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신년예배 말씀뽑기 온당한가

김응교 시인/ 숙명여대 리더십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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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 제공 )
▲말씀뽑기는 과연 성경적인가? 혹시 주술적 의미를 지닌 건 아닌가? 정히 말씀을 주고자 한다면 주술적 성격의 이벤트 보다 성도 한 사람의 삶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2015년이 저문다. 해마다 세밑이면 각 교회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이때 특별한 이벤트(?)가 행해진다. 바로 말씀뽑기인데, 새해 주는 하나님 말씀이라며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김응교 숙명여대 리더십 교양학부 교수는 이런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제비뽑기가 성경적인가? 김 교수는 정히 신도들에게 말씀을 주고 싶다면 주술적 성격의 이벤트 보다 신도 한 사람의 삶에 집중할 것을 당부했다. 김 교수가 보내온 기고문이다. 편집자 주]

귀국해 보니 말씀 제비뽑기가 한국 교회에 널리 퍼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상업적인 인쇄술과 맞물려 대량복제로 말씀카드를 만들어 뽑기를 하는 겁니다. 이런 일이 없던 1970년대가 오히려 그리워졌습니다. 제 지인 중에 목사님들이 많으시고, 제 친구나 가족 중에도 목사님들 계십니다.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합니다. 새해 첫시간부터 이런 이벤트에 참여하면 얼마나 황당하고 고통스러운지요.

성경에 제비뽑기를 하거나 주술적인 행태는 구약의 제사장들에게서 보입니다. 성경에서 제비뽑기는 책임자를 선발하기 위해서 행해지긴 했지만, 신년운세를 논하는 듯한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그럼, 그것을 따라해야 할까요? 구약의 구절을 그대로 따르는 유대교 신자이신지요. 예수님은 그런 주술적 요인을 거부하신 분입니다. 광야에서 40일간 시험을 당할 때 악마는 세 가지 기적을 행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주술적인 태도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며 당당하게 살 것을 권유하십니다. 공짜로 주어지는 기적에 기대지 않으셨던 젊은 예수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성막을 찢어 성도가 직접 말씀을 만나도록 하신 분입니다. 무당의 중재가 있어야 접신할 수 있는 원시종교와 기독교는 그래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키르케고르가 썼듯이 일대일로 말씀을 대할 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이야기가 바로 그 얘기죠. 기독교가 번창했던 스페인에 갑자기 진짜 예수가 찾아오자 대심문관은 예수를 알아보고 체포합니다. "당신 말대로 하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면서 예수에게 사형을 명합니다. 교회를 부흥케 하려면 세속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온갖 서비스를 행해야 한다며 예수를 야단칩니다. 바로 그 유사한 장면들이 우리 현실 속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아직도 행해지고 있어 보충하여 올립니다. 이 일을 계속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이 글을 꼭 전해주시면 합니다.

1. 일본에서 신년 0시에 절에 가면, 부적을 줍니다. 그 종이를 문지방에 붙여 놓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신사에 가서 100원 내면 운세가 적힌 종이를 줍니다. 오미쿠지 [おみくじ] 라고 하지요. 좋지 않은 내용이 나오면 나무에 묶고 나오면 그 나무를 신사에서 일하는 미코(巫女, 우리말로 무당)들이 태워 액운을 없앱니다. 저 오미쿠지를 온 방에 붙여 놓고 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씀뽑기가 일본 불교나 신사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 타종교의 예를 들어봤습니다.

왜 일본 불교나 신사를 예로 들었냐고 하실 수도 있겠어요. 초신자들에게 말씀 뽑기라도 해서 말씀을 전하고 싶은 목회자들도 뜻도 있겠으나, 좀 다른 방식을 생각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말씀은 피눈물 나는 체험 속에서 한 말씀 체험했을 때, 핏물처럼 눈물처럼 얻어지는 것이 평생 잊지 못할 귀한 말씀일 겁니다.

