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김근상] “교회는 슬픔에 잠긴 사람들과 함께 해야”

※ 1부에서 계속

Q: 여전히 성공회 하면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도 있고, 성공회 교인조차 헨리 8세의 이혼과 결부시켜 성공회를 이해합니다. 성공회 전통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다른 교파와의 차별성도 일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 ⓒ사진=지유석 기자

김근상 주교(이하 김 주교): 말씀하신 것처럼 성공회라고 하면, 제일 먼저 헨리 8세의 개인사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공회의 종교개혁은 단순히 영국 국왕의 개인사만을 가지고 이해할 것이 아니라, 당시 천주교 및 영국 내의 사회적·정치적 상황, 교회의 신학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맥락을 함께 고려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헨리 8세에 의해 시작되고 후대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하여 완성된 성공회는 말 그대로 거룩하고(聖), 공번되고(公),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하나인 교회(會)라는 표현입니다. 영문으로는 앵글리칸 처치(Anglican Church)라고 하거나 주교제 교회라는 의미에서 에피스코펄 처치(Episcopal Church)라고 씁니다. 다른 교파들과의 차별성을 말씀드리기보다 ‘성공회는 이러한 교회입니다’라고 하는 편이 이해를 도울 것 같아 성공회가 가진 보편적인 특징만 간략하게 말씀드립니다.   
첫째로, 성공회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인내할 뿐인 것이지요. 성공회는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전례와 기도생활을 통해서, 아니면 교회의 이름으로 만나는 이 사회의 곳곳에서 말입니다. 이런 태도는 무엇을 강요하는 것이 때로는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올바르고 건강한 신앙을 방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의 발로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어떤 이유로든 우리가 선점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둘째로, 성공회는 민주주의 원칙을 소중히 여깁니다. 설사 성경의 권위조차도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점은 천주교와 완전히 구별되는 원칙입니다. 성공회는 천주교와 달리 주교의 권한이 의회에 종속되어 있고 이 점은 성공회가 가지는 중대한 가치입니다.   
세 번째로, 성공회는 “각 지역의 문화적 전승을 존중하는” 교회입니다. 전 세계 성공회는 38개 관구와 8,500만의 교우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든 관구(Province - 나라 혹은 지역으로 선교 단위를 나누는 명칭)는 철저히 독립적이며 자율적입니다. 서로 형제적 관계를 유지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의 전경. ⓒ사진=지유석 기자 

마지막으로, 성공회는 “하나 됨을 지향하는” 교회입니다. 성공회의 신학은 ‘교회다움’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다름을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일치됨을 찾아 그 연대를 강화하려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든 교회일치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성공회의 이름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그 교회를 한 형제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헨리 8세도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그토록 세상에서 지탄을 받는 그 어떤 사람도 이 세상에 기댈 곳 하나는 남겨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가 아주 당당한 사람을 위해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는 시각에서, 헨리 8세는 훌륭한 역할을 했습니다. 세상에 가장 못난 사람, 모든 사람이 버린 그 사람을 위해 교회가 필요하다면 성공회가 기꺼이 그 몫을 담당하겠습니다.   
Q: 주교님께서 성공회에 입문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배우로 활동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어떻게 지켜오며 실천해오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김 주교: 아버님과 외조부님께서 모두 성공회 사제이셨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성공회 식구가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어린 시절을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놀이터 삼아 보내던 세월부터 해서 청년이 되어 서강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여전히 저는 성공회 신앙 전통 안에서 살았었지요. 물론 존재의 가치를 묻는 질문으로 불교, 개신교, 천주교 모두에 입문한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학사학위를 가톨릭 신학대학에서 받았습니다. 
혈기 왕성했던 청년 시절에 인연이 닿아 아주 짧은 세월 배우로 활동했었지요. 그런데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요? 사실 성직자가 되기 전까지는 꽤 많은 직업을 가졌었습니다. 한 곳도 월급을 받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늘 가난했었습니다.   
믿음에 관한 말씀은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책 정리를 하다가 제가 막 신학에 입문할 때 읽었던 책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당시 책을 구입하면서 제가 그 첫 장 여백에 치기 어리게 짧은 문장을 하나 써 놓았습니다.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 ⓒ사진=지유석 기자
“예수 팔아 살지 말고, 나 팔아서 예수 사자!”                                      
23살의 외침이 지금도 제 심장을 뛰게 합니다. 저는 지금 예수를 팔아서 먹고 삽니다. 하지만 제 핏속에는 예수님의 피가 연연히 흐르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믿음에 힘입어 조금은 그 부끄러움을 떨쳐버리고 삽니다.   
Q: 최근 사회적 영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특히 2008년 보수로의 정권교체 이후 우리 사회엔 부조리가 만연하기 시작했고, 지난 해 세월호 참사는 부조리의 정점이었습니다. 성공회는 일련의 사회적 쟁점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요?
 
