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세계적인 시민운동가이자 페미니즘 저널리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2015국제평화걷기(Women Cross DMZ, 이하 WCD)’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녀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녀는 2011년 해군기지 건설 현장인 제주 강정을 찾았고, 이후 <뉴욕타임스> 기고와 CNN 방송 출연을 통해 강정 해군기지가 미국의 패권전략의 산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이번엔 2008년 보수정권 집권 이후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WCD공동명예위원장을 맡으며 직접 평화걷기의 선봉에 섰다. 그녀는 평화걷기 다음 날인 25일(월) 열린 ‘2015국제여성평화회의’에 참석해 기조 발제에 나섰다. 그녀는 발제를 통해 “비무장지대를 통한 여성의 평화걷기는 남북한 통일의 가능성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 사이의, 다른 종교와 다른 경제적 계층 사이의 평화의 가능성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비록 UN사령부의 비협조로 판문점 입국은 무산됐지만, 그녀의 발걸음과 평화에 대한 의지는 남북관계에 의미 있는 이정표로 남게 될 것이다. 아래는 그녀의 발제문 전문이다.
▲25일(월) 열린 ‘2015국제여성평화회의’ 기조발제 중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사진제공= 한국YWCA |
이 평화 걷기에 참석하는 우리 각자는 우리 나이와 세계의 위치에 따라 한국 전쟁과 비무장지대라고 불리는 이 좁고 긴 땅에 의해 갈라진 사람들을 달리 기억합니다.
이 평화 걷기에 참여하는 여성 중 가장 연장자인 저는 유년 시절에 겪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고등학교 시절 한국 전쟁에 징집될 뻔 했던 같은 반 친구 중 한 아이를 기억합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의 참전용사였는데, 그 전쟁에서 너무 참혹한 것들을 경험한 터라 한국 전쟁에 아들을 보내는 대신 자기 아들을 죽이고 자살했습니다. 전 이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 저는 한국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져 독일 유보트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 해변에 잠수함이 다시 정박할까 염려하며 엄마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려고 계획을 세웠던 것이 떠오릅니다.
한국 전쟁이 벌어진 곳에서 저는 수 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저의 이런 고통은 교전국의 국민들이었던 여러분의 고통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어떤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나 분단은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전쟁과 분단은 그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오래도록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륙의 최초 정착민이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하나의 폭력 행위를 치유하는데 무려 네 세대가 걸린다고 합니다.
저는 저의 작은 지지를 표하러 이 평화 걷기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4년 전 제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측의 비무장지대에서 완전히 새롭게 단장한 기차역에 가보았습니다. 그 기차역은 희망의 상징이지만, 텅 비어있고 전혀 사용된 흔적이 없었습니다. 한편 그곳에 올라섰을 때 저는 다른 쪽과 얼마나 가까운 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 가까워 건물들도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제 나라도 한 번은 내전으로 분단되어 가족들이 헤어지고 나라의 중간이 사각지대가 된 적이 있습니다. 만약 그 상태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면, 저는 이곳에 계신 분들이 저희를 도우러 와주기를 희망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우주에서 지구의 사진을 본다면, 저희 모두는 허술한 우주선의 탑승객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여성이 평화를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추진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고 믿습니다. 문화적 이유들로 인위적인 성별 분리로 우리 여성에게는 증명해야 할 “남성성”이 없으며, 이 때문에 때로는 우리가 서로 훨씬 더 쉽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종교와 지역의 경계선을 넘고 폭력을 멈추게 한 것이 여성이었습니다. 저의 유년 시절에 아일랜드의 상황은 절망적으로 보였지만, 이제 아일랜드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라이베리아에서 또한 여성이 다양한 종교와 반군들을 단합시켜 평화로운 선거를 치르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근대 국가에 대한 엄청난 양의 연구에서 배운 것은, 한 나라 안의 폭력적인 상황에서나 다른 나라에 대항하여 군사적 폭력을 사용하는 상황에서나, 폭력이 가난이나 천연자원, 종교, 또는 민주주의 등과 관련되는 것보다 더 만연하게 여성에게 가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가족 안에서 처음 경험하는 폭력이 모든 지배와 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상적인 폭력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지배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를 통한 여성의 평화걷기는 남북한 통일의 가능성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 사이의, 다른 종교와 다른 경제적 계층 사이의 평화의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수단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목적을 가리킵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행동한다면,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 우리가 원하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서로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말과 행동을 사용한다면, 우리가 너무도 사랑하는 이 연약한 지구라는 우주선에서 우리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