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영토> 대표 지승룡 목사가 정애리 씨와 이혼 심경을 밝히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대개 기업이나 단체들은 설립 몇 주년을 맞으면 사회 저명인사를 대거 불러 놓고 성대한 기념행사를 벌인다. 반면 출범 20년을 맞는 <민들레영토>(이하 민토)는 조용하기만 하다. 오히려 올해 하반기 지승룡 목사는 또 다시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지난 7월 한 여성 잡지를 통해 지 목사와 탤런트 정애리 씨의 이혼 소식이 알려졌다. 두 사람이 이미 이혼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고, 신앙생활을 통해 가까워졌으며 선행에 앞장서 왔기에 이혼 소식은 미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당시 많은 언론들이 파경 소식을 전하면서 그 이유로 ‘성격차’를 들었다. 이에 대해 지 목사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전 이혼을 원치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죠. 또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가정적으로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이로 인해 그동안 쌓아왔던 경력이라든지, 속한 공동체에 누가 될 수도 있었고요. 사실 이 점이 많이 마음에 걸렸어요. 더구나 저 자신이 이혼을 겪어봤기에 그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피하려고 많이 애를 썼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서로가 생각이나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봅니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 결혼하는 남녀가 성향까지 세세히 따지면서 결혼하지는 않잖아요? 정애리 씨는 국제구호단체 친선대사 등 선행을 많이 하시는 분이세요. 저로 인해 어려움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민토의 세 역시 예전과 같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스타벅스 등 대형 커피 전문점 체인이 물밀 듯 들어온 탓에 차별성이 많이 희석됐다. 또 대학로점이 폐점하면서 민토의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 목사는 야심찬 계획을 준비 중이다. 지 목사는 자신이 구상한 계획을 기자에게 거침없이 털어 놓았다. 지 목사의 20주년 사업계획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두 가지부터 살펴보자.
“아무런 준비도 없다고요? 아닙니다. 세 가지 방향에서 준비 중인데 첫 번째는 가난한 공급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소비하는 상품을 개발하고 발견하는 일입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소규모 자본으로 창업 가능한 대단히 경쟁력 강한 상품을 보유한 가게들을 찾고, 이 가게들을 운영하는 분들을 찾고, 현재 일을 더욱 개발시켜 가난한 사람이 정말 행복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바로 이 일이 제가 20주년을 맞이해서 펼치고자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전 같으면 석봉 토스트니 이삭 토스트니 하는 소규모 업종의 경쟁상품은 개인적 노력으로 얻은 성공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빈곤층이 사업도 해야 하고 소비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95퍼센트의 가난한 사람들이 생산해낼 수 있고, 공급해낼 수 있고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20주년을 맞이해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민토 대학로점 폐점 이후 사양길로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지승룡 목사는 2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계획중인 민토의 새로운 사업계획을 거침없이 털어 놓았다. ⓒ사진=지유석 기자 |
“두 번째는 속도가 아닌 각도의 삶에 대한 고민입니다. 즉 경쟁하고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죠. 제 생각엔 민토가 각도의 삶을 고민하게 하는데 기여한 것 같아요.
“제가 민토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카페를 무시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딱 치고 들어오니 ‘카페가 의미 있어, 무언가 가능성 있어’라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제게 한 가지 일이 더 주어졌어요. 카페를 통해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데 제가 일정 수준 기여했다고 봐요. 앞으로 민토는 하나 더 필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생각하는 카페,’ ‘걷는 카페,’ ‘묵상하는 카페,’ ‘기술을 배우는 카페,’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카페,’ ‘함께 영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 카페’ 등으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속도’가 아닌 ‘각도’의 삶 고민해
“평강 식물원을 예를 들어 볼게요. 여기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정말 아름다운 들꽃이 있고 정성을 다해 가꿨는데 말이죠. 이곳엔 식물만 있어요. 사람들은 식물만 보면 지루해 합니다. 그래서 생명인 동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곳엔 동물이 없어요. 또 입장료만 받을 것이 아니라 조그만 주택사업이 같이 이뤄지고, 이곳에서 바리스타나 소믈리에 훈련을 시켜주거나 우리 생활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독서, 명상, 관계성 훈련, 심리 치료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것이죠. 요약하면 우리의 감성과 영성, 그리고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모든 과정으로서 카페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두 번째 과제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제가 나서서 ‘이건 내 것이야, 내가 식물원 만들 거야’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겠지만 제가 ‘당신을 도울게, 함께 할게, 우리 서로 연합하자, 우리 서로 돕자, 그리고 우리 가능하면 소유하지 말고 같이 공유하고 나가자, 나는 여기 어떤 것도 투자하지 않겠다’ 이렇게 제 마음을 비우면 가능한 것이잖아요? 즉 ‘내가 여기 주인이 아니다. 난 너랑 함께하려고 하는 것뿐이다’라는 마음인 것이죠. 우리가 정치적인 일을 하는데 내가 정치인이 안 되면, 정치인하고 갈등할 일이 없어요. 이런 맥락에서 비경쟁, 그리고 레드오션이 아니라 새로운 블루오션의 추구가 제가 구상하는 두 번째 20주년 사업입니다.”
