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기획대담] “신학적 언어의 상투성에서 깨어나야”

[설교를 말하다]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2부

[편집자주] ‘설교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성도들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다양한 주제와 설교자들의 화려한 말솜씨 등을 매주 목격한다. 기독교 방송매체나 유튜브 등 인터넷 매체를 시청하려고 하면 마치 설교의 뷔페식당에 들어온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설교 영상들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설교를 통해서 매주 ‘은혜가 강물처럼’ 흘러가는데 사회가 바라보는 기독교인들의 영성이 참혹하리만치 쪼그라들어 있는 것은 왜 일까? 한국교회의 현실을 진단하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본지는 설교의 문제를 조명해보기로 했다. <설교를 말하다> 기획은 설교의 내용과 방향 및 설교자의 영성 등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번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 소재 청파감리교회의 김기석 목사를 예방했다. 대담 내용은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김기석 목사는 설교단에서 선포되는 신학적 언어에 대해 "상투성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문: 목사님들께서 설교를 할 때 제일 어렵게 여기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해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한 것, 가나안 백성들을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진멸한 것, 동성애, 진화론 등의 문제와 관련해서 성경적 가치를 해명해야 하는 경우에 어떤 해석을 하시는지요? 이런 주제들이 공격을 당할 수 있는 문젯거리이기도 한데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신지요?
 
김: 그런 문제들은 성서만의 고민이 아니라 인류의 고민이었지요. 고대 중국에서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인신공양을 했고 『심청전』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인류문화는 사실 끊임없이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문화 속에는 희생의 자취들이 녹아 있는 거지요. 그러한 자취들이 성서의 세계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것들이 모두 다 정당했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서 그 당시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을까를 고민해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학 등의 다양한 접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이라’고 말하면서 가나안 족속을 진멸한 행위는 지금의 입장으로는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한 마디로 ‘인류가 아직 어렸을 때 벌어진 일’이라고 규정합니다. 인식의 깊이가 그렇게까지 가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그렇게 깊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내편이니까 저들을 없애도 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그것이 그들에게는 처절한 생존의 문제였고 자기 정당화가 필요했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아요.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두 분 하나님이 계신 것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한 분이시므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 방법이 시대적인 한계 속에 갇혀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족적 신앙이었던 것이지요. 아직 인식이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입니다.  
말씀의 현재성 
문: 시대가 달라지면 하나님의 말씀도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하나님의 말씀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은 근본주의적 입장에서는 문제시하겠지만, 모세도 모압 평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것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모세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계명은 너희 조상들에게가 아니라 바로 오늘 너희들에게 주신 것이다”라고 하였지요. 
김: 말씀의 현재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문: 사실, 말씀의 현재성은 설교하는 입장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인데, 깊이 있는 식견이 많이 필요한 영역이지 않습니까?  
▲김기석 목사는 "말씀의 현재성"을 강조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김: 저는 목사들이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한 사건이 있습니다. 폰 라트(Gerhard von Rad)의 『아브라함의 제사』(Das Opfer des Abraham)라는 소책자를 보면, 렘브란트가 창세기 22장을 소재로 그린 그림 4점이 나옵니다. 렘브란트가 젊은 시절에 그린 그림은 화려하게 채색된 데다가 아브라함이 광기에 사로잡힌 듯 너무나 열정적으로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초창기의 렘브란트가 생각한 경건함이지요. 하나님이 원하니까 바쳐야 한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렘브란트의 삶이 굴곡을 겪으면서 그가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때는 아브라함이 매우 내키지 않는 일을 수행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제일 마지막에는 이삭이나 아브라함이 평온해진 상태, 생사를 초월한 평온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렘브란트가 삶의 자리가 달라짐으로써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이지요. 이처럼, 어느 하나의 해석이 오로지 옳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성서 텍스트가 우리에게 주는 그러한 긴장감을 지금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설교를 통해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설교란 성서텍스트를 제3자의 관점에서 독서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자기고백적으로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김: 네, 그렇습니다. 
문: 그러면, 혹시 이러한 해석의 과정에서 깊이 감명 받은 신학자나 신학이론이 있는지요? 그리고 그것이 설교에 반영되는지요? 
김: 설교를 할 때 어떤 신학자를 자주 참고하느냐를 물으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아무래도 제가 젊을 때 영향을 많이 받은 신학자들은 폴 틸리히(Paul Tillich)나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해석에 대한 것보다는 신학적 사고를 하는 방식을 이 분들로부터 배웠고 그 이후에는 성서 텍스트를 해석하면서 다양한 학자들의 도움을 받았지요. 구약성서의 경우에는 폰 라트를 많이 공부했지만, 베스트만 등등의 학자들도 자주 인용합니다. 저는 A급이라고 알려진 신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 유대교 랍비들의 성서해석도 참조하는 편입니다. 매우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유대교 랍비들의 전통에는 성서해석의 풍요로움이 있거든요. 모두 참조하지는 못하지만 몇몇 랍비의 해석은 탄복할 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문: 성서 텍스트가 랍비들의 생활세계와 관련되어 있으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범접하지 못하는 해석의 틀이 있을 것입니다. 
김: 그렇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성서를 전일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반대합니다. 다양하게 해석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래야 현재적 해석이 가능하거든요.
문: 설교의 관점이 다양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보입니다. 그렇다면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실 때, 특히 강조하시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설교의 주제의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실천을 중시한다거나 십자가의 의미를 부각한다거나 구원의 길을 역설한다거나 하는 방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상성을 떠난 거룩함은 없다 
▲일상의 신앙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김기석 목사는 "일상성을 떠난 거룩함은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김: 저는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일상성을 떠난 거룩함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종교적인 언어가 사람들에게 상투적으로 비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성도들이 말끝마다 은혜, 화해, 용서 등을 말하는데 화해는 절대로 하지 않고 용서도 못합니다. 자기비움을 말하면서 욕심에 차있지요.... 이것은 신학적 언어의 실패라고 봅니다. 그 언어들이 사람들에게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학적 언어를 바꾸어야겠지요. 신학적 언어를 상투성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이런 것이지요. 저는 성도들이나 이곳을 방문하는 신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이지요?” 그것은 신학적으로 이미 정식화된 용어인데, 질문으로 던지니까 낯설어지게 됩니다. 제가 듣고 싶은 것은 정답이 아니거든요? 당신은 그러한 신학적인 언어를 당신의 일상적인 언어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대개 답을 제대로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는 이야기가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늘 나누고 가르면서 살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삶이 파편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조각내고 가르는 세상에서 가르는 빗금들을 철폐하면서 소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중심으로 살던 사람들이 너와 내가 흉허물이 없이 어울리게 되고 너의 고통 때문에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에게는 남이 없습니다. 남이 없으니까 모두가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지요. 
제가 이런 방식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조금 더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지요. 제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문: 그것이 인문학적인 접근법일 수 있겠습니다. 열려진 상태에서 같이 고민하게 하는 방식이지요. 
김: 그렇지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설교자들이 중요하게 해야 하는 일은 종교적 언어의 상투성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문: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생각과 삶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김: 그래요. 예컨대 이럴 수 있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설교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요. 왜 설교에 집중하지 않느냐고 그들에게 물었더니, 아무개가 설교를 하면 그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다 안다는 겁니다. 뻔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너 설교하니?”라는 말이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그런 설교는 자신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알고 있는 신학적 명제를 누군가가 새롭게 해석을 하면 긴장감을 갖고 듣게 되겠지요. 
문: 너무 상투화되어 있는 설교가 메시지의 힘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김: 그래서 ‘말씀사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설교 후에 사건이 일어나지 않잖아요? 

※ 3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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