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감을 이용해 어딘가에 계시는 하나님을 자꾸 인식하려고 하고 형상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함석헌 선생이 ‘하나님은 공개된 비밀’이라고 말했 듯이 하나님은 그런 형태로 계시지 않아요. 하나님은 사랑, 진리, 생명 등 그 안에서 사는거지요. 우리가 사랑 안에 진리 안에 생명 안에 살 때 하나님을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거에요”
‘하나님과 창조세계’를 주제로 한 김경재 목사(한신대 명예교수)의 ‘갈릴리복음 성서학당’이 4일 저녁 7시 삭개오작은교회에서 그 첫 강좌를 열었다. ‘하나님은 공개된 비밀; 하나님 부재체험과 순수의식의 물음’이란 주제의 첫 강좌에서 김경재 목사는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자신이 탐구하고, 경험했던 하나님을 소개했다.
김경재 목사는 신천옹 함석헌 선생이 던진 ‘하나님은 공개된 비밀’이란 말의 뜻 풀이로 ‘갈릴리복음 성서학당’의 훈장(訓長)으로서 첫 운을 뗐다.
▲ 4일 늦은 오후 삭개오작은교회에서 열린 ‘갈릴리 복음 성서학당’에서 김경재 목사가 열강하고 있다 ⓒ김진한 기자 |
“‘공개된 비밀’이란 역설적인 표현이다. 역설(逆說)은 일반 상식적 견해에 배치되거나 어긋나는 상태를 말할 때 쓰는데 함선헌 선생이 말한 공개성(계시성)과 비밀성(은폐성)은 상호 대립되는 개념인데 그것이 동시에 진실이 되는 진리를 표현하려고 할 때 우리는 ‘역설적 진리’라고 말한다”
김경재 목사는 이어 성서에서 나오는 역설적 진리를 몇 구절 뽑아서 부연 설명했다. “알고보면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신앙체험의 진술들은 삼단논법적 진리도 아니고, 변증법적 진리도 아니고 거의 모두가 역설적 진리들”이라고 말한 김 목사는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5:20) 등을 그 예로 들었다.
보다 자세한 뜻 풀이에서 김 목사는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개 되어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적인 공개성, 보편성, 접근가능성, 독점불가성, 개방성, 근거리성을 말하려고 한다”고 했고, 동시에 하나님은 비밀이란 말은 “논증하기 어렵고, 전유(專有)불가능하고, 충분하게 설명하거나 진술하기 어려운 ‘신비자(The Mystery)’라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지구중력현상, 지구 공전현상, 물리학에서 빛의 이중성 현상, 생체순환계의 운동현상 등은 우리 생활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개된 비밀들’의 사례”라며 “우리들의 생명을 근원적으로 떠받히고 있으면서 삶을 가능케하는 힘이나 원리들은 ‘공개된 비밀’이 대부분이다”라고 했다.
이어 20세기 ‘신부재 체험’과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용기있게 종교 비판을 감행한 ‘의심의 대가’들의 비판적 무신론 주장의 의미를 재평가했다.
김경재 목사는 신부재 체험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사건으로 1, 2차 세계대전을 꼽았다. 김 목사는 “1차, 2차 대전의 처참한 전쟁터의 생명살상과 불의과 거짓의 발호, 죄없는 사람들의 무의미한 죽음은 특히 유럽 문명권의 종교들이 전제한 ‘초월적 유신론 신앙’을 근저에서 흔들어 버리게 된다”고 했다.
▲ 강연 중 청강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경재 목사 ⓒ김진한 기자 |
이밖에도 19∼20세기 제반 학문계의 발달도 한 몫을 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 신앙을 전제하는 종교적 인문학을 삶의 변두리 문제, 개인적 사사로운 관심거리로 몰아내고, 공공성의 영역에서 종교나 윤리 차원에서 ‘삶의 의미와 궁극적 가치’보다 ‘실용성과 현실적 능률성’을 추구했다”며 “초월과 종교관심은 현세와 자기충족적 자율문화로 대치되고, 충분히 성인이 되었다고 자임하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 사회’가 됐다”고 했다.
