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 한국교회 안에서 개교회, 또는 교단들이 대내적인 분규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여 세상 곧 나라의 법정에 고소하여 판결을 요청한 일이 많았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권위와 위신을 추락시키는 일이지만 나라의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편에서 교회법이 세상법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교회법과 세상법 사이의 우열 문제를 가지고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실로 교회법(또는 종교법)과 세상 즉 국가의 법은 정치와 종교의 관계 여하에 따라 그 관계가 변했었다. 교회법은 예배와 성례전과 사제제도와 신도들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규정들이었는데 초대교회 시대부터 집대성한 것이 교회법전이 되었고, 그 내용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교황 그레고리 7세가 제11세기 중엽에 교회법전을 개편한 일이 있었다. 기독교가 제4세기에 자유를 얻은 후 제8세기 중엽 로마 교황청이 세상 정치권력을 쥐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국가가 교회법을 만들거나 간섭한 일은 별로 없었고 다만 교회의 내분으로 사회와 국가질서가 위협을 받을 때에 교회문제에 개입했었다.
아무튼 교회법이 무섭고 그 형벌이 잔인하게 된 것은 중세로마 천주교 교황의 교권이 세상나라의 정치권력보다 우월 또는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실로 이 당시 교회법은 로마천주교의 교권과 세력을 지탱시키는 중요한 한 지극이었다. 황제도 폐위시킬 수 있는 무서운 교회법이었다.
제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영국의 황제 헨리8세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분리해 나와서 기독교를 국가종교로 만든 예를 따른 유럽의 나라들이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서 국회에서 종교법을 제정하고 통과시켜서 교회를 다스리고 비국교 신도들을 탄압하였다. 즉 교회법이 국가법에 포함되었었다. 그리하여 비국교 신도들은 이단으로 몰려 사형, 추방, 투옥 등등의 박해를 받았는데 그 박해의 역사를 저지한 것이 미국합중국헌법의 제2차 개헌의 종교조항이었다.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따르고 있는 종교의 자유정책인데, 「국가는 종교에 관해서는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는 이 조문은 비단 국교제도의 폐지만이 아니고 종교에 대한 내정간섭까지 금하는 조항이었다.
그 이후로 개신교에서는 소위 「교회법」이라는 고전적 술어의 개념은 통용될 수 없게 되었고 다만 교회헌장이 권징조례 또는 이 말과 유사한 말로서 교회기강과 질서를 규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공산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적 종교자유를 말살하였고 이웃나라 중국과 또 북한에서도 종교탄압 장치를 썼으나 남한에서는 군정정치도 이 민주주의 종교정책을 살려두었다.
오늘날 한국교계에서 사용하는 교회법이란 말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오용되고 또 남용되고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요즘 교회법이란 말이 중세로마 천주교나 또는 국가종교시대에 가공할만한 교권이나 국권이 뒷바침된 교회법과 동일시 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중세교권 전성시대와 국가종교시대에 국법이나 종교법이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법의 신적기원론(神的起原論)은 현대에서는 보편타당하지 않은 이론이다. 반신독재와 공산정권의 법을 신적기원에 둘 수 없다. 폐일언하고 세상에서 사람들이 만드는 법은 다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이 만든 모든 제도는 다 가변적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들이 만들어 쓰는 교회규정(법)들도 가변적이다. 그리고 교단들마다 다른 규정과 법들을 가지고 있다. 교회나 교단의 분규를 나라(세상)의 법정에 고소하면 나라법정은 우선 그 해당교단의 법을 존중하고 그대로 시행되었는지를 살펴서 시비를 판결할 것이다.
세상법정은 교회법 자체가 잘못되었는지 아닌지 여부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라의 법은 실정법으로서 개체 교단들의 법 밖에서, 또는 위에서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 아래서 모든 종교 신도들도 간접적으로 자국의 입법행위에 동참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나라의 법원의 판결에 다 승복해야 한다. 오늘날 어느 종교나 교파도 치외법권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종교단체라도 국법을 어기면 벌을 받아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분규가 생길 때 다수(多數)편이 유리하게 되어있지만 법대로 법을 집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교회분규로 한 교회가 두쪽으로 갈라지는 경우 법원이 다수편이 교회재산을 차지하게 한 판례가 더러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 경우에는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재산형성을 위해서는 소수파 교인들도 헌금과 노력으로 동참했으므로 법원은 양편의 인원의 수의 비례대로 교회재산을 분배해야 할 것이다.
교회를 세상과 비교해서 세상을 속되다고 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실 교회 안에는 같은 세상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의 거룩은 교회법이나 교회성원에 달려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