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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 성탄절 정신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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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혜암신학연구소 소장)

2015년도의 성탄절을 지내면서 과거에 우리 한국교회가 어떻게 성탄절을 지켜왔는지 회상해 보았다. 필자의 꽤 긴 생애의 경험으로 보면, 크게 해방이전 20여 년간 일제시대에 지켰던 교회의 성탄절 행사와 해방 이후 70년 동안의 성탄절 행사 사이에는 큰 변화와 차이가 있다.

일제시대에는 교회 안에서 예배 형식의 성탄절을 지냈다. 이때는 우리 민족 사회와 교회가 다 같이 가난한 시절이어서 교회의 성탄절은 예배당 안에서 소박하고 조촐하게 예배를 보는 정도였다. 예배당 안에 성탄절을 축하하는 어떤 화려한 장식도 없었고 크리스마스트리나 아름다운 화분들도 없는 교회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예배당 바깥에도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어떠한 장치도 없었다. 다만, 예배당 지붕에 세운 십자가와 예배시간을 알리는 교회의 종탑이 평소대로 예배당의 소재를 알리는 유일한 장치였다. 이렇게 하여 성탄절은 기분보다 의미를 찾는 절기였다.

이때는 크리스마스이브라는 개념이 희박한 가운데 성탄절 축하행사로서 교회 청소년들이 준비한 찬송가 부르기와 간단한 성탄촌극을 공연하는 시간이 있었고 구경거리가 별로 없던 이 당시에 마을 불신자들이 구경하러 교회에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이때 예배당 안의 강단은 신성시되어서 노래나 촌극을 단상에서는 할 수 없었고 다만 강단 아래에 내려서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이브 행사보다는 성탄일 저녁에 그런 행사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대신 성탄절 전야에는 교회 청소년들이 크리스마스 새벽송을 하기 위해서 교회 안의 작은 방에 10여 명이 모여서 밤늦게까지 재미있게 놀았다. 그러다가 잠시 눈을 붙인 뒤 새벽 찬 바람에 입은 옷도 신통치 않아 떨면서 교인들의 가정들을 찾아 새벽송을 부르고 다녔다. 이것은 불신자들에게도 성탄절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돌면서 간혹 떡국을 대접 받기도 했고 싸주는 떡을 받아와서 아침밥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성탄절 예배는 성탄절을 지키는 주요행사이기는 했으나 목사의 설교 내용이 달랐을 뿐이고 평소의 주일예배와 차이가 없었다. 다만 성탄절 설교를 들으면서 성탄절의 의미와 기쁨과 감격을 품게 되었기에 교인들은 아기 예수가 각자의 마음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기의 신앙생활을 반성해서 회개와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예배당에 설치된 악기로는 낡은 풍금 한 대뿐이어서 찬양대가 부르는 성탄절 찬양과 찬송의 가사가 풍금의 반주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똑똑하게 전달되어 듣는 사람들이 감명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성탄절 예배는 간소했지만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교인 각자의 심혼의 깊은 곳에서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솟아나는 예배였다.

이렇게 성탄절을 지키는 과정에 물질은 감사와 사랑을 전달하는 간단한 수단에 그쳤다. 한 해 동안 수고한 주일학교 교사와 찬양대원에 대한 감사로서 교회가 드린 것은 양말 한 켤레가 고작이었다. 교회 목사나 전도사에게 드린 선물도 극히 간단한 물품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평소 주일 낮예배 후에 교인들이 같이 먹는 점심식사 행사가 없었으나 성탄절에만 교회가 예배 후에 간소한 점심을 마련해서 공동식사를 하면서 사랑과 친교를 나누었다.

이처럼 일제의 박해 아래 자유가 없던 한국교회는 크리스마스를 교회 안에서 예배 중심으로 조용하게 지냈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한국이 마치 기독교 국가가 된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교회 안의 인물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전성시대에 편승하여 정계와 사회 각층에서 출세함으로써 기독교의 영향이 갑자기 커졌고 그 동안 교회 안에 축적되어 있던 기독교인들의 에너지가 교회 밖으로 분출하였다. 교인의 수가 갑자기 늘어났고 교회가 국가나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이권을 얻으며 정치나 사회에 관여하면서 부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도 국가가 지정한 공휴일이 되었다.