초월적 유신론 신앙이 흔들리고, 이에 더해 종교의 부패 현상이 심화되자 종교 비판의 여지가 확대됐고, 이는 당대 종교 비판의 대가들을 탄생시켰다.
‘의심의 대가’라고 불릴 만한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드, 칼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김경재 목사는 “이들의 목소리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여전히 멤도는 이유는 뭘까”라고 했다.
그럼에도 김 목사는 이들 종교 비판자들의 한계도 분명히 짚고 넘어갔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종교를 비판한 니체에겐 “참 신의 만남을 거부하고 ‘초인철학’을 강조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이념적 근거를 제공하고 말았다”며 “전통적 기독교가 만들어 놓은 우상을 파괴한 후에 또 다른 우상을 세우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과학·심리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비판한 프로이드에 대해선 “프로이드는 계몽주의 정신 곧 모든 허위의식의 비판을 통해 인간 해방을 강조한 사상가였지만, 갈릴리 복음이 지닌 참된 자유와 해방의 힘을 모르는 것”이라며 “예수, 석가, 간디, 슈바이처, 톨스토이, 아인슈타인 등이 만약 프로이드 이론처럼 미성숙한 신경강박증 환자들이라면 인류 중에서 신경 강박증 환자 아닌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이성의 과학빛으로 해방시키려 하지만, 그의 정신분석학은 도리혀 인간 본질이 비합리적 ‘욕망충족의 본능에서 쾌감원리로 살려는 비합리적 존재’로 본다는 점은 자가당착적 모습을 드러낸 사상가”라고 꼬집었다.
“종교는 아편”이라며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비판한 마르크스. 김경재 목사는 “정통 기독교는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서 덮어놓고, 귀부터 닫는다”며 “칼 마르크스는 최초로 사회에다 청진기를 대고 첫 진단을 내려 본 사람이었다. 당시 종교를 이용해서 이익을 챙겨먹던 귀족들은 그런 비판을 받아도 싸다”고 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사회 과학적 현상학에 갇혀있기 때문에 종교의 근원과 본질 비판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김 목사는 “진정한 종교는 ‘인민의 억압기제’로서가 아니라 해방기제로서 작용하는 창조적 힘을 간과했다”며 “그가 꿈꾸던 사회의주의 공산주의 사회 안에서 또다른 권력의 종교화, 우상화를 막지 못했다”고 했다.
▲ 김경재 목사가 칠십 평생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을 소개하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김진한 기자 |
이어 김경재 목사는 칠십 평생 자신이 탐구하고, 경험한 하나님을 소개했다. 김경재 목사는 “사람의 궁극적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찾고, 그 생명에 참여해 자기를 완성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하나님에 대해 함석헌 선생은 “공개된 비밀이다”라고 했고, 다석 유영모 선생은 “없이 계신 하나님”이라고도 했다. 이와 관련, 김 목사는 “어떻게 보면 역설이고, 자가 당착적 말이지만 또 다르게 보면 역설의 진리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오감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하려 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시지만 또 한편으론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 계신 하나님이기도 하단 얘기다.
김경재 목사는 “(하나님을 형성화 하려는 시도에)하나님을 너무 축소시킨 것이 아니냐”며 “하나님은 우리 생각하고 있는 어떤 형태로 계신 분이 아니라 사랑, 진리 그리고 생명으로서 우리와 같은 인격 자체로 계신다”고 했다.
하나님을 탐구하는 데 이론은 이제 포기했다는 김경재 목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 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를 완벽히 보여줬다”면서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고도 투명하게 보여주신 분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앙고백을 끝으로 강의를 마쳤다.
“예수. 그 분을 경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성경에서 가르치는데 나 또한 그런 가르침에 승복하는거야. 내가 예수가 살았던 기간 보다 두배는 더 오래 살았지만 예수가 좋은걸 어떻해. 어느 저 위대한 고승은 이렇게 말할지 몰라. 김 목사 아직 멀었네. 아직도 유치한 수준이구만...그러나 비웃어도 할 수 없어(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