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평양 산정현교회로 부임하다

<만우 송창근 바로보기9>

송창근 목사가 산정현교회에 부임한 것은 1932년 4월 상순이었다. 산정현교회는 일명 산정재교회라고도 불렸다. 현(峴)은 고개를 말하는 것이라서, 고개 ‘재’ 자를 넣어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산정현교회는 장대현교회에서 분립한 교회다. 장대현교회의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1903년 남문외교회가 분립했고, 1905년 사창골교회, 1906년에 산정현교회가 분립했다. 네번째 분립한 교회라서 처음에는 ‘평양성 제4교회’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907년 6월에 산정현에 교회당을 새로 지으면서 ‘산정현교회’로 바꿨다. 산정현교회는 1천여 원의 예산으로 건평 56평짜리 한옥을 세워 600석 규모로 지어졌다.

미국 번하이셀(Chales Francis Bernheisel, 1874-1958) 선교사가 산정현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그의 한국 이름은 편하설(片夏薛)이다. 그는 1906년 1월 장대현교회에서 산정현교회가 분립할 때 그 책임을 맡았고, 1913년 1월에 처음으로 한국인 한승곤 목사를 동역 목사로 청빙하여 교회를 이끌어 갔다.

한승곤 목사는 산정현교회에서 시무하다가 1916년 3월에 사임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후임으로 안봉주 목사가 3개월 간 임시 목사로 시무한 뒤 1917년 6월에 제2대 목사로 강규찬 목사가 부임했다.

강규찬 목사는 16세까지 한문 공부를 하여 한시(漢時)에 능통했고, 천문지리에도 조예가 깊었다. 1908년에는 미션스쿨인 선천 신성중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백낙준, 박형룡, 정석해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1931년 강규찬 목사가 산정현교회에서 목회한 지 14년이 된 해에 산정현교회 당회는 목사를 바꿀 계획을 세웠다. 미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송창근을 제3대 목사로 모시기로 확정한 것이다. 이는 송창근이 아직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 산정현교회의 당회원으로는 김동원, 조만식, 변홍삼, 박정익, 오윤선, 최정서, 김찬두 씨가 있었다.

이때 함경도 출신인 송창근이 평안도 지방인 평양의 대교회를 맡게 된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때만 해도 각 지방 간의 교류가 적고 지방색을 무척 따졌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거론되는 이야기는 ‘일본 유학 시절의 선배들인 채필근 목사와 강봉수 선생의 추천에 의한 것이리라’는 추정이다. 송창근에 대한 청빙 이야기가 나온 1931년 중반에, 채필근 목사는 숭실전문학교의 교수였고, 강봉우 선생은 숭실중학교의 교무주임이었다.

그러나 이는 너무 무리한 추정이다. 그보다는 ‘산정현교회 당회원인 장로들이 이미 송창근에 대하여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젊은 목회자 송창근은 이미 조선의 기독교계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우선 1922년 여름에 있었던 동경 유학생 모국 방문 순회 전도 강연회 때, 그의 강연 내지 연설 실력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것은 평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연회가 평양에서도 이틀에 걸쳐 여러 차례 열렸다. 평양 강연회 역시 대성황을 이뤘다고 하니, 평양 기독교계에서는 그때부터 이미 송창근에 대해 깊은 인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김재준이 일찍이 말했듯이 “그는 재치 있는 미남으로서 연설도 잘하고 좌담에도 능숙하고 교제솜씨도 세련된 품위 있는 청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산정현교회 장로들로서는 불과 9년 전이었던 강연회 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또한 송창근은 일본 유학을 가기 전이나 일본 유학 도중에, 그리고 미국에 가기 전에 이미 여러 기독교계 신문과 잡지들에 다수의 논설을 발표했었다. 그는 바울에 관한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편집하여 출간했고, 영어소설도 번역하여 출간했다. 또 <기독신문>에 연재했던 ‘푸린스톤 만필’에서 보듯, 미국에 간 뒤에도 줄곧 국내의 신문 잡지 등에 글을 발표한 유명인사였다.

당시 기독교계에서 발행되는 신문 잡지의 수는 극히 적었다. 그래서 그런 언론매체에 글을 발표하는 사람은 곧 주목을 받게 되어 있었다. 송창근은 이미 뛰어난 강연으로 주목 받고 있었으며, 기독교 언론매체를 통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인데다가, 더 나아가 미국에서 신학박사 학위까지 받은 유명인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산정현교회 장로들이 그를 담임목사로 모시려고 욕심 낸 것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귀국하기도 전에 미국에 있는 송창근과 연락하여 ‘귀국하면 산정현교회의 담임목사로 모신다’라고 서로 확정해 놓고 기다린 것이다.
 

