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교보문고에서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사진=지유석 기자 |
난데없는 회고록 논란이 여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논란의 중심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등장한다. 그가 발표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아직 읽지는 못했다. 출판사를 통해 문의한 바, 현재 물량이 없어 2쇄를 찍는다고 했다. 책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어라 언급하기 조심스럽다. 그러나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내용들은 참으로 경악스럽다.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관련 대목이 특히 그렇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에너지·자원 자주개발률이 2008년 5.7%에서 2011년 13.7%로 상승했다고 주장했다. 6대 전략광물 자주개발률도 2007년 18.5%에서 2011년 29%로 높아졌다고도 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결과는 이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감사원은 석유공사가 캐나다 하베스타 사의 정유부문 계열사(NARL)에 대해 자산부실평가로 1조 원대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6대 전략광물 자주개발률에 대해서도 광물자원공사가 암바토비 니켈광 경제성 평가를 부당 처리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이 전 대통령은 뻔뻔하다. 자원외교 성과가 10~30년 뒤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도덕성 해이가 아닌 도덕 불감이라고 할만하다. 전직 대통령의 도덕 불감에 동조하기라도 하듯 석유공사는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고 LED TV와 테블릿 PC 등 현물 30억 어치를 임직원들에게 나눠줬다는 사실이 적발돼 또 한 번 곤욕을 치렀다.
회고록의 문제점은 일반 언론이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다 회고록 전체를 속속들이 들여다 본 상태가 아니어서 이쯤에서 언급을 멈추고자 한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일반에 공개된 기록물 외 모든 기록물들을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분류했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현행법상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최장 30년 동안 봉인한 대통령 본인만 볼 수 있게 돼 있다. 국회 재적 2/3 이상 동의가 있을 때, 혹은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이 있을 때에 한해 열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때에도 일반 공개는 되지 않는다. 요약하면,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남긴 기록물을 본인만 볼 수 있게 겹겹이 자물통을 채워 놓은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 집필과정에서 자신의 손으로 봉인한 기록물을 열람하고 이 가운데 일부를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자기모순이자 범법행위다.
이 대목에서 이 전 대통령의 노림수가 엿보인다. 즉,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이뤄진 모든 일들에 대해선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구성하고 재평가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역사적 재평가마저 가로 막는 장로 대통령
그렇다면 왜 이 점을 문제 삼는가? 이 전 대통령이 가장 반기독교적인 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성서 속엔 다수의 인물이 등장한다. 성서 기자들은 이들을 신격화하거나 극단적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를 한 점 남김없이 기록한다. 다윗의 예를 들어보자.
다윗은 심복인 우리야의 아들 바세바에게 연정을 느끼고, 결국 그녀를 범하고 만다. 그는 자신의 죄악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우리야를 사지에 몰아넣는다. 그런데 다윗의 행각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에 벌어진, 시점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과거에 벌어진 사건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누구나 다윗의 죄악을 속속들이 안다. 이에 앞서 기독교 신앙을 접했던 선배들도 그의 죄악을 알았고,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도 다윗의 죄악은 알게 될 것이다. 2000년 보다 더 더 앞선 과거의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구약성서 사무엘기 기자 덕분이다. 사무엘기 기자는 다윗의 죄악을 하나 남김없이 기록해 놓았고, 후손들은 이 전승을 통해 그의 죄악상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게 된 것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사진=지유석 기자 |
다윗으로선 다소 서운한 감정이 들 수도 있다. 그는 왕위 재임 기간 이스라엘을 강국으로 만들었고, 더욱 중요하게는 예수 족보의 정점에 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무엘기 기자는 냉정했다. 그의 치부를 낱낱이 후손들에게 알렸고, 후손들은 이를 통해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이 전 대통령이었다면, 자신의 음행을 로맨스로 미화했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 교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이 전 대통령은 소망교회 장로였고, 이로 인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기독교계, 특히 대형교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기독교계의 융숭한 지원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이 대통령은 집권하기 무섭게 소망교회 출신들을 중용했다. 그러나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행적은 그가 과연 생명존중과 사랑을 핵심으로 하는 기독교 신앙을 소유했는지 의심스럽게 했다.
그가 밀어붙이다시피 했던 4대강 사업은 재임시절부터 부작용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다, 자원외교는 ‘단군 이래 최대 국부유출’이라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또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군과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현 정권의 탄생을 도왔다는 의혹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강정 해군기지 건설 강행 등등 공권력을 무리하게 사용했다는 원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이런 문제제기들은 부차적일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남긴 악폐는 따로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의식을 일깨워야 한다. 모세가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었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패배의 감정을 심었다. 그는 자신이 추진하는 의제에 대해서는 남다른 집념을 보였다. 그렇게 해서 추진된 사업이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였으며, 강정 해군기지 건설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날치기 통과였다. 이 대통령은 그 어떤 반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하는 목소리를 ‘종북’으로 몰아 제도권 밖으로 배제시켰다. 서로 다른 사고와 의견을 가진 국민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과제가 지도자의 당연한 의무였지만 이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의무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결과 국민들 사이에선 체념만 팽배해져 갔다.
단언컨대, 이 전 대통령의 모든 행적은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방기한데 뉘우치기보다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는 동시에 자신의 행적에 대한 공정한 평가마저 가로 막고 있다. 이 전 대통령 개인에게나, 나라 전체에게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한국 교회에 책임을 물을 차례다. 기독교 정신과는 거리가 먼 정치꾼을 장로라는 이유 하나로 아무런 검증 없이 지지했고, 신도들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강요했다. 강단에서 “무조건 이명박을 찍어. 만약 (이 후보를 찍지 않으면)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라는 망언을 늘어놓은 전광훈 목사가 대표적인 예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이 전 대통령을 ‘옹립’하기 위해 벌였던 행적들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서 후손들에게 한국 교회의 실책을 알리고, 또 다시 이런 부끄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끝으로 기자는 기자이기에 앞서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세운 한국 교회의 죄악을 평생 회개하면서 기독교 정신에 충실하게 살아가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