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이던 지난 4월3일(금) 이윤상 목사(사진 오른쪽 첫번째)는 세월호 침몰 지점을 찾아 헌화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
참사로 소중한 아이를 잃은 유가족들을 돌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참사 초기부터 유가족들은 극도로 예민했었고, 이런 감정은 1년이 지난 지금 내면화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1년을 지내면서 정부로부터의 홀대, 인터넷을 통해 넘쳐나는 악성 댓글들, 사회적 관심 저하 등으로 인한 상처는 응어리질 대로 응어리져 있다.
이윤상 목사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과 5개월을 함께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 역시 상처를 입게 됐다.
“먼저 유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많은 한계를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한 번은 큰 상처를 겪은 적이 있었다. 청운동에서 있을 때 일인데 유가족들의 상처가 화살이 되어 내게로 돌아왔다.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 되돌아보면 참 힘든 시간이었다.
그때 마침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정경일 박사님께서 책을 한 권 보내줬다. 도로테 죌레의 『고난』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통해 한 가지 통찰을 얻었다.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행동은 윤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들에게 윤리를 요구한다는 것은 폭력’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다시 유가족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처음 파송 받아 올 때 거창한 무엇인가를 목표하지 않았다. 다만 유가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만 가져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유가족들이 날 더러 ‘우리 목사님’이라고 불러줄 때 기쁜 마음이었다. 또 마침 어렵고 힘들 때 필요한 책이 온 것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본다.”
이 목사는 12월을 끝으로 자신이 섬기던 전주 경동교회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 해 1월26일(월)부터 2월14일(토)까지 19박20일 동안 진행된 ‘세월호 가족 안산~팽목항 도보행진단’(이하 행진단)에 합류해 이틀을 제외한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이 목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순례를 마친 뒤 후련했다. 걸을 수 있으리라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다. 순례 일정 내내 내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그리고 그 길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길인지 물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길이 생각했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이냐면, 유가족과 함께, 그들이 가는 길을 걷는다고 해서 나 자신이 유가족이 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성금요일이던 지난 4월3일(금) 이윤상 목사는 세월호 침몰 지점을 찾아 헌화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
그보다 순례를 통해 동행의 참의미에 눈을 떴다. 그들과 같아지는 것이 아닌, 나의 모습 그대로 그들과 동행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덧 세월호 참사는 1주년을 맞이했다. 이즈음 기독교계는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여기엔 보수-진보가 따로 없었다. 한국교회의 입을 자처하며 주로 보수교단의 입장을 대변해온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는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는 이처럼 어이없는 사고를 낳지 않는 것이며,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했어도 그 수습을 신속하고 원만하게 처리하는 것이며, 그 사고를 계기로 더 안전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라며 “국민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서 위기를 극복”할 것을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가장 종교적이면서 가장 정치적인 일
참사 1주년이 임박한 14일(화)에는 세월호기독교원탁회의 주최로 시행령 폐기, 선체 인양, 배상·보상 일정 중단을 위한 기독인 연합예배가 봉헌됐다. 이에 앞서 고난 주간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세월호 침몰 지점을 찾아 실종자의 조속한 귀환을 기원하기도 했다.
얼핏 참사를 앞두고 기독교계가 진영논리를 접어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외양과 달리,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세월호 참사를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단호한 어조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가장 종교적이면서 정치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일들, 즉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일련의 과정은 가장 종교적인 동시에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인들은 이런 점에 눈을 떠야 한다.
지극한 사랑에 함께 했을 때, 공감이 일어나고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면서 정의를 외칠 수 있다고 본다. 단, 방법은 투쟁보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것이 돼야 하겠지만 말이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외치는 일은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지난 해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라. 가장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졌지만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가? 기독교인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가장 정치적인 부류의 사람들이다. 난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기독교가 통치 이데올로기화돼 있음을 느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한국교회의 모습은 예수의 복음이 사라진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윤상 목사는 범국민대회가 열린 지난 4월11일(토)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아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지유석 기자 |
세월호 참사 1주년이 지났다. 참사 1주년 당일인 16일(목) 오후 서울광장에서는 대규모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광화문 광장은 새벽까지 추모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 문화제를 마친 6만의 시민들도 추모를 위해 광화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추모 물결은 경찰에 의해 막혔다. 이러자 주말인 18일(토)엔 성난 시민들이 경찰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에 감금되다시피 한 유가족들을 구출해내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들은 여전히 세월호 참사가 진행형이며,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 각자 삶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목사는 1주년을 맞아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단지 강도당한 자의 이웃으로 남는 차원을 넘어 우리 역시 당사자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인식이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을 불러 일으켜줄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지난 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아픔을 함께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참사는 유가족만의 문제로 한정된 느낌이다. 1주년을 맞아 상황전환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이 나라가 물질중심의 산업문화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됐다. 이런 공감대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다 줬다. 다음 단계는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대한민국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생명력 있는 나라가 되게 하느냐를 고민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이런 고민은 제대로 내면화되지 못했다. 나는 이것의 원인을 유가족만이 참사 당사자라고 보는 시각에서 찾고자 한다.
1주년이 지난 지금 당사자에게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유가족을 제외한 모든 국민들이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보면 당사자들은 의외로 많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탈출한 생존자들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이들을 바라봤으면 세월호 피로감이라는 말은 아예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우리 국민들은 3차 당사자다. 우리는 세월호에 탄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광경을 마냥 지켜봐야 했고, 이런 탓에 무력감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1년이 지났지만 이런 감정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그저 유가족의 이웃으로 남고자 한다면 결국 ‘이제 그만하자’는 말로 귀결된다. 무엇보다 우리가 참사의 3차 당사자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유가족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