1932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한 송창근 목사(앞줄 맨 오른족)가 첫 담임목사를 맡은 평양 산정현교회의 신도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부인 김재권 사모(앞줄 가운데)가 막내딸 시온 양을 안고 있다.                                                                                   사진제공=경건과신학연구소

송창근 목사가 산정현교회에 부임한 것은 1932년 4월 상순이었는데, 조선 장로교회의 규정상 평양신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목사 자격을 주지 않아서 ‘조사(전도사)’의 자격으로 부임했다.

당시 조선 장로교회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사람들로 하여금 반드시 평양신학교의 별과(別科: 1년 과정)를 거친 뒤 ‘목사 시취 시험에 합격해야’ 조선 장로교회의 목사가 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아무리 일본이나 미국에서 신학교를 다니고 신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은 목사라 해도 그 사람은 ‘일본 목사’나 ‘미국 목사’에 불과했다. 이는 선교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평양신학교’가 차지하고 있던 위상을 절대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조선 기독교계는 선교사들의 권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평양신학교의 1년 별과 과정을 이수한 송창근은 드디어 1933년 10월에 평양노회에서 ‘목사 고시’를 통과한 후 목사 장립을 받았다. 이때 시험문제 중에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워 보라’는 것이 있어서 송창근이 그대로 외웠다는 것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송창근이 1933년 10월에 목사로서 장립 받음으로써 산정현교회에서는 박형룡 목사의 임시 당회장 체제가 끝나고, 송창근이 담임목사로 교회를 이끌어 가기 시작했다. 그의 목회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설교에 능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카리스마와 친화력이 대단하면서도 ‘경건’을 강조하는 성실한 목회였기에 나날이 교인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송창근의 산정현교회 ‘전도사’ 시절의 단독 목회 회고담이 최문환 목사가 쓴 글에 남아 있다. 최문환 목사는 송창근이 전도사로서 산정현교회를 시무하고 있을 때, 평양신학교 학생이었다. 현직 전도사들이 1년에 한 학기 3개월 동안씩 신학교에 와서 교육을 받게 했던 특별과정에 속한 신학생이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산정현교회 예배에 출석했다. 그래서 당시 ‘전도사’로서 목회하고 있던 송창근의 목회 모습을 잘 알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증언을 남겼다.

제가 송 박사님을 알게 된 것은 송 박사님 고향인 경흥에서가 아니고 멀리 평안북도 평양북도 평양에서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이 되겠읍니다만 그때 송박사님은 미국에서 신학을 수학하시고 박사학위를 받으신 후 어떤 인연이었는지는 몰라도 평양으로 건너오셔서 산정현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시고 계셨습니다. 산정현교회라고 하면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애국자 조만식 장로님이 당회원으로 시무하시고 계셨던 교회였습니다.

그때 제가 받은 산정현교회의 인상은 매우 깊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줄곧 그 교회로만 나갔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그때 그 교회를 목회하시던 송 박사님은 위대한 목회자이다라고 느꼈습니다. 신분은 목사도 아닌 전도사로서 지방색을 초월한다고 하지만 나라의 끝지방 미미한 함북 출신으로서 우리나라 기독교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대 평양성에서 몇째 아니 가는 대 산정현교회에서 권위당당하게 목회하신다는 사실에 저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또 그대로 인정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목회이념 또는 그 목회방법이 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실례를 든다면 이런 것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주일 예배시간은 문자 그대로 엄수되었습니다. 일분일초도 어김이 없었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온다면 그야말로 불호령이 나기 마련입니다. 이론이 너무도 정당하기 때문이지요. 예배는 하나님을 뵈려 하는 엄숙한 예절에 속하는 것인데 온다고 약속한 시간을 제 마음대로 변경하는 일이 가당한 일이겠느냐고 만일 어느 경찰서장을 면회할 시간을 약속해 놓고도 5분 15분 늦게 와서 이러쿵 저러쿵 되지 못한 변명이나 늘어 놓는다면 그것이 어찌 도리에 맞는 일이겠느냐고 만일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서 불가피 시간을 어길 경우가 생긴다면 차라리 그날 예배에는 불참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이론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정당한 이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각 예배가 시작된 뒤에는 누구 하나 얼씬하는 일이 있을 수 없었고 그러기에 예배의식은 그야말로 엄숙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은 언제나 뒷자리에 앉게 마련이었고 어쩌다가 울음소리가 날 경우면 어느 사이에 문을 박차고 나갔는지 두 번 울음소리를들을 수 없도록 긴장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예배에 정성을 다하도록 노력하는 이링 그 얼마나 성스러웠는지 그야말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때 한 학기 동안 10여 회 그 교회에 나가면서 그것은 멀리 뒷 자리에서 예배의식에 참석했을 뿐 단 한번 송 박사님 서재로 찾아가서 한 시간 대화를 나눈 일이 있었을 뿐, 그 짧은 기회가 저의 일생을 통해서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훌륭한 인격자요, 또 전형적인 목회자였다고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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