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교회개혁은 통합적 사고에 기반해야”

문화신학자 김경재 교수 인터뷰(中)

 문: 교회가 개혁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참조해야 할 시기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문화신학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사진=이인기 기자
김: 역사의 거품 속에 교회의 부패상은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요. 그건 예수 시대 때부터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부패의 뿌리를 뽑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개혁하고 교회를 정화시키려는 운동은 루터 이전에도 프리 리포머(pre-reformer)들이 여러 곳에서 주도했지요. 그런데 루터가 교회사의 전환을 이루어낸 이유는 교회를 부패시켰던 문제의 뿌리가 무엇이냐를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소위 흔히 말하는 종교 개혁의 삼대 모토라고 하는 ‘믿음만, 성서만, 은총만’의 원리를 내세웠을 때 한 시대가 무너지고 새 시대가 열린 거죠. 
저의 요즘 고민이 뭐냐하면 최근에 몇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확인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큰일입니다. 종교개혁이 5백년이 지나면서 본래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했던 그 순수하고 진솔했던 진의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녹이 쓸어버렸어요. 그것이 굳어져 버린 거에요. 소위 ‘오직’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가지고 ‘오직 믿음만이, 오직 성서만이, 오직 은총만이’라고 하는 모토의 개신교가 돼버렸어요. 제가 보기에는 오직 믿음만이라고 하는 본래 뜻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믿음이란 게 ‘보수 정통 교리에 동의함’을 의미하게 되고 ‘오직 정통 교리만’을 수호하려는 개신교가 돼버린 겁니다. 루터가 말했던 ‘믿음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다’는 말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되어 버렸어요. ‘정통 교리만이 구원의 길이다’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오직 성서만’이라는 모토도 본래 의도는 당시 유럽의 문화사 속에서 그리스도교 안에서 유통되던 교황들과 추기경들의 종교회의의 결정문들, 교황의 무오설에 의해서 발표된 여러 가지 회칙들 등이 성서와 동등한 권위를 주장하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취지로 제기된 것이잖아요? 그러한 문서들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신앙의 마지막 근거는 초대교회의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자들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뜻으로서 성서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것이 종교개혁의 본래 정신인데 그렇게 주장했던 루터의 ‘오직 성서만’의 정신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소위 말하는 성서 문자주의가 득세를 해서 이제는 기독교가 ‘책 종교’가 되어버린 겁니다.    
문: 루터나 칼뱅도 성서를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축자영감설을 지지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김: 그렇지요.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을 성경이라는 책 속에 가두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지요. 아마 그들은 책으로서의 성경을 숭배하는 태도를 격파해서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현존한다고 말했을 겁니다.  
‘오직 은총만’도 당시에 면죄부를 팔아 구원을 사려고 했던 행태에 대한 비판이잖아요? 요즘 말로 교회당 많이 짓고 헌금 많이 하고 선교사 많이 파송하면 된다는 행태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순수한 은총’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그 본래의 뜻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이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실천도 하지 않고 소위 수행이 결여된, 수행이 빠져버린 칭의신앙의 교리만이 고개를 들고 있어요. ‘예수께서 나를 대속하셨고 나는 천국 표를 다 얻었다’고 믿기만 하면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어버린 겁니다.   
▲문화신학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사진=이인기 기자
문: 종교개혁의 삼대 모토를 거론하신 것은 개혁이 근본적인 뿌리로부터 총체적인 재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교계에서는 현재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를 서서히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그 행사가 무의미해진다는 지적을 하시는 것으로 듣겠습니다.  
