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자수첩] 고토 겐지 씨의 죽음에 부쳐

크리스천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의 삶과 죽음

▲IS에 의해 참수당한 일본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 씨의 생전 모습. 시리아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IB Times

한 언론인의 죽음 앞에 온 세계가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일본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 씨는 르완다, 시에라리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중동·아프리카의 분쟁지역을 돌며 무력 갈등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기는가라는 주제를 천착해 왔다.  

그는 지난 해 10월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IS)의 거점인 시리아로 들어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IS가 장악한 지역의 보통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이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IS는 그를 볼모로 잡았다. 그리고 처음엔 거액의 몸값을, 나중엔 IS 여성 테러리스트와의 맞교환을 요구했다. 그러다 협상이 여의치 않자 그를 참수했다. 일본 열도는 물론 전 세계가 큰 충격과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의 죽음은 무엇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기억하고 재조명해야 한다. 그는 1996년 저널리스트로 본격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해인 1997년 기독교 신앙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분쟁지역을 돌며 선량한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   
그는 특히 분쟁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앵글을 맞췄다. 그래서 『우리는 다이아가 아닌 평화를 원한다: 소년병 무리아의 고백』이란 책을 통해 시에라리온의 소년병 실태를 고발하는가 하면 취재를 진행하면서 국제아동구호 기구인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일을 돕기도 했다. 그는 위험천만한 현장을 누비면서도 “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고, 때론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언제나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잘 안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누가복음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온갖 위협과 맞섰다.    
일본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소수다. 그러나 일본 기독교인들은 평화주의 노선을 강력하게 견지해 왔다. 특히 최근엔 아베 정권의 국가주의·군국주의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고토 씨의 취재는 평화주의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활동이었다.   
한국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 갤럽이 종교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21%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추구하는 노선은 일본과 판이하다. 한국 교회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줄곧 보수-반공 정치세력을 노골적으로 옹호해 왔다. 가장 최근엔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지난 해 4월 벌어진 세월호 참사에서는 공동체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 참사 당한 이들의 아픔에 소금을 뿌리는데 앞장섰다.    
권세지향적 한국 교회, 평화지향적 일본 교회 
이로 인해 한국 교회에서 어떤 시점에 문제가 불거지면 비난 여론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일쑤다. 지난 2007년 분당 샘물교회 성도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를 떠났다가 현지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되자 이들을 향해 온갖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비해 고토 겐지 씨의 억류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에서는 지난 1월27일(화) 개신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 등 각 종파를 망라한 종교인들이 한데 모여 그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집회를 가졌다.  
일본 기독교계의 움직임은 고토 씨의 죽음 이후에 더욱 주목할 만하다. 아베 정권은 그가 인질로 억류된 시점부터 군사력 사용 확대를 추진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월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은 지난 1월26일(월) “일본 의회에서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도입될 계획이다.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는 지역 갈등에서 미국 등의 동맹국을 지원하고 해외에 있는 일본 시민을 구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고 보도했다. 아베 정권은 그의 죽음 이후 더욱 강경 입장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그러나 일본 기독교계는 이 같은 움직임과 거리를 두고 있다. 고토 씨의 죽음에 아파하면서도 이 사건을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증진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후지와라 아쓰요시 일본 세이카쿠닌(聖學院) 대학 신학과 교수는 “일본의 기독교인들은 일반 대중보다 훨씬 더 반국가주의적이고, 비폭력 성향이 강하다. 기독교인들은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임무를 다하되, 주의 종으로서 아베 정권에게 현명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최대 개신교 교회인 일본 그리스도 연합교회(UCCJ)의 성도는 약 20만 명가량 된다. 고토 겐지 씨도 이 교회를 다녔다. 규모 면에서 볼 때 한국의 유명 대형교회 하나 정도 수준이다. 그러나 저간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일본 교회가 기독교 정신에 더욱 가까이 위치한다. 허영심에 골몰한 한국 교회로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한국 교회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수가 많으면 하나님께서 무조건 기뻐하실까? 하나님께서는 일본 교회보다 신도 숫자도 많고 부유한 한국 교회를 더 사랑하실까? 한국 교회가 혹시 엄청난 세를 등에 업고 세속의 권세, 즉 헤롯의 권세와 타협한 건 아닐까? 고토 겐지 씨처럼 의를 위해 목숨마저 기꺼이 버릴 준비가 돼 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몇 명이나 될까?   
고토 씨의 모친인 이시도 준코(石堂順子) 여사는 아들의 부고를 접하자 “아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었고 전쟁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를 돕기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아들의 죽음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것으로 믿으며 슬픔이 증오의 사슬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심경을 고백했다. 이제 그의 꿈을 실현하는 일은 전적으로 남겨진 우리의 몫이다.   
고토 겐지 씨의 영면을 기원한다. 아울러 고토 씨의 유가족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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