목사님들께서 어떡하든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겠으나, 진정 그러한 마음이라면 한 명 한 명 그 아픔과 희망을 묵상하며 개별적으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 복만 전해주는 기복적 주술적 효과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면 이런 형식은 과감히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새해 첫날부터 고통스러워 하는 신도들 한둘이 아닙니다.

예배는 삶이며, 예배는 주일의 형식이기도 합니다. 주일날 연습한 예배, 주기도문과 축도가 끝나면 진짜 예배를 드리죠. 그런데 이상한 예배를 드리면 삶의 예배까지 일주일 내내, 1년 내내 언짢고 고통스럽습니다.

2. 제가 이런 글 올리기 전에 이미 새물결플러스 김요한 목사께서 2008년에 이런 행위에 대해 지적했었습니다. 김 목사 말씀 중에 중요한 부분은 아래 부분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는 첫 걸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문맥 안에서 읽는 것임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문맥이 모여 성경 각 권을 이루고, 또 성경 각 권이 모여 성경 전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상 성경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즉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관한 위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관한 단일한 이야기임을 전제하고 성경 각 권을, 그리고 부분 부분을 읽어야 한다.

말씀을 문맥과 상관없이 해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욕되게 하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는 비일비재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상당수의 교회들이 송구영신 예배 때 시행하는 소위 [말씀 뽑기] 행사이다. 이는 성경에서 소위 가장 ‘은혜로운' 구절들만 뽑아서 말씀카드를 만들고 (예배 도중) 교인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뽑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뽑은 말씀을 하나님이 올해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직하게 자문해보자. 그렇게 해서 선택한 말씀이 정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혹시 그런 행사를 통해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 교회 담임목사가 (교인관리를 위해) 주는 말씀은 아닌가? 아니 좀 더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말씀카드 제작 회사에서 (장삿속으로) 주는 말씀은 아닌가? 혹시 이것은 기독교식 신종 [신년운세]가 아닌가?

..... 성경에는 축복과 위로와 소망 뿐 아니라 경고와 책망과 심판의 말씀도 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모든 구절들을 동등하게 심각하게 여기고, 그 안에 담겨진 영적 도리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복을 받고 싶다면, 부지런히 성경 전체를 읽을 것이요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된다. 하나님은 2008년에도 우리에게 성경 66권 모두를 ‘올해의 말씀'으로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3. 말씀뽑기를 하는 목사들은 순서를 강조합니다. '기도쪽지(소원쓰기) > 헌금넣기 > 말씀뽑기'로 이어져 있고, 여기에 목사의 안수가 마지막에 이어집니다. 헌금 넣은 댓가로 말씀이 주어지는 겁니다. 굿에 감사하며 소원을 말하며 복채(돈, 卜債)를 내고 무당의 축언을 듣는 샤머니즘 방식 그대로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 어디에서 이런 식으로 축복하신 예는 없습니다. 부적 모으듯이 말씀뽑기를 모으는 어르신들도 있어, 신수 뽑는 것 같은 마음 자세를 안타까워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4. 이제 부족한 생각들을 정리하자면,

1) 성경에는 책임자 선발하려는 제비뽑기 외에 주술적인 말씀뽑기 없습니다. 한 해를 지내며 말씀뽑기 하는 성경적 유래는 없습니다.

2)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제비뽑기나 주술적인 방식을 이용하는 듯한 흔적은 있습니다. 그것을 극복한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악마들이 기적을 만들라고 시험할 때, 세 가지 기적을 거부하고 삶 속에서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3) 말씀뽑기는 일본 불교나 신사, 대만 불교 혹은 원시종교에 있는 행태입니다. 신사에서 일반화 되어 있는 이런 말씀(운세)뽑기를 일본인 교회에서 본 적은 없습니다.

4) 성경은 부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한 구절의 의미가 전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습니다.

5) 말씀 뽑기는 축복만 강조하는 기복신앙을 주입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입 벌려 우유병 넣어주기만을 바라며 성장 못하는 유아신앙인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6) 목회자가 진정 성도에게 말씀을 주고 싶다면, 그 사람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기도한 뒤, 그것이 책망이 되더라도 적절한 말씀을 주어야 합니다. 머리털 한올이라도 세신다고 했는데, 10만명이든 이런식으로 말씀을 흩뿌리는 것이 목회인지요?

