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논설위원) ⓒ베리타스 DB |
꽃샘추위가 한바탕 심술을 부리고 지나간 3월12일 아침 신문에 반갑고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가 떴다. 노벨 수상자 여성 2명을 포함한 세계 여성들 30여명이 다가오는 생명의 달 5월에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를 상징적으로 가로질러 걸어감으로써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기 위한 평화정책 이니시어티브를 시작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행사의 공식 명칭은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여성들>(Women Cross DMZ)이다.
이 놀랍고 참신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여성들의 발상과 용기에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기획자들은 돌출행동이 아니고 공식적으로 남북한 정부에게 이 계획을 전달하고 남북한 양측의 최종 확답을 아직 얻지 못했지만, “만약 승인을 받지 못할 경우엔 중국을 경유해 항공편으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행사의 주도인물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여성지도자 메어리드 맥과이어와 리마보위, 그리고 수지 김 교수 등이다. 명분과 목적이 아름답고 뚜렷한 지구촌 평화를 위한 모성적 마음으로 행동하는 양심들을 남북한 정치적 이해집단들이 막거나 방해한다면 세계인들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한 정치적 상황과 정치실세들의 시대착오적이고 호전적이며 무능한 발상법들은 남북한 시민들과 국민들을 케케묵은 이념논쟁과 정치구호로 몰아가며 삶과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어온 지 오래이다. 북쪽은 연일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삼대 째 세습정치체제를 지속하며 군부를 핵심으로 삼아 군비강화와 핵무기개발로 인민들의 삶을 고달프게 하고 있다. 그들의 군사력강화와 핵무장과 호전적 정책이 북한존립을 인정하지 않고 붕괴를 시도하는 미국을 비롯한 적대국들에 대한 자위방어적 정책이라고 말해도 설득력이 없다. 남쪽도 북쪽의 군사위협과 핵무기를 빌미로 첨단무기 수입과 군사력 배치를 강화하고, 정치적 ‘종북몰이’로 건강한 시민사회의 성숙을 방해해오는 행태는 오십보백보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남쪽 사회의 두 가지 사건을 생각해도 그렇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하여 국격망신을 시키고 구속기소된 김기종 씨의 문제가 그렇다. 그의 소영웅주의적 돌출행동과 특히 무기를 휘두른 행동, 더욱이나 수교국의 주권을 상징하는 외국대사를 무기로 공격하는 행위는 도저히 용서받기 어렵고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져야할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불행한 사건이후에 전개되는 남쪽 경찰과 검찰과 정부의 대응방식과 보수적 기독교단체들의 태도엔 분명히 문제가 많다. 김 씨의 불법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가 당일 주장한 세 가지 요구, 곧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전시작전지휘권 되찾기>, <한미 군사훈련의 시의적절한 조절운영> 등은 한국사회의 진보적 시민들도 많이 공감하는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나 발언 자체를 ‘종북세력’이나 ‘보안법 위반행위’로 몰아간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한미동맹이나 우리사회의 건전한 민주시민의 애국심을 크게 훼손시키는 좌충수가 될 수 있다.
최근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된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공론화를 둘러싼 여당, 청와대, 야당 상호간의 논란과 불협화음도 그렇다. 소위 ‘사드’라는 약칭발음으로 불리는 미사일방어체계가 지닌 기능과 군사적 전문성에 관하여 국민은 잘 모른다. 그래도 국민은 알 것은 안다. 그것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북한의 핵무기 방어대책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력 확장을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상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특히 중국 시진핑 주석은 한국 박근혜 정부에게 ‘사드’의 한국 배치를 용납하지 말라는 압박을 가하는 형국이다. 미국 국방담당자들은 한국의 정치실세들과 물밑 접촉을 하면서,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사드공론화’를 자발적으로 해주기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한민족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군사-정치적 이해관계로 7,500만 한민족은 희생양 노릇을 지난 70년 동안 해왔는데, 앞으로도 계속하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정치-군사적 현실론자들은 남쪽이나 북쪽이나 <국가보위, 애국애족, 국민생존>을 명분으로 내걸고 무력강화, 군사대치, 군산산업 발달,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을 가속화시킨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칼을 든 자는 칼로서 망하며 어떤 명분을 내걸더라도 우주보다 귀중한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동족을 집단적 살상으로 몰아가는 전쟁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평화의 복음>을 주장하는 한국교회들은 두 가지 형태의 극단주의자들, 즉,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 공갈협박하는 북한 정치집단 내의 군부강경파들과 북한을 점령하거나 붕괴시키거나 흡수통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한 정치집단 내의 극우파 강경파들을 극복해야 한다. 인간존엄과 인간사랑의 복음정신만이 분단갈등을 극복해갈 수 있다.
이러한 답답한 한국의 상황과 일본 아베정권이 군사강대국 재건의 야욕을 품고 위협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동아시아 상황 속에서, 깨어있는 세계 여성들이 한국DMZ를 걸어서 돌파함으로써 긴장갈등과 전쟁위기와 어리석은 소모전을 종식시키자는 평화운동에 한국교회와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적극 호응하고 나서야 한다. 한국기독교 여성단체들만의 협력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 5월, 생명의 달에, 분단 70년의 비극이 종식되고 평화기운으로 전환되는 극적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도해야 한다.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여성들>의 ‘한반도 여성 평화걷기’ 운동이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로 결실되도록 깨어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고 ‘행동하는 양심세력’으로서 ‘창조적 마중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들사람 함석헌의 명언은 오늘도 유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