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에서 계속
앞서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성장의 지체가 기독교를 퇴행시키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김 실장은 그러면서 대형교회 개혁 가능성과 리더십의 변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Q : 대형교회의 쇄신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고자 한다. 과연 쇄신과 개혁이 가능할까? 그래서 사회적 지탄을 극복하고 순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가?
▲지난 5월16일(토) 화쟁문화아카데미에서 열린 2015종교포럼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 경계너머, 지금여기>에서 논찬 중인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 ⓒ사진=지유석 기자 |
기독교계 언론들은 분당우리교회나 백주년기념교회 등을 쇄신의 모범사례로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형교회 개혁은 힘들다고 본다. 개혁은 담임목사가 ‘계몽군주’일 때 가능하다. 사랑의교회 사례에서 보듯 담임목사가 교체되면 개혁은 물거품이 되기 쉽다. 담임목사 한 사람만 변화해서는 충분한 쇄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소규모 교회와 비교해보자. 소규모 교회는 성직자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어렵다. 바꿔 말하면 한 가지 사안을 놓고 오랫동안 충분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대형교회 의사결정 구조는 대단히 단순하고 신속하다. 만약 담임목사가 계몽적이면 모르겠는데 ‘폭압군주’면 교회는 폭압적이 된다.
이 같은 의사결정을 합리화하는 데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사실 성도가 100명만 넘어서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따라서 천 명, 만 명 신도를 보유한 교회가 소통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복잡하고 잘 짜여진 소통구조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형교회가 이런 소통구조를 갖추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출구조가 복잡해서 의사결정 구조를 위해 예산을 지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만약 대형교회에서 독점적 리더십 해체되거나, 약화되면 로마 공화제와 같은 귀족정치로 이행될 것으로 보여 진다. 사회적 영성에서 다루는 주제이기도 한데,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영성권력이 목사에서 장로로 이동하고 결국 목사는 월급쟁이로 전락한다는 말이다. 이런 경향은 점점 현저해지고 있다. 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한 경력이 있는 분들이 대형교회로 청빙돼 간다. 이분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교회를 통제했던 창업자와는 성향이 다르다. 이런 와중에 교회의 실 권력은 실세 장로들이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다.
Q : 대형교회가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는 없는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 ⓒ사진=지유석 기자 |
대형교회의 역할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노인복지다.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노인문제인데, 현재 노인복지는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노인복지를 부분적으로나마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은 대형교회다. 물론 중산층, 그리고 성도가 아닌 이들에게 큰 혜택이 가지 않는 문제점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목사들의 설교나, 교회가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공감하지 못함에도 중산계층이 대형교회로 몰리는 이유도 노인복지에서 찾을 수 있다. 일상에서 노인들을 모시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는데, 교회가 이를 대행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 문제, 이를테면 몸이 아플 때 위문을 해준다든가, 병원에 혼자 있을 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식으로 교회는 중산층 노인복지 문제를 일정 수준 담당한다. 하위계층의 노인 복지는 주로 작은 교회의 몫이다. 전체적으로 복지 분야에서 기독교의 사회 기여도는 높은 편이다. 복지는 한국교회가 담당하는 몇 안 되는 순기능의 하나일 것이다.
Q : 최근 ‘건강한 작은교회’ 담론, 그리고 가나안 현상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한국교회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작은교회’에서 발견 된다는 생각이다. 지난 1970년대 중반과 80년대 초반 민중교회의 사례를 참고해 보자. 민중교회는 전체의 0.1%에 불과했지만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표상이었다. 전세계가 한국 기독교에서 주목한 것도 바로 민중교회였다. 수많은 학자들은 민중교회가 던진 문제의식을 고민했다. 이렇게 민중교회는 어떤 식으로든 자극을 가했다.
작은교회는 민중교회 보다 양적으로 다양하다. 신학교나 신학자들이 작은교회 담론에 잘 반응하지는 않는 상황이지만, 이 담론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 ⓒ사진=지유석 기자 |
Q : 신앙을 유지하고 있지만 교회,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기성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나안 현상’은 어떻게 보는가?
현재 교회는 가나안 현상에 대해 두 가지 상이하게 대응한다. 교회를 떠나가는 성도들로 인해 조직을 재강화하는, 다분히 퇴행적인 면이고 다른 면에서 이 현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교회도 있다.
나는 가나안 성도라는 낱말에 부정적인 어감이 있어 ‘멀티 신자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들을 만나본 결과 보다 성찰적이고 타자, 타종교 타문화에 대해 관대하고 포용적이다. 동시에 기성 기독교가 지닌 자폐적 담론에 냉소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적어도 가나안 성도 현상은 부정적으로 평가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진데 따른 현상이라고 본다. 유럽은 단일종교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국은 종교다원 사회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란 말이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다른 종교와 대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렇게 멀티신자의 탄생은 한국기독교의 자폐성을 넘어설 수 있는 좋은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3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