김 주교: 성공회는 시대의 예언자로 사는 교회 본연의 사명을 잃지 않아왔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부조리라고 하셨는데, 더 크게 볼 때 성공회의 관심은 늘 참사를 경험하며 울음과 한숨이 그치지 않고 먹먹해진 가슴을 끌어안고 사는 이웃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이 울고 있을 때 저희도 같이 울었고, 그들이 기댈 가슴이 필요할 때 마음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손을 잡았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서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아파하고 우는 사람들 옆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사시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관심하신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들, 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힘 있고 부자인 것을 탓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올바로 쓰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나무라셨지요. 아니 무엇보다 교회의 관심은 세상에 성공하는 사람들에서 약간 비켜서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요즘 말로 루저를 위해 있다고 말하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2000년 전 당시 예수님께서는 우리보다도 못한 천민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런 분이 역사를 바꿨음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희망을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쟁점과 논란이 있지만, 저는 항상 교회가 소외된 사람들, 슬픔에 잠긴 사람들, 위로가 필요한 사람, 여러 가지 일들로 눌린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도 무슨 시혜를 허락하는 위치에서가 아니라 같은 호흡, 즉 같은 동류인식에서 말입니다. 오히려 더 낮아져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별로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살겠다고 말씀드리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Q: 주교좌 성당 전경개방으로 성공회는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것입니다. 끝으로 주교좌 성당을 찾는 시민들, 그리고 그동안 주교좌 성당을 섬겨왔던 성공회 성도들을 향해 각각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전경. ⓒ사진=지유석 기자

김 주교: 먼저 성공회 교우님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늘 드리던 말씀인데, 이제 성공회가 많은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거꾸로 우리는 담 너머에 있던 세상을 아주 훤하게 바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간에 뭔가 막힌 담이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척 하고 지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됐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교회와 사회가 함께 있는 곳입니다. 오랜 시절 교회가 중심으로 동네가 세워졌고, 그곳에 시청이 있으며, 그곳에 법원이 있었습니다. 서양에 가보시면 쉽게 아실 것입니다. 시의 중심도로는 ‘처치스트리트,’ 즉 교회길 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원천적 책임입니다.   
백성들을 위로하고 백성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저는 이미 우리 성공회 가족들이 아주 잘 준비된 신앙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 안에서 보여주신 헌신과 사랑, 그리고 그 정도 열정이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 모습 변하지 않고 이어가 주십시오. 그 모습을 세상에 몸으로 증언해 주십시오. 꾸밀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그랬듯이 그들도 처음에는 많이 어색해 하고 꽤 큰 죄를 지은 죄인인 것처럼 자신 없어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가운데 있는 무거운 벽을 국세청 건물과 함께 무너뜨린다면 우리는 세대와 세대, 이념과 불평등의 차별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사회가 변하고 세대가 변해도 신앙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 우리를 더욱 큰 사랑 안에서 머물도록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께서 가만히 지켜 보시지만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회를 찾는 시민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성공회는 여러분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일상을 말 그대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 요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조금 성급하게 결과를 보는 것을 기대하지 않으신다면 저희에게 여러분들의 인생을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금방은 아니겠지만 함께 울다가, 웃다가, 때론 등을 돌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곧, 아니 언젠가는 우리는 어느새 한 가족이 되어 여러분들과 함께 희망을 말하며, 힘든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비도 같이 맞으며, 여러분과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펼쳐 나가게 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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