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치명적 실책, 뒤 이은 파멸

루이 말 감독, <데미지>

▲루이 말 감독의 영화 <데미지> 포스터.

적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치명적 실수를 범한다. 인간이 원래부터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서 그렇다. 이런 이유로 때론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하고, 때론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루이 말 감독이 연출하고 제레미 아이언스,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맡은 1992년작 <데미지>(원제 : Fatale Damage)는 이 같은 인간 존재의 한계를 아주 충격적인 방식으로 다룬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자체가 충격적이다. 영국 고위관료인 스티브 플레밍(제레미 아이언스)은 말 그대로 남부러울 것 없는 위치에 있다. 사회적 지위는 탄탄하고, 아내는 유력 정치인 가문 출신이다. 아들 마틴(루퍼트 그레이브스)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일간지 정치부 편집장으로 승진했다. 게다가 이 아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려 한다. 
전형적으로 흐르던 이야기는 아들이 연인인 안나(줄리엣 비노쉬)를 아버지에게 데리고 오면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스티브는 안나를 보자 내면에서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림을 느낀다. 더욱 충격적인 대목은, 안나가 장차 시아버지가 될지 모를 스티브의 감정에 적극 반응했다는 점이다. 스티브와 안나는 이후 수위를 높여가며 애정행각을 벌인다. 
사실 이 같은 설정은 유교적 정서에 익숙한 한국 관객의 시선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실제 영화를 보고 난 뒤, 몇몇 관객들은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는 것인가”하며 격분하기도 했었다. 이 같은 정서로 인해 영화는 2년 동안 수입 금지 조치를 당했고, 이후 연출자인 루이 말 감독이 직접 한국을 찾아 기자회견을 가진 뒤에야 국내에서 개봉될 수 있었다. 
▲루이 말 감독의 영화 <데미지>의 한 장면. ⓒ스틸컷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스티브와 안나, 두 사람의 밀회는 갈수록 도를 더해 갔다. 그러나 이런 위험천만한 줄타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발각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정사를 목격한 주인공은 아들 마틴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자신의 연인이 정사를 벌이는 장면과 마주쳤다. 너무 충격이 컸던 탓일까? 그는 그만 계단 난간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고 만다. 아버지는 벌거벗은 채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 아들의 시신을 수습한다. 
결과는 파국적이었다. 스티브의 아내는 그 앞에서 유유히 옷을 벗어던지고 ‘우리 한 번 놀아볼까요’ 하면서 한껏 그를 조롱한다. 이 일로 그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내면에서 꿈틀대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영화는 초라한 신세가 된 스티브가 지난 날 자신에게 욕정을 불어넣어준 안나를 회상하며 끝을 맺는다. 그는 이때 한탄 섞인 어조로 이렇게 되뇌인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한 순간이지.”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누구든 순간의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불륜 등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는 있겠지만,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기 마련이고 그 선을 넘으면 치명적인 상처(Damage)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떠돌이 신세가 된 스티브를 잔잔히 비추는 클로징은 이 같은 메시지를 조용히 전해준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불륜을 에로틱하게 연출해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려는 여느 상업 영화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문제는 ‘그 다음’
▲루이 말 감독의 영화 <데미지>의 한 장면. ⓒ스틸컷

이 영화는 2년 전인 2012년 11월, 제작 20주년을 기념해 국내에서 무삭제판으로 재개봉됐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딱 스무 살 더 나이를 먹은 덕에 시나리오나 정사 장면은 조금은 익숙해졌다. 단, 스티브의 말로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스티브는 부적절한 행위 한 번으로 인생 경력에 치명타를 입고 세상을 유랑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거물급 정치인, 관료, 학자들의 ‘부적절한’ 처신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져 이젠 식상해질 지경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부적절한 처신의 가해자는 일단 잠잠해지면 유유히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최근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학교의 모 교수가 여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사건이 불거져 떠들썩하다. 이러자 다른 학교에서도 교수가 여학생의 몸을 더듬은 사건이 있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학교 당국은 문제의 교수가 사표를 냈음에도 계속 강의를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역시 그 다음이 문제다. 만약 피해자가 교수의 부적절한 처신 및 학교 측의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이 같은 일은 비단 학교 사회뿐만 아니라 정계, 재계, 심지어 기독교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 현실에서 부적절한 행위는 <데미지>의 결말로 갈음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는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 나가고 피해자는 자신을 숨기고 죄인처럼 살아가야만 한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져야 할까? 오히려 가해자가 일순간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참 알다가도 모를 요지경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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