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제헌헌법 교육,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천안 생활협동조합 강연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천안을 찾았다. 강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지유석 기자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한다. 지금 헌법이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이를 젊은이에게 돌려준다면, 그리고 헌법이 살아 움직인다면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12월1일(월) 오전 충남 천안시 아이쿱 천안소비자생활협동조합 초청 강연에서 강조한 대목이다. 
한 교수는 ‘한국 현대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제헌헌법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제헌헌법은 해산된 통합진보당 강령보다 더 빨갛다. 현행 헌법은 노동 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해 놓고 있는데 제헌헌법은 여기에 더해 노동자가 이익의 일부를 가질 권리인 ‘이익분배균점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해 놓았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은 자본가들이 독점한다. 반면 제헌헌법은 노동자의 몫을 정해 놓았다.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과 처음 맺은 계약서 원문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이상해졌다. 종편 언론에서는 내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부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제헌헌법은 기본정신이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조화하는데 있다’고 설명한다. 외할아버지인 유진오는 법제처장 시절 쓴 <헌법해의>에서 ‘우리나라는 경제문제에 있어서 개인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를 폐기하고 사회주의적 균등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고 적기도 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진보적 의제의 90% 이상이 제헌헌법에 담겨져 있다고 봐도 좋다.
한 교수에 따르면 제헌헌법엔 대타협의 정신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다. 한 교수는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제헌헌법과 여기에 담긴 정신은 누락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 교수는 그 근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헌헌법은 85조에 ‘지하자원과 수산사원 등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고 명시했다. 또 87조는 ‘운수, 통신, 금융,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용으로 한다’고 밝혀 놓았다. 농지는 어떨까? 제헌헌법은 농지를 농민에게 줘야한다고 했다. (지주의) 사적토지소유권을 유지하면서 농민에게 땅을 나눠줄 방법은 없다. 사실상 지주로부터 땅을 빼앗아 농민에게 주겠다는 말이다. 당시 조선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졌고, 지주의 정치적 연합체인 한민당에서 중직을 맡고 있었던 김성수는 찬성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사회분위기는 혁명의 기운이 비등했다. 독립운동을 하던 백범 김구, 약산 김원봉은 농민에게 토지개혁을 약속했다. 일제 강점기 인구의 80%는 농민이 차지했고, 이들을 조직하지 않으면 독립운동은 불가능했기에 이 같은 공약을 내세운 것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이뤄진 토지개혁도 영향을 미쳤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천안을 찾았다. 강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지유석 기자

김성수는 토지 소유권에 집착하지 않았다. 남한의 토지개혁은 대지와 임야는 제외되고 농지로 제한됐다. 김성수가 농민에게 대지는 놔두고 농지만 가져가라고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지주를 향한 설득노력도 했다. 
김성수는 지주와 농민이 공존공생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 대타협이란 이런 것이다. 보수세력의 시선으로 볼 때, 김성수의 사례는 가르칠 만 하다고 본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제헌헌법의 정신이나 대타협 사례는 누락될 것 같다. 먼저 현실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말하면 잡혀간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은 양보를 강요당할 것을 우려한다. 양극화가 심화됐음을 감안해 보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장 없애고 배급제 도입한 것 
한 교수는 강연 중간 국정화에 대해 날선 비판을 제기했다. 한 교수가 국정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명쾌하고 신랄했다. 
“뉴라이트는 교과서를 내놓지 못하다가 국사와 한국근현대사가 한국사로 개편되고 검인정 체제로 일원화 된 뒤인 2013년 교과서를 내놓았다. (중략) 
전국엔 약 2830여개의 고등학교가 있다. 그런데 교학사 교과서는 딱 한 곳에서만 채택됐다. 교과서 시장에서 완패했다는 말이다. 집권 여당은 좌파 역사학자 때문이라고 했다. 역사학자들의 힘이 그렇게 셌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이념지형은 진보진영이 20% 남짓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골수지지층 36%에 이른다. 교과서 채택 권한은 학교 운영위원회가 쥐고 있다. 한 번은 운영위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학부모 운영위원들이 제일 완고했다. 이런 분들이 즐비한 강남의 학교에서 조차 교학사 교과서는 외면당했다. 무엇보다 너무 졸속으로 만들어 냈다. 교학사 교과서는 약 400여 쪽인데 2,000여개의 오류가 발견됐다. 또 이 교과서를 기준으로 수능시험을 풀어봤더니 만점이 나오지 않았다. 
교학사 교과서는 말하자면 불량품을 내놓아 소비자에 의해 퇴출된 꼴이다. 사업을 계속하려면 품질을 개선해서 소비자들에게 거부당하지 않을 질 좋은 상품 내놓아야 하는데, 아예 시장을 없애고 배급제로 돌린 것이다.”
한 교수는 강의를 마치면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정부와 여당, 보수언론이 왜 강도 높은 역사전쟁을 걸어왔을까? 저들은 모든 걸 다 갖고 있다. 정권을 장악했고, 자본은 독점한 상태다. 사실상 모든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바로 역사다. 
역사는 돈 주고 살 수도, 대통령이 권력을 휘둘러서, 혹은 국회 다수당이 날치기해서 만들 수 없다.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시민들이다. 오늘 보낸 하루가 내일의 역사다.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 처럼 끝까지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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