지 목사가 구상중인 20주년 기념사업 세 가지 가운데 두 가지는 목사, 그리고 사업가로서 본연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소개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개인사와 얽힌다.
▲지승룡 목사가 민토 종로5가점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세 번째 기념사업을 구상하면서 저 자신을 생각해 봤어요. 결혼식 주인공은 신부잖아요? 민토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불특정 다수의 고객입니다. 또 하나, 이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변함없이 사랑하고자 하는 그 누군가가 있습니다. 바로 저입니다. 이때 든 생각이 다산 정약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이었어요.
“학창시절, 전 정약용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전 정약용 선생님이 애국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분 책을 읽고자 한문을 공부했어요. 한문으로 된 책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정약용 선생의 제자가 되어 그분처럼 살고 싶었고, 그 길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아, 가톨릭 사제가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사제의 길을 가고자 했어요.
“가톨릭 신학대학을 가겠다고 하니 집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또 학교에서는 영세,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례를 안 받았다고 받아주지 않았어요. 이때 ‘뭐 이런 데가 다 있지? 사명을 받았는데 입학을 거부해? 성부, 성자, 성령이 세례를 주시는데, 가톨릭에서 주는 세례는 좋고 개신교는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괴로워할 때 형님께서 ‘아버님이 개신교로 가면 신학공부를 허락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해주셨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원래 가톨릭 사제가 됐어야 했는데, 무척 아쉽습니다. 그러나 사제가 궁극의 목표는 아니었어요. 정약용 선생님이 만들었던 참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죠.
“정약용 선생님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젊은이들과 만나 같이 의논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주고 젊은이들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실사구시, 실학이었지요. 이에 대해 기득권 세력은 정 선생이 실학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강제 유배시킵니다. 그분은 18년 동안 복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복직을 했다면 공무원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직이 되지 않았기에 18년 동안 책을 쓰고, 차를 개발했습니다. 이걸 모두 합치면 500여 가지가 됩니다. 18년 유배 생활의 결과물이었죠.
“정약용 선생님의 생을 더듬으면서 ‘지승룡,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지?’하고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카페? 바리스타 기술을 배우면 할 수 있어요. 영성 프로그램? 어지간하면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때 문득 아무나 하기 어렵고 깊은 내공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작품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약용 선생님이 수 백 권의 책을 쓰신 것처럼 말입니다.”
‘나만의 그 무엇’ 고민 위해 다산 정약용으로 돌아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상과 삶에 깊이 빠져있는 지승룡 목사는 차별화된 사역으로서 작가로서의 길을 걷고자 지난 3년 간 꾸준히 시나리오를 써오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전 무척 어렵고 복잡해 번역이 잘 안 되는데다, 시대가 달라서 읽기 어려운 책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지녔어요. 전공서적이니 뭐니 관계없어요. 아무리 어려운 책도 쉽게 만들어요. 제가 강의할 때도 원고 안 보고 합니다. 전 묵상을 많이 해요.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단 말이죠. 하나님께서 어떤 개념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제게 주셨습니다. 어려운 책을 짧고 재미있게 번역하는 일을 하려고 하고, 사실 이미 시작했습니다.
“일일이 책을 만들어서 고객에게 나눠드리고 싶어요. 또 실제 책을 써서 고객에게 드린 분량이 거의 천 만부 가량일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몇 년 더 공부했어요. 하루에 3시간에서 6시간씩 각종 전공서적이나 역사서적들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성찰합니다. 이런 일이 좋기는 한데 문제는 먹고 살기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약간의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익을 내려면 대중이 소비를 해야 하지 않나요? 책 만들어서 한 권씩 주는 것 말고, 대중이 돈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것 말이죠.
“바로 이 순간 ‘대중은 영화, 드라마, 뮤지컬을 좋아해! 좋아, 시나리오를 쓰고 뮤지컬 대본을 쓰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첫째 사역이 목사로서 목회사역이고, 두 번째 사역이 사업가로서 비즈니스 사역이었다면 제3의 사역은 작가로서의 사역입니다. 물론 첫째, 둘째 사역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차별화된 사역을 꾀하려면 높은 진입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그냥 수필 같은 장르는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 대본은 정말 쉽지 않아요. 전 그걸 쓰고 있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읽고 강의하고, 읽고 설교하는 습관은 비교적 들이기 쉬워요. 반면 시나리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무언가 메시지를 설명해내야 하지요. 사실 이 일을 위해 3년 동안 공부했어요. 이제 내년부터 표현이 될 것입니다. 상당 부분 완성돼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