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로마서 9:1-5
설교문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성도,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증거했습니다.
이 놀라운 섭리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드러나고 누구도 이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벅찬 감격을 가지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장에 들어오면 이 감격이 갑자기 사라지고 근심하고 고통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실, 흐름으로 보면 8장에서 12장으로 넘어가면 가장 자연스러운데 바울사도는 마음에 떨쳐버릴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9장의 말씀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현대어성경; 밤낮 마음이 무겁고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시 나누겠지만 바울사도의 이 고통이 사명이 됩니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혜가 되는 고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7: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존 칼빈은 “처음에는 무거운 짐, 아니 죽음과 연관된 짐처럼 여겨졌던 진리들이 실상은 우리의 구원과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항상 자기포기, 희생, 오늘 바울의마음에 있는 고통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우리들의 신앙을 회손시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들의 신앙의 긴장감을 더해주어 신앙의 회의나 상실감에 빠지지 않게 해 줍니다.
이제, 바울의 근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 바울이 근심하며 고통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동족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온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임으로 그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난 유대인들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동족에게 고통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이 버린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본문 3절에 그 간절한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로마서 8: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자신의 동족을 향해 그들이 버린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다고 까지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분명히 하나님께 먼저 택함받고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본문 4-5절의 증거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그들을 통해서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이 증거되기를 원하시는 더 높은 차원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이 뜻을 져버렸던 것입니다. 자신들을 먼저 택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잊어버리고 행위의 법, 율법으로 간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유대인들은 자신에게 베풀어진 은혜를 자신들이 만든 것인양 독점하게 되었고 구원받지 못한 이웃을 향한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처럼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착각) 동족이나 이방인들이 구원의 반열에 서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당시 바리새인들을 향해 계속 경고하신 이유입니다. 마태복음 23:1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결국은 자신들도 믿음의 종착역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린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로마서 9:31절 입니다.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율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은 은혜를 받으면 당연히 지키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신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여 자신도 남도 구원의 반열에서 떨어지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사도의 마음의 고통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의 상황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동족의 구원을 향한 바울의 고통>이 우리 교회와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이 가을, 저와 우리 성도들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지, 이웃, 더불어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축복의 반열에 들어섰다가 되돌아 간 믿음의 식구들을 향해 이 고통의 마음,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니엘 12:3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서)
@ 우리가 ‘선택과 예정’이라는 하나님의 뜻가운데 구원의 복을 받은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자리에 나오신 성도님들은 우리가 구원받고 이 믿음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Sola Gratia)인 것을 꼭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1:3-6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다시 한 번,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선택하심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한 일은 도망다니다가 웬 말인지 웬 은혜인지 붙잡힌 것 뿐입니다. 이 고백가운데서만 우리는 항상 겸손하며 간절하며 은혜를 소중이 여길 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체험되고 깨달아질 때 하나님께 먼저 택함받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가운데 바로 동족에게 복음을 전해겠다는 바울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아직 구원의 반열에 서지 못한 가족과 친지와 이웃들을 보면서 받는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께 드릴 기도의 제목은 원망이나 불평이 아닙니다. 왜 이토록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구원해 주시지 않으십니까? 라는 항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내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도 베풀어 지도록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자신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주신 많은 분들로 인하여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받은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십니다. 누군가를 먼저 택하셔서 그의 이웃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버리면 우리도 버림을 받습니다. 유대인들이 살아있는 증인들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전도지향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먼저 구원받은 자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7-11절의 과제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우리들의 교회와 삶에 거룩한 근심이 있기를 원합니다. 아직까지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지, 이웃, 세계 열방과 민족을 생각하며 그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구원의 주권을 가져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기도가 서로 사랑하고 대접하며, 구제, 봉사의 헌신으로 이어지기를 원합니다.(남현동 지역주민을 위한 바자회, 문화축제)
거룩한 고통, 부담감을 가지고 남현동에서 세계로, 이 세대에서 오는 세대로 주의 구원의 복음을 널리 전하는 우리 남성교회와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거룩한 사명을 붙잡고 기도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주께서 붙잡아 주시고 지켜주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