7) 새해를 위해 주시는 말씀은 한 구절이 아니라, 성경말씀 '전체'입니다.

8) '기도쪽지(소원쓰기) > 헌금넣기 > 말씀뽑기'로 어어져 있고, 여기에 목사의 안수가 마지막에 이어지곤 합니다. 굿에 감사하며 소원을 말하며 복채(돈, 卜債)를 내고 무당의 축언을 듣는 샤머니즘 방식 그대로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 어디에서 이런 식으로 축복하신 예는 없습니다.

9) 뭔가 해야 한다면 성경읽기표를 주든지 세족식을 하든지, 차라리 조를 짜서 노숙인이나 독거노인을 찾는 실제적인 일을 하면 합니다. 그것이 진짜 축복받는 길입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윤동주, <팔복>)

고흐가 자기 아버지께 남긴 그림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의 목회가 얼마나 이원론적이었고,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 아픔이 저 그림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 옆에 에밀 졸라 소설책이 놓여 있지요. 저 그림에는 세상 속의 소금, 어둠 속에 빛의 역할이 성경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밀 졸라 소설 같은 세속과 만날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을 고흐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뒤에 저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성경 말씀은 그저 아무에게나 던져 주면 복 된 것이 아닙니다.

기형도 시인은 <우리동네 목사님>이란 시에서 "성경에 밑줄 치지 말고 생활에 그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삶과 만나지 못한 성경 말씀 그 활자 자체에 의미가 있을까요. 그 활자들이 현장을 만날 때 살아나겠지요. 내 삶에 스파크를 일으키며 살아난 말씀이 진정 나에게 주어진 말씀일 겁니다.

예수는 정치적이 아니라면서 예배시간에 정치인들 소개하는 이벤트,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 하면서 백화점식으로 세일즈맨처럼 "정복하라" 외치며 가장 자본주의적인 세일즈방식 교육하는 이벤트, 예배는 신성하다 하면서 샤머니즘적 주술을 이용하는 이벤트, 예배인지요? 거부해야 합니다.

가족에게 이런 일을 명확히 거부하라고 말했습니다.

말씀뽑기를 거부하여 저는 매년 가족과 함께 어머니와 형님네 교회 가서 송년예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 하는 교회에 주기철 목사님이 반대했었듯, 히틀러에 충성하는 교회에 본회퍼가 반대했듯, 천황제에 충성하는 사이비 교회를 거부했던 우치무라 간조 선생처럼, 교회가 이상한 일을 행하면 그 비본질적 태도를 명확히 거부해야 합니다.

모든 분이 그러지 않으시지만 혹시, 혹시 말입니다. 말씀뽑기를 하면서 권위적으로 안수를 강요하면서 목사가 자신도 모르게 샤먼의 지위를 즐기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멈춰야 합니다. 그 순간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주술행위입니다. 이런 주술행위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무당목사에 무당교인, 예배당이 골빈당 됩니다. 아직도 이런 목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진정 말씀을 주고 싶다면 목사님들은 달콤한 서비스에 기대지 말고, 신도 한 사람의 고민과 삶을 묵상하여 그를 위한 훈계와 사랑의 말씀을 정성으로 적어주시면 합니다. 제비뽑기를 하고 싶다면 말씀이 아니라 선물 돌리기 하며 함께 즐거움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삶 자체가 말씀이 되셔서 성도들께 본이 되어 주시면 합니다. 몇 천 번의 설교보다 한 번의 실천이 감동됩니다.

진정 말씀을 얻고 싶다면 성도들은 공짜로 얻은 말씀 한 구절이 아니라, 거친 파도에서 예수님께 "겁내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던 베드로처럼 삶에서 부닥쳐 얻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 구절이 아니라 성서 전체의 깊이를 깨달아 당당하게 사는 빛과 소금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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