이처럼 사회가 교회의 변화를 초래함으로써 교회는 과거에 내면적인 면에 중점을 두었던 것과는 달리 행사 자체를 중시하게 되었고 교회 안에서의 성탄절 음악회나 연극이 교회 밖의 공연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가 이제는 성대하고 소란스러운 축제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예배를 위시하여 제반 축하행사들이 대형화되고 미화되고 공개되었다. 교인 수가 늘면서 찬양대 인원수도 많아졌고 웅대한 노래와 찬양소리를 냈지만 풍금 외에 피아노와 그 밖의 악기들의 반주소리 때문에 가사가 무엇인지 전달되지 않아 귀를 즐겁게 할 뿐이 되었다. 수많은 악기들이 비치됐고 연극은 경건한 예배당이 아니라 작은 음악공연장과 같은 느낌이 드는 곳에서 공연됐다. 강단과 교회 안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돈을 들여 만든 예술작품과 같아서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을 즐기는 관능적 효과를 내는 크리스마스가 된 듯하였다. 그리고 한 때 신성시되었던 강단이 보기 좋은 율동과 춤과 노래가 공연되는 무대로 변했다. 이러한 성탄절 축제 분위기에 교인들의 마음이 매료되어 성탄절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도 관능적인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바깥 세상은 크리스마스를 공휴일의 하나로서 즐기면서 개인적으로 혹은 단체적으로 크리스마스의 기쁜 심리를 세속화해서 크리스마스 철의 '기분'을 돋우어 먹고 마시고 놀고 여행 다니면서 흥겨워하게 됐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 즉, 크리스마스 철이 유흥과 상업의 호기(好機)로 변하여 상인들은 이 철에 소모되는 물건들을 많이 파는 호경기를 누리기 위해 장삿속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도시의 거리와 공공장소에 화려하게 설치하게 됐다. 이렇게 화려하고 규모가 큰 세속화된 크리스마스 철에 비하면 교회의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는 오히려 위축된 감이 든다.

이런 때 교회의 크리스마스 축하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속화된 크리스마스 철에 발맞추거나 그것을 추종할 생각은 이제 버리고 성탄절의 본래의 의미를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 TV를 보다가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크리스마스를 표상하는 선물상자에 물품을 넣어서 던져주니 동물들이 그것을 입으로 물어뜯어서 안에 든 물품을 꺼내는 장면을 보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오늘날 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탄절이 얼마나 세속화되어 부끄러울 정도가 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혹시나 해방 후의 한국교회의 축제와 크리스마스 축하가 사회로 하여금 크리스마스를 세속화하도록 유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아무튼 이제는 사회의 속되고 타락한 크리스마스 철을 보면서 우리 교회는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서도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함께 자기반성을 일삼는 성탄절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노령화되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교회도 예외가 아닌 이때 교회의 청장년들과 소년들이 합세한 새벽송을 회복해서 성탄절에 교회의 활기를 되찾았으면 한다. 새벽송을 돌기가 어려운 대도시는 제외하고서라도 가능한 곳에서는 새벽송을 복원해서 어둠을 헤치고 새벽을 알리는 활기찬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한다.

베들레헴의 첫 성탄일에 동방박사들이 귀중한 예물을 가지고 와서 아기 예수께 바치는 동시에 가난했던 그의 부모에게 전했던 것처럼 우리도 성탄절에 감사와 축하의 예물을 바치되 우리의 귀하고 값진 것을 드려 이웃과 나누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교회의 일년 예산 편성을 보면, 성탄절 헌금 액수가 다른 항목의 예산보다 적다. 이제부터는 성탄절 헌금 예산을 더 늘려서 그 헌금으로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탄절에 교회가 인근 마을의 불우하고 고독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을 청해서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공동식사 행사를 가졌으면 한다. 요즘 성탄절기에 한국의 방송국이나 기타 자선단체들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기부금 모금 행사를 전개하고 있는데, 좋은 행사라고 생각된다.

또, 성탄절이 공휴일이고 어떤 때는 금년처럼 토요일이 뒤따라오기도 하기 때문에 성탄절에는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선물도 드리고 형제자매와 친척과 동네어른, 그리고 친구들도 만나서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고 즐기는 일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요셉도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갔다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지 않았는가?

과거에는 성탄절에 카드와 편지를 주고받는 풍습이 있었는데 근래에는 점점 줄어들었고 더러는 핸드폰의 간단한 문자메시지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것보다는 카드와 편지를 쓰고 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요즘에는 오래전에 사귀었던 사람들이 먼 곳에 사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 친구들에게서 오는 크리스마스카드와 편지를 받을 때 마치 첫 성탄일에 천사들이 높고 먼데서 기쁜 성탄의 소식을 전하여 준 것처럼 느껴져 기쁘기 한이 없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셨던 때 베들레헴뿐만 아니라 유대나라 온 지역에 여행객들이 많아 여관마다 빈 방이 없었듯이 요즘 크리스마스 철에 여행객들이 많아서 여관들이 언제나 꽉 차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에도 노숙자들이 많아 날로 그 숫자가 늘어 가는데 교회 구내에는 평일에 빈 방들이 있다. 미국의 시애틀 지방의 한 장로교 교회에서 시무하는 김진숙 목사가 교회 안이나 구내에 노숙자들의 잠자리를 제공하는 운동을 시작하여 그 운동이 장로교단 안에 확산되고 있다. 아기 예수가 여관방을 얻지 못하여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처럼 우리 한국의 교회들이 노숙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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