김: 행사 자체만 두고 본다면 개신교 안에서는 굉장한 일이지요. 하지만, 예를 들어, 성균관 대학교의 유생들이 모여서 성리학이나 주희와 관련된 몇 백주년 기념식을 거행하면 그것은 하나의 문화적 행사로서 성균관 안에서는 큰 행사지만 우리 사회의 오늘과 내일을 변혁할 힘이 거기 있다고 보지 않잖아요? 성리학 오백년의 힘이 소진되었기 때문에 조선조 말에 민초들이 도탄에 빠지고 유학은 상층 계층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듯이 개신교가 그런 형국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통이라는 게 무서워서 그 속에 빠져 들어간 사람은 그거 외에는 안 보여요. 종교개혁 500년을 기념할 만한 행사들이 많이 벌어지겠지만, 한국에서처럼 교조적으로 경직화된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총만’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오늘날 우리 사회와 인류 문명을 돌파해내겠다고 하는 것은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돈키호테 식입니다. 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근세의 시민윤리와 도덕질서의 틀에다 현대사회를 맞추려는 시도인 것이지요.   
문: 오늘날 신학자들의 수는 보수, 진보를 통틀어 오백 명 이상 될 것이고 기독교 관련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을 다 모으면 대략 천 명은 될 것인데, 이 엄청난 지식 집단이 현재 교계의 현실에 대해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들이 전공한 전문 지식들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린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그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관념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김: 신앙은 그 본질을 지키되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때 현실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오늘날의 신학은 근세 이후의 세상에 불어 닥친 사상들, 시대사들, 풍랑과 도전을 현재의 삶 속으로 풀어내어 현재를 개혁하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데 결국 회피를 하든지 도피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겁니다. 
예를 들면, 종교개혁 이후에 불어 닥친 세계사적 흐름으로서 우선 계몽주의가 있을 것이고, 현대 과학주의, 성서비평학, 생물학의 혁명, 우주천문학적 발견, 그리고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 등이 있는데, 이러한 거대한 지성들의 고민과 도전과 질문들에 대해서 기독교가 언제 한 번 진지하게 대답하고 씨름한 적이 있습니까? 그걸 받아들이면 우리가 다 무너진다고 생각해서 자기방어적인 성곽을 단단하게 쌓아놓는 일에만 열중하지 않았나요? 
게다가 그러한 도전을 돌파할 유일한 동력을 19세기의 소위 대 부흥운동(Revivalism)에서 얻었어요. 대 부흥운동의 불꽃은 훌륭했지만, 그것이 항구적인 역사를 주도하는 힘을 얻으려면 아까 말한 몇 가지 세계 지성사의 고민들을 끌어안고 충분히 소화하면서 대 부흥이나 영적 각성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것을 도외시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진 동시에 냉철한 머리, 성서와 지성, 지성과 감성이 함께 아우러지는 영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가 그랬지요. 감성 위주로 흐르면서 지성을 포기했어요. 한국의 소위 샤머니즘적인 기층이 부흥회적인 감성과 만나면서 교회를 부흥시키기는 했는데 그것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중이지요. 
문: 교회와 신앙의 문제이니까 기독교 사상과 교회사의 측면에서 고찰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일반 사상사와의 피드백을 추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물론, 세계사가 모두 하나님의 역사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러한 포괄적인 사고가 당연히 시도되었어야 합니다. 혹시, 교수님께서는 교회와 신앙의 문제를 고찰하는 일반 사상사적 사고의 틀이 있으신지요? 
▲문화신학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사진=이인기 기자
김: 저는 낭만주의와 생의 철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다음으로 실존철학, 분석철학 등이 저의 세계관에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어 있습니다. 낭만주의는 생의 철학으로 이어졌는데, 18세기의 초기 낭만주의는 슐레겔, 슐라이에르마허, 노바디스타, 초기 헤겔 등이 프랑스 혁명을 겪으면서 표방한 사상적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낭만주의는 한국에서 굉장히 오해되고 있는 겁니다. 아나키즘이라는 이름 자체가 낭만적 감흥과 연결되어 감상적이고, 순수한 심미주의나 미학주의 등으로 이해되면서 세상이 어떻게 되든 말든 관심 없는 태도로 이해되고 있거든요. 그것은 특히 일제시대 30년대에 동경으로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어요. 낭만주의에 대한 왜곡이지요.   
