그 곳에 묻어주십시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고난의 역사를 통해서 마지막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려고 이렇게 역사를 만드셨습니다. 그 역사의 토막 중에 하나가 제가 지금 맡고 있는 일도 그 길로 인도하는 그 분 역사의 한토막 입니다. 형님들도 이 역사에 동참하십시오"라고요. 
예수님과 사도바울이 말한대로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다만 우리는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를 대적하는 악은 선으로 갚아서 이겨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삽니다. 예수님 당시의 세상은 어두웠습니다.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다시 속국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핍박이 다시 시작되었고, 그러니까 분노도 그리고 독립운동도 많았습니다. 로마제국의 발굽에 완전히 죽어갔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도 이런 비극의 사건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땅에서 살지 못하고 밖으로 이주해 나와 흩어져 살았습니다. 이러한 이주민 유대인들을 지칭해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로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이주하는 곳 마다 유대회당을 세워 안식일 마다 모였지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많이도 죽었습니다. 서기 313년에 로마제국에 의해 기독교 공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부터는 핍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인이 되기까지 기독교도 물론이었지만, 유대교는 더 많은 핍박을 당했으며, 통계에 의하면 150만 명 가량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로마제국에 의해서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성경말씀을 보면 유대백성들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죄사해 달라고 헌물을 받칠 때 짐승의 첫배를 가져다 받칩니다. 하나는 짐승의 목을 베어서 피를 내고 제물로 받칩니다. 그러면 죄가 용서 받는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너무 큰 죄를 지었으면 짐승을 몽땅 장작불에 올려놓고 온 몸을 불태워 죽임으로 바쳤습니다. 그것을 번제, 또는 전번제라 이름합니다. 옛날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지요.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짐승의 피도 안되고, 번제도 안되겠다고 예수께서 나서서 "내가 대신 죽을테니 다시는 피 흘리는 제사는 드리지 말아라"고 하셨읍니다. 그래서 기독교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피 흘리는 제사가 없어졌습니다. 그 당시에유대교와 이방종교에서는 피 흘리는 제사가 많았습니다. 몸을 완전히 태운다는 말의 헬라어는 ‘카우스토스’(kaustós) 입니다. 몸 전체를 태우다는 말입니다. 전체라는 말은 헬라어로 ‘홀로’(hólos)입니다. 이 둘 단어가 합쳐져 ‘홀로 카우스토스’(holokaustos/holocaust)가 됩니다. 예수님 때 이전부터 있었던 용어입니다. 오늘날 만들어진 용어가 아닙니다.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용어었습니다. 150 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이 홀로코스트 였읍니다. 로마제국 아래에서 그렇게 수십만, 수백만이 죽어갔읍니다. 히틀러의 나치 아래에서 자행된 600만 유대인학살의 홀로코스트(Halocaust)는 대문자로 써서 사용합니다. 그 이외에 소문자 홀로코스트는 집단살육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집단 살육은 지금도 유대 땅에서, 가자지구에서, 나이지라에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고 그 외의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홀로코스트를 종결합시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폭력의 홀로코스트로는 세상의 평화와 구원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결단을 합니다. 로마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국가개조 이상의 국가혁신과 제국혁신입니다. 이 총제적인 혁신을 위해 로마로 가자. 죽음을 무릅쓰고 가자. 죽으면서 가자. 수많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에 가서 무기들고 전투하며 싸웠습니까? 총을 들고 싸웠습니까? 사람을 죽였습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로마 제국이 있고, 로마 군인이 있고, 로마의 모든 시스템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은 ‘로마의 정신’이다. 로마의 정신은 사람이 가지고 있으니 먼져 사람을 바꾸자. 로마 신의 얼을 바꾸자. 지배하는 왕들의 얼을 바꾸자. 로마를 움직이는 기본 정신을 바꾸자. 로마 사람의 정신과 혼을 바꾸자. 그래서 예수님의 복음을 들고 로마로 전진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변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수용했습니다. 아니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과 얼을 변화시켰읍니다. 악을 악으로 갚은 것이 아니고, 선으로 이김으로 갚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로마에 가서 이 복음 때문에 순교하는 것을 십자가 사건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계속해서 죽어갔습니다. 홀로코스트는 계속되었고, 그것으로 로마는 일견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임당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람이 바뀌어 혼과 사상이 바뀌고 변해서 종국에는 자신들이 핍박했던 기독교 신앙을 국가신앙으로 공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로마가 기독교 복음한테 점령당했습니다. 말씀이 한 제국을 점령했읍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된것이죠. 허나 모든 권력체가 다 그러하듯, 기독교가 힘이 커지고 부유케되자 부패하고 타락했읍니다. 그 일로 로마의 기독교와 그 정신을 지녔던 로마제국도 다시 내부의 "종교개혁"을 통해 통채로 변화를 맛봅니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그런 개혁을 오늘날의 교회도 또 겪어야 합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완전하지 않아서 항상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은 세상의 혼을 변화시켜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족음으로 우리가 손으로 만든 물건이나,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나 제도의 주인인 사람의 정신을 먼져 변화시켜야 합니다. 국가의 혼과 민족의 혼을 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복음이요, 힘있는 선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으로 이기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달라집니다. 우리나라의 제도만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제도를 움직이는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혼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의 정신이 있으면 하나님에게도 "정신"이 있을 거 아닙니까, "혼"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 혼을 바로 "성령"이라고 이름합니다.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이 하나로 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악에게 지지 말아라. 악을 악으로도 갚지 말아라. 악은 이겨야 하는데,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고. 그래야 행복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외형적으로 보면 죽음으로 치닫는 패배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영과 혼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생명이 죽음을 삼켜 "죽음을 죽이고"(루터) 부활생명이 생겨납니다. 부활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도 부활하고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혼과 사람의 혼이 만나야 합니다. 이 시대의 정신과 하늘의 정신이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함께 이 구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행복과 구원은 이미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혼을 우리가 받으면 됩니다. 사랑의 혼을 받으면 됩니다. 우리는 받은 선과 사랑으로 악을 박멸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이 나라와 세상의 역사를 살아가면서 뿐만 아니라 각자 살아가면서 괴로울 때가 많으시지요? 그럴 때 마다 우리는 욱하고 분노와 실망을 크게 합니다. 저도 이렇게 마음으로 욱하면서 사람을 얼마나 죽이고, 살인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해법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결단하며 기도하렵니다. "하나님, 살리는 영을 통해 죽이는 영을 삼키게 하옵소서. 이 땅에 수많은 악이 있지만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그 악을 삼키게 하옵소서"라고. 여러분 악의 편에 서시렵니까? 생명의 편에 서시렵니까? 우리 모두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혼을 받으십시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은 하나님의 혼이며,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그 마음과 혼과 정신을 풍성하게 받으면 오늘과 내일을 아름답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선이 악을 반드시 이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이긴 그 곳에 오셔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는 선이 악을 이긴 사건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축복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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