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시국기도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기도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최부옥)가 주최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
“현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단순히 국정화의 문제가 아니다. 국정화는 민주주의를 사수할 것이냐 독재로 회귀할 것이냐의 싸움이고 민주와 반민주의 투쟁이다.”
11월12일(목) 오후 서울 중구 명동 향린교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장 최부옥 목사) 주최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시국기도회’에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가 강조한 대목이다.
이 명예교수는 시국기도회에 증언자로 나와 국정화 반대 이유 및 국정화 찬성론자들의 논리적 결함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명예교수는 먼저 역사 교과서의 성격부터 정의했다.
역사 교과서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 시대 역사학계의 공통된 업적이 있다. 이를 간추려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게 바로 역사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역사교과서를 만들고자 하면 근현대사를 망라해 오늘날 국사학계가 공통적으로 지는 역사적 업적을 정리해서 내면 된다. 국정화는 정부가 역사학자로부터 이런 일을 할 권리를 빼앗아 국가가 의도하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국정제를 찬성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다.
근현대사의 최대 쟁점은 대한민국 건국이냐, 정부 수립이냐의 논란이다. 이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이 논란이 역사학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1948년 8월15일에 들어선 건 ‘대한민국 정부’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1948년 8월15일이 정부수립이냐 대한민국 수립이냐는 논란은 역사학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민감한 쟁점이다. 그해 5월10일 선거가 치러졌고, 5월31일엔 국회가 열렸다. 국회의장은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우리는 기미혁명 3.1운동으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말을 했다.
그가 말한 임시정부는 크게 한성, 상해, 블라디보스톡 대한국민의회 임시정부 등 세 개다. 안창호 선생은 셋을 합치면서 “한성 정부의 정통을 잇도록 한다”고 했다. 상해 임시정부의 경우 각도 대표 29명이 모인데 대해 한성 정부에 참여자가 훨씬 많았기에 정통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승만은 한성 정부에서 집정관 총재직을 맡았다. 이에 비해 상해에서는 국무총리 직이었다. 이승만은 집정관 총재가 훨씬 낫다고 봤다.
이승만의 발언은 큰 틀에서 보면 임시정부의 정통을 잇는다는 말이다. 제헌헌법 서문에도 “대한민국은 3.1혁명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이러이러한 정부를 둔다”는 취지의 문구가 있으니 확인해 보라.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 이겨내며 세워진 나라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정부의 국정 교과서 강행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뉴라이트 역사의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
이 명예교수의 지적대로라면 결국 대한민국 건국 시점은 1948년이 아닌 1919년인 셈이다. 그렇다면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시점으로 보는 쪽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 명예교수의 말이다.
1948년에 대한민국 건국이 이뤄졌다는 소위 ‘건국절론자’들은 “국가는 영토, 국민, 주권 등 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1919년엔 없었다. 따라서 1919년 건설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얼핏 논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헌 헌법을 논의했던 사람들은 이를 몰랐을까? 알았다. 국토, 국민, 주권을 갖춰야 나라임을 알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헌법에 넣은 이유가 있다.
제헌헌법을 기초했던 의원들과 지성인들은 “대한민국은 1919년 건립됐지만 그동안 일제가 강점했기에 정부를 강토 안에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운영하기 위해 해외 정부를 세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임시정부다”라고 정리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왜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려 하는가? 바로 뉴라이트 계열의 식민지 근대화론 때문이다. 이건 역사를 보는 큰 흐름과 관점의 차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하에서 근대화 되서, 그 힘으로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이승만은 국부로 치켜세워야 하고, 한일 회담 통해 받은 자금으로 제철소 만들고 고속도로 닦은 박정희를 치켜세워야 했다.
그런데 이승만은 “1945년 연합국에 의해 해방되고 그 덕에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말하면 역사에 창피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일제의 강포한 지배하에 있을 적에 그걸 뚫고 삼일 민주혁명 일으켜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이게 자랑스럽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승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이 정도 역사의식 가졌으면 좋겠는데 이를 전혀 말하지 않는다.
이 명예교수는 현 국정화 시국이 단순히 국가가 역사교과서를 발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정화는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고 민주세력과 독재세력 사이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지금 국정화의 싸움은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의 전통 위에서 세워졌느냐, 아니면 친일·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해 세워졌느냐 하는 싸움에 서 있다. 1987년 헌법은 4.19민주혁명 이념 강조하고 민주국가를 이뤄간데 대한 신념을 강조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독립운동 전통 위에서, 민주화 전통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평화통일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명시했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4.19혁명으로 시작돼 광주민주항쟁, 1980년 6월 혁명에 이르는 민주혁명의 전통위에서 한국을 이끌어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박정희-전두환 독재와 부패세력에 의해 발전된 것으로 대한민국을 이해할 것인가? 국사학자들은 첫째, 독립운동 전통에서 대한민국이 이뤄졌고 둘째 대한민국의 발전은 민주세력에 의해 이뤄졌으며, 지향점은 평화통일이라고 본다. 이제 아이들에게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역사 가르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