낭만주의 이전에 계몽주의가 모든 것을 너무 지성 중심으로 전횡하니까 낭만주의는 소위 그런 이성만능주의에는 동의할 수 없어서 감성은 살리되 소위 탐미주의에는 빠지지 않도록 인간의 심성을 도야시키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잖아요? 이런 요소들이 한국사회에 충분히 꽃 피지 못했지요. 함석헌 선생을 연구하다보니까 그것이 보여요. 함석헌의 사상 속에 낭만주의적인 요소가 매우 많아요. 그 분 자신의 심성적 특징도 그렇지만 우리 종교시를 많이 썼잖아요? 그분의 시가 고난당한 민중의 한복판에서 쓴 것이니까 부르주아들의 탐미주의일 수가 없죠. 그렇다고 해서 함석헌 선생이 이성과 지성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장공 김재준 목사와 함석헌은 나이도 같고 70, 80년대 우리 한국사회 속의 기독교 지도자로서 큰 역할을 하신 분들인데, 그분들의 사상이 통하는 면이 있으면서도 또 특이성이 있어요. 
저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러한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부재한 상황에 처한 것이 가슴 아픕니다. 개혁도 통합적인 사고력이 바탕이 되어야 됩니다. 감성과 지성이 아우러져야 하는 이유는 첫째, 우리 한국사회에 산다는 것이 너무나 살벌하잖아요? 자본주의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돈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처럼 생명의 신비, 존엄성,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가 되어버렸거든요. 이런 한국사회를 치유해야 합니다. 둘째는 한국 기독교가 가슴이 따뜻해지기 위해서, 따뜻해지되 초기 부흥운동 때처럼 가슴만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시대는 다시 안 오니까, 지성과 감성이 함께 가는 새로운 개신교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 낭만주의와 생의 철학입니다. 
문: 교수님께서는 그러한 통합적인 사고가 시대적 도전에 창조적으로 응전할 수 있게 한다고 믿으시는 거죠? 예를 들면, 성령운동을 통한 한국교회의 성장은 이런 통합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겠군요. 
김: 초창기 초대교회의 성령운동이 이름은 좋은데, 지성을 동반하지 않은 감성은 오래가지 못해요. 그것이 세계를 끌어갈 수는 없어요. 지성이 충분하게 뒷받침 할 수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감성이 하루 종일 뜨거워질 수 없잖아요? 그것이 식고 나면, 즉, 소위 부흥운동의 말기 현상에서 남는 것은 권력, 돈, 교권 등뿐입니다. 현재 일반국민들이 기독교를 알고 있는 통로가 애석하게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런데도 교계 지도자들은 권력다툼을 계속하고 있어요. 요즘 기독교 장로교 총회장에 누가 당선되었다고 일간지에서 한 줄이라도 내주기라도 하나요? 우리는 스스로 고무되어서 자부심을 취할 뿐이고 우리가 세상을 변혁하는 주도세력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에요. 개신교는 게토화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섬처럼 되어있어요.  
문: 교수님께서는 성령운동의 열정이 식고 난 뒤 남는 것이 번영신학의 잔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면 지성이 신앙에 담보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김: 문제는 지도력과 방향을 잃어버려서이지 개신교 평신도들 중에서 능력 있는, 소위 준비된 인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예술 분야도 그렇고, 과학자들도 많아요. 그런데 그 분들의 입이 다물어져 있지요. 왜 그렇지요? 실질적으로 자기 수신도 제대로 못한 일부 목사들이 교회 정치를 한다고 앞에 나서서 일들을 망쳐놓으니까 그런 것이지요. 교계 지도자들이 지성과 감성을 아우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면 왜 그들이 입을 다물고 있겠어요? 이런 상황에는 교계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비판적 여론 형성을 도와야 하는 것이지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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